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52
652화. 그대들도
천무결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많은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백수룡이 스스로 역천신공을 받아들이고 혈마를 심상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모습을 냉정하게 지켜봤고.
남궁수가 각오를 굳게 다진 표정으로 심상 세계에 따라 들어갈 때도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백무흔과 청룡오망이 자신들을 막아서는 적들을 상대로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돌파를 해내는 모습도 무심하게 바라봤으며.
혈마의 술법을 끊어 내고 돌아온 사도들이 무시무시한 신위를 떨치며 길을 뚫어 낼 때도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상황을 지켜보던 천무결이 나선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
하나는 진량이 천지간에 가득한 역천의 기운을 흡수해 순식간에 익혀 낸 역천신공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하늘이 거세게 반응하며 때 이르게 문이 열리려 하였고.
우우웅-!
두 번째는 자신은 허공에 일렁이는 저 검흔을 베어도 백수룡의 심상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심상 세계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과 깊은 인연이 닿은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그것도 쉬워 보이지는 않지만…… 그 정도는 너희가 알아서 할 수 있겠지.”
“너는 누구지?”
일사도가 경계심 어린 눈으로 천무결을 노려봤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천무결의 등에 검 끝을 겨눈 채였다.
천무결은 여전히 진량을 노려보며 어깨만 가볍게 으쓱였다.
“도와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
“우리를 향해 이렇게나 진득한 살기를 흘리는 자를, 아군이라고 생각하길 바라나?”
순간 천무결의 입술에 난 지렁이 같은 흉터가 꿈틀댔다. 그는 여전히 일사도를 돌아보지 않은 채 피식 웃었다.
돌아보는 순간 살기를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나이에 혈교로 끌려가 강제로 무공을 익히고, 눈앞에서 친우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어린 실험체. 오랜 시간 계획해 혈교를 탈출했지만, 복수 외에는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해 천하를 떠돌던 이름조차 없던 소년. 이만하면 대답이 되었나?”
“…….”
“사도들이여. 나는 내 인생을 망가뜨린 너희들을 증오한다. 동굴을 탈출하던 그 순간부터 혈마와 너희를 모두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그러니 내 인내심을 시험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입을 닥치는 게 좋을 거다.”
그 순간 일사도뿐만 아니라 모든 사도들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나타난 천무결의 살기에 겁을 먹어서가 아니었다.
혈마의 술법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지난 수십 년간 저지른 악행들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 사도의 머릿속에 혈교를 이끌면서 저질렀던 끔찍한 죄악들이 무수히 떠올랐다.
자신들 앞에 등을 보인 사내는 그 수많은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침묵을 깨고 일사도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복수를 위해서 찾아왔나?”
“처음엔 그랬지. 혈마를 죽이고, 너희들을 죽이고, 혈교의 모든 것을 불태워 흔적조차 남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다른 건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었다. 오직 이때만을 기다렸으니까.”
피를 게워 내던 진량이 비틀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역천의 기운을 몸 안으로 흡수해 상처를 재생하고, 전신에 끔찍한 기파를 두르며 앙천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놀랍구나! 지금의 내게 이만한 충격을 안겨 주다니……. 천무결 선생.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강한 무인이었군?”
천무결은 새롭게 발아한 역천의 씨앗을 지그시 노려봤다. 그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일사도에게 말했다.
“헌데 오랫동안 지켜보니 말이야. 너희들도 나랑 별다를 것 없는 불쌍한 운명이더군. 아니지, 너희에겐 아직 이름조차 없는 것 같으니 어쩌면 내가 조금은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
천무결이 이렇게 구구절절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한 사내 때문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운명을 타고났지만, 다른 선택과 결정을 내린 사내.
‘백수룡.’
그가 바꾼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과, 이제는 그의 운명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랜 시간 복수만을 염원해 온 천무결에게 묘한 감흥을 주었다.
그저 변덕이라고 해도 좋았다. 천무결은 또 다른 혈마로 변해 가는 진량을 향해 걸어가며 사도들에게 말했다.
“가서 혈마를 막아라. 너희가 해낸다면, 내 복수는 여기서 멈추겠다.”
“……뭐?”
당황하는 사도들의 기척을 등 뒤로 느끼며, 천무결은 고개를 들어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콰콰콰콰콰콰-!
천지간의 기운이 완전히 역천으로 침식되고 있었다. 쿠웅-! 쿠웅-! 천둥과는 결이 다른 소리의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쩌적, 쩌저저적…….
검붉게 소용돌이치는 하늘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별빛 너머, 천무결은 아득한 곳에 있는 존재들을 느꼈다.
“너희가 해내지 못한다면, 내 손으로 직접 그를 죽이는 수밖에 없다. 혈마를 죽여야 이 모든 일이 끝날 테니까.”
할 말을 모두 마친 천무결은 대답을 듣지도 않고 진량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조금은 후련해진 표정이었다.
“천무결 선생. 자네가 펼친 무공이 무엇인지 알려 주겠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본 적 없는 것이라서 말이야. 이만한 위력에, 마기와 한없이 가까우면서도 이토록 정순한 기운이라니……. 떠오르는 것이 딱히 없는데…….”
역천신공의 권능으로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 자신의 상처를 내려보던 진량이 혼잣말을 지껄이다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설마……!”
얼마나 놀랐는지 전신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공포나 두려움이 아닌 기쁨과 환희의 몸짓이었다.
“전에 그랬던가? 네가 천하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무공이 둘이라고. 그중 하나는 역천신공이고, 다른 하나는…….”
천무결은 피식 웃으며 전신에 공력을 끌어 올렸다. 그 순간 누군가가 잡아 비튼 것처럼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묵빛의 아지랑이가 천무결의 몸 위로 도도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 기세가 천하에서 가장 패도적이라고 알려진 역천신공과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천무결이 익힌 무공은 역천신공의 뿌리가 된 무공이었기에.
“하하, 하하하하! 과연! 역천신공에 못지않은 진미로군! 오늘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날이다! 천하에 누가 이 두 신공을 동시에 경험해 볼 수 있단 말인가!”
“실컷 즐겨. 네 인생의 마지막 만찬이 될 테니.”
꽈아아아아앙!
거대한 기파와 기파가 충돌하는 것을 시작으로, 천무학관주의 신형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간신히 천무결의 공격을 받아 낸 그가 간절히 애원하듯 물었다.
“네 입으로 직접 말해다오! 이 무공이 진정 내가 떠올린 그것인지……!”
“천마신공.”
천무결의 나직한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진량뿐이었다.
으하하하하하하-!
뒤얽힌 둘의 모습이 아득한 웃음소리를 남기며 순식간에 전장에서 멀어졌다.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시작하자꾸나.]창룡신검의 지친 듯한 목소리에 사도들, 청룡오망, 그리고 백무흔이 일렁이는 검흔 앞에 섰다.
“검을 주면 내가 하지.”
백무흔의 몸 상태를 살핀 일사도가 창룡신검을 달라고 했지만, 백무흔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길은 내가 열 것이오.”
후우-
백무흔은 깊게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몸 상태를 스스로 점검했다.
청룡오망과 함께 이곳까지 달려오느라 공력은 거의 바닥났고, 전신에 새겨진 상처에선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뒤늦게 그 상처들을 발견한 청룡오망의 표정이 굳었다.
“학생주임 선생님…….”
“괜찮으세요?”
“피가 너무 많이 나잖아요!”
청룡오망이 놀라운 합격진을 보여 주며 적진을 돌파하는 동안, 백무흔은 묵묵히 그 곁에서 학생들의 빈틈을 지켰다.
사도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청룡오망이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지켜 준 이가 그였다.
“너희들이 속 썩인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업보를 과하게 치르는 것 같긴 하다만…….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린 백무흔이 창룡신검에게 물었다.
“신녀님. 이 검흔. 달려오면서 봤던 것보다 단순해 보이지 않습니다만.”
[심상 세계는 그것을 만들어 낸 주인에게 허락을 받거나, 인연이 깊게 닿은 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일세. 틈을 여는 것에만도 엄청난 심력과 기운이 소모될 게야.]창룡신검은 그들의 눈앞에서 일렁이는 투명한 검흔 너머에서, 백수룡이 스스로 자신의 심상 세계를 닫아걸고 있다고 전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말에 백무흔의 표정이 굳었다.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마음속으로 수룡이를 강하게 생각하면서 저 검흔을 따라 그대로 궤적을 그리면 되네. 내가 술법으로 보조할 터이니, 기운을 모을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게나.]“……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백무흔은 눈을 감고 하나뿐인 아들을 떠올렸다.
놀라우리만치 작고 어여쁜 생명으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하루하루를 노심초사하며 키웠던 어린 시절.
무공을 익히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해 무모한 시도를 반복하던 날들.
그리고 하루아침에 달라져서 아버지 품을 벗어나던 순간과.
청룡학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즐거워하던 아들의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떠올렸다.
‘약빙. 우리 둘을 닮아서 속을 썩이기로는 천하제일인 아들놈이 이젠 멋대로 나를 떠나려고 하는 모양이오.’
우웅-!
그 순간 흰빛이 창룡신검을 흐릿하게 감쌌다. 현천신녀가 진언을 읊으며 술법의 기운을 북돋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빛은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희미했다.
[술법의 기운이…….]현천신녀의 힘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고된 전투를 연이어 치렀다. 천하의 삿된 기운을 모두 끌어다 놓은 듯한 윤회연옥진 안에서 기운이 소진된 탓에, 힘을 끌어내는 것이 벅찬 상태였다.
그 순간.
캬앗!
백무흔의 어깨 위에 훌쩍 올라탄 은호가 백무흔의 뺨에 힘껏 얼굴을 비비자, 신령스러운 기운이 그를 타고 창룡신검에 깃들었다.
우우우우웅-!
희미해지던 술법의 기운이 단숨에 증폭되며 창룡신검이 찬란한 빛에 휩싸였다.
[……준비가 끝났네.]캬앗…….
“고맙구나.”
백무흔은 해롱거리는 은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사도들과 청룡오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췄다.
무인에게는 천륜만큼이나 중요한 무공으로 백수룡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었다.
“부탁하오. 부탁하마.”
짧게 말을 마친 백무흔이 하나뿐인 아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염려가 깃든 일검을 허공의 검흔을 따라 내리그었다.
“……약빙. 와 주었구려.”
백무흔은 자신의 손등 위로 겹쳐지는 따뜻한 온기에,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사아아악-
허공에 그어진 일검을 따라 균열이 일어났다. 일렁이는 검흔이 쩌억 벌어지고, 사도들과 청룡오망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까지 한순간이었다.
털썩.
모든 기운과 심력을 한 번에 쏟아 낸 백무흔은 심상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는 검을 내리긋는 것과 동시에 의식을 잃었다.
창룡신검과 은호도 백무흔과 함께 바깥에 그대로 남았다.
[……하늘이 열리면 시간과 공간의 구분이 무의해지고, 이제껏 알던 세상의 법칙이 어긋나리니…….]개벽에 대한 불길한 예언과도 같았던 말을 중얼거린 창룡신검이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그대들도 와 있었구려.]그녀는 심상 세계의 공간이 열린 순간, 청룡오망의 뒤에서 함께 걸어가던 네 명의 영혼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