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43
442화.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건
“……네놈은 뭐냐?”
거령채주가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가만히 앉아 있었을 때도 거대했던 몸이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일순간 주변이 꽉 찬 느낌이 들 정도였다.
‘커다랗군.’
백수룡은 거령채주를 보며 생각했다.
덩치만 보면 과거의 맹사부와 비견될 만큼의 거한.
그러나 멧돼지가 아무리 덩치가 크다고 해도, 호랑이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지나가던 나그네요. 형산 자개봉의 경치가 절경이라기에 한번 구경할 겸 올라와 봤소.”
백수룡이 자신에게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대답하자, 거령채주의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댔다.
“너, 내가 누군지는 알고 여기 온 거냐?”
거령채주가 불쾌한 기분을 드러내자, 그 곁을 지키던 거대한 맹수들이 일제히 이빨과 발톱을 드러냈다.
크르르르…….
그러나 백수룡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글쎄. 경치를 보러 왔을 뿐인데 선객이 누군지까지 알아야 하나?”
“내 부하를 피떡으로 만들고 경치를 보러 왔다?”
거령채주는 발아래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부하를 바라봤다. 이빨이 왕창 부러진 걸 보니, 몇 달은 죽만 먹어야 할 듯했다.
“감히……!”
은은한 살기가 거령채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자, 맹수들이 백수룡을 포위했다. 명령이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백수룡을 찢어발길 기세였다.
그러나 백수룡은 여전히 태연했다.
“먼저 덤빈 건 그쪽이었소. 오히려 죽이지 않은 걸 고마워해야지. 그리고 이 짐승들은 뭐요? 오늘 저녁으로 먹으라고 주는 건가?”
“……뭘 믿고 이렇게 까부는 거냐?”
“글쎄. 뭐일 것 같소?”
피식.
백수룡이 거령채주가 함부로 자신을 공격하지 못하리라고 확신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파 회합이 내일인데,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를 함부로 공격할 수 있을 리 없지.’
녹의수사는 거령채주가 포악하고 잔인한 성정을 지니고 있지만, 결코 멍청한 자는 아니라고 알려 주었다.
거령채에서 한 손에 꼽히는 실력자를 일격에 쓰러뜨린 고수. 그런데 그 정체를 짐작조차 못 하겠으니, 지금 거령채주의 머릿속은 무척 복잡할 것이다.
저쪽에서 가만히 분위기만 살피고 있는 호문채주도 마찬가지일 터.
콰앙!
거령채주가 휘두른 주먹에 그가 앉아 있던 바위가 쪼개졌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거령채와 호문채의 산적들이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크흐흐. 너처럼 간덩이가 부은 놈은 오랜만이다. 용기가 가상하니 이 자리에서 죽이지는 않으마. 어디 더 떠들어 봐라.”
“…….”
속내가 뻔히 읽히는 수작이었다.
정말 죽이고 싶었으면 바로 공격을 하지, 굳이 상대의 정보를 캐내려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은 아니군.’
덩치만 맹사부와 비슷하지, 다른 것은 비교하는 것이 불쾌할 정도로 모자란 자였다.
고작 저런 놈이 녹림왕 자리를 노린다고?
백수룡은 혀를 차고 싶은 것을 참으며 말했다.
“말하지 않았소? 경치를 구경하러 왔다고. 겸사겸사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고.”
“이봐. 서로 간 보는 짓은 그만하자고.”
두 사람의 대치를 지켜보고 있던 호문채주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곰방대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사내의 눈이 가늘어졌다.
“딱 봐도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온 놈이냐? 흑사련? 악인곡? 모산파는 아닐 테고…….”
상대는 거령채와 호문채에서 한 손에 꼽히는 고수들을 일격에 쓰러뜨린 고수.
허나 녹림도라고 하기에는 덩치가 크지도 않았고, 말투도 대체로 거친 산적들과는 달랐다.
무엇보다 허리춤에 매달린 유엽도가 호문채주의 신경을 건드렸다.
‘칼을 휘두르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도객이 칼을 뽑지도 않고 거령채와 호문채의 고수들을 일격에 박살 냈다?
그럼 칼을 뽑았을 때는 더 강하다는 것인데…….
호문채주의 표정에 경계심이 어릴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저런 실력이라면 소문이 나지 않을 리 없는데,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저 담황색 머리카락만 해도 눈에 띄는데…….’
거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사내의 담황색 머리카락이 미풍에 물결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신비로우면서도 야성미가 넘쳤다.
‘담황색 머리카락?’
이 순간, 어릴 때 부친에게 들었던 녹림투왕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어디서 왔을 것 같소?”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백수룡의 모습에, 호문채주는 잡생각을 털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답하기가 싫은 모양인데.”
자리에서 일어난 호문채주가 등을 살짝 구부리자, 기형적으로 긴 팔이 땅에 거의 닿을 것 같았다.
거령채주에 비해 덜할 뿐이지, 그 역시 수많은 산적들 위에 군림하는 폭군이었다. 그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비죽 드러내며 경고했다.
“우리가 너를 함부로 죽이지 못할 줄 알고 건방을 떠는 모양인데, 네가 내 부하에게 한 짓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알아야지.”
호문채주가 함께 싸울 것처럼 나서자, 거령채주도 주먹을 말아쥐며 히죽 웃었다.
“그렇지. 이놈을 피떡으로 만들어 놓으면, 누구든 주인이 찾으러 오겠지.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상대 세력이 어디든, 호문채주와 함께 대응한다면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는 계산이었다.
의견이 일치한 두 채주가 눈빛을 교환하더니, 백수룡을 앞뒤로 포위했다. 그들이 내공을 끌어올리자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사나운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
츠츠츠츳…….
“자비를 베풀어 줄 때 빌었어야지.”
“흐흐.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으면 적당히 끝내주마.”
동시에 거령채와 호문채의 산적들이 넓게 포위망을 형성했다. 도망칠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이건…….”
포위된 백수룡의 표정이 점점 굳었다. 거령채주와 호문채주가 끌어올린 기파를 느낀 이후부터였다.
으득.
이를 꽉 악문 백수룡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묻듯 중얼거렸다.
“……그냥 여기서 다 죽여 버리면 안 되겠소?”
“이 새끼가!”
거령채주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멈춰라-!
강대한 공력이 깃든 사자후가 거령채주의 출수를 멈추게 만들었다. 백수룡을 포위했던 자들이 일제히 돌아서며 일갈이 터져 나온 방향을 바라봤다.
곧 아는 얼굴을 발견한 두 채주의 표정이 굳었다.
“녹의수사?”
“어떻게 여길?”
녹의수사는 혼자서 오지 않았다.
그의 좌우를 장걸과 구길이 호위하고 있었고, 뒤로 포승줄에 묶인 산적들이 절뚝이며 따라오고 있었다.
전부 사지 중 한 곳은 부러져서 부목을 대거나 서로를 부축한 모습이었다.
“왜 저놈들이…….”
털북숭이를 발견한 거령채주의 눈에 진득한 살기가 맺혔다.
잘 숨어서 대기하라고 했거늘, 어째서 녹의수사에게 잡혀 온단 말인가.
거령채주는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기세로 부하를 노려봤다. 털북숭이는 그 시선을 감히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둘 다 오랜만이군.”
두 채주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춰선 녹의수가 말했다.
“너희가 핍박하고 있는 사내는 염라채의 식구다. 당장 포위망을 풀고 물러나라.”
그러나 둘 다 녹의수사의 말을 순순히 들어줄 자들이 아니었다.
“저놈이 염라채 소속이라고? 못 들어 본 놈인데?”
거령채주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묻자, 녹의수사가 서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언제부터 염라채 식구들에게 이렇게 관심이 많았지?”
“이 늙은이가……!”
“잠깐만.”
거령채주를 제지하고 앞으로 나선 호문채주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녹의수사. 지금 우리와 전쟁을 하자는 건가?”
“무슨 소리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녹의수사의 표정에, 호문채주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쓰러져 있는 부하들을 가리켰다.
“네 식구라는 놈이 우리 식구들을 피떡으로 만들었다. 어떻게 보상할 거냐?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네 식구에게 똑같이 해 주겠다.”
“보상이라……. 식구라는 이름과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군.”
녹의수사는 가만히 뒷짐을 졌다.
묘한 일이었다.
이곳에 모인 세 채주 중 가장 작고 마른 체격을 지녔지만, 그의 존재감은 가히 독보적이었으니.
녹의수사가 준엄한 목소리로 두 채주를 꾸짖었다.
“약속을 먼저 어긴 것은 너희들이다. 설마 내 뒤에 있는 자들이 너희 식구가 아니라고 말하진 않을 테지?”
“…….”
“…….”
두 채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회합에 참여하는 모든 사파 세력은 최대 네 명까지만 동행할 것.
모든 세력이 동의한 규칙이었다.
누구도 그 규칙이 제대로 지켜질 거라 생각한 자는 없겠지만, 이렇게 발각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빌어먹을. 놈이 어디까지 알아낸 거지?’
‘이렇게 되면 계획이…….’
거령채주와 호문채주가 난감한 기색으로 시선을 교환할 때였다.
“헌데 이놈들은 거령채인가? 아니면 호문채인가? 끝까지 입을 열지 않기에 직접 확인해 보려고 데려왔는데.”
“……뭐?”
“…….”
두 채주, 특히 거령채주는 놀란 표정으로 털북숭이 산적을 바라봤다.
얼굴이 피투성이인 것이 한눈에 봐도 심한 고초를 겪은 게 틀림없는데, 저 꼴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불지 않았다고?
살기로 번들거렸던 거령채주의 눈꼬리가 살짝 아래로 내려갔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털북숭이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녹의수사는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모습을 못 본 듯했다.
“뭐, 누가 되었든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 같은 녹림의 식구로서 이번 한 번은 모른 척 넘어가 주겠다.”
녹의수사는 잡아 온 산적들을 순순히 풀어주고, 다른 사파 세력들에게도 알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대신 포위망을 풀고 백수룡을 이쪽으로 보낼 것을 요구했다.
“그 친구도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실수한 것이니, 이쯤에서 서로의 실수는 덮는 것이 어떤가?”
“…….”
“…….”
“아니면 정녕 이 자리에서 피를 보길 원하나?”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는 잠시 전음을 주고받는 듯하더니,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녹의수사와 부딪치는 것은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데려가라.”
거령채와 호문채의 산적들이 포위망을 열자, 백수룡이 그곳을 빠져나와 녹의수사에게 걸어갔다.
그런데 어쩐지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여서, 녹의수사는 걱정스레 전음을 보냈다.
[사형. 괜찮으십니까?]백수룡은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싶은 건 다 봤어. 이만 돌아가자.] [예.]전음으로 대답한 녹의수사는 거령채주와 호문채주에게 말했다.
“그럼 내일 회합에서 보도록 하지.”
녹의수사가 몸을 돌리자, 장걸과 구길, 백수룡도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데려온 산적들은 눈치를 보며 자리에 남았다.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해소되어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어이. 애송이! 너 이름이 뭐냐?”
거령채주의 외침에 백수룡이 자리에 멈춰섰다.
애송이.
그 한마디가 간신히 화를 억눌렀던 그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만들었다.
“이봐. 멧돼지.”
“……!”
자신을 돌아보는 백수룡의 눈빛에, 거령채주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무시무시한 살기가 두 눈에 일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녹림에서 나를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건 단 한 명뿐이야. 그러니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마.”
“저, 저 건방진 새끼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거령채주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으나, 끝내 출수를 하지는 못했다.
“미친 놈을 일일이 상대할 것 없다.”
“…….”
명목상의 이유는 호문채주가 말려서였지만, 그가 말리지 않았다고 해서 과연 출수할 수 있었을까?
“맹룡휘.”
“……뭐?”
“그게 내 이름이다.”
백수룡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자개봉을 내려갔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맹사부의 무공을 조금이나마 이었다는 자들이 실제로는 어떤 놈들인지.
혹시 갱생이 가능한 놈들이라면, 굳이 죽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기대는 한참을 벗어났다.
둘 다 몸에 밴 피 냄새가 짙어 역겨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맹사부. 저놈들은 반드시 죽여야겠소.’
두 놈 다 혈교에 맹사부를 팔아넘긴 놈들의 후손이 확실했다.
그게 아니라면, 둘 다 혈교의 마공을 익혔을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