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28
628화. 천재들의 영역
비무대에 올라온 소녀와 소년이 마주 섰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네! 선배님도 잘 지내셨죠?”
앞서 비무에 나섰던 건장한 후기지수들과 달리 호리호리한 체형과 앳된 얼굴들.
그들은 곧 시작될 비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경계하기보다는 미소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허리춤에 찬 검이 아니었다면, 비무가 아니라 교분을 나누기 위해 만난 것처럼 비쳤을 것이다.
“넌 그새 검 끝이 더 예리해졌더라.”
“선배님이야말로 지난번에 봤을 때와는 많이 달라지셨던데요.”
두 사람의 맑고 또렷한 눈동자가 서로를 훑으며 천천히 검파에 손을 올린다.
장난꾸러기 같은 소녀의 미소와 마냥 해맑아 보이는 소년의 미소에서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청룡학관의 검재(劍才) 위지천.
주작학관의 주작검(朱雀劍) 연소하.
두 학관을 대표하는 검의 천재들이 맞대결을 앞두고 있었다.
그들의 비무를 기다리는 무인들, 특히 검을 패용한 무인들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중에는 검으로 명성을 떨치는 고수들도 적지 않았다.
“청룡신협이 제자에게 가르친 무공이 과거 검존의 무극검이라지요? 사실이라면 결과는 조금 뻔하지 않을지…….”
“아직 모르나 보군. 주작학관의 연소하는 검성께서 직접 가르침을 내린 전인일세. 그분의 무공이라면 결코 무극검에 못지않겠지.”
“훗날 천하제일검이 될 재능을 알아보는 자리가 될 수도…….”
“어째 기대가 지나치신 듯합니다.”
“결과가 어찌 되든 검존과 검성의 검술을 동시에 견식하게 되었으니, 오늘 눈이 크게 호강하겠습니다.”
검성과 검존의 후계자들.
그 이유만으로도 이번 비무에 수많은 관중들이 관심을 가졌다.
청룡학관의 검룡 독고준, 천무학관의 태청검 취소옥이 패배했고, 소림신룡 일각은 앞으로 검을 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용봉비무에 남은 검객은 위지천과 연소하 둘뿐이었다.
그리고 이번 비무에서 승리한 사람은 용봉비무의 유일한 검객이 될 터였다.
“즉, 이 비무가 후기지수제일검을 가리는 자리란 뜻이지.”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사람들이 긴장감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군중들의 기대 어린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건만, 위지천과 연소하의 시선은 어느 순간부터 서로에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준비가 끝났으면 시작해도 좋다.”
“…….”
“…….”
웃으며 뒤로 물러나는 천무학관주의 선언에도, 위지천과 연소하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고요하게 서로를 바라보던 그들이 검을 뽑아 내린 것은 동시였다.
스릉.
차분하고 깊은 호흡을 내쉰 두 검객의 신형이 동시에 흐릿해졌다. 자세를 낮춘 그들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화아악!
머리카락이 뒤로 거세게 휘날렸다. 비무대 중앙에 도착한 두 검객은 서로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상대에게 반갑게 미소 짓던 표정 그대로였다.
까가가강!
시작부터 전력이었다. 무극검과 태극혜검의 검로가 어지럽게 얽혔다. 검날이 부딪칠 때마다 불티가 사납게 튀었다.
‘역시 강해.’
‘그때보다 더 발전했어.’
서로에게 등을 맡기고 혈교도들과 사투를 벌인 것이 불과 달포가 조금 지난 기억이었다.
때문에 누구보다 상대의 검로를 잘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생사를 오가는 싸움에서 서로를 지켜 주며 호흡하던 두 검이 이제는 서로의 빈틈을 노렸다.
채앵!
위지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검을 부딪칠 때 느껴지는 반발력이 예상보다 적었다. 강하게 압박하려 한 의도가 통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용봉비무에 참가하고 처음 겪는 일.
“너무 얕보는 거 아닌가?”
웃고 있는 연소하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태극혜검은 끝없이 부드러운 원을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공격과 방어의 전환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 맥을 끊지 못하면 그대로 휘말리기 십상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냐.’
태극혜검이라는 무당의 신공절학에 연소하라는 천재의 기질이 더해졌다. 자유로우면서도 과감하고 변칙적인 검.
부드러움 속에서 치명적인 일검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튀어나온다. 바로 지금처럼.
사악!
연소하의 검이 뺨을 스쳤지만, 위지천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도리어 과감하게 간격을 좁히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피차 비슷한 수준의 영역이었다. 판단부터 행동까지, 일련의 과정이 극히 찰나에 가깝다. 손해를 감수하지 않고서는 승리를 쟁취할 수 없는 상대였다.
“얕볼 리가요.”
“……하.”
연소하는 상처를 감수하고도 과감하게 파고드는 소년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불과 달포가 조금 더 지났을 뿐이지만, 천재에게 그 정도의 시간은 자신의 검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리고도 남을 기간이었다.
쩌엉!
이번에는 연소하가 손해를 봤다. 검을 부딪친 손아귀가 저릿저릿했다. 달포 전의 그녀였다면 여기서 승기를 완전히 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소하도 비범한 자질을 지닌 천재였다. 묘기처럼 왼손으로 검을 바꿔 쥐고 무극검의 공세를 막아 내는 것과 동시에, 제운종으로 몸을 띄웠다.
촤악!
무극일섬이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잔상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렇게 한 차례 맹렬하게 부딪친 후,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후우-.”
가슴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지쳐서가 아니라 흥분한 탓이었다. 검파를 쥔 손이 가볍게 떨렸다.
위지천은 처음으로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소년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피식.
연소하의 입가에도 비슷한 미소가 맺혔다. 처음보다 살짝 거칠어진 호흡을 내뱉는데, 그에 따라 은은하게 풍겨 오는 주향에 위지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술 드셨어요?”
“쉿.”
연소하가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갖다 댔다. 비밀로 해 달라는 뜻이었다.
“핑계는 대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살짝 취해야 긴장이 풀리는 편이거든.”
“……저희 학생주임 선생님도 예전에 그러셨다고 들었어요.”
위지천은 개의치 않았다. 약간의 취기가 연소하의 검로를 흔들 수는 없을 테니까. 오히려 더 과감해지고 자유로워진다면 모를까.
그때 연소하가 불쑥 말했다.
“우리 학관에선 다들 내가 용봉비무에서 우승할 거라고 기대하더라.”
“…….”
소녀는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위지천은 그 말에서 느껴지는 연소하의 부담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작년까지는 아무도 나한테 그런 기대를 안 했거든. 사실 내가 좀 못 미더운 녀석이라.”
게으른 천재.
주작학관의 연소하를 수식하는 말이었다.
가진 재능에 비해 호승심이 강하지 않았고, 무인으로서 향상심이나 명예에도 관심이 없었다.
검성을 스승으로 모신 이후에도 그런 기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검을 배우는 것보다 노는 것을 좋아했고, 힘든 수련을 시키면 도망 다니기 바빴다. 힘든 것은 질색이었다.
“솔직히 예전 같았으면 진작 도망쳤을 거야. 물론 누가 강요한 건 아니지만, 이런 은근한 기대가 더 부담스러우니까.”
연소하는 다시 오른손으로 검을 바꿔 쥐며 기수식을 취했다.
호적수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이유도 다른 건 없었다. 단순한 변덕이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도망치지 않으려고. 사 년 동안 못 미더운 학생이고 선배였지만, 한 번쯤은 주작학관에 도움이 되고 싶거든.”
주작학관은 지난 혈교와의 전투에서 정신적 지주를 잃었다.
관주 이상의 의미를 가졌던 염왕의 죽음은 학관을 근간부터 휘청이게 했다.
하지만 주작학관의 강사들과 학생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로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되었고, 보란 듯이 천무제에 참석했다.
그들의 기대를 짊어진 연소하의 눈에서 단단한 각오가 비쳤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위지천도 마주 검을 들어서 연소하를 겨누었다.
그는 자신의 전부를 쏟아 내 싸우던 독고준을 떠올렸다.
독고준뿐만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어떻게든 일 합에 승부를 보려다가 팔이 부러진 당소소.
패배했음에도 애써 웃으며 후배들을 독려하던 목형우.
비무에서 지고도 상대를 분석해 자신에게 알려 주던 남궁석.
팽사혁과의 대결에서 무리한 내상을 입었음에도 티 내지 않으려던 유이란.
각자 출전한 종목에서 최선을 다해 준 선배, 동기들 모두의 모습 하나하나가 선명했다.
“저도 처음에는 천무제 우승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어요. 백수룡 선생님이 목표라고 하셔서…… 은혜를 갚고 싶어서 돕고 싶다는 생각이 전부였어요.”
하지만 지난 일 년 동안 선배, 동기들과 함께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천무제 우승은 위지천에게도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우웅-!
선명한 검기가 맺힌 검혼이 부르르 진동했다. 그 엄청난 기의 밀도에 절정의 고수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 꼭 용봉비무에서 우승해서 선배님들, 동기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함께 축하할 거예요.”
“양보해 달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장난스럽게 웃은 연소하도 자신의 송문검에 검기를 피워 올렸다. 관중석의 경악이 두 배로 커졌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흐릿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관중들이 내는 소음도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
“…….”
오직 서로의 검만 남은 상태. 두 천재는 자연스럽게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의식조차 못 한 채 서로의 간격에 들어섰다.
스악!
검기에 베인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위지천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옆으로 크게 돌아서며 검을 올려 그었다.
촤악!
어깨를 스친 검날에 핏방울이 맺혔다. 피하지 못했다면 목이 베였을 터. 연소하는 그 순간을 망막에 담았다가 자세를 낮췄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부드럽게 태극을 그린 검이 위지천의 명치를 노렸다. 위지천의 검은 위에서 아래로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쩌엉!
부딪친 검이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맞붙었다. 검끼리 부딪칠 때마다 사방으로 튀는 검기의 파편들. 허공에 수십 줄기의 은빛 궤적이 유성의 꼬리처럼 흔적을 남기고, 비무대 바닥에 검흔을 새겼다.
어느 순간부터 두 천재는 자신들만의 영역에서 검을 나눴다. 타고난 검의 재능과 쌓아 올린 노력, 직감과 본능이 더해져 기이한 광경마저 만들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왜 허공에 검을 휘두르다가 마는 건지…….”
“검이 부딪치질 않는데요?”
범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위지천과 연소하가 어느 순간부터 검을 거의 부딪치지 않고 검로를 그리다가 도중에 빠르게 회수하는 이유를.
서로의 검로를 예지하는 지경에 이른 두 천재의 재능이, 심상의 영역에서 먼저 검을 부딪치며 끊임없이 검로를 수정하고 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있을까.
때문에 그 모습이 마치 허공에 헛손질하다가 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둘 다 체력과 기력을 아꼈다가 단 한 번에 승부를 낼 작정임을 말이다.
극히 일부의 고수들, 그리고 그들의 재능에 공감할 수 있는 학생들 정도만이 상황을 눈치채고는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미쳤네.”
헌원강은 혀를 차며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렸고, 반대편에서는 팽사혁이 팔짱을 낀 채 두 검객을 노려봤다.
“아미타불.”
일각은 투명한 눈으로 두 검객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나직이 불호를 외웠다.
각 학관의 강사들이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언제든지 개입할 준비를 하는 가운데.
“하하, 하하하……!”
점점 고요해져 가는 비무장에서 오직 천무학관주만이 희열에 들떠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