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7
6화. 뭔가 이상해진무관 사건이 있고 며칠이 지났다.
“힘들어…….”
“마보 싫어…….”
“힝. 엄마 보고 싶어…….”
백무관 소연무장.
땡볕 아래 코흘리개들이 마보를 취한 채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분명 시선은 정면을 유지하라고 일렀거늘, 몇 녀석이 힐끔힐끔 이쪽을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사부니임. 다리 아파요…….”
“쉬고 싶어요…….”
“……야. 사부님 자는데?”
“몰래 도망칠까?”
마보 좀 했다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놈.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요령 부리려는 놈.
벌써부터 싹수가 노란, 도망칠 생각을 하는 놈까지.
나는 평상에 비스듬히 누워 눈을 반개한 채(사실 잠이 덜 깬 상태였다) 코흘리개들이 마보를 하는 걸 지켜보는 중이었다.
“사부 안 잔다.”
““히익!””
내 한마디에 코흘리개들이 허벅지에 다시 힘을 바짝 주고 자세를 낮췄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몸을 뒤집어 반대로 누웠다.
따끔따끔.
등 뒤에서 새총처럼 따가운 원망의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바람은 선선하고 햇볕은 따뜻한 오후.
거 낮잠 자기 정말 좋은 날씨네…….
“흐아암-.”
며칠 전만 같았어도 저 코흘리개 중 하나가 진작 아버지한테 쪼르르 달려가 일러바치고도 남았을 상황.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너희들! 이것도 못 참아? 그래서 고수가 될 수 있겠어?”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목점 장 씨네 둘째 아들, 장이의 목소리였다.
며칠 전 진무관에서 형의 복수를 대신 해 준 후로, 날 보는 장이의 눈빛이 이전과는 아주 딴판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길! 몸을 움직이는 모든 동작의 기본은 하체에 중심이 잘 잡혀 있어야 나올 수 있다고 하셨어!”
아암, 내가 그리 가르쳤지.
내가 가르치는 코흘리개 반의 대장이기도 한 장이가 나를 대신해 반의 기강을 잡았다.
“하체를 단련하는 마보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야!”
저 녀석이 얼마 전에 마보하기 싫다고 자기 아버지한테 꼰지른 녀석인데.
뭐, 사소한 과거는 묻기로 하자.
“하지만 계속 마보만 하니까 재미없고 힘든걸…….”
다른 코흘리개 중 하나가 찡찡대자, 장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바보야! 힘들다고 피하면 평생 고수가 될 수 없어! 그러니까 힘들어도 참아!”
옳거니, 그 말이 맞다.
고수가 되고 싶으면 마보 두 시진 정도는 기본으로 할 줄 알아야지.
나 때는 말이야, 뒷간 갈 때도 마보 자세로 엉거주춤하게 걸어 다녔거늘.
그때 또 다른 불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사부님이 정말 그렇게 세? 솔직히 약해 보이는데…….”
“엄청 세! 사부님이 사파 악당을 단칼에 날려 버렸다니까!”
정확히는 내 아버지가 날려 버렸지만, 그전에 내가 다 이겨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장이의 내 찬양은 계속됐다.
“사부님은 사실 엄청난 고수야. 한 번 손을 휘두르면 장풍이 파바박 나가고! 발을 구르면 땅이 콰콰쾅! 터져 나가고…….”
아니, 그건 좀 과장이 심한데…….
귀찮아서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장이의 허풍이 점점 심해졌다.
주변 코흘리개들이 흥미진진하게 듣자 더 흥이 나는 모양이다.
“사부님은 주먹 한 방에 바위도 쪼갤 수 있고!”
쪼개지는 건 이 하얗고 고운 주먹일걸.
“그리고 사부님은 하늘도 날아!”
아직 변변한 내공이 없어서 경공도 못 펼친다 이놈아.
“또 사부님은…… 아마도 은둔한 천하제일 고수일 거야!”
“정말? 정말이야?”
“우와아!”
저 코흘리개가 허위 과대광고가 얼마나 무서운 줄도 모르고…….
옆 마을 진무관도 사파 무공으로 사기 치다가 훅 갔거늘.
“응! 그러니까 조금만 참으면 사부님이 우리한테 절세신공을 가르쳐 줄 거야!”
……어쩌다 하나는 맞췄군.
내 머릿속에는 절세신공이 다섯 개나 들어 있다.
물론 저 코흘리개들에게 그걸 가르칠 생각은 없다.
나 혼자 익힐 거다.
훗날 기회가 된다면 네 사람의 유언에 따라 전인을 찾아 줄 수도 있지만…….
‘인연이 닿으면 좋고, 아니면 마는 거지.’
딱히 그러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니,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또 사부님은……!”
장이가 나를 피비린내 나는 무림에 염증을 느끼고 수백 년 전 은거한 고금제일고수로 둔갑시키기 전에, 나는 평상에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
“수련 중에 왜 이리 시끄러워?”
내 한마디에 코흘리개들이 입을 “흡!” 하고 다물며 허벅지에 힘을 바짝 주었다.
방금까지 천하제일 사부님에 대한 장이의 허풍을 들어서인지 다들 기가 바짝 들었다.
피식.
내 눈치를 보는 코흘리개들이 가당찮아서 웃음이 나왔다.
옛날 같았으면 이 상황을 이용해 더욱 혹독한 훈련을 시켰겠지만,
‘여긴 혈교가 아니지. 나 또한 혈교의 교관이 아니고.’
이 아이들은 무공을 못 한다고 매를 맞거나 굶지 않는다.
나 또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도태되지 않는다.
여긴 강호의 피비린내와는 상관없는,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 마을이니까.
‘그래도 마보는 꾸준히 시켜야지. 체력 단련에 이만한 훈련이 없으니.’
천음절맥을 치료할 거금을 벌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이곳에서 몸을 단련하며 코흘리개들이나 괴롭힐 생각이다.
‘대체 뭘 해서 그 많은 돈을 구해야 하나……. 장사는 해 본 적도 없고, 무공 말고는 아는 것도 없는데.’
머릿속에 있는 절세신공을 판다?
팔 생각도 없지만, 만약 그랬다간 당장에 목숨이 간당간당해질 것이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장이가 내게 쪼르르 달려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사부님! 수제자 장이, 여기 대령했습니다! 하명하십시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무릎을 꿇고 어설프게 포권을 따라했다.
어림도 없다.
어디 밤톨만 한 코흘리개가 내 수제자 자리를 노려?
“손 반대로 했다.”
“아앗!”
나는 허둥지둥 손을 반대로 하는 장이의 머리를 꽁 쥐어박으며 평상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코흘리개들에게 말했다.
“반 각 동안 휴식.”
“우와!”
“좋아할 것 없다. 그다음에는…….”
“미안하지만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해야겠구나.”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가 꽤 심경이 복잡해 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아버지가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무림맹에서 사람이 왔다.”
* * *
무림맹.
정파 무림의 최대 연합이자 구심점으로 호북에 본부를 두고 있다.
하지만 중원은 드넓고 정파에 속한 문파만 해도 수백 수천이 넘어가니, 본부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무림맹은 지역마다 지부를 두고 운영한다.
지금 우리 앞에 서서 포권을 취하는 중년의 사내, 그리고 그 뒤에 도열한 무인들은 무림맹 강서 지부 소속이었다.
“무림맹 강서 지부 조사단 제2단주 고주열입니다.”
쉰 가까이 되어 보이는 고주열은 서글서글한 게 꼭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다.
몸이 마르고 팔다리, 특히 다리가 학처럼 길었다.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고, 신발도 보통 사람들이 신는 것과는 달랐다. 신발 앞쪽이 더 많이 닳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경공이나 퇴법의 고수겠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사내에게 마주 포권을 취했다.
“비응객 대협이시군요.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여기 오기 전부터 굳어 있던 아버지는 표정은, 고주열과 마주하자 조금 더 딱딱해졌다.
마치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를 만난 것처럼.
아버지가 자신을 알아보자 사내의 웃는 얼굴에 더 흐뭇한 웃음이 피었다.
“하하. 강호의 동도들이 너무 과분한 별호를 붙여 줘서 얼굴이 간지럽습니다.”
‘비응객(飛鷹客)이라……. 역시 경공의 고수였군.’
아버지는 시종일관 공손한 태도로 고주열을 대했다.
“백무관에서 무공을 가르치는 백모입니다. 부끄럽게도 가진 무공이 워낙 변변치 않아 별호는 없습니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그에게 인사했다.
“백수룡입니다. 옆에 계신 분의 아들로, 마찬가지로 배운 무공이 변변찮아서 별호가 없습니다.”
비슷하게 인사를 했는데 어째선지 아버지가 날 째려본다.
아니, 그럼 뭐라고 소개해?
“두 분 겸손이 과하십니다. 간악한 사파의 음모를 알아내고 직접 물리치기까지 하신 분들 아닙니까. 월봉이나 축내는 저희보다 훨씬 나으십니다.”
“얼굴에 금칠을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고주열은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 주려고 하는 말이겠지만, 실제로 고주열보다 아버지의 무공 수위가 더 높았다.
물론 그걸 정확히 아는 건 나뿐이겠지만.
“저, 그런데…….”
고주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혹시 예전에 저와 뵌 적이 있으십니까?”
“……글쎄요. 제가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 아마 없는 것 같습니다.”
이거 봐라?
이 양반 이거, 시선을 슬쩍 피하는 거 보니 왠지 수상한데.
아까부터 표정이 굳은 것도 그렇고.
아버지는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안으로 드셔서 이야기 나누시지요. 작은 무관이지만 차 정도는 대접할 수 있습니다.”
“하하. 냉수만 주셔도 감사합니다. 마침 먼 길을 달려온 터라.”
“관주실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얻어 마시겠습니다. 나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갈 터이니, 너희는 창고로 가서 마두들을 확보해라.”
“예!”
조사단은 사파 놈들을 가둬 둔 창고로 향했고, 아버지와 고주열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관주실로 향했다.
나는 한 걸음 뒤에서 그들을 따라갔다.
습관적으로 고주열을 관찰하면서.
“흠흠.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버지와 마주 앉은 고주열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무림맹을 대표해 백무관에 감사드립니다. 백무관주님과 아드님이 아니었다면, 이 고을에 간악한 사파의 세력이 뿌리내려 백성들이 큰 고초를 겪을 뻔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혈교 출신인 나는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주고받는 정파 무림인들의 모습에 피부가 다 간지러웠다.
잠시 잡다한 대화가 오간 후 아버지가 물었다.
“헌데 진무관에서 사로잡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우선 강서 지부로 연행한 뒤 심문을 해서 배후 세력을 밝혀내야겠지요.”
심문?
‘고문을 잘못 말한 거겠지.’
무림맹의 고문이 악독하기로는 혈교 못지않았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예전에 한번 포로를 교환할 때 돌아온 동료들에게 듣기로는…….
“크흠. 사실 이건 외부에는 유출해선 안 되는 기밀입니다만.”
갑자기 고주열이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딴생각을 멈추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고주열은 우리 부자의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자들, 어쩌면 혈교의 끄나풀일지도 모릅니다.”
“혈교요?”
“…….”
나는 간신히 동요하지 않고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만약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거나 눈을 부릅떴으면, 고주열이 나를 꽤나 이상하게 봤을 테니까.
‘여기서 혈교가 왜 나와?’
나만큼 놀라지는 않았겠지만 비슷한 의문이 들었는지, 아버지가 나를 대신해 물었다.
“혈교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내 말이!
고주열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의 눈빛이 스산한 빛이 비쳤다.
“맞습니다. 수십 년 전, 혈교는 저희가 알지 못하는 내분으로 사분오열됐지요. 맹주께서 그 기회를 노리지 않고 혈교를 공격해 그들의 본거지를 쓸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혈교가 어떻게 망했는지, 나도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이 두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진실도 예상해 볼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내분이라면 아마도…….’
나와 네 명의 절대고수가 죽은 그날.
무림의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혈교는 최악의 혈사를 경험했다.
“최근 혈교의 후예로 추정되는 자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허…….”
“그럼 혈교가 부활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질문을 한 것은 나였다.
찰나의 순간 고주열이 예리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순식간에 다시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거 봐라?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혹 두 분께서는 그자들에게 따로 들으신 것이 있으십니까?”
“글쎄요. 묶어서 창고에 가둬 둔 후로는 가끔 밥만 가져다줬지, 자세히 말을 섞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딱히…….”
우리의 반응에 고주열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여하튼 맹에서도 최근 사파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뭔가 제보할 일이 있으시면 바로 연통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협조해야지요.”
“감사합니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추후 무림맹의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보상이라니요. 그런 것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닌…….”
나는 예상치 못했던 혈교의 이야기에 여러모로 생각이 깊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우리가 수상한 사파 놈들을 잡았다고 해도…… 시골 무관의 무공 사부에게 혈교 이야기를 꺼낸다고?’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버지와 대화 중인 고주열을 관찰했다.
‘뭔가 이상해.’
그렇게 느낀 순간,
고주열의 발끝이 은밀히 움직이는 것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