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5
54화. 넌 천재다“으허어억! 씨벌 뭐야!”
내 목소리에 깜짝 놀란 헌원강이 벽으로 후다닥 물러나더니,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헌원강에게 씩 웃어 주며 말했다.
“몰래 수련이라니. 기특한 짓을 하고 있었네?”
“배, 백수룡?”
그제야 날 알아본 녀석의 입에서 멍청한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미친……. 지금 뭐 하는 거야?”
“앞으로 담당할 학생을 만나러 왔지.”
휘익!
나는 반쯤 열려 있던 기숙사 창문을 완전히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을 슥 둘러보자 헌원강이 평소에 어떻게 하고 사는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쯧쯧…….”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흩어진 옷가지.
곳곳에 먹다 남긴 음식들.
숨긴다고 숨긴 것 같지만 구석구석 보이는 술병들.
청소는 언제 했는지, 시큼한 땀 냄새가 방 안에서 진동했다.
나는 코를 틀어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수련하는 건 좋은데, 좋은 수련장 두고 꼭 방에서 해야겠냐? 할 거면 환기라도 좀 제때 하든가.”
“……나가.”
정신을 차린 헌원강이 나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학관에 다니는 동년배 애송이들이라면 모를까, 내가 저놈 눈빛에 쫄 이유는 없었다.
“흐음…….”
나는 턱을 긁적이며 땀으로 번들거리는 헌원강의 상반신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매일 술 처먹고 다니는 것치곤 제법 봐줄 만한 몸이군.”
“내 말 못 들었나? 당장 내 방에서 꺼지라고!”
내가 자기 말을 무시하고 몸을 빤히 바라보자, 헌원강이 옷가지로 자신의 가슴을 급히 가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꺼지라니. 선생님한테 말이 심하네.”
“창문 넘어서 기숙사 방에 몰래 들어오는 인간이 무슨 선생이야!”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나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의자 하나를 가져와 앉았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원강 군. 보충반 면담이다. 일단 거기 좀 앉아 봐.”
“앉길 뭘 앉아! 남의 방에 쳐들어와서 자기 방처럼 굴지 말라고! 그리고 내 이름은 원강이 아니라 강(强)! 외자다!”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냐?”
“젠장! 닥치고 내 방에서 나가!”
이렇게 수다스러운 녀석이었나 싶을 정도로 헌원강은 순식간에 많은 말을 쏟아냈다.
그 대부분이 나에 대한 욕설과 저주였지만, 그럴수록 내 입가에는 미소가 맺혔다.
‘수련하는 모습을 들킨 게 부끄러운가 보군.’
인간은 당황했을 때 평소 숨겨 둔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헌원강을 놀라게 했고, 말로 툭툭 건드려서 도발하는 중이었다.
헌원세가의 망나니라는 겉모습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보고 싶었으니까.
덕분에 이 녀석의 진짜 성격을 조금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봐, 수다쟁이 소년. 아까 바퀴벌레라도 본 소녀처럼 꺄아아악! 소리 지르면서 벽까지 달라붙던데. 원래 겁이 많은 편인가?”
“닥쳐! 내가 언제 꺄아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는 거야!”
“어머머멋! 이었나?”
도발이 좀 과했는지, 헌원강의 두 눈에서 살기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누가 광마와 같은 핏줄 아니랄까 봐 조금 놀렸다고 눈깔이 뒤집히기 직전이다.
“죽인다……!”
“워워. 그만할 테니 진정해. 오늘은 그냥 얘기나 좀 하러 온 거야.”
나는 두 손을 들어 올려 싸울 의사가 없음을 보였다.
헌원강은 한동안 혼자 씩씩대더니 결국 내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빌어먹을. 대체 여기에 온 목적이 뭐야?”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올해부터 내가 보충반 담임이 됐다.”
“그래서?”
“보충반 담임으로서 학생을 보러 온 거야. 3학년에서 유일한 낙제생 헌원강.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데 어려운 점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 보도록.”
“그딴 거 없으니까 꺼져.”
헌원강은 코웃음을 쳤다.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나는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이 녀석이 내게 솔직하게 자기 고민을 이야기할 리 없으니까.
“아까 내 자세를 흉내 내면서 왜 제대로 안 되는지 물어봤지?”
“……물어본 적 없어. 당신이 멋대로 들어와서…….”
“알려 주지.”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주변에 걸리적거리는 옷가지들을 걷어차 공간을 만들고, 헌원강이 따라 하려다 실패했던 준비 자세를 취했다.
“잘 봐라.”
“…….”
말은 퉁명스럽게 해도 궁금하긴 한 모양.
빽빽거리던 헌원강이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헌원강이 보는 앞에서 녹림십팔식으로 기반으로 한 몇 가지 자세를 시연해 보였다.
짧은 시연이 끝난 후, 나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는 헌원강에게 물었다.
“너와 나의 차이를 알겠나?”
“…….”
“첫 번째는 유연성 문제다. 몸에 근육만 많다고 좋은 게 아냐. 내 동작을 흉내 내기엔 넌 아직 유연성이 부족해.”
“유연성 훈련이라면 평소에 충분히 하고 있어.”
“그 정도로는 부족해.”
무공에 필요한 유연성은 허리를 완전히 뒤로 꺾거나, 작은 상자 속에 몸을 구겨 넣는 기예단 수준으로 훈련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몸이 유연하면 몸을 망치기도 한다. 자신의 유연성만 믿고 무리한 자세를 자주 취하다간 근육이 찢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 경우엔 유연성을 좀 더 기를 필요가 있다. 다리 찢기는 할 수 있나?”
“……대충은.”
애매한 대답이었지만, 헌원강이 대답을 했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번째는 차이점은 눈치챘나?”
“……전에 본 것과 팔과 다리의 위치가 조금 다르던데.”
역시.
내 예상대로 이 녀석은 무공을 보는 ‘눈’이 좋았다.
“맞아.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타고난 몸의 형태와 성질이 다르다. 같은 자세라도 자신의 몸에 맞게 교정이 필요하지. 방금 내 자세는 네가 날 흉내 낸 것을 다시 내가 따라 한 거다. 이렇게 보니 어디가 어색한지 좀 더 잘 알겠지?”
내 친절한 설명에 헌원강은 멍청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잠깐 본 것만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눈이 좋으면 가능해. 너도 연습하면 할 수 있다.”
“…….”
사실은 눈만 좋다고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헌원강의 자세를 순식간에 따라 할 수 있는 건, 녹림투왕 맹호악이 남긴 녹림십팔식을 수련했기 때문이었다.
-흐흐. 애송아. 외공은 뼈와 근육, 오장육부를 모두 다루는 공부다. 무식하게 근육만 키운다고 다가 아니란 말이지.
-무식하게 근육만 큰 네가 말하니 설득력이 무척 떨어지는군.
-내가 말할 땐 광마 저 새끼 입 좀 막아 주면 안 되냐?
……어쨌든.
맹사부는 육체를 다루는 데 있어서만은 천하제일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뼈와 근육의 위치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다.
내공을 이용한 역골공이나 특수한 약물이 필요한 대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의지만으로 말이다.
-크하하! 봤냐! 거시기랑 부랄 두 쪽이 쏙 들어갔지! 이게 바로 외공이다!
……왜 이딴 기억이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맹사부가 뇌옥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바쳐 만든 무공이 녹림십팔식이다.
맹사부는 녹림십팔식이 경지에 이르면 육체의 자가 회복력이 수십 배로 증가하고, 추위와 더위가 몸을 해하지 못하는 한서불침, 신체가 금강석처럼 단단해지는 금강불괴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려면 녹림십팔식만 수십 년은 수련해야겠지만.’
나는 헌원강에게 녹림십팔식을 본격적으로 전수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천무제 우승을 위해, 도법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동작 정도는 가르쳐 줄 의향이 있었다.
이 녀석의 재능이라면 그 정도만 가르쳐도 날아오를 것이다.
“자. 일어서서 날 따라 해 봐. 처음에 보폭은 이 정도. 두 팔은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이, 이렇게?”
헌원강은 잠시 뭔가에 홀린 듯이 내 동작을 따라 하다가, 돌연 미간을 찌푸리고는 나를 사납게 노려봤다.
“빌어먹을. 내가 이딴 걸 왜 따라 해야 하지?”
“잘 배우다가 왜 이제 와서 딴소리야?”
“당신이 멋대로 가르친 거지. 난 벌써 흥미가 식었어.”
헌원강은 킥킥 웃으며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렸다.
“당신이 가르치는 싸구려 무공 따위. 관심 없거든.”
다른 강사들 같았으면 여기서 열불이 터졌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저 물끄러미 헌원강의 눈을 바라봤다.
조금 전부터 녀석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왜 거짓말을 하지? 배우고 싶잖아. 따라 하고 싶어서 손발이 근질근질하면서. 왜 결정적인 순간에 물러나지?”
“……개소리. 난 당신이 가르치는 무공 따위에 관심 없어.”
“무공에 관심이 없다는 녀석이 방에서 쉰내가 풀풀 날 정도로 몸을 단련하고 있었군. 거참 설득력 있네.”
얼굴이 붉어진 헌원강이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봤다.
“……내가 무공을 배우든 말든 당신이 알 바 아니야. 이젠 내 방에서 꺼져 줬으면 좋겠군.”
“하북팽가 때문인가?”
내 한마디에 헌원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동시에 서서히 피어오르는 살기.
나는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얘기는 대충 알고 있다. 너희 헌원세가와 하북팽가의 관계.”
이곳에 오기 전 매극렴에게 들은 이야기.
수십 년 전, 헌원세가에 커다란 변고가 있었다.
하루아침에 세가의 가주를 포함한 고수들이 몰살을 당한 것.
그 후 헌원세가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그때 가장 먼저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은 것이 하북팽가였다.
도의 명문으로 최고의 자리를 놓고 다투던 두 가문은 원래 왕래가 잦았다.
그래서 하북팽가가 헌원세가에 막대한 경제적 원조와 유실된 무공의 복원을 돕겠다고 나섰을 때, 온 정파 무림이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지.’
무림에 이유 없는 선의는 없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헌원세가는 하북팽가의 속가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족쇄에 손발이 묶여 있는 것이 바로 헌원강이라는 천재였다.
“선생이라고 해서, 내가 못 벨 것 같나?”
나직한 목소리는 몸을 낮춘 맹수의 으르렁거림 같았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살기.
가문의 치부를 건드리자, 헌원강은 한쪽에 놓여 있던 도를 움켜쥐며 나를 노려봤다.
하지만 나는 하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는 게 어차피 의미 없다고 포기한 거라면, 익혀 봤자 결국엔 팽가의 종놈이 될 인생이라고 생각해 포기한 거라면, 넌 정말 멍청한 놈이야.”
“뭘 안다고 함부로……!”
“헌원강! 네 재능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 같았던 헌원강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거칠게 흔들리는 눈빛.
나는 녀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넌 천재다. 허울만 남은 가문의 변변치 않은 무공을 익히고도 청룡학관에 입학할 정도로. 매일 술 처먹고 신세 한탄이나 하면서 설렁설렁 익힌 무공으로 죽어라 노력하는 녀석들을 쥐어팰 정도로. 한번 본 내 동작을 어설프게나마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천재다.”
당근과 채찍.
가장 단순하지만 언제나 효율적인 방법이다.
헌원강은 당황함을 숨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딴 말로 꼬드긴다고…….”
“팽사혁 때문이냐? 네가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않으려는 이유.”
“!!”
예상치 못한 나의 기습에 헌원강이 숨을 흡! 하고 들이쉬며 눈을 부릅떴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녀석은 뒤늦게 부정했지만, 이미 그 표정에 모든 것이 드러나 있었다.
‘역시 그랬군.’
나는 헌원강을 향하던 팽사혁의 눈빛을 떠올렸다.
조롱과 멸시 속에 숨어 있던 질투와 경계심.
두 가문의 관계, 그리고 나이대가 비슷한 두 소년이 자주 비교됐을 거란 사실을 생각하면, 헌원강이 낙제생이 된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짐작은 방금 헌원강의 반응으로 확신이 되었다.
“네가 팽가의 소가주보다 훨씬 강해진다면 팽가의 눈에 거슬리겠지. 그게 가문에 누가 될까 봐 무공을 제대로 안 익힌 건가……. 아니면 팽사혁한테 직접 협박이라도 당했나?”
“닥쳐! 그딴 개소리를 누가 믿는다고…….”
“……맞나 보군. 지금까지는 아무도 눈치챈 사람이 없나 본데. 너 재수도 없게 나한테 걸렸구나.”
이 몸이 눈치로 혈교에서 수십 년을 버틴 인간이거든.
내가 씩 웃으며 헌원강이 바라보자, 녀석이 다시 사납게 으르렁댔다.
“빌어먹을. 갑자기 나타나서 개소리나 지껄여 대고……. 나한테 관심 끄고 꺼져!”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말하마.”
이어진 내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헌원강의 심장을 찔렀다.
“네가 지금처럼 팽사혁의 눈치나 보면서 살면, 헌원세가는 앞으로도 팽가에 목줄 매인 개처럼 지내게 될 거다.”
“주둥아리 닥쳐!”
내 말은 명백히 도를 넘었고, 그 순간 헌원강이 벼락처럼 도를 뽑아 휘둘렀다.
그 궤적은 내가 지금껏 본 헌원강의 공격 중 가장 훌륭했지만,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나는 검집을 들어 그 공격을 간단히 막았다.
까앙!
“하지만 네가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내게 무공을 배운다면.”
“닥치라고!”
도를 놓은 헌원강이 내게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에는 내가 방금 가르친 요령이 깃들어 있었다.
‘역시 천재로군.’
하지만 덜 여문 천재다.
우리는 순식간에 몇 합을 주고받았고, 나는 헌원강을 바닥에 때려눕혔다.
콰앙!
“커헉!”
나는 쓰러져서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정신 차리고 내게 무공을 배운다면, 헌원세가를 천하제일도문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
너한텐 그 정도의 재능이 있다.
광마의 진전을 고스란히 이을 수 있는 재능이 말이야.
“젠장……. 아까부터 뭔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헌원강을 코피를 흘리고 한참 씩씩거리며 날 바라봤다.
녀석은 결국 말로도 실력으로도 날 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도망이라는 방법을.
“그쪽에서 안 나가겠다면 내가 나가지.”
몸을 돌린 헌원강은 방문을 거칠게 닫으며 나갔다.
콰앙!
나는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문 좀 닫았다고 내가 포기할 것 같냐.”
나는 헌원강이 닫고 간 문을 다시 열었다.
복도 저 멀리 작아지는 녀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따라가서 더 설득할까 하다가, 오늘은 스스로 생각을 시간을 주기로 했다.
“이 정도면 불씨는 지핀 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