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66
566화. 저희도 끼워 주십시오
천하를 굽어보는 자리였다.
무한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도 일대를 모두 내려볼 만큼 높은 전각. 그곳에 자리한 면면들만 봐도 그러했다.
정파무림의 최대 연합이자 구심점인 무림맹의 맹주.
구파일방을 대표하는 소림의 최고수.
다음 세대를 이끌 후기지수들의 요람인 천무학관의 관주.
무림맹, 구파일방, 오대학관의 수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일신에 지닌 무공으로도, 각 집단에서의 위치로도 시대를 대표하는 거인들.
불과 얼마 전까지는, 이 자리에 오대세가의 수장인 남궁세가의 태상가주 남궁제학을 묶어 정파사존(正派四尊)이라 부르는 호사가들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곳에, 두 사내가 내려섰다.
“맹주님. 오랜만입니다.”
“무림맹주를 뵙습니다.”
느긋하게 포권을 취하는 백수룡과 절도 있는 모습의 남궁수가 한눈에 대비되었다.
그들을 맞이하는 무림맹주의 입매가 시원한 호선을 그렸다.
“이 친구들. 못 본 사이에 더 헌앙해졌구만. 멀리서 기도를 느꼈을 때도 혹시나 했는데……. 대체 어디까지 강해지려는 건가?”
“그러는 맹주님도 주먹이 더 커지신 것 같습니다?”
“뭐? 크하하하!”
짧게 백수룡과 농을 주고받은 무림맹주는 서로 초면인 절세고수들을 소개해 주었다.
“인사하게. 여기 계신 두 분은 불존과 천무학관주시네.”
“백수룡입니다.”
“남궁수입니다.”
무림의 후배들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상대는 수십 년 전부터 명성을 떨쳐온 무림의 선배들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절세고수라 해도 겸손의 미덕을 갖추는 것이 마땅했다.
“아미타불. 빈승은 무허라 합니다.”
“천무학관주 진량입니다.”
불존과 천무학관주 또한 두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낮추지 않았다.
악가의 분가에서 벌어진 혈교와의 처절했던 전투,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이 천하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간악무도한 혈교가 패퇴했다는 소식을 들은 대부분의 무인들은 그 싸움에서 활약한 절세고수들에게 열광했다.
청룡신협 백수룡.
뇌신 남궁수.
그들은 혈교의 장로를 몇이나 패사시키고, 혈교의 사악한 술법으로 꼭두각시가 된 산동악가의 가주를 귀천시켰다.
이제 겨우 이립 언저리인 그들의 연배를 생각하면, 향후 수십 년은 그들의 천하가 될 가능성이 컸다.
때문에 두 사람에겐 불존과 천무학관주에게 공대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후, 천무학관주가 따로 남궁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구나. 졸업 후에는 처음이던가?”
“그간 격조하였습니다. 관주님께서 강녕하신 모습을 뵈니 한량없이 기쁩니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남궁수의 예의 바른 모습에 천무학관주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가진 자질을 생각하면 언젠가 천뢰검법을 대성하리라 확신했다. 이토록 빠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만…….”
남궁수의 기도를 살피는 천무학관주의 눈에는 진심 어린 기쁨과 흥분, 그리고 묘한 열기가 어려 있었다.
“정말이지 놀랍구나. 지난 몇 년을 통틀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이 지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재회해 덕담을 주고받는 사제지간의 모습에 맹주과 불존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백수룡은 그 대화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거 뭔가…….’
기시감이라고 해야 할까.
천무학관주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느낌에 백수룡은 미간을 살짝 모았다.
-천무학관주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내다. 그 앞에서는 언행을 조심하거라.
출발하기 전 매극렴에게 들었던 조언을 떠올리며, 백수룡은 불편한 기색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천무학관주를 예의주시할 생각이었다.
그때 불존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 저희가 손님들을 너무 세워 둔 것 같습니다. 이럴 게 아니라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잠시 후, 전각의 중앙에 마련된 자리에 정파무림의 절대자들이 둘러앉았다.
이미 간단한 술상이 차려져 있었는데, 세 사람이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듯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지요. 혈교와의 전투에서 활약한 두 영웅을 실제로 만나 뵈니, 이 노구는 어서 뒷방으로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사. 저도 혈교 놈들만 쓸어버리고 나면 미련없이 은퇴할 작정입니다.”
“두 분 모두 후배들 앞에서 겸양이 지나치십니다.”
세 사람의 주도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그들은 백수룡과 남궁수를 배려하며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안부로 시작해, 나중에는 무림의 정세까지 화제를 넓혀 갔다.
“도마 소지광이 흑사련주직을 추혼궁귀에게 넘겼다고 합니다.”
“사파에서도 맹을 결성했다지요. 과연 그들이 천무제에 참석할지 여부는 모르겠습니다만…….”
“염왕의 마지막은 어떠했습니까?”
정파에서 가장 존경받는 무인들이자 정점에 이른 이들의 대화.
개중에는 외부로 흘러나가면 큰 파장을 불러올 비밀도 있었으나, 이곳에서는 일상적인 대화와 구분을 두지 않았다.
그만큼 세 사람이 갖춘 정보력과 식견이 대단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백수룡은 그들의 친절하기만 한 겉모습에 속지 않았다.
‘누가 정파 아니랄까 봐. 상대를 기죽이는 방식도 정파스럽네. 특히…….’
백수룡은 대화 중에 한 번씩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맹주의 미간을 보며, 이 대화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눈치챘다.
그의 시선이 불존 무허대사의 인자한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역시 구파일방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군.’
불존은 소림을 넘어 구파일방의 대리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림맹주인 야율황도 불존에게는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무림의 배분도, 실력도, 배경도, 세간에 알려진 인품 중 그 무엇도 확실하게 앞서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불존이 이 대화를 주도하는 이유였다.
“청룡신협 시주께선 혈교와 가장 많은 싸움을 하셨지요. 혹 혈교의 장로들이 혈마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까?”
“……몇 번 듣기는 했습니다.”
“부디 저희에게도 가르침을 주시지요. 천하를 어지럽힐 그 괴력난신에 대해 염려가 매우 큽니다.”
백수룡은 적당히 대화에 참여하며,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이곳에 자리한 절세고수들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기도가 느껴졌다.
‘아마도 검성이겠지.’
뿐만 아니라 구파일방의 고수들로 짐작되는 기운이 도시 곳곳에 느껴졌다. 구파는 이미 상당한 전력을 이끌고 온 듯했다.
천무제가 끝나면 시작될 본격적인 혈교 토벌에 구파일방이 앞장서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건 숫제 무력시위로군.’
용담호혈(? 潭虎穴).
이 도시에 천하무림이 모여들고 있었다.
구파일방을 시작으로 오대세가, 사파연맹, 분명 혈교에서 보낸 세작들도 숨어들 것이다.
대화로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판단했을까. 불존은 자리에 모인 이들을 둘러보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뜻 있는 협의지사들과 계속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으나, 사안이 급박하니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지요.”
웃음을 거두는 것만으로도 장내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지닌바 무공과는 상관이 없는, 오랫동안 천하를 살피는 자리에 있었던 절대자가 만드는 분위기였다.
“무림맹, 오대세가, 오대학관, 그리고 구파일방이 힘을 합쳐 혈교를 토벌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미 대의를 모았습니다. 오늘은 그 대표자들 간의 첫 회합이 될 것입니다.”
“대사님.”
조용히 경청하고 있던 남궁수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발언했다.
“방금 오대세가를 말씀하셨는데, 이 자리에는 오대세가를 대표할 인물이 없지 않습니까?”
남궁세가는 혈교에 의해 영락했으며, 모용세가는 멸문을 당했다.
오대세가 중 가문의 전력이 온전한 곳은 하북팽가, 사천당가, 제갈세가.
하지만 이 자리에는 그 세 가문의 누구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한 남궁수의 지적에, 천무학관주는 설마 듣지 못했냐며 피식 웃었다.
“그래서 네가 있지 않느냐?”
“……예?”
“남궁 가주께서 가문의 셋째에게 이번 일을 일임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대세가의 다른 가문들도 모두 합의한 사항이지요.”
불존의 확언까지 들었음에도, 남궁수는 눈을 한 번 깜빡이곤 다시 한번 물었다. 드물게 당혹스러워하는 음색이었다.
“……저희 가주님이 말씀이십니까?”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일은 응당 가문의 가주가, 적어도 소가주는 되어야 맡을 수 있는 중임이었다.
가주께선 어째서 일언반구도 없이 이러한 막중한 책임을 자신에게…….
“뭘 놀라고 그래? 당연한 거지.”
오히려 태연한 쪽은 백수룡이었다. 그가 피식 웃으며 남궁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오대세가 사람들도 혈교와의 싸움에서 네가 뭘 했는지 들었을 텐데, 누가 이 자리에 앞장서서 나설 수 있겠어?”
“…….”
현재 오대세가는 남궁세가라는 구심점이 약해지고, 한 축이었던 모용세가마저 사라진 상황이었다.
하나로 뭉친 구파일방을 견제하기에는 누가 나서도 쉽지 않을 상황에서, 새로운 십존으로 등극한 남궁수는 내세우기에 좋은 명분이었을 것이다.
물론 백수룡은 이런 생각은 말하지 않았지만, 남궁수라면 금방 이해할 것이다.
“…….”
잠시 말이 없어진 남궁수를 제외하고,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안타깝게도 청룡학관과 주작학관이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이에 혈교도들의 만행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바! 소림을 필두로 한 구파일방에서는 혈교 토벌의 선봉에 서고자 합니다.”
불존의 힘 있는 음성을 들으며 백수룡은 생각했다.
저 말에 거짓은 없을 거라고.
자신들의 손으로 무림을 지키겠다는 소림의 의지는 분명 진심일 거라고.
‘근데 왜 이제야 나서는 거냐고.’
백수룡은 판이 구파일방의 마음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까,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으시겠다는 말이군요.”
“……예?”
불존이 순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멍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백수룡에게 먼저 한번 당해 본 경험이 있는 무림맹주가 웃음을 꾹 참았다.
“큽…….”
그 옆에서는 천무학관주가 흥미로운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조금 전부터 백수룡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백수룡은 신경 쓰지 않고 할 말을 이어 나갔다.
“대사님.”
백수룡의 성격을 익히 아는 남궁수는 옆에서 조용히 한숨을 쉬며 전음을 보냈다.
[적당히 하도록.]고개를 살짝 끄덕인 백수룡이 말을 이었다.
“저는 이리저리 재는 건 딱 질색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혈교를 토벌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걸 왜 반대하겠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건, 전쟁의 지휘권을 누가 얼마만큼 갖느냐가 아닙니까?”
“시주…….”
불존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백수룡을 지그시 바라보았으나, 세상에는 고승의 현기 어린 눈빛과 음성에도 꿈쩍하지 않는 상대가 있었다.
“어차피 명분은 모두에게 있으니, 공평하게 하는 게 어떻습니까?”
“……부족한 빈도에게 가르침을 주시지요.”
“이미 구파끼리는 천무제의 결과에 따라서 지휘권을 나누기로 결정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존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용두방주께서 청룡신협을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사실이었군요.”
구파일방끼리 결정한 사항을 백수룡이 알고 있다는 걸 은근히 비난하는 투였다.
물론 백수룡은 그런 말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는 불존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도 거기 끼워 주십시오.”
구파일방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저희끼리 공을 차지하겠다고 다투는 꼴을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청룡학관이 천무제에서 우승하면, 구파일방의 지휘권을 제게 주십시오.”
“시주.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저희가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구파 간의 분란을 막고자 함이지…….”
피식.
백수룡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소림의 최고수를 도발했다.
“왜요? 자신 없으십니까?”
그는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