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9
8화. 입학이 아니라 입사“끄으윽…….”
밤새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신 고주열은 다음 날 오후가 돼서야 깨어났다.
“죽겠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는 그에게, 나는 미리 준비해 둔 꿀물을 두 손으로 공손히 갖다 드렸다.
“백부님. 여기 꿀물 좀 드십시오. 이 고을 양봉업자가 직접 딴 꿀이라 숙취에 아주 그만입니다.”
“오오. 룡아. 고맙구나.”
꿀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고주열의 옆에서, 그보다 더 초췌한 몰골의 아버지가 흐릿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버지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입을 열었다.
“내 꿀물은……?”
“방금 백부님 타 드린 게 마지막인데요? 마침 꿀이 다 떨어졌더라고요.”
“……반으로 나눠서 두 잔을 타 오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에이. 그럼 효과가 떨어지죠. 그럴 바에야 손님께 한잔 제대로 타 드리는 게 낫지. 설마 30년 만에 만난 형님에게 드리는 꿀이 아까우신 건 아니죠?”
“…….”
아버지가 차마 화는 못 내고 가자미눈을 뜬 채로 나를 째려볼 때, 꿀물을 단숨에 비운 고주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크으! 이제야 좀 살겠구나.”
그는 방 안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외투를 주워 입었다.
“끄응. 벌써 해가 중천에 떴군. 더 늦었다간 시말서를 써야 할지도 모르겠어.”
말로는 죽겠다고 엄살을 부리지만, 고주열의 표정은 밝았다.
그깟 시말서, 30년 만에 만난 친우와 밤새 회포를 푼 값이라고 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어젯밤에도 술에 취해 중얼거렸었다.
‘보기 드문 호인이다.’
나는 비응객 고주열을 그렇게 평가했다.
무림맹 강서 지부 조사단주면 결코 낮은 위치가 아니다.
이런 시골에서라면 말 한마디로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들 수 있는 무인.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을 때부터 예의를 갖췄고,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또한 30년 전 일방적으로 인연을 끊고 잠적한 아버지를 만났음에도 저토록 반갑게 대하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정이 많은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내 아버지 백무흔이 크게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볼품없는 시골의 무공 사부일 뿐인데도 말이다.
‘깊게 사귀어 두면 좋을 사람이야.’
“후우. 이제 그만 가 봐야겠군.”
떠날 채비를 마친 고주열이 우리 부자를 돌아보았다.
그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동생. 내 다음엔 좋은 술을 들고 찾아오겠네. 그땐 정말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 보자고.”
“끄응. 저희도 이젠 나이를 생각해야지요.”
“어허! 강서의 유흥가를 주름잡던 옥면공자가 그렇게 약한 소리나 할 텐가?”
“혀, 형님!”
아버지가 눈을 부릅뜨더니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농담이 지나치시잖습니까! 제 아들이 오해할까 봐 무섭습니다!”
“호오? 아버지?”
“내 말이 농담이라고? 천지신명께 맹세코?”
천지신명까지 걸고 나오자 아버지의 표정에 난감한 기색이 어렸다.
……진짜였어?
“크흠. 그래도 약빙과 교제한 이후로는 개과천선해서…….”
“낄낄낄!”
“푸하하!”
고주열과 나는 함께 아버지를 놀리는 데 맛을 들였다.
한참 웃어대던 고주열이 고개를 돌려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룡아. 지난밤에 이야기해 준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느냐?”
지난밤, 나는 그에게 무림맹과 오대학관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30년 전 아버지와 고주열이 함께 수학했다는 청룡학관, 그곳의 학생과 강사들에 대해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강서의 청룡학관.
동쪽 무림의 후기지수들이 모여 교류하고 함께 무예를 갈고 닦아, 미래에 정파를 책임질 고수들을 양성하는 기관.
비록 무림 오대학관 중 가장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매년 수많은 소년·소녀들이 청룡학관에 입학하기 위해 지금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고 했다.
“아직 고민 중입니다.”
사실 거의 결정을 내렸지만, 옆에서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아버지를 생각해 조금 애매하게 대답했다.
고주열은 그러냐,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기한은 석 달이나 남았으니 당장 결정할 것 없다. 만약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때 날 찾아오너라. 추천장 정도는 언제든지 써 줄 수 있으니.”
“예.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날 보는 고주열의 흐뭇한 눈빛 속에는 안타까움, 그리고 다른 복잡한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눈치챘지만 모른 척 부드럽게 웃었다.
“……헤어짐이 길어지면 구차해지는 법이지. 이만 가 봐야겠다.”
“형님. 조심히 가십시오.”
“백부님. 살펴 가십시오.”
“그래. 둘 다 또 보자꾸나.”
고주열은 마지막으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준 후 몸을 돌렸다.
―휘익!
그는 표홀한 신법을 펼쳐 순식간에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비응객’이라는 별호에 어울리는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허어. 이놈 뻔뻔한 것 좀 보게.”
고주열의 뒷모습이 사라지기 무섭게, 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돌아봤다.
“언제 봤다고 백부님, 백부님. 아주 옆에 딱 달라붙어서 아양을 떨더구나?”
아까 꿀물 좀 안 타 줬다고 삐친 모양이다.
그러나 나 역시 아버지에게 할 말이 많았다.
“언제는 두 분이 친형제나 다름없다면서요? 어제는 의형제까지 맺으시던데.”
술에 취해서 둘이 한날한시에 죽자고 혈서까지 쓰려는 것을 간신히 뜯어말린 사람이 나였다.
나는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로 술을 거의 안 마셨으니까.
지난밤의 추태를 떠올렸는지 아버지의 얼굴이 붉어졌다.
“흠흠……. 30년 만에 지인을 만나니 좀처럼 주체되지 않더구나.”
“알았으니 다음부턴 술 좀 적당히 드세요.”
“거 효자 노릇 하고 싶으면 옆집 가서 꿀물부터 좀 얻어 오지 그러냐?”
어린애처럼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꿍얼대던 아버지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정말 청룡학관에 갈 생각이냐?”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하다가 아버지에게 되물었다.
“간다고 하면 말리시려고요?”
“……말려 봤자 안 들을 거지?”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몸.
백수룡은 그전에도 무공을 익히고 싶어 마공까지 손에 댔던 독종이다.
그래서 죽을 뻔했던(사실은 죽었지만) 아들이기에, 백무흔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역시…… 포기를 못 한 거로구나.”
하늘의 저주인 천음절맥을 타고났지만, 목숨을 걸어서라도 무림인이 되고 싶어 했던 아들.
죽다 살아난 후로는 한동안은 얌전히 있던 아들이, 또다시 무림인이 되겠다고 발버둥 치려는 모습에 아버지 된 입장에선 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으리라.
“룡아. 무림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동경할 만한 세계가 아니다.”
“예. 저도 압니다.”
무림이 힘없는 자에게 얼마나 비정한지, 나보다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 태연한 대답에 아버지가 발끈해서 나를 쏘아봤다.
“네가 알긴 뭘 안단 말이냐! 운이 좋아 사파 무림인 하나 이겼다고 고수라고 된 줄 아느냐! 그때 그자가 방심하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었을 싸움이다!”
“그것도 다 계산한 건데…….”
덥석.
아버지가 내 어깨를 단단히 붙잡으며 말했다.
“네 단전은 태어날 때부터 망가져 있었다. 내가 온갖 수단을 써 봤지만 고치지 못했다.”
“……예. 압니다.”
“안다고?”
그의 두 눈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 같았다.
“안다는 놈이 청룡학관에 입학하겠단 말이냐? 그런다고 뾰족한 수가 생길 것 같아? 그랬으면 내 손으로 벌써 입관시켰을 거다!”
“……예? 입학이요?”
청룡학관에 갈 계획인 건 맞지만, 입학할 생각은 없는데?
그러나 아버지는 내가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두 눈에 불안과 걱정을 가득 담은 채로 빠르게 쏘아붙였다.
“내공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학생들에게 모욕만 당할 것이 뻔하다. 시비를 걸어오는 놈도 여럿이겠지. 네 허약한 몸으로는 보름도 못 견딜 거다!”
“아니, 잠깐만요. 지금 뭔가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아비 말부터 들어!”
아버지가 내 어깨를 잡고 앞뒤로 정신없이 마구 흔들어 댔다.
“네 단전은 내가 아는 어떤 명의도 고치지 못했다! 고치기는커녕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했어!”
“알았으니까…… 그만…….”
내가 알아!
병명도 알고! 고치는 방법도 안다고!
그러니까 머리 좀 그만 흔들어!
이러다 목 부러지겠네!
“으으…….”
“제발 이번 한 번만 애비 말을 들어다오. 네 나이 올해 스물일곱이다. 청룡학관 입학 나이가 열다섯부터인데, 열다섯짜리한테 맞고 다니면 기분이 어떻겠느냐? 그냥 동네에서 참한 처자 하나 낚아서 혼인부터 하고…….”
“……아, 쫌! 일단 놔 봐요!”
나는 간신히 아버지의 팔을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으. 여전히 머리가 뱅뱅 도는 기분이다.
나는 아버지가 또 달려들기 전에 빽 소리쳤다.
“대체 뭔 소립니까! 전 청룡학관에 입학할 생각 없어요!”
“떡두꺼비 같은 자식도 낳고……. 뭐? 없어?”
떡두꺼비 같은 소리 하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니까 술 좀 적당히 마시라니까. 어제 내가 하는 말 하나도 안 들었네.”
“입학…… 안 한다고? 정말로?”
아버지는 눈을 깜빡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입학 안 해요! 정말 안 해!”
“……그럼 청룡학관에는 왜 가려는 건데?”
나는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나의 포부를 밝혔다.
“돈 벌려고 갑니다!”
“……무슨 돈?”
“마침 그곳에 적성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요.”
씩 웃은 나는 나를 뒤를 돌아봤다.
마침 오후반 코흘리개들이 대문을 넘어 연무장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 사부님이다!”
“사부님! 대사부님! 안녕하세요!”
“빨리 저희도 절세신공 가르쳐 주세요!”
우리를 발견한 코흘리개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우다다다 몰려왔다.
나는 녀석들에게서 고개를 돌려, 아직도 의문투성이인 표정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입학(入學)이 아니라 입사(入社)하러 갈 겁니다.”
저 코흘리개들이나 청룡학관 애송이들이나 별다를 거 있겠어?
“……뭘 한다고?”
“취직할 거라고요.”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슬슬 몸도 어느 정도 회복됐겠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버지. 등산 좋아하세요?”
마침 이 근처에 녹림투왕이 생전에 만들어 둔 안가가 하나 있다.
‘거기에 꿍쳐 둔 영약이 좀 있다고 했지.’
“등산은 또 왜?”
왜긴.
혼자 가긴 힘드니까 데려가서 일 좀 시키려고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