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92
592화. 응원까지 필요해?
휘익!
은호는 도시의 밤거리를 내달렸다. 때로는 지붕에서 지붕 위로, 때로는 지상의 인파 사이로 작은 몸을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움직였다.
수많은 무인들이 모여든 도시의 중심부.
혼자 돌아다니는 영물의 내단을 노리는 자들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은호는 어중이떠중이가 어떻게 해 볼 만큼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방금 뭐가 지나가지 않았나?”
“헛것이라도 봤어? 이 친구 이거, 술이 과하구만!”
웬만한 무인들은 날렵한 은호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지도 못했다.
드물게 은호를 목격한 고수들도 놀라서 눈을 크게 뜰 뿐, 감히 내단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 주인이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낮에 청룡신협의 어깨에 올라타고 있던 영물 아닙니까?”
“맞습니다. 상서로운 기운을 품은 걸 보면 보통 영물이 아닌 듯합니다.”
“정기신 합일을 이룬 고수들은 짐승들과도 소통한다더니…….”
“제자들에게 조심하라 일러두어야겠습니다. 혹여 괜한 욕심을 품었다가 절세고수의 진노를 감당하는 일이 생겨선 안 될 것입니다.”
만약 누가 덤비면 앞발로 냅다 머리통을 때려 줄 생각이었지만, 청룡신협의 영물이라고 알려진 덕분에 아직까지 은호에게 나쁜 마음을 먹고 다가오는 자는 없었다. 덕분에 빠르게 쫓을 수 있었다.
킁킁.
바닥에 댄 분홍색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찾았다.
도시의 수많은 냄새들 중 백수룡의 냄새를 포착하기 위함이었다.
기감을 완벽하게 숨길 수는 있어도 은호의 예민한 코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다시 방향을 확인한 은호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디서 뭘 하는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캬앗!
은호는 입에 물고 있는 물건을 백수룡에게 가져다 줄 생각이었다. 사곤에게 특별히 부탁받은 물건이었다.
-앞으로도, 사제들을 잘 부탁한다.
별로 좋아하지 않은 인간이었지만, 긍지 높은 영물로서 군고구마를 받아먹고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벌써 몇 달을 함께 지냈지만, 은호는 인간들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때는 서로를 죽일 듯이 미워하고, 어떤 때는 피를 나눈 부모와 새끼도 아닌데 그보다 더 끈끈하게 맺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인간들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될 텐데. 은호는 그러지 못하는 인간들이 짐승들보다 더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캬앗!
은호는 다시 몸을 움직여 복잡하고 인파가 많은 거리를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몇 번인가 달콤한 간식의 유혹에 넘어갈 뻔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고개를 홱홱 젓고 제법 의젓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그만.”
그때,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은호가 멈춰서며 옆으로 홱 돌아섰다. 털이 바짝 곤두서며 경계하는 은호 앞에,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더 다가가면 기감에 걸릴 것 같으니. 여기서 멈추는 게 좋겠다.”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좋지 않은 기운이었다. 야생의 감각이 그에게서 도망치라 말하고 있었지만, 은호는 자세를 낮추며 이빨과 발톱을 드러냈다. 짧다고 얕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발톱이 돌로 된 바닥을 모래처럼 파고들었다.
하지만 사내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흥미를 보이며 은호를 빤히 바라봤다.
“과연 역천의 운명이라는 건가. 곁에 평범한 것이 하나도 없군.”
피식 웃은 사내가 걸어오자, 은호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이내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순간 하얀 섬광이 번쩍인 듯했다.
절정고수도 피하기 쉽지 않을 만큼 빠른 공격이 지척에서 이루어졌다. 웬만한 무인은 반응조차 못하고 당했을 터였다.
하지만 사내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캬앗! 캬앗!
어느새 사내의 손아귀에 붙잡힌 은호가 온몸을 버둥거렸다. 사내는 그 입에 물려있던 물건을 빼냈다.
은호는 사곤에게 부탁받은 물건을 어떻게든 지키려 했지만, 사내의 점혈에 입이 저절로 벌어지고 몸이 축 늘어졌다.
“이건…….”
빼앗은 물건을 품평하듯 한동안 이리저리 살펴본 사내가 작게 감탄했다.
“놀랍군. 이 작은 물건에 이토록 복잡한 은원이 담겨 있다니.”
은호가 낑낑거리며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나 힘없이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던 사내가 은호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건 내가 가져가겠다.”
지금 그 녀석은 이 이상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거든. 그렇게 중얼거린 사내가 물건을 품 안에 넣었다.
캬앗…….
은호는 힘없이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덤벼들었다. 그러나 사내는 강아지와 놀아 주듯 몇 차례 피한 후, 그대로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만약 이로써 무언가가 뒤틀린다면…… 그것 또한 운명이겠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사내가 밤공기 속으로 흩어지듯 종적을 감췄다.
* * *
천무제 둘째 날이 밝았다.
천무제가 시작된 후, 백수룡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학생들을 지도·관리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각 종목에 참가하는 학생들과 전략 회의는 물론이고, 청룡학관 강사 회의, 십존으로서 정파무림 회의에도 참석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은밀하게 흑도맹과 접촉해 의견을 전달하고, 무림맹과도 동맹에 관한 세부적인 조건을 조율해야 했다. 녹의수사에게 대부분 맡겨 놓았다고 해도 완전히 손을 뗄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 구파일방의 동향에도 신경 써야 했다. 하나같이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기에 방심할 수 없었다.
“오대세가 쪽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도록.”
다행히 오대세가 쪽은 남궁수가 있어서 크게 걱정할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였다. 잠시라도 쉴 겨를이 없었다.
“형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어제도 안 주무셨죠? 새벽까지도 숙소에 안 돌아오신 것 같던데…….”
보다 못한 동기들이 잠깐씩이라도 쉬라고 권유했지만, 백수룡은 서류를 읽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잠 좀 안 잔다고 안 죽어. 천무제 이거 며칠이나 한다고.”
“그러다 지난번처럼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왜 화를 내고 그래?”
신연호가 버럭 화를 내자, 백수룡은 그제야 서류에서 눈을 떼고 동기를 바라봤다.
그런데 신연호뿐만이 아니었다.
명일오와 제갈소영, 곽두용, 노군상과 부관주 곽철우까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다들…….”
“자네의 부친과 검치가 여기 없어서 다행인 줄 알게. 한 명이라도 이 자리에 있었으면 그 손에 든 서류가 반으로 찢겼을 게야.”
노군상이 작게 혀를 차며 말하자, 백수룡은 들고 있던 서류를 아래로 내렸다.
“흠흠. 제가 좀 과했습니까?”
“여기까지 와서 일중독자처럼 굴지만 말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게.”
백수룡은 노군상이 시키는 대로 주위를 둘러봤다.
학생들은 곧 시작될 두 번째 종목에 대비해 몸을 풀고 있었고, 이른 시간인데도 관중석은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 채워져 있었다.
“곧 시작될 대회는 이제 아이들에게 맡기고, 조금은 즐겨도 되지 않겠나?”
“……충분히 즐기고 있습니다.”
진심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기분은 무척이나 즐거웠으니까.
전날의 승리로 청룡학관 학생들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 높았고, 분위기도 최고조였다.
백수룡은 모두에게 이 기분을 이어 가게 해 주고 싶었다. 주변에서 자신을 염려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건 알지만, 그는 걱정할 것 없다는 듯 웃으며 고집을 부렸다.
“이게 마지막이니까, 며칠만 더 무리하겠습니다.”
그 말에 노군상이 미간을 좁히며 농담 삼아 말했다.
“마지막이라니? 천무제가 끝나면 어디 떠나기라도 할 겐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천무제는 계속 있다네.”
그 말에 백수룡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있겠죠. 그래도 올해는 이게 마지막이니까요.”
“자네, 설마…….”
노군상이 묘한 표정으로 무언가 더 말하려는 순간, 백수룡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학생들에게 향했다.
“잠깐 학생들을 보고 오겠습니다.”
백수룡이 다가오자, 가볍게 몸을 풀고 있던 학생들 중 몇몇이 그를 돌아봤다.
청룡오망과 함께 있던 여민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선생님. 응원하러 오셨어요?”
“응원까지 필요해?”
“아뇨. 그냥 가볍게 뛰고 올 건데요, 뭐.”
제자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오늘은 야수혁 대신 헌원강의 머리 위에 널브러져 있는 은호를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걔는 왜 그러냐?”
“몰라요. 아침부터 축 늘어져서 이 모양이던데요.”
헌원강이 은호를 들어서 건네주자, 백수룡은 받아들었다.
끼잉…….
은호는 백수룡을 보자마자 면목이 없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듯 앞발짓 뒷발짓을 동원해서 캬앗- ??! 이라고 의사소통을 시도했으나, 백수룡은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음. 통역이 자고 있어서 말이다.”
백수룡이 창룡신검의 검파를 톡톡 두드리자, 은호는 다시 깊은 한숨을 쉬었다. 대신 고개를 홱 돌려 천무학관 쪽을 노려보았다.
백수룡도 그 시선을 따라 천무학관 진영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잠잠하군.’
천무학관은 초일의 실종을 쉬쉬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는 패배의 충격이 커서 두문불출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무림맹이 갑자기 사라진 초일을 추적하고 있다는 소식을 새벽에 전해 들었다.
‘생각보다 도망치는 실력이 제법이었나. 맹의 추적을 따돌릴 정도로는 안 보였는데.’
얼핏 평화로워 보이는 축제의 모습 뒤로 온갖 사건이 벌어지는 가운데, 천무제의 두 번째 날 경기가 곧 시작되었다.
다시 한번 무대의 중앙에 오른 천무학관주가 관중들에게 종목을 소개했다.
“천무제 두 번째 날의 공식 경기는 경공 대결입니다.”
그와 함께, 천무학관 곳곳에 쳐 놓았던 천막들이 치워지며 경공 대결에 쓰일 거대한 무대가 드러났다.
우와아아아아…….
놀란 관중들에게서 긴 감탄성이 흘러나왔다.
평범한 산길부터 시작해서 절벽, 살얼음, 발이 푹푹 빠지는 늪지, 외나무다리처럼 좁은 길까지.
경공을 시험하기 위한 온갖 지형을 전부 다 구현해 놓은 것 같았다.
“경공 대결 종목은 계주, 장애물달리기, 마지막으로 경공 비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번째 날의 경공 대결은 총 세 종목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중복으로 출전하는 것도 가능했다.
“각 학관에서 대표로 나설 학생들은 앞으로 나서 주십시오.”
오대학관 학생들이 앞으로 나서는 가운데, 청룡학관에서는 여민, 당소소, 그리고 독고준을 제외한 학생회 간부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섰다.
“힘내라, 청룡학관!”
“다른 녀석들이 너희들 등만 보고 따라오게 만들어!”
“망나니들 잡으러 다니면서 기른 경공 실력을 보여 줘!”
조금은 부끄러운 응원들 속에서 학생들은 앞으로 나섰다.
경기에 나선 모든 학생들에게 감회가 새로웠지만, 여민에게는 오늘이 조금 더 특별했다.
‘저곳이 북해빙궁.’
여민의 시야에 관중석 중에서 유독 하얗게 보이는 집단이 있었다. 다른 관중들의 열기가 침범하지 못할 정도로 차갑고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전날, 대회가 끝난 후에 거상웅과 야수혁이 가족들과 상봉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덩치들이 울고불고하던 건 낯간지러웠지만…… 그래도 조금은 부러웠다.
북해빙궁주 은휘령도 여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꽤 오랫동안 서로에게 머물렀다. 서로 닮은 얼굴에서 누군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첫 번째 경기를 준비하라는 사회자의 말이 들려왔을 때, 여민이 비로소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난 누구처럼 울고불고 할 생각은 없어요. 멋지게 이겨서, 당당하게 만나러 갈게요.”
그 먼 거리에서 듣기라도 한 것처럼, 은휘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첫 번째 종목인 계주를 시작하겠습니다! 학생들은 준비해 주십시오!”
여민은 겨울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백발의 머리카락을 뒤로 모아서 머리끈으로 질끈 묶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헌원강에게서 선물로 받은 비취색 머리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