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44
443화. 그럴 줄 알고
임시로 차려진 막사 안.
“그러니까…….”
녹의수사의 표정이 경악으로 굳어 있었다.
심호흡을 하며 겨우 안정을 찾긴 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떨려 나왔다.
“그 두 놈이 마공을 익혔다는 말씀입니까?”
방금 전, 녹의수사는 백수룡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녹림투왕의 무공 일맥을 이은 것으로 알려진 거령채주와 호문채주가 사실은 마공을 익혔다는 이야기였다.
“그래. 그것도 혈교의 마공이 확실해.”
백수룡은 차분한 신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개봉을 떠날 때만 해도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지금은 그 분노를 차갑게 가라앉힌 상태였다.
반면 녹의수사의 얼굴은 점점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그럼, 사형의 말씀은…….”
“맹사부를 배신한 놈들이 거령채와 호문채의 전대 채주들이라는 뜻이지.”
“이 찢어 죽일 놈들!”
자리에서 일어난 녹의수사의 두 눈에 흉흉한 살기가 흘렀다.
백수룡과 만나기 전부터, 녹림투왕을 마음속 깊이 스승으로 모시고 있던 그였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녹림투왕의 제자를 자처하던 자들이 인면수심의 짐승이었구나!”
설마했던 의심이 현실이 되었다.
전대 거령채주와 호문채주가 배신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거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 녹의장포가 미친 듯이 펄럭였다.
“지금 당장 가서 두 놈을 찢어 죽이고 오겠습니다!”
“사제. 진정해.”
백수룡은 손을 뻗어 막사에서 뛰쳐나가려는 녹의수사를 붙잡았다. 그의 눈이 몹시도 서늘했다.
“지금 죽이면 그 이후에는 어쩔 건데? 녹림 간의 전쟁을 염려했던 건 내가 아니라 사제잖아.”
“그건……!”
녹의수사는 이를 꽉 악물고 백수룡을 바라봤다.
분명 더 화가 났을 사람은 직전제자인 사형일 텐데, 그 순간의 분노를 어찌 참으셨을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에 녹의수사는 고개를 푹 떨궜다.
“죄송합니다. 못난 사제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일을 그르칠 뻔했습니다.”
“무슨 소리. 나만큼 맹사부의 일에 화를 내주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데.”
피식 웃은 백수룡은 고개를 돌려 막사 바깥을 바라봤다.
장걸과 구길이 막사 바깥에서 철통같이 경계를 서고 있다.
백수룡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기막을 펼쳐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은 탓에, 그들은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저 녀석들에게는 말하지 마. 분명 표정 관리 못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녹의수사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신과 사형은 감정을 숨기는 데 능숙한 편이지만, 장걸과 구길은 결코 그렇지 못할 것이다.
“사형께서도 정말 잘 참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놈들을 도륙했다면…… 마음은 편했겠지만, 녹림에 수많은 피가 흘렀을 겁니다.”
거령채와 호문채는 전대 채주 때부터 권력을 공고히 해 왔다.
전대 채주들은 여러 자식을 낳았고, 그 자식들 중 적지 않은 숫자가 그들 휘하에 있는 산채들의 주인이 되었다.
즉, 그들은 혈연으로 연결된 거대한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백수룡이 미간을 모으며 물었다.
“그럼 마공이 여러 곳에 퍼져 있을 수도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녹의수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유를 설명했다.
“혈연이라곤 해도 끈끈한 편은 아닙니다. 언제 다른 형제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자리를 노릴지 모르니까요. 전대 채주들도 후계자에게만 마공을 전수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무엇보다…….”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을 게 없겠지. 놈들이 내세우고 있는 명분을 생각하면.”
“맞습니다.”
사실 녹림도가 마공을 익혔다는 사실 자체는 대단한 비난거리는 아니다. 오히려 온갖 무공을 잡다하게 익히는 경우가 더 흔했다.
하지만 녹림투왕의 무공을 이었다고 주장하는 거령채주와 호문채주의 경우는 달랐다.
마공을 익혔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그들이 내세우는 정통성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 순간, 같은 생각을 떠올린 백수룡과 녹의수사의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계략을 꾸미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건 놈들이 마공을 익혔다는 걸 증명하는 거야.”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일수록 효과가 클 겁니다. 녹림뿐만 아니라 다른 사파의 종주들도 증인이 되어 준다면…….”
“그 자리에서 사제가 맹사부의 무공을 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 효과는 배가 되겠지. 확실하게 비교가 될 테니까.”
“허나 놈들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마공을 쓰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쓸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유도해야 하는데…….”
“나한테 확실한 방법이 있긴 한데.”
“……?”
“아니, 아무래도 그건 안 되겠군.”
순간 혈마안을 떠올린 백수룡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방법이야 가장 확실하지만, 수많은 사람 앞에서 역천신공을 드러내는 꼴이었다.
회합에 모이는 사파의 종주들이라면 약간의 기운만으로도 눈치채는 자가 있을 수 있었다.
“그건 마지막 수단으로 미뤄 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방금 한 가지 계획이 떠올랐는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막사 안에 있는 촛불의 흔들림에 따라 두 사람의 그림자도 어지럽게 흔들렸다. 음모가 깊어지는 밤이었다.
문득 백수룡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것도 좋은데, 난 사제가 무식하게 힘만 센 무인이 아니라서 마음에 들어.”
“저 또한 사형처럼 마음이 맞는 분을 녹림에서 만나리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난 녹림이 아닌데?”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시는 건 좀…….”
그때, 두 사람은 대화를 멈추고 동시에 고개를 돌려 막사 바깥을 바라봤다.
막사 바깥에 세워진 횃불이 툭 하고 꺼지더니, 경계 중이던 장걸과 구길이 동시에 의식을 잃고 스르륵 무너졌다.
“감히 어떤 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녹의수사를 백수룡이 제지했다.
“둘 다 의식만 잃은 거야. 살기는 없었어.”
만약 살기가 느껴졌다면, 백수룡이 진작 나서서 막았을 것이다.
게다가 피부로 느껴지는 익숙한 무공의 기파.
백수룡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내 손님인 것 같군.”
그 순간, 막사 안으로 한 사내가 들어왔다. 달빛이 스며들듯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되도록 조용히 만나고 싶어 실례를 범했으니, 부디 양해해 주시오.”
사내의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를 본 녹의수사는 낮게 침음했다. 상대의 무공은 결코 자신보다 아래가 아니었다.
새파란 눈동자에 귀신처럼 은밀한 움직임.
녹의수사는 강호에 떠도는 소문과 부합하는 별호를 떠올렸다.
“악인곡주?”
“처음 뵙겠소. 벽안귀라 하오.”
정중히 포권을 취하는 사내는, 악인곡의 새로운 곡주이자 사파 회합의 주최자인 벽안귀였다.
녹의수사에게 인사를 건넨 벽안귀는 고개를 돌려 백수룡을 바라봤다.
“그쪽은…….”
그가 알던 얼굴과는 상당 부분 달랐지만, 청안마공을 익힌 그는 본능적으로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오랜만이야.”
백수룡은 역골공을 풀며 씩 웃었다.
그러나 창룡신검의 술법으로 바꾼 풍성한 머리카락은 여전히 담황색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노란 머리라니.”
벽안귀는 백수룡의 머리색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백수룡의 머리색은 피처럼 붉은 적발이었으니까.
“염색이 취미요?”
오랜만에 만나서 괜히 툴툴거리는 벽안귀의 말에,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 * *
백수룡. 녹의수사. 벽안귀.
한자리에 모인 그들은 꽤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녹림과 악인곡은 동맹을 맺었다.
본래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으나, 백수룡이 중간다리 역할을 하면서 굳건한 동맹이 완성되었다.
“사제. 잠깐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올게.”
“다녀오십시오.”
백수룡에게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는 녹의수사의 모습을, 벽안귀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막사에서 꽤 멀어진 후에야, 벽안귀는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청룡신협이 녹의수사의 사형이 될 수가 있는 거요?”
“놀라운 기연이 있었지.”
백수룡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 뻔뻔한 대답에 벽안귀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또 기연이라? 천하에 존재하는 기연은 다 얻으셨나 보군.”
“얻기만 하진 않았어. 내가 기연을 나눠 주는 것도 얼마나 많이 하는데.”
“허, 말이나 못 하면…….”
벽안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전과 달라진 그의 기도를 살핀 백수룡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아주 바쁘게 지냈소. 수시로 서찰을 보내서 이것저것 시키는 누구 덕분에.”
아까부터 은근히 퉁명스러웠던 것이, 찾아오지도 않고 부려먹기만 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바쁘게 보낸 것치고는 상당히 강해졌는데? 무공 수련도 열심히 했나 보군.”
“……그래 봤자 당신만 하겠소.”
말은 그렇게 해도 강해졌다는 칭찬에 기분이 나쁘진 않은지, 벽안귀는 얼굴에 뿌듯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나한테 말을 높였지? 전에는 서로 편하게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냥 예전처럼 해.”
“그건……. 그냥 이게 편하오.”
벽안귀는 잠시 망설이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실은 그가 익힌 청안마공 때문이었다.
청안마공은 혈마의 그림자 호위들이 익히는 무공이었고, 때문에 처음부터 역천신공에 복종하도록 만들어진 무공이었다.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백수룡이 익힌 역천신공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벽안귀는 무의식적으로 말을 높이게 되었다.
지금도 태연한 척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조차 심력이 소모되었다.
“혹시 역천신공 때문인가?”
“…….”
“맞나 보군.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았는데도 영향을 받는단 말이지.”
“…….”
“나중에 고쳐 줄게. 지금의 부작용이 없어지도록.”
“……어째서?”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벽안귀에게, 백수룡은 당연하지 않냐는 투로 말했다.
“그야 쓸데없는 부작용이니까.”
“당신에겐 오히려 손해일 텐데…….”
“손해? 너 설마, 내가 평생 널 부려먹기라도 할 줄 알았어?”
“…….”
“대답 못 하는 거 보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보네.”
백수룡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목적은 혈교를 세상에서 지우는 거지, 똑같은 놈이 되어서 군림하는 게 아니다.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벽안귀는 그의 시선을 피해 말없이 밤하늘을 올려봤다.
-머지않아 혈교가 다시 발호할 거다. 나와 함께 놈들과 싸우지 않겠나?
악인곡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후 절규하는 벽안귀에게, 백수룡이 손을 뻗으며 했던 말.
그날 벽안귀가 백수룡의 손을 잡았던 이유는, 그의 눈빛에 담긴 분노가 진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어쩌면 당신이 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소.”
“그래 보이나?”
청룡신협의 소문이 무림을 들썩이게 할 때마다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벽안귀는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신은 결국 새로운 혈마의 탄생을 지켜보는 중인 게 아닐까?
백수룡은 끝까지 청룡신협으로 남을 수 있을까?
그가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고, 수많은 세력을 등에 업은 후에도, 끝내 혈마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다행히 아직은 그대로인 것 같군.”
벽안귀가 멋쩍게 웃었다.
여전히 백수룡의 눈을 똑바로 보는 것이 힘들었지만, 어렵게 들여다본 그 눈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똑같았다.
“이 빌어먹을 부작용 좀 빨리 없애 주시오. 당신과 눈만 마주쳐도 후달려 죽겠으니까.”
“일단 너 하는 거 봐서.”
“빌어먹을. 얼마나 더 부려먹으려고…….”
나직이 욕설을 내뱉은 벽안귀는 피식 웃더니,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녹림을 하나로 만든다는 계획. 쉽지 않을 거요.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도 그리 만만한 자들이 아니니까.”
“알아.”
“내 생각엔, 놈들의 동향을 꾸준히 살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자 백수룡이 씨익 웃었다.
“그럴 줄 알고 이미 믿을 만한 첩자를 심어 놨지.”
“첩자?”
벽안귀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은 시각.
캬앗.
주홍색 털과 까만 줄무늬를 가진 아기 맹수가 수풀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곧 거령채의 산적을 발견한 은호는 그 뒤를 살금살금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