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0
9화. 심봤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아버지와 함께 백운산(白雲山)에 올랐다.
백운산은 험준한 산세와 가파른 기암절벽, 그리고 사시사철 산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로 유명했다.
때문에 실종되거나 실족사하는 사람도 매년 수십 명이 넘기로 악명이 높았다.
‘오죽하면 녹림에서도 산채를 만들지 않을 정도라지.’
녹림투왕 맹호악이 이곳에 자신의 비밀 거처를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다른 곳은 털렸을 수도 있지만, 이곳만은 멀쩡할 확률이 높았다.
‘우선 맹호악이 꿍쳐 둔 영약을 얻자. 그걸로 역천신공의 토대를 다지면 앞으로 운신하는 것도 한결 나아질 거다.’
그러한 계획하에 나는 보무도 당당히 산에 올랐다.
그리고 한 시진 후…….
“끄헉……. 끄흐윽…….”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폐가 찢어질 것만 같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팔다리에 쇳덩어리라도 달아 놓은 듯 몸이 천근만근이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쉬고 싶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혀를 차는 소리가 이를 악물게 했다.
“쯧쯧. 벌써 지친 거냐?”
꾹꾹.
뒤에서 아버지가 교편으로 내 등허리를 찔러 대며 잔소리를 했다.
“그러게, 그 몸으로 무슨 등산을 한다고. 지금이라도 내려가는 게 낫지 않겠냐?”
대체 걱정을 해 주는 건지 약을 올리는 건지.
어쨌든 이 양반 덕분에 이만큼이나 산을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할 만…… 끄윽…… 하거, 든요?”
빌어먹을 몸뚱이.
내공을 못 쓰면 몸이라도 좀 튼튼하게 태어나든가.
아주 겉과 속이 공평하게 비루하기 짝이 없다.
한 달이 넘도록 육체를 단련했는데도 이 모양이니, 천음절맥이 왜 하늘의 저주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두고 보라지! 내 언젠가 천음절맥을 천음신맥으로 바꾸고 말 테니! 이게 그 첫걸음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다짐하면서 열심히 산을 올랐으나…….
털썩.
결국 평평한 바위에 주저앉은 나는 하늘을 올려봤다.
황사가 꼈나? 하늘이 샛노랗다.
“……제기랄. 어느 세월에.”
아니, 인간적으로 너무 허약하잖아.
무림인이 되겠다는 놈이 산 좀 올랐다고 헉헉대?
심지어 아버지랑 같이 안 왔으면 몇 번이고 발을 헛디뎌서 실족사할 뻔했다.
“그래도 거의 다 왔구나. 저기가 네가 말한 봉우리인 것 같은데.”
내 옆으로 다가온 아버지가 교편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구름 위로 삐죽이 솟은 높은 봉우리가 보였다.
봉우리를 올려다본 나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거의 다 오긴 개뿔…….”
검무봉(劍舞峰).
맹호악은 저 봉우리를 그렇게 불렀다.
정말 우라지게 높고 산세가 험하게 생겼다.
저곳에 녹림투왕 맹호악이 영약을 숨겨 둔 안가가 있을 것이다.
“후우. 조금만 쉬었다 가요.”
“물부터 좀 마셔라.”
내게 수통을 건넨 아버지가 혀를 차며, 시체처럼 창백할 것이 분명한 내 안색을 살폈다.
그러다 불쑥 말했다.
“너 정말 내 아들 맞냐?”
“콜록! 콜록콜록!”
나는 마시던 물을 그대로 아버지에게 뿜었다.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완숙한 경지의 일류고수답게 나의 수공을 쉽게 피했다.
한참 콜록댄 내가 입가를 닦으며 물었다.
속으로 조마조마한 마음을 겨우 숨기면서.
“콜록!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아버지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뺨을 긁적였다.
“옛날 같았으면 허약하게 태어난 몸을 저주하면서 나를 원망했을 텐데…… 이제는 군말 없이 산을 오르는 게 대견해서 말이다.”
……이 자식, 부모 가슴에 아주 대못을 박아 댔구나.
“게다가 무공이 아니라 돈을 벌고 싶다고 하질 않나……. 원래 돈에는 관심도 없고, 아이들에게 무공 가르치는 것도 싫어하지 않았더냐.”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전부터 생각해 둔 대답을 했다.
“죽었다 살아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어떻게 다르냐?”
“제가 한 달 가까이 누워 있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요. 대체 내가 목숨 걸고 무공을 배워서 어디에 쓰려고 했을까?”
“……천하제일 고수가 되어서 강호를 주유하고 싶은 것 아니었냐?”
“그땐 그랬죠.”
나는 이마에 흥건한 땀을 소매로 닦아 내며 한숨을 쉬었다.
“고수가 되어 남들에게 인정받고, 부와 명예를 누리고,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예쁜 마누라도 얻고……”
“흐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게 꼭 무공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아니잖아요?”
“돈으로도 할 수 있다?”
나는 씩 웃으며 아버지를 바라봤다.
“바로 그거죠.”
나는 백수룡을 모른다.
녀석이 얼마나 무공을 배우고 싶었는지, 그럼에도 내공을 쌓을 수 없어 얼마나 좌절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설프게 변명하기보단, 그냥 내 생각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돈이 많아야 단전을 고치고, 무공을 배울 방법도 찾을 수 있지 않겠어요?”
사실 당장은 그 이유가 가장 크다.
천음절맥을 천음신맥으로 바꾸고 역천신공을 익히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하지만 평생 혈교에서 무공을 배우고 가르쳐 온 내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무공을 가르치는 것뿐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까 했는데…….’
마침 고주열에게 ‘일타강사가 되면 돈을 쓸어 담는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다음은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일단은 청룡학관에 강사로 취업해서 돈을 벌자. 나중에 장사를 하더라도 밑천이 있어야 하니까.’
그러한 이유로, 나는 석 달 후 있을 청룡학관 입사 시험에 응시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날 지그시 바라보며 내 말의 진의를 가늠하는 듯하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밖에 모르던 내 아들이 이제 철이 좀 들었나 보구나. 그래. 돈 많이 벌어서 애비 호강도 시켜 주고 그래라.”
“하시는 거 봐서요.”
“이놈이?”
찰싹!
교편으로 내 등짝을 후려친 아버지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 쉬었으면 일어나자. 돈 벌러 가야지.”
“예예…….”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뒤 후들거리는 무릎을 잡고 일어났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검무봉을 올랐다.
중간중간 내가 입에 거품을 몇 번 문 것 빼면, 다른 큰일은 없었다.
“끄으윽……. 끄어어……!”
“다 왔다! 조금만 더 힘내라!”
솔직히 이 몸의 아버지, 백무흔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다.
내가 원해서 빼앗은 것은 아니라지만, 그의 아들의 몸을 차지해 아들인 척 연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어쨌든 ‘이 몸’을 낳아 준 부모이니, 언젠가 그에게 나름의 도리를 다할 생각이었다.
“끄으으……어어! 다 왔다아아아아! 허억! 헉!”
기어이 검무봉 꼭대기에 오른 나는 헉헉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스스스슷.
온통 짙은 안개가 깔려서 시야가 제한되었다.
아버지가 주위를 경계하며 내게 물었다.
“묘한 기운이 느껴지긴 한다만, 이곳에 정말 영약 같은 것이 있긴 한 거냐?”
“허억……. 헉……. 저쪽으로.”
주변이 온통 희뿌연 가운데, 나는 맹호악이 알려 준 대로 호랑이 이빨이 새겨진 바위를 찾아다녔다.
‘저기로군.’
저 바위가 바로 진법이 시작되는 장소였다.
우리가 접근하자 바위 주변의 안개가 흩어지고 뭉치기를 반복하며 형태를 바꿨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안심했다.
‘아직 진법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영약도 그대로 있을 확률이 높겠어.’
“잘 따라오세요.”
옆을 힐긋 돌아보며 말하자, 아버지가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버지 역시 주변에 심상치 않은 기의 흐름을 느낀 것이다.
“또 떠돌이 약장수한테 사기를 당한 줄 알았는데……. 정말 이런 데 영약이 있다고?”
“속고만 사셨나. 진짜라니까.”
백수룡은 예전부터 무공을 배우겠다는 집념으로 이런저런 기행(마공서를 구하는 등)을 많이 한 탓에, 내가 백운산에 영약을 찾으러 가자고 할 때도 아버지는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는 얼굴로 따라나섰다.
말로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병약한 아들에게 약한 아버지였으니까.
“길 잃기 싫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따라오세요.”
“……거참. 귀신에 홀린 기분이구나.”
다행히 진법 자체는 파훼하기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방향 감각을 잃게 해서 길을 잃도록 하는 종류였는데, 나는 어렵지 않게 맹호악에게 들은 대로 생문을 찾아 들어갔다.
‘맹사부가 남긴 영약은 내가 요긴하게 쓰겠소.’
진법의 안쪽으로 향하며, 나는 맹호악의 수염 가득한 얼굴을 떠올렸다.
-크흐흐. 세상 곳곳에 내 안가를 숨겨 놓았다. 녹림에 도둑놈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내가 실종되고 다들 내 보물들을 훔치려고 했겠지만……. 흐흐. 가장 귀한 것들은 미리 꼭꼭 숨겨 두었지.
곰처럼 거대한 덩치와 달리, 맹호악은 머리가 잘 돌아가고 영리한 사내였다.
하기야 멍청해서는 절대 절세고수가 될 수 없지만.
맹호악에게는 한 가지 원대한 목표가 있었다.
-녹림을 구파일방 못지않은 명문으로 만들 것이다!
다들 헛소리로 치부했다.
상대가 타고난 신력으로 열여섯에 녹림칠십이채(綠林七十二埰) 중 하나를 차지한 최연소 채주가 되고, 스물다섯에 녹림을 통일해 녹림투왕이라는 별호를 얻은 절세고수가 아니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면전에서 비웃었을 것이다.
실제로 맹호악의 선언에 불쾌감을 느낀 명문 정파의 고수들이 그에게 비무첩을 보내 단단히 응징하고자 했으나.
-흥. 나는 그놈들을 모두 살려 보냈다. 실력도 안 되는 놈들에게 수준 차이를 보여 주고 이 어르신의 자비로움을 알리게 했지.
하지만 그의 예상과 반대로 녹림투왕의 악명은 나날이 높아졌다.
도전자들을 살려 준 대신, 팔다리를 하나씩 꺾어서 불구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왜 그랬냐고? 그래야 나가서 지들이 이겼다는 헛소문을 내지 못할 것 아니냐. 그러니 확실하게 내가 이겼다는 증거를 남겨야지.
녹림투왕이라는 별호 앞에 천하십대고수(天下十大高手)라는 칭호가 붙기 시작한 것이 그즈음이었다.
내가 그 얘길 하자, 맹호악은 귀를 후비며 이렇게 말했다.
-십대고수? 나한테 뒈지게 맞고 도망친 놈 중 하나가 그렇게 불렸던 것 같은데?
훗날 믿었던 부하에게 배신당하지 않았더라면, 맹호악은 언젠가 산에서 내려와 녹림문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혈교의 뇌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말이다.
-어이. 애송아.
맹호악은 나를 애송이라고 불렀다.
-왜요. 맹사부.
나는 그를 맹사부라고 불렀다.
맹호악만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었다.
나는 네 명의 절대고수를 모두 ‘사부’라고 불렀다.
물론 그건 일반적인 사제지간이라고 할 수는 없는 관계였다.
‘혈교에서 함께 탈출하기 위해 맺은 일시적인 동맹이었지.’
나와 그들 사이에는 계약이 있었고, 그 계약 때문에 그들은 모든 무공을 아낌없이 내게 전수했다.
그 세월이 10년이었다.
10년 동안, 나는 네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듣게 되었다.
뇌옥에 갇힌 그들에겐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그들 서로와 나밖에 없었으니까.
-……만약, 아주 만약에 내가 죽고 너만 여기서 탈출하게 되면 말이다.
어느 날, 맹호악은 나를 불러 중원의 여러 산에 만들어 둔 자신의 비밀 거처에 대해 알려 주었다.
나는 퉁명스레 되물었다.
-갑자기 그걸 나한테 왜 알려 주는 거요?
-흐흐. 아끼다 똥 되는 것보다는 그래도 네놈이 먹는 게 낫지 않겠냐.
-음. 오늘 고기반찬은 이게 전부인데?
-이런 우라질 놈이! 내가 그깟 고기반찬 더 달라고 이러는 줄 아느냐!
-생각해 보니 고기가 좀 더 있었던 것도 같고…….
-하나 더 알려 주랴?
“오두막이구나.”
놀란 아버지의 목소리가 과거에서 나를 현실로 끄집어냈다.
짙은 안개를 헤치고 나온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오래된 오두막이었다.
오두막 옆에는 작은 온천이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저기 어딘가에 영약을 꿍쳐…… 영약이 숨겨져 있을 거예요.”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구나. 떠돌이 약장수한테 들은 소문이 진짜라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아버지가 검을 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아버지는 주위를 경계하며 천천히 오두막을 향해 나아갔다.
“무림의 기연은 항상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해선 안 되는 법이다.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몰라.”
“함정은 없어요. 대신…….”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크허어어어엉!
산천초목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짐승의 포효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우리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