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06
506화. 너 혹시
“……뽑기 운도 지지리 없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헌원강과 독고준은 한숨을 내쉬며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손바닥 위에는 같은 숫자인 육(六)이 적힌 대나무 조각이 들려 있었다.
이인 일조 혹은 삼인 일조로 이루어지는 담력 시험은 뽑기를 통해 무작위로 조가 결정되었다. 너무 어린 저학년끼리 묶이지 않는 이상, 한번 결정된 조는 바꿀 수 없었다.
결국 운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누구와 같은 조가 되느냐에 따라서 학생들의 얼굴에 희비가 엇갈렸다.
“하필이면…….”
“후우…….”
육조. 헌원강, 독고준.
떨떠름한 둘의 표정을 보건대, 서로가 원했던 상대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다 뭔가가 생각났는지, 헌원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근데, 예전에도 이런 적 있지 않았나?”
“……사파 무공의 이해와 실전 대비 수업이었지.”
그들은 청천을 도와서 남창의 빈민가를 순찰하고 치안을 유지할 때도 한 조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 독고준은 적호방의 무인들과 생사결을 벌이게 되었고,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던 독고구검의 깨달음을 얻으며 무공에 큰 진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강해진 것은 독고준 혼자만이 아니었다.
“젠장. 둘만 있을 절호의 기회였는데…….”
헌원강은 누군가를 찾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독고준은 그를 새삼스럽게 바라봤다.
‘그때는 학관의 골칫덩이였던 녀석이 이제는 청룡학관을 대표하는 후기지수가 되었구나.’
생각해 보면 얼마 안 지난 것 같은데, 그사이에 믿기 힘들 정도로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헌원강도 예전과는 다르다. 독고준은 헌원강의 변화된 모습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다.
“헌원강. 이왕 이렇게 된 거 최선을 다해서 일등을 노려…… 전혀 안 듣고 있군.”
독고준은 담력 시험에 집중하지 못하고 아까부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헌원강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일조하고 이조부터 출발!”
숫자 일(一)을 뽑은 조부터 두 개 조씩 서로 다른 길로 출발했다. 앞 조와 반 각의 시간 차를 두고 다음 조가 출발했기에, 잠시 기다리자 육조의 차례가 되었다.
“오조, 육조. 너희도 출발해라.”
“네!”
호기롭게 대답하고 나선 독고준이 옆을 힐긋 보자, 헌원강이 불만이 많은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젠장. 이렇게 된 바에야 빨리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야겠어.”
“……처음으로 생각이 일치하는군. 담력 시험 일등도 나의, 아니 우리의 차지다.”
목적은 다르지만 결과만 같으면 상관없는 일.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은 경공을 펼치며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금세 난관에 봉착했다. 갈림길이 나타나면서 선택지가 둘로 나뉜 것이다.
“오른쪽이다.”
“왼쪽이네.”
“헌원강. 여기선 내 의견을 따라 주면 좋겠는데.”
“아까부터 내 직감이 왼쪽이라고 외치고 있다니까?”
“……시험에서 네 직감을 믿으라고?”
“그럼 한판 붙어서 이기는 사람이 가자는 대로 하든가!”
“못 할 것도 없지.”
시간이 지나도 둘 다 고집을 부리는 것은 여전했다. 초반부터 실랑이를 벌이니 속도도 좀처럼 나지 않았다.
게다가 사천왕도 나타나서 그들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으하하! 파멸명왕의 기습 공격을 받아라!”
사천왕 중 가장 무시무시한 별호와는 어울리지 않게,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공격은 돌멩이 정도가 전부였다.
돌멩이를 모조리 쳐 낸 독고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무 뒤에 숨어 있는 호랑이 가면을 바라봤다.
“명일오 선생님. 계속 멀리서 암기만 던지실 겁니까?”
“……니들은 너무 강하잖아.”
사천왕 중 최약체의 솔직한 고백에, 헌원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이거 빨리 끝내고 돌아갈 거거든요? 어차피 못 막을 거 알면 그냥 비켜 줘요.”
“……이 애송이들! 자비를 베풀어 이번 한 번은 그냥 보내 주마! 으하하하!”
파멸명왕의 방해를 간단히 돌파한 둘은 잠시 후, 계속 같은 곳을 빙빙 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혼세마녀가 만들어 낸 진법이었다.
“……호호호! 이곳은 죽기 전에는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절진이란다…….”
혼세마녀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듯한 소심한 말투로, 학생들에게 진법을 빠져나갈 단서를 슬쩍 흘렸다.
“만약 너희가 제갈소영 선생님의 기초진법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면 충분히 생문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야. 이거 그냥 도기 날려서 부숴 버리자.”
“죄송합니다, 선생님. 생문을 찾는 것보단 이쪽이 빠를 것 같습니다.”
“아, 안 돼-!”
촤아아아악!
혼세마녀는 망가진 진법을 보며 망연자실하게 서 있다가, 그 사이로 스윽 빠져나가는 건장한 소년들을 향해 뒤늦게 소리쳤다.
“진짜 너무해 너희들!”
마음에 상처를 입은 혼세마녀의 외침을 뒤로하고, 헌원강과 독고준은 빠르게 경공을 펼쳤다. 각자가 맡은 지역을 지켜야 하는 사천왕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독고준과 헌원강.
청룡학관의 고학년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후기지수들의 조합은, 사천왕이라고 해도 만만치 않은 전력이었다.
물론 학생들이 다 같은 수준이 아니듯, 사천왕도 다 같은 사천왕이 아니었다.
파지지지지직!
새하얀 벼락과 함께, 냉혈수라마왕이 두 사람 앞에 내려섰다. 용 가면 뒤에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합공을 허락하지. 너희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이곳을 살아서 지나가지 못할 것이다.”
“저, 저건 진심 같은데…….”
“남궁수 선생님 맞죠?”
스르릉.
천천히 빼 든 검 끝이 두 소년의 미간을 차례대로 겨누었다.
“본좌는, 냉혈수라마왕이다.”
그 일대에 한동안 무시무시한 칼바람과 벼락이 몰아쳤다.
겨우 냉혈수라마왕에게서 도망치자(일부러 놓아준 거란 사실은 둘 다 알고 있었다), 마침내 옥면음랑이 커다란 바위 위에 껄렁한 자세로 앉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큭. 운이 나쁜 놈들이구나. 하필이면 마지막에 나를 만나다니.”
“옥면음랑……!”
“그 주둥이부터 막아 주지.”
눈을 희번덕인 옥면음랑은 전광석화처럼 달려들더니, 독고준은 내버려 두고 헌원강만 집중적으로 패기 시작했다.
헌원강도 처음에는 나름대로 반격도 시도해 보았지만, 나중에는 일방적으로 처맞기에 바빴다.
“아악! 왜 나만 때려요! 이건 개인적인 감정 아니냐고! 에이 씨 진짜!”
“에이 씨이이?”
“잠깐만! 그 별호 내가 지은 것도 아니잖아요! 위지천이 지었다고!”
“원래 지은 놈보다 퍼트리는 놈이 더 악질인 법이거든?”
꿀꺽…….
독고준은 조용히 한발 뒤로 물러나서 친구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그러나 옥면음랑의 끈적한 시선은 독고준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별호 때문인가, 독고준은 그렇게 느꼈다.
“너는 왜 안 덤벼?”
“……저는 안 놀렸습니다.”
“웃었잖아.”
“네?”
“아까 웃었잖아. 응?”
킥킥 웃으며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옥면음랑의 모습은, 흡사 굶주림에 침을 뚝뚝 흘리는 늑대를 닮아 있었다.
“이, 이건 아무리 봐도 뒤끝…….”
“하여간에 정파 애송이들은 혀가 길어.”
휘이익!
옥면음랑은 다소 저급해 보이는 별호와는 달리 무림의 절세고수였다. 때문에, 독고준도 곧 헌원강과 별다를 바 없이 일방적으로 처맞는 꼴이 되었다.
잠시 후, 너덜너덜해진 두 학생 앞에서 옥면음랑은 손바닥을 탁탁 털었다.
“처음부터 합공을 했으면 조금이나마 기회가 있었을 거다. 아니면 좌우로 흩어져 도망쳐서 한 명이라도 생존을 도모했든가. 빠르게 판단하고 결정을 내렸어야지. 담력 시험이 소꿉놀이처럼 보였어?”
“…….”
“…….”
“너희 실력이 뛰어난 건 알아. 하지만 그걸 활용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는 거야.”
백수룡의 말에 둘 다 반성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방금 전에 백수룡이 자신들을 얼마나 많이 봐주었는지를.
작은 틈이었지만 몇 번의 기회가 있었고, 그걸 살렸다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서로 손발이 맞지 않기도 했지만, 은연중에 담력 시험을 가벼운 놀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엄연히 ‘시험’이었다.
“실전에서도 이렇게 어설프게 대처했으면 둘 다 죽었을 거다. 명심하도록 해.”
“네…….”
“명심하겠습니다.”
둘 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지도 대련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 봐. 조금 있으면 다음 애들 올 거 같으니까.”
그렇게 사천왕을 모두 지나친 후, 진이 쭉 빠진 헌원강과 독고준은 터덜터덜 걸었다.
“이제 다 끝난 건가?”
“아마도……. 뼈마디가 전부 쑤시는군.”
“독고준. 너 코피 나는데?”
“헌원강. 네 눈은 웅묘(熊猫)처럼 부었다.”
서로의 한심한 몰골을 확인한 두 사람은 피식피식 웃었다.
“……근데 선생님 말이 다 맞긴 한데, 솔직히 반은 화풀이로 때린 거 같지 않냐?”
“너는 확실히 그렇지. 옥면음랑이라고 외치는 걸 주작학관에서도 들었으니까.”
“어쩐지 평소보다 더 아프더라…….”
백수룡이 워낙에 기술적으로 잘 때려서 뼈나 근육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헌원강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산봉우리 정상의 빛을 바라봤다.
“빨리 가자. 일등해야 한다며.”
헌원강이 서두르려고 앞서 나가자, 오히려 독고준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됐어. 생각해 보니 꼭 빨리 가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
헌원강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며 물었다.
“웬일이래? 어떤 시험이든 수석이 아니면 세상이 망한 것처럼 구는 범생이가.”
“그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독고준이 조금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니 굳이 내가 일등이 아니어도 상관없을 것 같거든.”
독고준은 학생회장으로서 늘 어깨에 큰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청룡학관을 대표하는 후기지수로서 모범이 되어야 했고, 늘 가장 뛰어나야 했다. 완벽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런 강박이 성적에도 집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청룡학관이 천무제에서 우승할 수 있다면, 그 주인공이 꼭 자신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렇다고 뒤로 물러나서 구경만 하고 있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천천히 가자. 아까 대련한 것도 복기도 좀 하고.”
“뭐, 그러든가. 나는 상관없어.”
고개를 끄덕인 헌원강이 속도를 늦췄고,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숲속을 걸었다.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낙엽이 신발에 밟혀 바스락대는 소리, 벌레 소리…….
밤의 숲은 고요함 속에서 많은 소리를 만들어 냈다. 두 소년은 각자 생각에 잠긴 채 저 멀리 보이는 빛을 따라 걸어갔다.
헌원강이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독고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네가 언제부터 허락받고 질문을 했다고.”
독고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수통을 꺼내 물을 마셨다.
“너 혹시…….”
헌원강이 그답지 않게 쭈뼛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물어볼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는지, 그의 얼굴이 꽤나 진지했다.
‘뭔데 이렇게 심각하지?’
덩달아 독고준의 표정도 심각해지는 순간, 헌원강이 겨우 용기를 내서 질문했다.
“여자 마음에 대해 잘 아냐?”
푸웁!
독고준은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그대로 헌원강에게 뿜었다.
평소였다면 충분히 피했을 테지만, 옥면음랑과 싸운 피로감이 남아 있는 탓에 헌원강은 그대로 물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에이 더러운 새끼야!”
“……갑자기 여자의 마음이라니? 여자와 싸울 때의 심리전을 묻는 건가?”
괜히 이 새끼한테 물어봤나, 벌써부터 후회가 되기 시작한 헌원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