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11
410화. 절호의 기회
“당장 내 사무실에서 나가도록.”
콰앙!
결국 남궁수에게 쫓겨나 백룡장으로 돌아가는 길.
“좀 웃었다고 쫓아낼 것까진 없잖아?”
투덜거린 백수룡은 공손수가 보낸 서찰을 다시 읽었다.
이 서찰이 도착할 때쯤이면 청룡제가 끝난 이후일 것 같군.
자네 덕분에 올해 청룡제는 엄청나게 흥행할 거라고 들었네. 휴학만 하지 않았다면 나도 그곳에서 한 손 거들었을 텐데 어찌나 아쉽던지.
발신인을 읽지 않았을 때도, 백수룡은 서찰을 보낸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용사비등한 필체와 친근하면서도 연륜이 느껴지는 어투.
무엇보다 ‘휴학’을 언급할 만한 학생은 백수룡이 아는 한 한 명뿐이었다.
요즘 청룡신협에 관한 소문이 황궁까지 들려올 정도라는 것을 아는가?
무림십존이라니!
자네는 멀리 있어도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더군.
허허. 이제 보니 내가 아주 싼값에 과외를 받은 것이었어.
한때나마 자네가 바가지를 씌웠다고 의심했던 나를 용서해 주게나.
……헌데, 요즘도 그 가격으로 과외를 하나?
서찰에서 느껴지는 공손수의 넉살에 백수룡은 킥킥 웃었다.
“여전하시네.”
서찰의 내용 대부분은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전하는 내용이었다.
황궁으로 돌아간 공손수는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다고 했다. 그 와중에 종종 청룡학관과 백수룡의 소식을 전해 듣는데, 들려오는 풍문들이 하나같이 믿기 힘든 것뿐이라 처음에는 헛소문으로 치부했다고 했다.
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소문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면서, 요즘에는 청룡학관과 청룡신협의 소문을 듣는 것이 삶의 큰 낙이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이 늙은이가 청룡학관 소속이라는 사실이 이토록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네.
다만 나도 함께 동문들과 활약하지 못한 것이 어찌나 분하던지!
흥분했는지 한껏 힘이 들어간 필체에서, 청룡학관과 백수룡의 명성이 높아지는 것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허허. 오랜만에 안부를 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흥분했군.
영이가 이걸 봤으면 주책 좀 그만 떨라고 타박을 했을 게야.
……하여간 나는 잘 지내고 있네.
지금도 하루도 빠짐없이 자네가 가르쳐 준 대로 수련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버겁던 것이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제법 할 만하거든.
허허! 이만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백수룡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혔다.
학생이 자신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있다는 말만큼, 선생으로서 기분 좋은 칭찬도 없었다.
“수련이 할 만하다라…….”
백수룡은 잠시 미묘한 표정이 되었지만, 이내 뒷내용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사실 이렇게 붓을 든 것은, 자네를 만나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서일세.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백룡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십존의 지위를 확고히 다지고 무림맹 총사범이라는 지위까지 갖게 된 백수룡은 더 이상 아무나 함부로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자네에게 미리 묻지 않고 만남을 주선한 것을 용서하게나.
허나 이 만남은 자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해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네.
‘날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누구지?’
공손수는 백수룡을 찾아올 사람이 누군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자신에게 듣고 미리 판단하는 것보다 직접 만나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놀라게 해 줄 생각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아무래도 후자 쪽 같기는 했다.
조만간 그가 자네를 찾아갈 것이네.
자네가 놀라는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함께 가지 못해 아쉽군. 아쉬워.
제법 긴 서찰의 내용이 끝나가고 있었다.
공손수의 아쉬운 마음이 서찰에 그대로 전해졌다.
원강이, 천이에게도 안부 전해 주게나.
언제쯤 황궁에서의 일이 끝나고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멀리서나마 너희를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다고 말일세.
언젠가, 청룡학관에서 모두와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이만 줄이겠네.
“저도 고대하고 있습니다.”
피식 웃은 백수룡은 서찰을 접어서 품 안에 고이 넣었다. 마음이 절로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날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어차피 조만간 그쪽에서 찾아올 것이라고 하니, 깊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백수룡은 백룡장으로 돌아가서 곧바로 답장을 쓰기로 했다.
멀리 떠난 제자의 서찰에서 한 가지 부분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려 준 수련 방법이 할 만하다고?’
하기야 허약한 노인이었던 시절에 짜준 수련 방법이니, 지금쯤이면 익숙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더 강도가 높고, 농담으로라도 할 만하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들겠지만, 효과는 확실한 그런 수련 방법을 말이다.
“최대한 빨리 답장을 드려야겠군.”
공손수에게 새로운 수련 방법을 알려 줄 생각에, 백수룡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조만간 답장을 받을 공손수의 표정은 썩 좋지만은 않겠지만 말이다.
* * *
다음 날.
청룡오망은 백수룡이 자리를 비운 백룡장에서 땀 흘리며 수련 중이었다.
“차하압!”
기합성과 함께 달려든 헌원강의 도가 상대의 어깨를 노렸다. 비록 흑도가 아닌 연습용 목도였지만, 그 기세는 맹수처럼 사나웠다.
그러나 헌원강의 대련 상대는 영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가볍게 공격을 쳐냈다.
바로 독고준이었다.
“잡념이 많아 보이는데.”
“시끄러워!”
독고준의 일침에 울컥한 헌원강은 연이어 공격을 쏟아냈다. 목도가 짐승의 발톱처럼 사방을 할퀴며 대기를 찢었다.
아직 살수에게 입은 상처들이 완전히 아물지도 않았지만, 헌원강의 움직임은 여전히 힘이 넘치고 날렵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어딘가 산만하고 불안해 보였다. 웬만한 학생이라면 그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당했겠지만, 독고준은 웬만한 학생이 아니었다.
“헌원강. 똑바로 집중해. 집중하지 않을 거면…….”
휘익!
독고준의 목검이 헌원강의 사나운 공격을 하나하나 쳐내고, 일점으로 파고들었다. 중검의 묘리가 깃든 독고구검의 초식이 목도의 중간 부분을 절묘하게 찔렀다.
뚝! 하고 헌원강의 목도가 부러졌다. 그 기세를 몰아 독고준은 헌원강을 밀어붙였고, 결국 연신 뒤로 밀리던 헌원강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였다.
“차라리 누워서 머리를 식혀라.”
“하아…….”
그대로 드러누운 헌원강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독고준이 건네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이건 네가 이긴 거 아니다. 내공도 안 썼고, 난 아직 부상자라고.”
“좋을 대로 생각해라.”
독고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살수와의 싸움으로 폐허가 되었던 연무장은 다시 고르게 다졌다. 그 위에서 청룡오망이 각각 땀을 흘리며 수련 중이었는데, 그들 모두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다들 표정이 좋지 않군.’
의원이 아직은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헌원강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수련이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못 견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화풀이라도 하듯 대련을 하거나, 억지로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많이 심란한가?”
독고준의 질문에, 헌원강은 멍하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그래도 이제는 좀 도움이 될 줄 알았거든.”
“…….”
아무리 적의 술법에 걸렸다곤 해도, 그리고 기억이 없다고 해도, 자신들이 백수룡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백수룡은 무사했지만, 싸우는 과정에서 크게 무리했는지 최근 안색이 좋지 않았다.
반년이 넘도록 함께 지냈는데, 그 정도도 눈치 못 챌 제자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남궁수 선생님도 우리 때문에 다칠 뻔했고…….”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즉시 청룡오망은 남궁수를 찾아갔으나, 곧바로 쫓겨나고야 말았다.
-너희의 공격이 내게 닿을 것 같나. 쓸데없는 소리 말고 회복에 전념하도록.
덕분에 마음이 조금 편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죄책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도움은커녕 방해만 된 꼴이잖아. 우리 때문에 선생님들이 다쳤고……. 젠장. 이젠 보호받는 것도 지겹다고.”
독고준은 헌원강을 위로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털썩 주저앉아서 함께 하늘을 올려봤다.
완연한 가을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분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독고준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헌원강이 고개를 돌려 그 옆얼굴을 바라보자, 주먹을 꽉 움켜쥔 독고준이 하늘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너희는 싸우기라도 했지. 나는 학생회장으로서 청룡학관이 공격당하는 걸 지켜봐야만 했어.”
백수룡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수들을 사냥하는 동안, 부관주와 다른 강사들은 학관에 남아 있던 학생들을 보호하고 통제했다.
강사들은 청룡오망 이외의 학생들이 살막과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독고준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청룡학관 최고의 후기지수이자 학생회장이라 한들, 강사들에게는 보호해야 할 학생이었다.
“그, 뭐냐. 우리야 애초에 살수들의 목표였으니까 미끼 역할을 한 거고, 너는 굳이 싸울 필요가 없었던 거겠지.”
조금 뻘쭘해진 헌원강이 뺨을 긁적이며 말했지만, 독고준은 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 무공이 충분히 강했다면 살수들과의 싸움에 참여해 너희를 도울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게 못한 건, 내가 아직 선생님들에게 믿음을 드리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뜻이야.”
“……뭘 그렇게까지 자책해?”
“자책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을 말했을 뿐이야. 헌원강. 우리는 아직 미숙하다. 너와 나뿐만 아니라 청룡학관 학생들 모두 선생님들이 보기엔 물가에 내놓은 아이들 같겠지.”
“…….”
시끄럽던 연무장이 어느새 고요해져 있었다.
각자 수련에 몰두하던 청룡오망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독고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바라봤다.
사실 그는 백수룡에게 부탁을 받아 백룡장에 왔다.
그 부탁이 청룡오망이 기운을 차리도록 도와달라는 것은 아니었다.
독고준은 그저 다친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그리고 자신의 각오를 전하고자 했다.
“언제까지 어린애로 남을 생각은 없어. 지난번과 같은 일이 또 벌어졌을 때, 나는 적들과 싸울 거다. 더는 청룡학관의 학생들이 다치는 꼴을 두고만 보지 않겠어.”
독고준은 학생회장으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설령 청룡오망 개개인이 자신에 못지않을 만큼, 혹은 더 강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뒤에 서고 싶지 않았다.
“……후배 말이 맞아. 언제까지 어린애일 수는 없지.”
거상웅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상대적으로 많이 다친 헌원강, 여민, 위지천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날 바로 백룡장으로 왔다면 자신이 후배들을 대신해 살수의 공격을 막아 주었을 텐데, 하는 후회와 미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일을 후회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자, 지난 일은 빨리 떨쳐내고 제대로 수련하자고!”
거상웅은 헌원강을 일으켜 세우고, 축 처져 있는 다른 후배들의 등짝을 한 대씩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으악!”
“아프다고!”
“누구 죽일 일 있어?!”
다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파했지만, 덕분에 축 처졌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다들 느끼는 바가 비슷했다.
지금 이렇게 있어 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 될뿐더러,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더욱 강해지는 것뿐이라는 것을.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군.”
독고준은 어느새 분위기가 밝아진 청룡오망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유일하게 자신보다 선배인 거상웅에게 말했다.
“진작 이 이야기부터 해야 했는데, 다시 수업이 재개될 때까지 저도 백룡장에 매일 찾아올 예정입니다.”
“우리야 좋지! 함께 수련하자고!”
청룡오망은 독고준이 자신들과 함께 수련하기 위해서 찾아온 줄 알고 반겼다.
하지만 독고준이 앞으로 매일 이곳에 오려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럼 최선을 다해, 오늘부터 여러분에게 매일 반 시진씩 기초수학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뭐, 뭐?”
“잠깐만요!”
“아, 아니 왜 그런 짓을?”
헌원강과 위지천, 야수혁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독고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몰랐나? 백수룡 선생님이 직접 부탁하신 건데. 청백 대항전에서 너희가 보여 준 지적능력이 인상 깊으셨던 모양이야.”
“…….”
앞선 셋이 충격을 받은 얼굴로 말문이 막힌 와중에, 그나마 거상웅은 무언가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생각보다 빠르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대단한 거라도 배우는 것처럼 분위기를 잡고 있어?”
유일하게 여민만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보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하지만 독고준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뿐만 아니라 당소소, 유이란, 목형우 선배님도 주기적으로 찾아와 여러분에게 부족한 상식과 교양을 가르칠 겁니다. 백수룡 선생님이 직접 부탁하신 일이니만큼,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수업을 시작할까요?”
“어, 그게 그…….”
“조금만 쉬었다가 하면 안 될까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마음의 준비라는 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서…….”
청룡오망은 벌써부터 도망치려고 눈치를 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지금 나한테 배우는 게 나을걸. 선생님이 돌아오셔서 수업 진도를 직접 확인하겠다고 하셨거든.”
““으으…….””
청룡학관이 정상화되고 수업이 재개될 때까지, 백수룡은 제자들에게 부족한 상식과 교양을 집중적으로 교육시키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마침(?) 다들 부상도 당했겠다, 공부를 시킬 절호의 기회였다.
똑똑-
백룡장에 손님이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