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26
626화. 벽에 닿았다
“준비가 끝났으면 시작해도 좋다.”
흥미로운 미소를 띤 천무학관주가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비무대가 크게 울렸다.
쿵!
선공을 펼친 쪽은 일각이었다.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비무대 바닥을 박찼다. 쏜살처럼 튀어 나간 신형이 순식간에 독고준과 거리를 좁혔다.
‘빠르게 끝낸다.’
일각의 눈빛에 단호함이 깃들었다. 그는 최대한 빠르게 비무를 끝내 체력을 보존할 생각이었다.
오늘 치러야 하는 세 번의 비무 중, 이제 첫 번째 비무였으니까.
검이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대기를 갈랐다. 소림의 몇 안 되는 검법인 달마십삼검(達摩十三劍)이었다. 현기 어린 황금빛 기류가 부드럽게 검을 휘감았다.
사악!
독고준은 고개를 슬쩍 뒤로 젖혀 일검을 피했다. 눈앞에서 검로가 스쳐 갔다. 그러나 한쪽 입꼬리만 삐뚜름하게 올라간 독고준의 미소는 여전히 불량했다.
“최대한 빨리 끝내겠다는 생각이 뻔히 읽히는군. 내가 호락호락하게 당해 줄 것 같나?”
“그것이 시주께 드리는 마지막 경고였습니다.”
일각의 입은 부드럽게 웃고 있었으나, 그의 눈은 독고준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리 대자대비한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승려라고 해도 일각은 젊은 무승이었다. 몇 번이나 같은 상대에게 도발을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수양이 깊지 않았다.
“대머리라고 놀린 것 때문에 그러나?”
그러나 독고준은 일각과 검을 부딪치면서도 입을 쉬지 않았다. 마치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 같았다.
“지금까지 다들 소림제일 후기지수라고 떠받들어 주니까 우쭐했지?”
“그런 적 없습니다.”
“솔직해져 보자. 위지천이 용봉비무에서 돋보이니까 배알이 꼴렸을 거야. 그치? 그러니까 괜히 화풀이 겸 소소의 팔을 부러뜨린 거지.”
“결코 아닙니다.”
“반들반들한 대머리에 햇빛이 반사돼서 똑바로 보기 힘든데. 이건 좀 비겁한 거 아냐?”
“아미타불……!”
건들거리는 태도하며 이죽거리는 말투. 독고준은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상대의 속을 긁는 말을 쉬지 않았다.
비무가 계속될수록 일각의 얼굴이 붉어졌다. 쏟아지는 환호성에 묻혀 독고준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일각의 귀에만은 하나하나가 쏙쏙 박혔다.
일각은 저 입을 막아 달라는 의미로 천무학관주를 힐긋 바라봤으나, 천무학관주는 오히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독고준의 검법을 지켜보고 있었다.
“……독고구검이 진정한 후인을 찾았군. 비로소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해.”
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딴 소리나 하고 있으니, 일각은 인내심은 더욱 한계에 가까워졌다.
쩌엉-!
독고준의 검을 힘껏 밀어내고 제자리에 멈춰 선 일각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는 독고준이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청룡학관의 검룡은 용봉에 어울리는 강자였으며, 힘을 아끼면서 빨리 끝내려던 계획은 자신의 오만이었다.
솔직하게 그 사실을 인정한 일각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시주. 더 이상 괜한 말로 심력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진정으로 저와 후회 없는 비무를 펼치고 싶으시다면…….”
화아아악!
일각의 승복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동시에 후욱- 번진 먼지가 동심원을 그리며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그 전까지와는 기세가 아예 달랐다.
“그 입이 아니라 검으로 증명해 보이십시오.”
황금빛으로 물든 일각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그다음 순간, 독고준의 눈앞에 도착한 그는 검을 내리치고 있었다.
“금강부동신법!”
관중들 중에 그 순간을 제대로 눈에 담은 이가 드물었다. 수많은 무인들을 포함해도 마찬가지였다.
쩌어어엉!
검과 검이 부딪쳤다고는 믿기 힘든 굉음이 터졌다. 곧이어 막대한 충격파가 비무대를 휩쓸었는데, 비무대 가까이에 있던 관중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려야 할 정도의 강풍이 불어닥쳤다.
그 충돌의 중심에서, 일각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일각은 예상보다 훨씬 더 묵직한 반발력에 표정을 굳혔다. 그의 시선은 자신의 검을 정면에서 막아 낸 독고준의 검을 향했다.
독고구검이라면 작년 독고준과의 비무에서 충분히 보았다. 그때 체득한 중검(重劍)의 묘리를 담아 휘둘렀다. 작년보다 더 깊어진 내공과 외공을 접목해서.
‘진심으로 휘두른 검이었는데.’
당장 검이 부러지진 않더라도 독고준은 크게 밀려나야 했다. 그러나 독고준은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밀려나지 않고 버텨 냈다.
“작년과는 다를 거라고 했지?”
독고준은 사납게 웃으며 이를 드러냈다. 그리고 일각의 검을 위로 튕겨 냈다.
“내 차례다.”
눈빛이 변한 독고준이 검을 휘둘렀다. 사나운 기질이 완전히 낭인이었다. 그러나 일각 역시 물러나지 않고 마주 검을 휘둘렀다.
쩌엉! 쩌엉! 쩌엉!
그때부터 두 소년은 기교를 부리지 않고 정면으로 검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귀를 틀어막아야 할 정도의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서로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는 모습이, 나중에는 완전히 자존심 싸움이었다.
“허어! 소림의 검이 저토록 무거웠나?”
“달마십삼검이오! 거기에 중검의 묘리가 더해졌군.”
“독고세가의 아이도 대단합니다. 헌데…… 독고구검이 원래 저렇게 거친 무공입니까?”
“오래전에 스승님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독고구검을 창안한 독고패는 낭인 출신으로 천하제일인이 된 인물이었다고. 그래서 독고세가의 검은 본래 강맹하고 거칠었다고…….”
비무를 지켜보며 웅성대는 무인들의 표정에 경탄이 어렸다.
상대를 부숴 버릴 듯한 기세로 거칠게 부딪쳐 대는 두 개의 검.
잠시 물러나 호흡을 돌릴 법도 하건만, 둘 다 고집스레 버티고 서서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쩌엉! 쩌저저정!
충돌을 할 때마다 발생한 검풍에 무복이 찢어지고 피부가 갈라진다. 손바닥은 찢어져 피가 뚝뚝 흐른다. 그러나 독고준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미간조차 찌푸리지 않았다.
“완전히 신들렸군.”
그런 독고준의 모습을 지켜보던 백수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수가 그 옆에서 낮게 침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백수룡. 네 짓이군.”
“……이젠 의심도 안 하고 확정이냐?”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남궁수를 슬쩍 돌아봤으나,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순순히 인정했다.
“뭐, 약간의 조언 정도는 해 줬지.”
“조언?”
용봉비무에 올라간 학생들에게 진기도인을 해 주던 날 밤, 백수룡은 자신을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던 독고준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선생님. 독고구검의 진정한 오의를 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듯한 자세로 앉아서 진지한 눈빛으로 묻는 독고준에게, 백수룡은 턱을 긁적이다가 이런 시도를 해 보면 어떻겠냐고 조언해 주었다.
-무공에는 창안한 사람의 정신이 담기기 마련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독고구검의 창시자인 독고패는 낭인이었다. 거칠고, 잔인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가 꺾이지 않는 잡초 같은 기질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전해지지.
-그, 그렇게까지…….
가문의 시조에 대한 가차 없는 평가에 독고준이 당황해하자, 백수룡은 짧게 미안함을 표하곤 말을 이어 갔다.
-너희 가문의 시조를 이렇게 평가해서 미안하다만, 낭인들이 대체로 그래. 애초에 정파라고 하기도 어렵지. 독고세가가 낭인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억지로 무공을 정파스럽게 개량한 것도 그것 때문이고. 혹시 듣기 싫다면 그만 얘기하마.
-……아닙니다. 더 알려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간절한 표정으로 묻는 독고준에게, 백수룡은 극약처방을 내렸다.
“그래서 독고구검의 진정한 오의를 끌어내고 싶다면, 가문의 시조처럼 싸워 보라고 말해 줬어.”
“……시조? 설마 낭인처럼 말인가?”
비로소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다는 듯한 남궁수의 표정에, 백수룡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 누구보다 사파무공의 이해와 실전대비를 열심히 들었던 우등생이거든.”
쩌어엉-!
결국 일각이 먼저 뒷걸음질을 쳤다.
중검을 연달아 펼치느라 손목에 무리가 왔는지, 가볍게 돌려서 풀어 주고 있었다.
곧바로 그를 쫓는 독고준의 신형이 비틀거렸다.
체력의 소모가 심각해 보였다. 게다가 무복은 여기저기 찢기고 갈라져 피로 범벅이었다.
오히려 먼저 뒤로 물러난 일각은 상대적으로 멀쩡했다. 적절한 순간에 힘을 뺀 덕분이었다.
“아미타불…….”
일각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무모하게 달려드는 독고준을 바라봤다.
생사결이 아닌 비무였다. 저렇게까지 몸을 내던지며 덤벼드는 것은 뒤를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했다.
그런데 왜…… 자신이 위축되는 것일까?
“카악- ?.”
독고준은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뱉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검을 단단히 쥐었다. 히죽 웃자 입 안에 고여 있는 선연한 핏물이 그대로 보였다.
“도망치지 마라. 계속 나와 검을 부딪쳐 보자고.”
“……더 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독고준은 알게 뭐냐는 듯 코웃음을 쳤다.
“닥치고 덤벼. 그 매끈한 대머리를 쪼개 줄 테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백수룡도 작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저건 좀 과한 것 같지만.”
“……근묵자흑이란 말로도 모자란, 끔찍한 참사로군.”
“뭐, 사람이 흥분하면 말도 험하게 나오고 그러는 거지. 설마 진심이겠어?”
남궁수는 경멸 어린 눈빛으로 백수룡을 쏘아 봤지만, 그 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흐아아압!”
기합성을 터트린 독고준이 일각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아마도 저것이 마지막 검이리라.
그 순간, 두 강사의 눈에는 독고준의 지독한 노력이 보였다.
청룡학관 최고의 후기지수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소년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대부분이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젓는 목표를 위해 얼마나 외롭게 싸워 왔는지.
그 과정을 모두 지켜봤기에, 결과를 짐작하면서도 힘껏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천재들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범인의 노력을 뛰어넘지만…… 때로는 범재의 간절함을 당해 내지 못할 때가 있거든.”
백수룡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 온 독고준의 노력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학생회장. 자네의 노력은 충분히 천재의 벽에 닿았다.”
남궁수는 청룡학관을 대표하는 후기지수의 마지막 일검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까아아아앙!
반으로 조각난 일각의 검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누적된 충격을 견뎌 내지 못한 검이 부러진 순간, 일각은 손바닥이 찢어지는 고통에 완전히 검을 놓아 버렸다. 그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
독고준은 당장이라도 넘어질 듯 휘청거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검을 놓치고 황급히 물러서는 일각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소년의 두 눈에 승리를 향한 열망이 가득했다.
“선배!”
당소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올해의 천무제는 다를 거라며 누구보다도 먼저 청룡학관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두 사람.
당소소는 독고준과 함께한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독고준의 승리를 간절히 기원했다.
백수룡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충분히 대단했다.”
그 순간 검을 놓친 일각의 신형이 황금빛 기류에 휩싸이더니, 잠시 후 커다란 황금빛 손바닥이 독고준의 모습을 덮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