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61
외전 2화. 나는 백수룡이다
청룡오망은 곧바로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고 ‘거상웅 유급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일단 생기부를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야. 거기에 지난 사 년간의 행실이 낱낱이 적혀 있을 테니까.”
헌원강은 이 분야에 있어서 누구보다 전문가에 가까웠다.
과거 숱하게 사건사고를 일으키며 생기부를 화려하게 장식해 퇴학까지 당할 뻔했던 전직 망나니답게, 신뢰도 높은 발언을 이어 나갔다.
“거상웅이 일으킨 사건사고 기록, 피해자와 합의한 내용, 강사들의 평가가 적혀 있지. 빈틈은 분명 거기에 있다.”
“과연…….”
“청룡학관 망나니계의 최고 권위자…….”
“선배가 처음으로 똑똑해 보여요!”
턱을 쓰다듬으며 진지하게 말을 이어 나가는 헌원강의 모습에, 평소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알던 후배들도 이번만큼은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훗- 하고 콧대가 높아진 헌원강이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올해 청룡학관에 일이 많았잖아? 선생님들이 생기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아. 아니면 좋게좋게 눈감아 주려고 하거나. 그리고 어쩌면…….”
“어쩌면?”
헌원강이 잠시 말이 없자, 궁금증이 생긴 후배들이 빨리 말하라며 표정으로 압박했다.
그러자 헌원강이 다소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금룡상단의 입김이 들어갔을 수도 있지.”
“설마 그렇게까지?”
“그건 좀 비약 같은데…….”
거상웅은 천하 십대상단인 금룡상단의 아들이었다. 즉, 청룡학관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헌원강은 순진한 소리를 하는 후배들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너희들. 선배를 유급시킬 생각이면서 진실을 파헤칠 각오조차 안 했나?”
“…….”
“…….”
“…….”
“강호는 비정한 곳이다. 인간적으로 거상웅은 좋은 선배지만…… 집안에 돈이 너무 많아. 그리고 돈으로는 대부분의 문제를 덮을 수 있지.”
그냥 부자라서 질투하는 것 같은데…….
헌원강은 후배들의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척 한 귀로 흘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상웅 선배가 기물파손으로 사고 친 게 한두 번인 줄 알아? 그걸 다 돈으로 막았다고. 객잔이 박살 나면 객잔 주인들은 더 좋아했다니까? 왜인 줄 알아? 객잔이 부서지면 금룡상단에서 몇 배로 보상해 줬거든!”
부러워서 저러는 거 맞네…….
억울하다는 듯 분통을 터트리는 헌원강의 치졸한 모습에, 후배들은 그럼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정에 이끌려서 졸업장을 쥐여 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집안에 돈이 많아서 졸업장을 준다? 더더욱 안 될 일이지! 그러니까 거상웅은 졸업할 자격이 없어.”
“오오…….”
“그, 그런가…….”
삐뚤어진 심성을 지닌 한 명의 후배에 의해, 거상웅에 대한 소문이 부풀려지고 왜곡과 음해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때.
“적당히 좀 해라.”
“끄억!”
결국 등짝을 한 대 얻어맞은 헌원강이 몸을 배배 꼬며 고통스러워하자, 그를 옆으로 밀어낸 여민이 한숨을 내쉬며 후배들에게 말했다.
“원강 선배가 말하는 거 너무 진지하게 듣진 마. 반쯤은 너희 놀리려고 하는 장난이니까.”
“……음. 당연하지.”
“저, 저희도 바보는 아니라구요.”
정말로 바보가 아닌지 의심스럽긴 했지만, 여민은 굳이 후배들의 순수함을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아무튼 생기부를 먼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이거지? 하지만 그거 본인이나 가족 아니면 안 보여 줄걸?”
그러자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힌 헌원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 방법이 있으니까 그건 나한테 맡겨. 위지천. 너 지금 나랑 학관 좀 다녀오자.”
“저요?”
“용봉비무 결승 진출에 빛나는 두 후기지수가 부탁하는데 대체 누가 거절하겠어?”
근거 없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헌원강의 모습이 조금 불안했지만, 별달리 다른 방법도 없었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아까 말한 대로 소문을 좀 캐 볼게. 뭔가 건질 만한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수혁이 넌 나랑 같이 가자.”
“지금 바로 말이우?”
여민은 지난 1년간 더 크고 우람해진 야수혁을 잠시 바라보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일단 축골공(縮骨功)으로 덩치 좀 줄여. 나도 가발 쓰고 변장하고 올 테니까.”
“……몰래 다녀오자고?”
“그럼 상웅 선배 뒤 캔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려고?”
원래도 한 명 한 명 개성이 강한 청룡오망이지만, 이제는 도시에서 그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백룡장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시선이 쏠릴 터였다.
야수혁이 못마땅한 기색으로 투덜거렸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원강 선배 정도로 비리비리하게 줄이면 되나?”
“나도 크거든 이 자식아!”
결국 청룡오망은 둘씩 나뉘어서 움직이기로 했다.
헌원강과 위지천이 청룡학관에 가서 거상웅의 생활기록부를 확인하고.
변장을 완료한 여민과 야수혁은 거상웅이 과거 망나니짓을 했던 객잔 등을 조사해 보기로 했다.
후배들을 둘러본 헌원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았어. 그럼 상웅 선배가 돌아오기 전에 다시 모이자.”
그러곤 가장 신이 나 보이는 얼굴로 누구보다 앞장섰다.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절대로 올해에는 졸업 못 할 테니 그렇게 알아 두라고. 후후후…….”
그러나 헌원강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이거 내년에도 똑같이 써먹을 수 있겠는데?’
‘어떻게 저렇게 단순하지?’
‘다음은 자기 차례라는 걸 모르는 것 같은데…….’
뒤에서 조용히 시선을 교환하는 후배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다.
* * *
청룡오망의 ‘거상웅 유급시키기 대작전’은 시작부터 커다란 난관에 직면했다.
“불가(不可).”
단호한 한마디에 헌원강의 표정이 당혹스러움으로 일그러졌다.
처음의 계획은 분명 이렇지 않았다.
‘천무제의 꽃인 용봉비무 결승에 빛나는 헌원강과 위지천이 와서 부탁하는데. 누구든 안 들어주고 배겨?’
그런 생각으로 호기롭게 학관을 찾아온 것이 사실이었다.
두 사람이 천무제에서 활약한 공을 생각하면, 사소한 부탁쯤이야 쉽게 들어줄 거라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생활기록부를 관리하는 선생님이 이 사람이란 말인가.
“저, 남궁수 선생님…….”
혈교의 마인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던 헌원강이지만, 그조차 과연 여기가 누울 자리인지 아닌지 살피게 만드는 강적.
“헌원강 학생. 아직 할 말이 남았나?”
벼락을 담은 금안이 헌원강을 물끄러미 올려보았다.
남궁수의 책상에는 엄청난 양의 서류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한쪽에는 뇌굉이 비스듬히 기대어져 있었다.
꿀꺽…….
헌원강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어떡하지?’
상대는 청룡학관에서 자신의 스승과 함께 첫 번째를 다투는 일 중독자이자, 헌원강이 아는 한에서는 아주 꽉 막힌 원칙주의자였다.
쿡쿡.
소심한 위지천은 그냥 돌아가자며 헌원강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줬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큰소리치고 여기까지 온 이상, 헌원강은 아무것도 못 해 보고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생각해라 헌원강. 이 상황에서 그 인간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이럴 때 믿을 구석은 역시 스승밖에 없었다.
헌원강은 만약 백수룡이라면 지금 상황을 어떻게 타개했을지 상상하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나는 백수룡이다. 나는 백수룡이다. 나는 백수룡이다…….’
헌원강의 표정이 점차 야비하게 변하며 두 손바닥을 하나로 모았다.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는 남궁수의 눈썹이 꿈틀댔다.
“하하. 아시다시피 저희 청룡오망이 매우 막역한 사이 아닙니까. 그래서 생활기록부를 본인 대신 확인해 주기로 했습니다. 남궁수 선생님 일하시는 데 방해되지 않게 금방 필사본을 만들어서 가져가겠습니다.”
“…….”
그것은 어딘가 해석이 많이 잘못된 백수룡이었다. 뻔뻔함 외에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헌원강이 위지천의 어깨에 친근하게 팔을 두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희 둘이 용봉비무 결승 동반 진출이라는 청룡학관 역사에 전무후무한 순간을 함께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저희를 믿어 주시면…….”
쿵.
손가락 하나로 가볍게 책상을 치는 소리였지만, 헌원강의 말을 끊기에는 충분했다.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넵.”
역시 친분 과시나 사탕발림, 성과를 자랑하는 것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잠시 서류에서 손을 뗀 남궁수가 두 소년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학생의 생활기록부는 본인 혹은 직계 가족, 무림맹 혹은 관아에서 사건과 관련해 협조를 요청했을 시에만 확인할 수 있다. 자네들이 이 중 하나에 해당되나?”
“그건 아니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겠는지 헌원강이 말을 늘일 때였다.
좌불안석으로 헌원강 옆에 서 있던 위지천이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헌원강과 상의도 하지 않고 내질렀다.
“배, 백수룡 선생님 심부름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백수룡이 시켰다?”
남궁수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변했지만, 두 소년은 아직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학생주임 선생님, 관주님과 고향에 가 있는 것 아니었나?”
남궁수가 말하는 두 사람은 백무흔과 매극렴이었다.
현재 백수룡은 그들과 함께 짧은 휴가를 받아 고향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
“네! 서찰로 연락해 주셨어요! 상웅 선배 생활기록부에서 확인할 내용이 있는데, 저희한테 필사본을 사무실에 갖다 놓으라고…….”
처음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자 위지천의 입에서 거짓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위지천에게 백수룡이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무인이자 스승이었으며, 그 어떤 문제에서도 해결책이 되는 이름이었다.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에서 정확한 판단이기도 했다.
혈교와의 전쟁이 끝난 지금, 청룡신협은 명실상부한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었으니까.
그 명성 앞에서 주눅 들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너희는 백수룡의 심부름으로 왔다 이건가?”
“네!”
“그, 그렇죠.”
헌원강도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위지천과 다른 진술을 했다간, 저기 놓여 있는 뇌굉이 얼마나 단단한지 오늘 알게 될 테니까.
‘그래도 천무제에선 둘이 꽤 친해 보였으니까…….’
‘분명히 통할 거야!’
두 소년은 일말의 기대와 희망을 품고 남궁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서서히, 처음으로 남궁수의 무표정한 얼굴에 표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생겼다.
“그렇군.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남궁수가 상황을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헌원강과 위지천의 입가에 숨기지 못한 미소가 피어났다.
두 소년의 노력에 성과가 있었던 것이다. 남궁수의 대답이 조금 전과는 분명하게 바뀌었다.
“절대불가(絶代不可).”
파지직-!
냉랭한 목소리와 함께 남궁수의 눈에서 벼락이 튀었다.
천하제일인과 함께 혈마와 생사결을 벌였던 절세고수가 눈빛을 형형하게 빛내며 축객령을 내렸다.
“용무가 끝났으면 이만 나가 보도록.”
용봉비무 결승에 오른 두 후기지수가 겁먹어 자라목이 된 채로 대답했다.
“……넵.”
“죄송합니다!”
헌원강과 위지천이 허둥지둥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간 후.
피식.
일자로 굳어 있던 남궁수의 입꼬리가 아주 희미한 호선을 그렸다.
“둘 다 스승과 달리 거짓말은 잘 못 하는군.”
짧은 혼잣말 후, 다시 적막해진 사무실에는 종이가 마찰하는 소리만 오랫동안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