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45
444화. ??!
거령채와 호문채의 막사 주변은 대낮처럼 환하게 횃불이 밝혀져 있었다. 사파 회합을 위해 모인 그들은 아예 같은 장소에 막사를 차렸다.
“어떤 새끼든 다가오면 바로 위에 알려!”
“명심해. 또 아까 같은 일이 벌어지면, 우리 다 뒈지는 거야.”
산적들이 돌아가면서 번을 섰는데, 낮에 맹룡휘라는 놈에게 당한 습격으로 하나같이 고리눈을 치켜뜬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거령채에서 기르는 짐승들도 사주경계에 동원되었다. 인간보다 수십 배는 뛰어난 오감을 지닌 맹수들이 사방을 경계하니 빈틈이 없었다.
뛰어난 살수라고 해도 잠입은커녕 가까이 접근조차 쉽지 않은 상황.
캬앗…….
은호는 수풀에 숨어 시무룩한 얼굴로 적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숨어들 빈틈이 보이지 않아, 한 식경째 발바닥만 핥는 중이었다.
그때, 막사 바깥으로 슬쩍 빠져나오는 산적 하나가 보였다.
“옘병. 내일이 회합날인데 누가 쳐들어온다고 지랄인지.”
산적은 불만을 투덜거리며 수풀 구석에다 오줌을 누었다.
그는 거령채의 중견쯤 되는 산적이었다.
평소와 같았으면 경계 따위는 말단에게 맡기고 퍼질러 잤을 텐데, 채주의 엄명이 있어서 꼼짝없이 불침번에 동원된 것이다.
“으으. 쌀쌀하구만.”
볼일을 마친 산적은 바지춤을 추스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캬앗?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은호는 한 가지 계획을 떠올렸다. 즉시 막사로 돌아가는 산적의 뒤꽁무니에 따라붙었다.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산적을 따라가던 은호는 곧 행동에 나섰다. 일부러 기척을 낸 것이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울음소리로.
냐앙.
그 순진하고 무해한 울음소리에 산적이 뒤를 돌아봤다.
“산고양이?”
이윽고 산적의 눈이 동그래졌다. 고양이 한 마리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보는 것이 아닌가.
줄무늬를 보니 호랑이 새끼는 아닐까 싶어 멈칫했지만, 울음소리가 아무래도 고양이 같았다.
냐아앙.
은호가 산적의 발치에 다가가 몸을 치댔다.
처음에는 살짝 당황해하던 산적은, 이내 보드라운 털의 감촉에 표정이 흐물흐물해졌다.
“허. 고놈 참…….”
은호가 청룡학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갈고 닦은 오의(奧義).
수많은 간식들을 상납받을 수 있었던 기술에 거령채의 산적도 속수무책으로 넘어갔다.
“흐흐. 고놈 붙임성 한번 좋구나. 지금은 먹을 건 없고……. 너 나랑 같이 갈 테냐?”
냐아앙!
폴짝 뛰어오른 은호가 산적의 품에 안겼다.
그 순간, 산적의 표정은 완전히 녹아내렸다.
그는 은호를 두 손으로 보물처럼 소중히 안으며 말했다.
“요 녀석. 말귀를 찰떡같이 알아듣는구나. 너 혹시 영물은 아니겠지?”
냐앙?
입이 헤벌쭉 벌어진 산적은 은호를 품에 안고 막사로 돌아갔다.
귀여운 생물에 마음이 풀리는 것은 녹림의 거친 사내들도 똑같았다.
오히려 맨날 커다란 맹수들만 보던 거령채의 산적들이니만큼, 작고 귀여운 짐승을 볼 기회가 더욱 귀했다.
“형님. 고놈은 뭐유?”
“웬 고양이를 주워 왔어?”
산적의 품에 안긴 은호를 본 다른 산적들이 물었다. 잠시 이쪽을 힐긋거리던 맹수들은 산적의 품에 안겨 들어온 걸 보고는 경계심을 풀고 고개를 돌렸다.
“오다 주웠다. 먹이나 좀 주고 키워 보려고.”
“별일이 다 있네? 보통은 우리한테 나는 맹수 냄새 때문에 짐승들이 접근도 안 하는데.”
“흐흐. 이게 바로 천지신명께서 점지해 주신 운명인 게지.”
다들 신기하다고 와서 은호를 구경하고 살살 털을 쓸어 보는데, 심보가 못된 녀석 하나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거, 채주님이 기르는 맹수들 눈에 안 띄게 조심하슈. 쬐끄만 게 딱 한 입 거리네.”
“뭐? 너 이 새끼 말 다 했어!”
“조심하라는 게 뭐 못할 말인가?”
사소하게 시작된 다툼은 금세 주먹다짐이 되었다. 뒤엉킨 산적들이 바닥을 구르며 싸우는 동안, 은호는 그 난장판에서 슬쩍 빠져나왔다.
“응? 우리 나비! 우리 나비 어디 갔어!”
흙투성이가 된 산적은 뒤늦게 은호를 찾아다녔지만, 그들의 짧은 인연은 거기서 끝이었다.
* * *
샤샥!
성공적으로 적진에 숨어드는 데 성공한 은호는 가까운 천막 위로 올라갔다. 거령채와 호문채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킁킁.
은호는 수많은 고약한 냄새들과 피 냄새 속에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냄새를 찾았다.
캬앗!
곧 원하는 냄새를 찾아낸 은호는 천막 아래로 폴짝 뛰어내렸다.
거령채와 호문채의 산적들이 눈을 부릅뜨고 순찰을 돌고 있었지만, 작은 고양잇과 동물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자는 없었다.
맹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한 산적들의 냄새를 잔뜩 묻힌 작은 동물은 경계의 대상이 아니었다.
잠시 후, 은호는 첫 번째 목표물이 있는 천막에 조용히 숨어들었다.
그곳에는 살면서 가장 불행한 하루를 보낸 산적이 깊이 잠들어 있었다.
바로 산 아래에서 백수룡과 만난 털북숭이였다.
턱.
은호가 그의 입에 앞발을 올리자, 털북숭이가 흠칫 놀라서 잠에서 깼다.
은은히 푸른빛을 내뿜는 맹수의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다.
“……!”
털북숭이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보기와는 달리 작은 앞발에 실린 힘이 어마어마한 데다가,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공포에 몸이 굳어 버린 것이다.
‘사, 살려 줘 제발.’
털북숭이가 필사적인 눈빛으로 애원하자, 그제야 은호는 슬그머니 앞발에 준 힘을 풀었다. 그리고 천막 바깥으로 고갯짓을 하며 몸을 돌렸다.
캬앗!
따라 나와!
털북숭이는 그 의미를 알아듣고 다른 산적들이 깨지 않게 조심하며 밖으로 나갔다.
‘정말로 찾아올 줄이야…….’
안색이 시체처럼 창백해진 털북숭이는 은호의 뒤를 따르며, 낮에 맹룡휘라는 사내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너 여기서 멋대로 영업했다는 거 알려지면 거령채주한테 죽지?
-그, 그걸 어떻게…….
바들바들 떨고 있는 자신 앞에 쪼그려 앉은 그가 짓던 악마 같은 미소를.
-그럼 만약에, 내가 너 살려 주면 어떻게 할래?
-예? 뭐, 뭐를…….
-싫으면 그냥 죽든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일단은 가만히 있어.
맹룡휘는 털북숭이에게 그들이 먼저 나가서 영업한 것이 아니라, 녹의수사 일행에게 습격을 당한 걸로 하자고 했다.
놀랍게도 녹의수사는 그 장단에 선뜻 맞춰 주었다.
-헌데 이놈들은 거령채인가? 아니면 호문채인가? 끝까지 입을 열지 않기에 직접 확인해 보려고 데려왔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 거령채주는 눈에 띄게 안심하는 표정이었고, 털북숭이는 살았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 순간 침묵으로 녹의수사의 거짓말에 동의하면서, 그들과 한패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젠장. 이제 와서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털북숭이는 물론이고, 그 자리에 있던 그의 부하들도 전부 거령채주가 두려워서 녹의수사의 거짓말에 침묵했다.
지금이라도 채주에게 가서 사실대로 고하는 방법도 있지만…….
털북숭이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순간이 자신의 최후가 될 거라는 걸.
“난 그냥 아무 말도 안 했을 뿐인데…….”
이제 와서 그런 핑계를 대봐야 늦었다.
그는 이미 배신자가 되었고, 맹룡휘는 은호를 보내서 한 번 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곧 다시 연락하지.]자개봉에서 몸을 돌리던 맹룡휘의 짧은 전음을 떠올리며, 털북숭이는 은호가 건넨 비밀지령이 담긴 쪽지를 건네받았다.
캬앗!
은호는 귀 안쪽을 앞발로 살살 긁더니, 그 안에서 돌돌 말린 종이를 꺼내 건넸다.
“저기, 저는 글을 못 읽는데…….”
캬아아?
털북숭이는 한심하다는 듯한 은호의 시선에 고개를 숙였다. 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하들 중에 읽을 줄 아는 놈이 있는데. 깨워서 물어봐도 될까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은호는 선심 쓰듯 낮게 울었다. 털북숭이는 글을 읽을 줄 아는 부하를 데려와 지령의 내용을 확인했다. 낮에 같이 영업에 나갔던 녀석들 중 하나였다.
“형님. 이거…….”
“뭐, 뭔데 그래. 아, 암살이라도 하래?”
“한다고 그게 성공하겠습니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이어진 부하의 말에 털북숭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지만, 은호가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길게 주지 않았다.
캬앗!
움찔 어깨를 떤 털북숭이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겠습니다. 협조하고 말고요.”
어차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털북숭이는 은호에게 건네받은 비밀 지령을 수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건 꼭 은호가 두려워서만은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참에 녹의수사 쪽으로 갈아탄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 은호가 다가와서 정강이를 앞발로 툭툭 쳤다.
마치 잘 생각했다고 칭찬하는 듯했다.
털북숭이는 모골이 송연해진 얼굴로 말했다.
“고, 고맙습니다.”
누가 보면 사람이 작은 짐승에게 존댓말을 하는 모습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 작은 앞발로 늑대의 두개골을 일격에 부숴 버리는 장면을 봤다면……. 누구라도 공손한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게다가 웬만한 사람보다 더 똑똑한 것 같은데.’
캬앗!
첫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은호는 털북숭이를 남겨 두고 떠났다.
휘익!
은호가 마지막으로 갈 곳은 거령채주와 호문채주가 머무는 처소였다. 그곳에서 둘의 밀담을 엿듣는 것이 마지막 임무였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는 커다란 문지기가 어슬렁거리고 있었으니.
크르르르…….
갑자기 은호의 머리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순간에 달빛을 모두 가릴 정도였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거대한 호랑이였다. 사납게 드러낸 이빨 사이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캬앗?
그저 크기만 한 호랑이가 아니었다.
혈교에서 마물을 다루는 비법을 건네받아 연구해 기르고 조련한 괴물.
거령채주가 아끼는 짐승 중 하나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람 고기, 그다음이 호랑이 고기였다.
크르르르…….
군침을 흘리는 대호의 눈이 흉맹한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러다 순식간에, 녀석이 앞발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절정고수의 출수에 못지않은 속도였다.
휘익!
은호는 그 공격을 피해 훌쩍 뛰어올랐다.
새끼 은호는 천 년을 살아온 어미가 절반의 내단으로 빚어낸 생명이었다.
몸에 지니고 태어난 기운은 별빛처럼 상서로웠으며, 모든 삿된 기운의 천적이었다.
애초에 종(種)이 달랐다.
영물들 중에서도 특별하고 귀한 태생인 은호에 비하면, 편법으로 덩치만 키운 대호는 한낱 미물에 불과했다.
은호의 작은 앞발이 대호의 이마를 가볍게 눌렀다. 그 순간, 앞발에 은은한 백광(白光)이 맺혔다.
?!
소리는 가벼웠지만,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솜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일격에 대호가 비틀거리더니,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무인들이 보았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광경이었다.
은호가 한 공격은 일종의 내가중수법으로, 절정고수는 되어야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기예였다.
끼잉…….
혼쭐이 난 대호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지만,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
그 사이 은호는 몇 번이나 더 대호의 이마를 때렸고, 대호는 그때마다 어쩔 줄 모르고 낑낑댔다.
캬앙!
누가 더 위인지 확실하게 보여 준 털뭉치가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445. 걱정해야 할 건
파바바박!
다섯 명의 신형이 어지럽게 얽혔다. 강맹하게 내뻗은 주먹이 바람을 찢었고, 번뜩이는 발끝이 채찍처럼 휘며 요혈을 노렸다.
후우웅!
한쪽에서 부드러운 장법으로 공격을 흘리면, 다른 한쪽에서는 매의 발톱처럼 손가락을 구부려 상대의 손목을 노린다. 확실한 적도 아군도 없었다. 필요하다면 방금 전까지 등을 맞대던 상대를 공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백룡장에서 벌어지는 난투(亂鬪) 훈련.
연무장 가운데에 커다란 원을 그려 놓고, 마지막 한 명만 남을 때까지 싸우는 수련법이었다.
“하아압!”
“죽어!”
“젠장, 이 비겁한 자식이!”
“선배한테 이 자식이라고?!”
“선배는 뭐 주먹이 비껴가나?”
최후의 한 명이 되기 위해, 청룡오망은 서로에 대한 비난과 도발도 서슴지 않았다. 다 스승에게 보고 배운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한 명은 그날 하루 청소 당번과 식사 당번에서 제외되는 특혜가 걸려 있었다.
예전에는 헌원강과 위지천의 승률이 압도적이었지만, 지금은 양상이 많이 달라져서 누가 이길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다.
콰앙-!
야수혁이 강하게 진각을 밟자 연무장 바닥이 흔들렸다. 압도적인 체중의 장점을 활용해 상대의 무게중심을 흔드는 수법.
“하! 뻔한 수법이네!”
“통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러나 누구 하나 쉽게 당하지 않았다. 야수혁이 진각을 밟는 순간, 무기를 맞대고 있던 헌원강과 위지천이 몸을 살짝 띄웠다. 여민도 마찬가지였다.
“흐흐.”
그것이야말로 야수혁이 노린 바였다.
히죽 웃은 야수혁은 양손을 좌우로 벌렸다가 강하게 부딪치며 기파를 터트렸다.
퍼어어엉!
손바닥 사이에서 굉음과 충격파가 발생했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헌원강, 여민, 위지천의 움직임이 잠시 굳었다.
그리고 야수혁은 그 짧은 순간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퍼엉-!
“꾸엑!”
“으아악!”
곧장 직선거리에 있는 헌원강에게 몸을 부딪쳐 담장 밖으로 날려 버리고, 위지천을 잡아서 던져 버렸다.
“난 포기.”
둘이 당하자 여민은 스스로 원 밖으로 물러났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거상웅이었다.
“그하하하! 와라!”
거상웅은 야수혁이 진각을 밟은 순간부터 철탑처럼 제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야수혁은 청룡학관에서 유일하게 자신보다 큰 상대를 향해 거침없이 쇄도했다. 그 모습이 마치 산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오는 커다란 대호 같았다.
콰아아앙!
두 거구의 육체가 부딪친 순간 발생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번졌다. 머리카락이 전부 뒤로 뻗칠 정도였다. 둘의 손발이 연달아 부딪칠 때마다 바위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잠시 후, 거상웅은 자신의 발이 원 밖으로 밀려난 것을 확인하곤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젠장. 밀렸군.”
“우오오오오!”
기세가 오른 야수혁이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 포효했다.
그 모습이 인간이라기보다는 한 마리의 거대한 괴수 같았다.
거상웅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기운이 넘쳐?”
다섯이 뒤얽혀 싸우는 난투 훈련의 결과는 그날그날의 운이 반 이상 좌우한다지만, 오늘의 야수혁은 유독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것이다.
야수혁은 씨익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모르겠수. 어제 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맨날 많이 먹는 놈이……. 쩝. 아무리 너라도 내가 힘으로 밀릴 줄은 몰랐는데.”
“그야 선배가 초반에 집중공격을 당해서 그렇지. 아까 보니 오른쪽 허벅지에 힘이 제대로 안 들어가던데?”
“……알고 있었냐? 아까 원강이 놈한테 얻어맞은 데가 더럽게 아프더라.”
마침 담장 밖에서 돌아온 헌원강이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며 툴툴거렸다.
“젠장. 이건 근육멍청이들한테 너무 유리한 싸움이야. 원 없애고 다시 붙어!”
“그, 선배가 다른 사람에게 근육멍청이라고 말하는 건 좀…….”
“원이랑 무슨 상관이람. 선배 아까 담장 바깥까지 날아가지 않았어?”
위지천과 여민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헌원강을 바라봤다.
체격에는 차이가 있지만, 헌원강도 남들이 보기에는 굉장한 근육질이었다. 지금도 헐렁한 무복 사이로 비치는 근육이 꿈틀대고 있었다.
물론 야수혁은 그보다 두 배는 큰 근육을 꿈틀댔지만 말이다.
“푸하하하! 그딴 변명은 선생님이 돌아오면 그 앞에서 하시든가!”
“이 자식이……!”
“배고프니 얼른 밥이나 차리쇼! 나는 고기 두 배로!”
“크윽!”
헌원강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날그날 승패에 승복하는 것이 백룡장의 규칙이었기에, 군말 없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 준비를 했다.
“다들 씻고 나와서 밥 먹자!”
잠시 후, 청룡오망은 둘러앉아 아침 식사를 했다.
사람이 다섯이나 되니, 식사 중에도 좀처럼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오늘 조별 수업 있는 날 맞지?”
“이번에는 몇 조랑 붙게 되려나…….”
“저 지난번에 당소소 선배네 조랑 했을 때 침에 맞은 곳이 아직도 빨개요. 독침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거 무조건 독침이다.””
“오늘 수업도 남궁수 선생님이 대신하시려나?”
“난 차라리 매극렴 선생님이 낫더라. 남궁수 선생님은 진짜 빡세다고.”
대화의 주제는 무공, 수련, 학관과 관련된 온갖 신변잡기를 가리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아무래도 백수룡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선생님은 언제쯤 돌아오실까?”
“거리도 꽤 있고 하니, 시간이 제법 걸리지 않을까 싶은데.”
“수학여행 전에는 돌아오시겠지?”
“야수혁. 너는 뭐 아는 거 없냐?”
“내가 뭘 알겠수. 갑자기 가정방문을 한다니까 그러라고 했지.”
“……선생님이랑 너희 아버지랑 싸우진 않겠지?”
“에이. 설마…….”
다들 조심스러운 가운데, 야수혁은 별걱정을 다한다며 고기반찬을 입안에 가득 넣고 으적으적 씹으며 말했다.
“내 생각엔 오히려 둘이 죽이 잘 맞을 것 같은데?”
정파의 떠오르는 고수와 십대악인이 죽이 잘 맞는다?
보통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겠지만, 청룡오망은 바로 납득했는지 음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선생님이라면 십대악인하고 친구 먹고도 남지.”
“실제로는 누가 더 악인일까요?”
“그때 악인곡에서 기억 안 나? 완전 실감 나게 연기하던 거.”
“이 인간들이! 우리 양부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라고! 비교할 걸 비교해!”
왁자지껄한 식사시간.
다들 먹성이 좋아서 한 사람당 세 그릇은 뚝딱 먹어치웠다.
식사를 마친 청룡오망은 학관에 갈 채비를 했다.
함께 백룡장을 나서는 길에도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은호는 잘 지내고 있겠지?”
“은호 보고 싶다. 빨빨거리면서 집 안을 뛰어다니던 모습이 벌써 그립네.”
“산에서 위험한 일은 없겠죠? 아직 어린 새끼인데…….”
선배들과 위지천의 걱정에, 야수혁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뭔 소리야? 털뭉치를 왜 걱정해?”
야수혁은 은호의 실체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선배들과 위지천에게, 걱정해야 할 건 다른 쪽이라고 알려 주었다.
“걱정은 그놈한테 괴롭힘당할 산짐승들이 걱정이지.”
* * *
캬앗!
은호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고개를 한껏 치켜들었다.
그래 봤자 용맹하다기보다는 작고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그 앞에 납작 엎드린 짐승들은 조금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끼이잉…….
끼잉…….
집채만 한 대호, 곰, 멧돼지, 독수리 따위가 은호 앞에서 나란히 엎드린 채 고개만 들고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전부 은호에게 얻어맞고 굴복한 녀석들이었다.
캬앗! 캬아앗!
은호는 거령채주가 기르는 맹수들을 모아 놓고 일장연설을 하는 중이었다.
맹수들이 제대로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은호가 작은 앞발을 허공에 대고 휘두를 때마다 움찔움찔하는 것은 확실했다.
거령채주가 기르는 거대한 맹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데도, 오히려 산적들은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맹수들이 왜들 저기 모여 있어?”
“낸들 아나. 괜히 가까이 가지나 마. 눈에 띄었다가 잡아먹히기 싫으면.”
“빌어먹을. 무서워서 못 살겠네…….”
저 맹수들은 혈교의 대법으로 길러낸 괴물들이었다.
비정상적으로 덩치를 키우기 위해 온갖 약물과 독초, 그것도 모자라 인육을 먹여서 키운 마물.
놈들이 잡아먹은 인간 중에는, 과거 산적들의 동료들도 있었다.
거령채주는 자신에게 반항하는 부하를 저 맹수들에게 먹이로 던져, 모두가 그 모습을 지켜보도록 했다.
그러니 가까이 가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수밖에.
“혹시 누구 하나 잡아먹히고 있는 건 아니겠지?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게 꼭…….”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래두!”
“저, 저쪽으로 멀리 돌아서 가자고.”
그런 끔찍한 경험 탓에, 산적들은 거령채주의 명령이 없는 한 맹수들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다.
당연히 그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털뭉치는 눈에 띌 리 없었다.
?!
일장연설을 마친 은호는 맹수들을 하나씩 불렀다. 작은 앞발을 까딱이자, 첫 번째 부하(?)가 된 대호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그 순간, 은호가 전광석화처럼 뛰어올라 대호의 심장 어림을 앞발바닥으로 찍었다.
s!
대호는 자신의 몸 안으로 스며드는 신령한 기운에 깜짝 놀랐다.
커헝!
그리고 잠시 후, 혈교의 대법에 의해 몸 안에 축적되었던 마기가 밖으로 흘러나와 흩어지기 시작했다.
스스슷…….
신령스러운 기운을 타고난 은호와 혈교의 대법은 애초에 상극이었다.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은호는 맹수들을 힘으로 굴복시켰을 뿐만 아니라, 맹수들의 몸에 스며든 마기까지 없애고자 했다.
s! s! s!
곰, 멧돼지, 독수리의 몸에도 은호의 발자국이 남았다. 앞으로 이 맹수들은 본능적으로 인육을 탐하거나 사람을 해치지 않게 될 터였다.
더불어 거령채주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일도 더 이상은 없을 것이다.
크르르르…….
마기가 흩어져 감에 따라, 그저 본능적인 공포에 질려 있던 맹수들의 태도가 서서히 바뀌었다.
더 이상 은호를 두려움의 대상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우두머리로 여기는 모습이었다.
크헝.
대호가 낮게 울며 은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다른 맹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천하에 보기 드문 크고 힘센 짐승들이 한 줌밖에 안 되는 존재를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했다.
과거, 천주산맥의 산군(山君)이었던 어미 은호처럼.
캬아앗!
은호는 그런 사실까지는 몰랐지만, 짐승들의 눈빛이 부드러워진 모습에 기뻐하며 폴짝폴짝 뛰었다.
그때였다.
“거기서 뭐 하는 거냐!”
걸걸한 목소리의 주인은 거령채주였다.
자신의 처소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어야 할 맹수들이 보이지 않자, 직접 바깥에 나와 본 것이다.
“음? 설마 누굴 잡아먹은 건 아니겠지? 분명 오늘도 안 된다고 했는데…….”
인상을 찌푸린 거령채주가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지금은 맹수들에 가려져 있지만, 곧 은호를 발견할 터였다.
?…….
은호는 당황했다.
당장이라도 도망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랬다가는 백수룡이 시킨 일을 못하게 된다.
그럼 약속받은 간식을 못 받는다!
은호가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대호가 커다란 앞발을 뻗어 은호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그러곤 품으로 끌어당겼다.
크헝.
은호는 풍성한 털 사이로 자그마한 몸을 숨겼다. 대호의 배에 거꾸로 매달려 찰싹 달라붙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은신처였다.
크르르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선 대호는 낮게 울며 거령채주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