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8
7화. 일타강사가 뭡니까? 혈교에 관한 정보.
비응객 고주열은 무림맹에서 기밀로 취급될 수 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입이 가벼운 사람인가?’
그렇게 생각해 버리면 편하다.
하지만 무림맹의 조사단 단주쯤 되는 사람이 이렇게 쉽게 정보를 흘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일부러 정보를 흘린 거라면?’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무림.
상대의 말 한마디, 사소한 몸짓, 행동 하나까지 의심해 보고 그 뜻을 헤아려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고주열을 더 자세히 관찰하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우릴 경계하고 있다.’
그는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도록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으며, 시선은 자연스럽게 두는 척하며 방 안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리고 발.’
그는 언제라도 자신의 장기인 경공(혹은 퇴법)을 펼칠 수 있도록 발을 풀어 두고 있었다.
‘어째서 우리를 의심하는 거지?’
생각해 보니 이유야 충분했다.
별호도 없다는 시골 무관의 무공 사부가 사파의 고수를 제압했다.
또한, 직접 보지도 않고 그들이 제자들에게 사파 무공을 가르치는 것을 알아냈으며.
‘무엇보다…….’
아버지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상대도 일류고수쯤 되면 아버지가 상당한 실력의 무인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뭔가 숨기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군.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고주열이 우리에게 혈교 이야기를 꺼낸 건, 우리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것일 확률이 높다.
어쩌면…….
‘우리가 혈교의 끄나풀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나?’
다소 비약일 수도 있지만, 고주열이 우리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툭.
고주열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 웃음이 내겐 꽤 의미심장하게 보였다.
“좋은 차군요.”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평범한 대화 속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
두 사람 다 부드럽게 웃고 있었지만, 고주열의 눈빛은 처음 인사를 나눌 때보다 훨씬 서늘했다.
“백 대협의 목소리. 듣다 보니 점점 익숙한 기분이 드는군요.”
“하하. 워낙 흔한 목소리라 그런가 봅니다.”
“그렇습니까…….”
말만 부드럽지, 취조나 다름없는 질문.
아버지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답을 피했다.
고주열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저희가 정말 구면이 아닙니까?”
“하하. 살면서 어쩌다 스치듯 뵈었을 수도 있지요.”
나는 아버지의 이마에 식은땀이 한 방울 맺힌 것을 보았다.
동시에, 아까 아버지가 보인 복잡한 표정과 한숨을 떠올렸다.
‘무림맹에서 사람이 왔다고 했을 때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어.’
아버지는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그게 뭔지 나로서도 알지 못했기에,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일류고수가 별호를 숨기고 시골에 숨어 살아야 할 만한 과거라면?
‘무림 공적?’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갔다.
일류고수 수준으로 무림 공적이 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뭐, 기껏해야 무림맹에 수배된 잡범 정도겠지.
어쨌든 곤란한 것은 마찬가지다.
“백 대협. 실례지만 사문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씀드려도 잘 모르실 작은 곳입니다.”
“허허.”
“…….”
서서히 방 안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꾸욱.
손바닥에서 살짝 땀이 흐른다.
최악의 경우, 고주열과 싸우게 될 수도 있다.
‘아직 염소수염과 싸운 피로가 덜 회복됐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싸움이 벌어질 경우의 동선과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
상대는 비응객 고주열 한 명이 아니다.
‘저 밖에 있는 조사단 무인들도 상대해야 한다.’
무림맹 강서 지부에서 파견된 조사단 무인들.
그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고주열을 최대한 빨리 제압한다.
그 후 밖으로 뛰쳐나가 조사단을 제압한다.
나는 고개를 숙여 혹시 눈에 드러날지도 모르는 살기를 감췄다.
‘아버지가 정말 무림맹의 수배범이고 이 자리에서 그게 발각된다면…… 한 놈도 살려 둬선 안 된다.’
나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면서 살아왔다.
머릿속에서 증거를 인멸할 방법과 도주 방법, 이후의 계획을 세워 나갈 때였다.
“분명 어디서 본 얼굴인데……. 흐음……. 서, 설마?”
한순간, 고주열의 눈동자가 확 커졌다.
뭔가 기억을 떠올렸는지 그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찰싹 쳤다.
“옳거니!”
나는 몸을 바짝 긴장시켰다. 즉시 최적의 경로로 출수할 수 있도록 엉덩이를 바닥에서 살짝 뗐다.
그러나 내가 예상한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쩐지 낯이 익다 싶더라니!”
모든 의문이 풀렸다는 듯 고주열이 환하게 웃는 게 아닌가.
방금까지 경계했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그의 근육에서 긴장이 풀렸다.
그에 대비해서 점점 어두워지는 아버지의 표정.
결국 아버지가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야?
곧 고주열이 내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마치 고향 친구라도 만난 듯, 그가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누군가 했더니 옥면공자가 아닌가!”
……옥면공자(玉面公子)?
처음 들어 보는 유치찬란한 별호에 옆을 돌아보자, 아버지가 얼굴이 벌겋게 물든 채로 대답했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 * *
두 중년 사내는 술상에 마주 앉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하하하! 이 친구야 이게 얼마만이야!”
“……삼십 년 가까이 되었지요. 설마 형님께서 맹의 조사단으로 오실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대체 아까는 왜 모른 척했나?”
“그렇게 도망치듯 학관을 나와서 지금껏 연락도 않다가…… 먼저 아는 척하는 것도 염치가 없고…….”
“염치는 무슨! 우리가 그런 사이였나! 그렇게 말하면 내가 섭섭하네!”
“예. 죄송합니다.”
아버지가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두 사람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에 너무 여러 가지 정보가 들어와서 정신이 없었다.
‘어쨌든 싸울 일은 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아버지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시 인사드려라. 이분은 나와 청룡학관 입관 동기로, 친형제처럼 막역했던 분이시다.”
“네가 이 친구 아들이구나. 허허! 누가 옥면공자 아들 아니랄까 봐 훤칠하니 잘생겼군!”
“……형님. 저도 나이가 쉰 가까이 됩니다. 그 옛날 별호는 좀…….”
“크하하! 우리 때 청룡학관에서 옥면공자를 모르면 간첩이었지!”
“…….”
고주열이 민망해하는 아버지를 놀리며 껄껄 웃어 댔다.
……어쨌든 다행이다.
나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그에게 다시 인사를 올렸다.
“백수룡입니다.”
“그래그래. 이리와 편하게 앉아라. 내 술 한잔 따라 주마!”
이야기를 들어 보니, 두 사람은 20년도 더 전에 함께 청룡학관에 입관한 동기였다고 한다.
청룡학관은 무림맹이 직접 운영하는 오대 무림 학관 중 하나다.
호북의 천무학관.
섬서의 현무학관.
사천의 백호학관.
호남의 주작학관.
강서의 청룡학관.
오대학관은 정파 무림의 후기지수라면 누구나 입관을 꿈꾸는 곳이라고 했다.
물론 이 다섯 학관에서도 다시 서열이 나뉘는 모양이긴 했지만.
‘나 때는 천무학관 하나였는데. 그 사이에 이것저것 늘었군.’
오랜만에 옛 추억을 떠올리는 고주열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청룡학관에서 네 애비가 얼마나 많은 소저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줄 아느냐? 지금도 잘생겼지만, 그때 오죽 잘생겼으면 별호가 옥면공자였을까!”
“크흠흠! 형님…….”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모습의 아버지는 처음 본다.
하긴, 쉰 가까운 나이에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러운 별호긴 하지.
나는 불쑥 든 생각에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부끄러워서 지금까지 별호가 없었다고 한 거예요?”
“흠흠. 어릴 적에 학관 동기들이 장난삼아 붙인 별호다. 제대로 된 별호가 아니니 없다고 한 거고.”
핑계는.
홍시처럼 붉어진 얼굴로 그렇게 말해 봤자 설득력이 없다.
“참나…….”
긴장이 풀리면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피식 웃자, 아버지가 붉게 익은 얼굴로 술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그렇게 밤이 깊어졌다.
고주열이 데려온 조사단이 사파 녀석들을 무림맹으로 이송했지만, 그는 아직 조사할 게 남았다는 핑계로 이곳에 남았다.
술이 여러 병 비워지고, 두 무인의 자세도 자연스럽게 흐트러졌다.
그때 고주열이 조금 머뭇거리며 물었다.
“헌데…….”
아버지가 아닌 술잔에 담긴 술을 빤히 바라보면서.
“……약빙은 어찌 되었나?”
매약빙.
내 어머니의 이름이다.
아버지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별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결국 그리되었는가. 그래. 몸이 워낙에 약했지.”
“예.”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분위기를 전환할 생각인지, 고주열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아까는 크게 오해했지 뭔가! 분명 아는 얼굴인데 도통 누군지 기억이 나질 않으니, 수배 전단에서 본 놈 중 하나인 줄 알았다니까.”
실제로 고주열은 우리를 제압할 생각까지 했다고 했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그에게 살초를 썼을 텐데.
그리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제가 크게 혼쭐이 날 뻔했군요.”
“하하하! 나야말로 오랜만에 자네 검법의 매운맛을 볼 뻔했지!”
옛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시작된 대화는 점점 주제가 다양해졌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무림인이라고 별다를 것 없었다.
무엇보다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요한 법.
“무관은 돈이 좀 되나? 형편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던데.”
“두 식구가 그럭저럭 먹고살 정도는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빠듯했다.
이런 시골에서 수강료를 많이 받을 수도 없고, 코흘리개들 간식을 챙겨 주면 남는 것도 별로 없었다.
아버지가 가르치는 청년-성인반이 그나마 돈이 된다.
“꼭 이런 데서 무공을 가르쳐야 하나? 자네 실력이면 청룡학관에서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청룡학관’이라는 말에 아버지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가 풀어졌다.
“이곳도 괜찮습니다.”
“이 친구야. 젊을 때와는 달라. 절세무공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굶어야 한다네.”
고 아저씨 말씀이 백번 옳소!
“게다가 요즘은 학관 강사들 몸값도 보통이 아니야. 오대학관 일타강사가 되면 돈을 쓸어 담는다는 이야기도 못 들어 봤나?”
“제가 어디 그만한 실력이 되겠습니까.”
아버지의 겸손에 고주열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옥면공자 실력이 어디 무뎌졌겠나? 게다가 자네 얼굴이면 지금도 여학생들이 줄을 설걸?”
“형님도 참…….”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이야기에 아버지는 그저 난감하게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저, 말씀 중에 죄송한데.”
방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일타강사가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