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93
593화. 계주에서 이기면
경공 대결의 첫 번째 대결, 계주.
오대학관에서 각각 다섯 명씩 출전해 경공을 겨루는 종목으로, 정해진 경주로를 따라 달려서 결승선에 먼저 들어오는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었다.
주자는 경주로를 한 바퀴 돈 후 대기 중인 다음 주자의 등을 밀어주는 것으로 교체되며, 마지막 주자만 연달아 두 바퀴를 돌 수 있었다.
“또한 학생들의 안전과 공정한 경기 진행을 위해, 오대학관에서 한 분씩 강사님들을 특별감독관으로 모셨으며…….”
사회자가 관중들에게 경기 규칙을 설명하는 동안, 계주에 참가한 오대학관 학생들은 학관별로 모여서 마지막으로 작전 회의 겸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긴장돼?”
당소소의 질문에 청룡학관 학생회의 쌍둥이 유건·유곤 형제, 그리고 일 학년 남궁석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회 내부에서도 많은 상의를 한 끝에 참가가 결정된 학생들이었다. 하나같이 몸이 가볍고 경공이 빠르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다들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이 문제였는데, 당소소는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저길 한번 봐. 우리보다 더 긴장한 사람이 있는데?”
당소소의 시선이 향한 곳에선 청룡학관의 학생회장, 독고준이 초조한 표정으로 직속 후배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무제에 중복 출전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지만, 웬만하면 한 명당 하나의 종목에만 참가를 권장하는 편이었다.
체력 안배를 비롯해 어떤 종목이든 부상의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용봉비무에서 상위권을 노리는 학생들은 대부분 다른 경기에는 참가시키지 않았다.
독고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학생회의 후배들을 지켜만 보는 이유였다. 그는 주먹까지 꽉 쥐고서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참가자보다 더 초조해하는 학생회장의 모습은, 오히려 다른 학생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하여간 걱정은 많아서.”
“보란 듯이 이겨서 돌아가자.”
유건과 유곤이 차례대로 말을 이었고, 남궁석도 굳은 표정을 억지로 풀며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남궁석의 시선은 독고준이 아닌, 자신의 입관 동기인 위지천을 향했다.
“잘 봐라, 위지천! 네 호적수로서 내가 먼저 청룡학관에 승리를 가져올 테니까!”
뜬금없는 호적수 선언이었지만, 위지천은 익숙하다는 듯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석아! 힘내!”라고 큰 소리로 응원을 보냈다.
남궁석은 괜히 멋쩍은 듯 고개를 돌리며 투덜거렸다.
“흥. 일 년 동안 열심히 수련한 건 너 혼자가 아니란 걸 보여 주지.”
어쨌든 긴장은 사라진 모양이었다. 남궁석의 표정도 훨씬 편안해졌다.
“작전은 아까 다 설명했으니까 긴말 안 할게. 청룡학관 학생회. 모두에게 승리를 가져가자.”
당소소의 차분한 목소리에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썩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당소소지만, 이 순간만큼은 학생회의 부회장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여민.”
당소소는 아까부터 혼자서 몇 걸음 떨어져서 멀찍이 서 있던 여민을 불렀다. 여민이 한 걸음 더 물러나며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글거리는 말 할 거면 관둬. 나 그런 거 딱 질색이거든?”
“마지막 주자. 잘 부탁해.”
“……뭐, 부탁까지 안 해도 이길 거야.”
계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마지막 주자였다.
당연히 각 학관에서 가장 경공이 빠른 학생들이 마지막 주자를 맡았는데, 청룡학관에서는 자연스럽게 여민이 마지막 주자가 되었다.
평소 청룡오망에게 경쟁심을 가진 당소소조차 순순히 인정할 정도로 여민의 경공은 누구보다 빨랐으니까.
그렇다고 여민 혼자서 계주를 감당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편하게 달릴 수 있도록 일등으로 주자 넘겨줄 테니까 기다려.”
“좋아. 몇 번째로 시작해도 별로 상관은 없지만.”
여민이 어깨를 으쓱인 순간, 관객들에게 모든 설명을 끝낸 사회자가 외쳤다.
“첫 번째 주자들은 출발선에 서 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자리로 이동한 여민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주작학관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선 사마현이 몸을 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살이 조금 빠졌는지 뺨이 홀쭉해졌지만, 눈빛은 그때보다 더 깊어져 있었다.
마침 사마현도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사마현이 먼저 가볍게 목례를 했고, 여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에서 보이는 비장함에 여민은 작게 중얼거렸다.
“……쉽지는 않겠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여민은 여유롭게 몸을 풀었다. 너무 쉽게 이겨도 재미가 없을 테니까.
출발선 앞에 오대학관의 첫 번째 주자들이 일렬로 나란히 섰다. 이윽고 천무학관주가 진각을 밟으며 출발 신호를 보냈다.
“출발.”
콰앙!
동시에 다섯 명의 신형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하나같이 감탄이 나올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동일 선상에 있었던 학생들이 조금씩 앞뒤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지켜보던 청룡학관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며 소리쳤다.
“두 번째다!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긴! 천무학관 바로 다음인데!”
“제쳐 버려라, 남궁석!”
청룡학관의 첫 번째 주자는 일 학년 남궁석이었다.
입학 시험 당시 수석을 자신했으나, 위지천이라는 천재에게 밀려 차석으로 입학한 비운의 소년.
남궁석은 처음에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남궁세가의 핏줄인 자신이 고작 청룡학관에서 수석을 하지 못했다는 것도, 무시했던 상대가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사실도.
하지만 지난 일 년 동안 청룡학관에서 일어난 많은 변화를 함께 겪으며, 남궁석의 생각도 점점 바뀌었다.
한때는 청룡학관에 입관한 것을 후회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청룡학관 학생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두 번째 순위를 유지한다!’
계주에 일 학년이 반드시 한 명은 포함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었다면, 주자에 포함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청룡학관에는 뛰어난 선배들이 많았으니까.
그들을 대신해서 주자를 맡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남궁석은 한 걸음 앞에 있는 천무학관의 주자를 최선을 다해 뒤쫓았다. 아직까지는 다섯 주자의 간격이 크지 않은 시점이었다.
기회를 봐서 첫 번째로 치고 나갈 기회가 생길지도…….
퍽!
뒤에서 추월을 시도한 백호학관 주자가 어깨에 부딪히자 남궁석의 몸이 흔들렸다. 그 탓에 발걸음이 반보 정도 처지는 순간, 백호학관 주자가 그를 제치고 앞서나갔다.
“저건 반칙이잖아, 이 자식들아!”
지켜보고 있던 헌원강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말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던지라, 독고준이 그의 어깨를 급히 붙잡았다.
“손발을 이용한 출수가 아닌, 어깨를 부딪치는 정도의 몸싸움은 계주에서 허용된다. 아까 다 설명한 내용이야.”
“야! 아무리 그래도 저건…….”
반박하려던 헌원강은 독고준을 돌아보고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독고. 너 검에서 손이나 떼지 그래?”
“……음?”
저도 모르게 검파를 꽉 움켜쥐고 있던 독고준은 천천히 손을 뗐다. 학생회 후배가 견제를 당하자 저도 모르게 나온 반응이었다.
그러나 첫날 경기에서 놀라운 실력을 보여 준 청룡학관을 향한 견제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에 불과했다.
“저 자식들이……!”
“계속 우리만 견제하잖아?”
“치사하게 뭐 하자는 건데!”
주자가 바뀐 이후에도 견제는 계속됐다. 두 번째 주자인 유건은 백호·주작학관 주자와 몇 차례나 어깨를 부딪치면서 사 위까지 처졌고, 세 번째 주자인 유곤은 뒤에서 바짝 붙는 통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청룡학관의 주자들이 심한 견제에 뒤처지는 동안, 선두를 차지한 천무학관의 주자는 점점 더 간격을 벌렸다.
* * *
특별감독관으로 나선 강사들은 지정된 자리에서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
남궁수는 결승선 앞에서 뒷짐을 진 채 계주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곁에는 천무학관의 강사가 자리해 있었다.
“이게 얼마만이지? 내가 졸업하고는 처음이던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 오는 강사는 남궁수의 천무학관 두 학년 선배로, 황보군이라는 이름의 사내였다.
“그간 격조했습니다. 선배님께서는 별래무양하셨는지요?”
남궁수의 깍듯한 인사에 황보군은 그러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남궁 후배는 십존이라는 명성을 얻고도 한결같군. 무인으로서 존경할 만한 일이지만,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거라는 생각도 해 주게. 굳이 자네가 여기에 서 있을 필요가 있겠나?”
“…….”
사실 십존이라는 위치를 생각하면, 남궁수에게 특별감독관을 맡기는 것은 통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궁수는 직접 특별감독관을 하겠다고 자청했다.
본인이 나서지 않으면 백수룡이 나섰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백수룡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기상천외한 편법과 비양심적인 경기 운영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군.”
남궁수의 곁에 서서 계주를 지켜보던 황보군이 슬쩍 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괜찮나? 청룡학관 학생들 말이야. 심하게 집중견제를 당하는 것 같은데.”
청룡학관 주자들은 집중된 견제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체력까지 소모되면서 시간이 갈수록 뒤로 처지고 있었다.
“규칙 내의 허용된 수준의 몸싸움입니다.”
남궁수는 일말의 표정 변화조차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청룡학관에서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는 탓인지 처음에는 약간은 눈치를 보던 학생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대놓고 강하게 견제에 들어가고 있었다.
황보군은 그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청룡학관 학생들을 향해서는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모난 돌은 정을 맞기 마련이지. 첫날부터 대단한 실력을 보여 주니 견제가 들어오는 게 아닌가? 혹여나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게.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지.”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남궁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본인의 순위마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아득바득 청룡학관을 방해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일부 주자들을 보며, 남궁수는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선배님. 천무제의 오랜 병폐(病弊)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병폐? 그런 게 있었나?”
황보군이 처음 들어 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남궁수는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구파일방의 힘과 영향력은 천하에 미치지요. 수많은 속가와 거기서 뻗어 나온 표국, 상단들. 정파무림을 통틀어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입니다.”
남궁수는 청룡학관을 견제하는 주자들의 공통점을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자신들의 순위를 포기하다시피 해 가며 청룡학관을 방해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항렬이 낮은 구파일방의 본산 제자이거나 속가제자였다.
문파의 어른들이나 혹은 천무학관의 학생들이 그들에게 눈치를 준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눈치를 보고 행동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네. 지금 주자들이 구파일방의 사주를 받기라도 했다는 건가?”
표정을 굳힌 황보군이 다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누가 듣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날 발언이었다. 심지어 그 말을 한 당사자가 십존이라면 어마어마한 파문이 일 수도 있었다.
“그런 말은 한 적 없습니다. 다만…….”
주자들을 지켜보던 남궁수가 고개를 돌려 황보군을 똑바로 바라봤다. 번뜩이는 금안과 마주한 황보군이 움찔했다.
“청룡학관은 예외입니다.”
“무, 무엇이?”
“구파일방의 속가제자나 그와 관련된 학생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 줄 아십니까?”
“……무슨 의미인가?”
남궁수의 금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참고 있었을 뿐, 자신의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견제를 당하는데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다.
“구파일방과 아무런 인연도 없으니, 상대가 누구든 눈치 보지 않고 쓰러뜨리는 데 거리낌도 없다는 뜻이지요.”
“…….”
할 말을 마친 남궁수는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덧 청룡학관의 마지막 주자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 * *
“치사한 자식들!”
당소소는 이를 악물었다.
다른 학관의 주자들이 합심해서 하는 견제에, 그녀가 준비해 온 전략 대부분을 쓸 수 없었다.
오히려 다른 학관들의 방해에 체력이 빠르게 소모되었다.
빠득!
최선을 다해서 경기를 준비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방해에 온전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눈물이 날 정도로 분했다.
지난 천무제에서는 몰랐다.
청룡학관은 언제나 꼴찌라는 데 익숙하기도 했고, 정말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으니까.
‘대회가 공정하게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던 게 너무 순진했던 거야.’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당소소는 빠르게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일단 최선을 다해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천무학관은 이미 마지막 주자가 달리고 있었다.
그 뒤를 현무학관의 주자가 뒤따르고 있었고, 주작학관과 백호학관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뒤를 힐끔거렸는데, 청룡학관의 주자를 자신들보다 앞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당소소는 어떻게든 그들을 제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출수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경공 비무였다면 어떻게든 방법이 나왔겠지만, 계주에서는 어깨를 부딪치는 것 이외의 충돌은 반칙이었다.
“천무학관 혼자 달리게 두고, 여기서 우리끼리 진흙탕 싸움이나 하자고?”
당소소의 도발에, 앞서 달리고 있던 백호학관 주자가 슬쩍 뒤를 보며 말했다.
“꼴찌보단 낫지.”
그러곤 할 말이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당소소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격차가 너무 벌어졌어.’
천무학관이 이미 반 바퀴를 앞서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당소소는 심호흡을 하며 오히려 속도를 조금 늦췄다.
주작학관과 백호학관의 주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속도를 높여서 마지막 주자의 등을 밀었다.
단독 최하위로 처진 당소소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주자에게 외쳤다.
“미안! 일등으로 넘겨주겠다고 했는데!”
청룡학관의 마지막 주자, 여민은 가볍게 몸을 푸는 중이었다.
자신 외에 모든 주자가 출발했음에도 그녀의 표정에는 조금의 초조함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 말했잖아. 난 몇 등에서 시작해도 상관없다니까?”
그렇게 태연하게 대답하면서, 여민의 시선은 당소소의 옆구리에 붙어서 공력을 끌어모으고 있는 쌍장을 바라봤다.
“……힘이 좀 과한 거 아니야?”
“계주에서 이기면 앞으로 언니라고 부를게!”
“약속한 거다?”
여민은 몸을 돌려 달려오는 당소소에게 등을 보였다. 새하얀 바람이 그녀의 몸을 휘감은 순간, 당소소의 쌍장이 여민의 등을 있는 힘껏 밀었다.
수백 번이나 연습한 마지막 주자를 교체하는 방식이었다.
퍼어어엉!
모든 힘을 쏟아 낸 당소소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여민의 신형이 한줄기 하얀빛이 되어 질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