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60
외전 1화. 소문 좀 캐 볼까?
“졸업생 연설을 맡기로 했다.”
청룡오망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오히려 말을 꺼낸 거상웅이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반응들이 왜 이렇게 시원찮아? 축하한다거나 부럽다거나 해야 정상 아니냐?”
“……축하드려요!”
아차 싶었는지 위지천이 뒤늦게 축하 인사를 건넸지만, 그 외에는 다들 표정이 복잡미묘했다.
“왜 하필 선배가?”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그거 되게 중요한 행사 아니야? 아무나 막 시켜도 되는 거야?”
되바라진 후배들의 반응에 거상웅이 들고 있던 빗자루를 크게 휘둘렀다.
“이 자식들이……. 내가 해서 불만이냐!”
촤아악!
연무장 한쪽에 쌓여 있던 눈이 넓게 퍼지며 후배들을 덮쳤다. 거상웅이 워낙에 힘이 장사인지라 눈사태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으아악! 갑자기 뭐 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눈 공격에 경공과 눈치가 가장 빠른 여민을 제외한 모두가 그대로 눈을 뒤집어썼다. 특히 제일 앞에 있던 헌원강은 얼굴에 정면으로 눈을 얻어맞고 뒤로 넘어갔다가 벌떡 일어났다.
“젠자앙! 해보자 이거지?”
“오늘 수련은 눈싸움으로 시작인가요?”
“위지천! 너 빗자루 검처럼 쥐지 마!”
새벽 수련을 시작하기 전, 부지런히 일어난 청룡오망은 밤새 쌓인 눈을 치우던 중이었다.
그러나 거상웅의 갑작스러운 졸업생 연설 발언으로 연무장 청소는 중지되었다. 넷은 각자 무기를 들고 슬금슬금 거상웅을 포위했다.
“그, 너희들 잠깐만 진정하고…….”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거상웅이 뒷걸음치며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하려 시도했지만,
“조져!”
헌원강의 외침과 함께 새벽 수련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다 같이 합심해서 거상웅을 집중공격했으나, 나중에는 항상 그렇듯 피아 구분 없는 무차별 난투로 변질되었다.
캬아앗!
마루에 앉아 청룡오망의 싸움을 구경하던 은호도 끼어들었다. 눈발을 흩날리며 싸우는 게 재밌어 보였는지 신난 포효와 함께 뛰어들었는데, 가볍게 휘두르는 작은 앞발에는 절정고수 못지않은 위력이 담겨 있었다.
“야수혁! 쟤 좀 어떻게 해 봐!”
“털뭉치 이 자식, 가만히 좀 있어!”
캬아앗? 캬앗!
“못 알아듣는 척하고 더 날뛰잖아!”
“일단 원강 선배 쪽으로 보내!”
“왜 맨날 난데-!”
동이 트지도 않은 어스름한 새벽녘.
백룡장의 연무장에 때아닌 눈보라가 한바탕 휘몰아쳤다.
계절은 어느덧 제법 추워진 겨울.
청룡오망은 입에서 하얀 김을 뿜어내며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고 부딪쳤다. 소년소녀들의 몸에서 모락모락 피어난 열기가 추위조차 밀어내는 듯했다.
그렇게 다 같이 어울려 새벽 수련을 마친 후.
“후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거상웅이 하얀 김을 뿜어내며 말하자, 비슷한 몰골을 한 후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만 더 놀고 싶다는 듯 꼬리를 흔들며 지친 소년소녀들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내 흥미를 잃고는 폴짝 뛰어서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나저나 시간 진짜 빠르네. 벌써 졸업식이라니…….”
헌원강이 무복에 묻은 눈을 툭툭 털어 내며 지나가듯 말했다.
혈교와의 전쟁이 끝난 후, 청룡학관으로 돌아온 모두가 바쁜 시간을 보냈다.
워낙에 크고 흉험한 싸움을 겪었던 터라, 학생들 중 원하는 이들은 곧바로 가문이나 문파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청룡오망은 전원 백룡장으로 돌아왔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그들의 가족들도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위지천이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졸업식이 끝나면 바로 겨울 방학이네요.”
방학이 끝나면, 신학기가 시작되고 청룡학관에 신입생들이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사 학년 학생들은 더 이상 청룡학관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
후배들의 시선이 다시 한번 거상웅을 향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의미가 담긴 시선이었다.
“그하하! 이것도 예년에 비하면 밀린 거지. 원래 학사 일정대로 됐으면 진작에 졸업식 끝내고 느긋하게 방학을 즐기고 있었어야 하는데…….”
괜히 멋쩍어진 거상웅이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선배. 근데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음?”
헌원강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 학년에 방백현 선배도 있는데 왜 선배가 졸업생 대표야?”
“그 녀석은 무림맹에서 바쁘지 않냐. 어쩌면 졸업식에도 참석 못 할 수 있다고 하더라.”
본래 올해의 졸업생 대표는 방백현이 확정적이었으나, 혈교와의 싸움 이후 뒤처리로 무림맹 전체가 정신없이 바쁜 와중이라 졸업 연설을 다른 학생에게 양보한 상황이었다.
“목형우 선배님은요? 성적도 엄청 좋으실 텐데…….”
이번에는 위지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거상웅이 조금 찜찜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형우 형님도 황궁으로 바로 불려 갔다고 들었다. 잘하면 졸업식에는 참석할 수 있을 거라더라. 근데 왜 자꾸…….”
“그 밖에도 훌륭한 사 학년 선배들이 많지 않수?”
헌원강, 위지천, 야수혁까지 한 명 한 명이 꼬투리를 잡자 성격이 어지간히 무던한 거상웅도 결국 폭발했다.
“이 자식들이 진짜! 내가 졸업생 연설을 하겠다는데 너희가 왜 불만이야?”
“아니 뭐 불만이라기보다는…….”
“사 학년 중에 가장 망나니였던 선배가 졸업생 연설을 맡는다고 하니깐 그렇지.”
“하하. 아무래도 좀 놀랍긴 하죠.”
차례대로 야수혁, 헌원강, 위지천의 반응이었다.
“건실한 선배들은 벌써 다 취업을 해서, 남는 사 학년이 상웅 선배밖에 없었던 것 아냐?”
“민이 너까지…….”
마지막으로 여민의 촌철살인까지. 백룡장의 유일한 사 학년은 하늘을 올려보며 크게 탄식했다.
“청룡학관의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가 땅에 떨어졌구나! 지금도 이런 놈들이 훗날 강호에 나가면 어찌 될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거상웅은 하나같이 삐딱한 표정인 후배들을 둘러보며 히죽 웃었다.
“하여간 그만들 툴툴대고 밥이나 먹자. 오늘은 나랑 원강이가 아침 당번이지?”
“오늘은 졸업 연설을 맡은 기념으로 선배가 다 해.”
“자식.”
거상웅은 툴툴거리는 헌원강의 머리를 자신의 우람한 팔로 휘감아 겨드랑이에 끼웠다.
“오늘따라 안 어울리게 찡찡대긴. 내가 졸업한다니까 섭섭하기는 한가 보다?”
“컥! 이, 이거 안 놔?!”
“그게 아니면 부러워서 그러냐?”
“부럽기는……. 용봉비무 결승까지 올라간 내가 졸업생 연설을 안 하면 누가 하겠어? 내년에는 내 차례거든!”
“그하하하! 독고준이 잘도 양보하겠다!”
두 소년은 티격태격하며 함께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잠시 후, 청룡오망은 평소처럼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자리에 없는 사람은 백수룡뿐이었다.
입에 젓가락을 문 위지천이 백룡장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은 언제쯤 오실까요?”
“졸업식 전까지는 돌아오겠다고 하셨으니까 곧 오시겠지.”
“고향에 다녀온다고 했잖아. 그만큼 부상을 입었는데 말도 안 되게 빨리 오는 거지. 그 인간이니까 가능한 거라고.”
“위지천 너는 선생님이 그렇게 좋냐?”
“안 계시니까 허전해서…….”
연무장에 쌓였던 눈은 새벽 수련으로 대부분 녹아내렸다.
청룡오망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밥을 먹었다.
아침 식사 이후에는 운기조식 수련이었다.
둘이나 셋씩 나눠서 돌아가며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하고, 나머지는 호법을 서면서 초식 연습을 한다.
그런데 오늘은 식사가 끝나자마자 거상웅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는 좀 나갔다 오마.”
“어디 가게?”
“학생회에서 일손이 부족하대서 졸업식 준비를 도와주기로 했거든. 겸사겸사 졸업생 연설 준비도 하고. 그러니 오늘은 너희끼리 수련하고 있어라.”
씨익 웃은 거상웅은 후배들의 머리를 한 번씩 헝클어뜨려 준 후 백룡장을 나섰다.
“……어, 다녀와.”
“다녀오세요…….”
“거참…….”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서 백룡장을 벗어나는 거상웅의 뒷모습을, 후배들은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상웅 선배가 졸업이라니……. 아쉬워요.”
거상웅의 기척이 완전히 멀어진 후, 위지천이 먼저 말을 꺼냈다.
“뭐, 이렇게 한 명씩 졸업해서 떠나겠지.”
작게 중얼거린 여민의 시선은 헌원강을 아주 잠깐 힐긋거렸고.
“졸업하면 청룡오망이 아니라 청룡사망이 되는 건가? 그건 좀 이상한데…….”
야수혁은 굵은 손가락으로 은호의 등을 벅벅 긁어 주며 실없는 소리를 했다.
“…….”
그러나 헌원강은 팔짱을 낀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평소 보기 힘든 생각에 깊이 잠긴 모습에, 후배들이 ‘또 왜 저래?’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해가 안 돼.”
헌원강이 비로소 입을 열자 후배들의 표정에 경계심이 더 강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여민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뭐가 이해가 안 되는데?”
“저 망나니 선배가 멀쩡하게 졸업이 가능할 리 없는데…….”
헌원강 본인만큼은 아니지만, 과거 거상웅의 망나니짓은 청룡학관에서 꽤나 유명했다.
초일의 절혼마장에 당해 폐인이 된 이후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방백현과 함께 청룡쌍절이라 불릴 때도 곧잘 사고를 치던 인간이었으니까. 한 학년 후배인 헌원강은 그 시절의 일화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망나니가 졸업생 연설을 한다고? 벌점이 간당간당해서 제발 졸업시켜 달라고 비는 게 아니라?”
“……원강 선배. 혹시 누워서 침 뱉기라는 말 알아?”
“벌써부터 내년 걱정하는 거야 뭐야?”
후배들의 진심 어린 충고를 한 귀로 흘리며, 헌원강은 자신의 추리를 이어 나갔다.
“지금 전후 처리로 다들 정신없는 상황이라 이거야. 학관은 비상사태지, 선생님들도 다들 바쁘지, 그리고 상웅 선배도 나름대로 전쟁에 참여해서 코딱지만 한 공도 세웠으니까……. 벌점이 상쇄된 거야. 하지만 과연 졸업하기에 적당한 수준일까? 혼란한 틈을 타서 어영부영 졸업하려는 건 아니고?”
“원강 선배 눈이 살짝 돌았는데요?”
“왜 묘하게 논리적인데…….”
후배들이 헌원강에게서 살짝 거리를 벌리며 물러났다.
그러나 헌원강은 더욱더 눈에 확신을 담아 후배들을 바라봤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이거야. 졸업 결격 사유가 있는데 얼렁뚱땅 졸업하게 둘 수는 없잖아. 천무제 우승에 빛나는 천하제일 청룡학관이 그래도 돼?”
뻔뻔한 논리를 펼치는 헌원강의 입가에 서서히 비열한 미소가 맺혔다. 완전히 뒷골목 파락호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상웅 선배가 졸업을 못 하게 방해하자는 거야?”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
헌원강의 입가에 맺힌 비열한 미소가 더 짙어졌다. 그러곤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는 느물거리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가 정말 청룡학관을 졸업할 자격이 있는지, 면밀하게 확인해 보자 이거지.”
“……미친 거 아냐?”
여민은 말도 안 되는 계획이라고 생각해 반대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그녀의 양옆에서 음음- 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인간들이 있었다.
“저도…… 상웅 선배가 백룡장에서 조금 더 같이 있으면 좋겠어요.”
“뭐, 나도 저 인간 없으면 주먹 부딪칠 사람이 없어서 심심하기도 하고.”
위지천과 야수혁까지 동조하고 나섰다. 이미 대세는 넘어간 상황. 셋이서 똑같은 눈빛으로 여민을 압박했다.
“하아. 이 바보들을 어쩌면 좋지…….”
그러나 여민도 결국 청룡오망의 일원이었다. 다 같이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못 이기는 척 조용히 의견을 냈다.
“……무희로 일할 때 알게 된 친구들이 있는데, 상웅 선배 관련해서 소문 좀 캐 볼까?”
할 거면 확실하게 해야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표정은 빙공의 고수답게 무척 서늘했다.
그렇게 하나의 대의(大義)로 뭉친 후배들을 둘러본 헌원강이 큭큭 웃으며 말했다.
“좋아. 거상웅을 유급시키자.”
졸업을 앞둔 선배를 유급시키겠다는 음모를 꾸미는 소년소녀들의 표정은, 그들의 스승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