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77
76화. 피차 시간 낭비 하지 말자“어르신!!”
흑영은 들고 온 짐을 내팽개치고, 침상에 누워 있는 공손수에게 달려갔다.
“허허. 왔느냐?”
“괘, 괜찮으신 건가요?”
표정이 창백해진 흑영이 급히 공손수의 손목을 잡아 진맥을 했다. 동시에 품에서 영약과 금침을 줄줄이 꺼냈다.
“일단 이것부터 드시고 옷 벗으세요. 당장 침을 놓겠습니다!”
“뭐, 뭐 하는 게냐!”
입안에 영약을 욱여넣고 동시에 옷을 벗기려 드는 손길을 밀어내며 공손수가 질색을 했다.
“거참, 민망하니 호들갑 떨지 말거라. 가벼운 내상일 뿐이야.”
“기습을 당하셨다면서요! 대체 어떤 놈이 어르신을!”
“흠흠. 나는 이 정도지만 그 녀석은 팔이 잘렸다. 내가 자른 건 아니지만……. 비무는 내가 이겼고…….”
침상에 누워서 이겼다고 말하는 것이 민망한지, 공손수는 연신 헛기침을 했다.
그 모습을 보는 흑영의 눈에서는 불이 뿜어질 기세였다.
“어르신을 다치게 했는데 고작 팔 하나만 자르고 끝났다고요? 제가 지금 당장 가서 놈을 능지처참하겠어요…….”
스르릉…….
흑영의 스산한 얼굴은 사람 하나쯤은 당장이라도 회를 뜰 기세였다.
공손수가 칼을 뽑으려는 흑영의 팔을 붙잡으며 내게 외쳤다.
“백 선생! 보고만 있지 말고 같이 좀 말려 주게. 이러다 진짜 무슨 일이라도 나겠어.”
“진정해, 흑영! 어르신이 괜찮다잖아!”
“놔! 이거 안 놔?!”
나는 조막생인가 조진생인가를 당장 죽이러 가겠다는 흑영을 겨우 뜯어말린 후, 한숨을 내쉬며 위지천에게 말했다.
“오는 길에 대충은 들었다. 그래도 천이 네가 자세히 설명 좀 해 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게…….”
위지천은 비무대에서 있었던 일을 우리에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이야기 중에, 내 신경에 거슬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갑자기 조막생이 괴성을 지르며 갑자기 달려들었어요. 눈이 새빨갛게 변하더니, 단도에서 잿빛 검기가…….”
“잠깐만. 무슨 검기?”
내 표정이 갑자기 심각하게 굳었는지, 위지천이 말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단도에서 잿빛 검기가…….”
잿빛이라고?
검기의 색은 익힌 내공심법에 따라 결정되기에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잿빛 검기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앞뒤 상황과 어우러지며, 나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공손수에게 물었다.
“어르신. 그 자식이 어르신을 죽일 작정으로 덤볐다고 했는데, 그 정도로 심하게 도발한 겁니까?”
공손수는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네. 내 황궁에서야 여럿 뒷목 잡고 쓰러지게 한 적은 있지만…… 설마 그런 어린아이에게까지 그러겠나.”
그렇다면 조막생의 돌발 행동은 본인의 폭급한 성격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것도 너무 이상해.’
비무에서 한 번 패했다고, 이성을 잃고 상대를 죽이려 들다니.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정도로 앞뒤를 못 가리는 성격이라고? 어지간한 마공을 익힌 놈들도 그 정도는…….’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 간 순간,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위화감의 실체를 붙잡았다.
“설마…….”
“선생님. 왜 그러세요?”
“자네. 왜 그러나?”
내 표정이 심각했는지, 공손수가 덩달아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니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정황증거는 충분하지만…….
‘조만간 직접 만나러 가야겠군.’
내가 조막생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다짐할 때였다.
콰아앙!
문이 부서질 듯 열리고, 머리가 산발한 헌원강이 안으로 냅다 뛰어 들어왔다.
“할아범! 할아범 어디 있어!!”
녀석은 고개를 홱홱 돌리더니, 우리를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걸어왔다.
“괜찮아? 비무하다가 다쳤다며! 대체 어떤 자식이야! 늙고 병든 늙은이를 이렇게 만들어? 기다려 봐. 내가 당장 가서 반 죽여 놓을…….”
따악!
내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헌원강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악! 왜 때려요!”
“아까 다 한 얘기니까 뒷북치지 말라고.”
“쳇. 걱정돼서 바로 달려온 건데……. 아무튼 괜찮은 거 맞죠?”
공손수를 둘러싸고 아웅다웅하는 우리의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지나가던 의원이 표정을 굳히며 주의를 주었다.
“거기 네 분. 다른 환자분들도 있으니 조용히 해 주십시오.”
“아, 예.”
“죄송합니다.”
“크흠…….”
“…….”
우리가 동시에 합죽이가 되는 가운데, 정작 환자인 공손수만 즐겁다는 듯 껄껄 웃었다.
“허허허. 나 하나 다쳤다고 이리 걱정해 주는 사람이 많은 걸 보니, 내가 말년 운이 좋은가 보구나.”
* * *
다음 날 밤, 남궁수의 저택.
“스, 스승님. 제발 절 버리지 마세요. 한 번만 용서를…….”
잘린 왼쪽 팔 부근에 붕대를 칭칭 감은 조막생이 남궁수의 앞에 납작 엎드려 빌었다.
“말했을 텐데.”
조막생을 내려다보는 남궁수의 표정은 얼음처럼 싸늘하기만 했다.
“너는 더 이상 내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조막생이 고개를 홱 치켜들었다.
“그건 정말 실수였어요!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그럼 반드시 그 인간들에게 복수를…….”
“복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흡!”
남궁수의 찌푸려진 미간에 은은한 노기가 내비쳤다.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조막생이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남궁수는 매몰차게 몸을 돌렸다.
“내쫓아라.”
““예.””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궁석과 진진이 조막생의 양어깨를 붙잡고 질질 끌어냈다.
“스승님, 스승니이임!”
조막생은 어떻게든 버텨 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팔이 멀쩡할 때도 둘에겐 상대가 되지 못했다. 지금은 어림도 없었다.
결국 질질 끌려나가 저택 밖으로 내팽개쳐져 나동그라졌다.
“은혜도 모르는 고아 새끼.”
더러운 걸 만졌다는 듯, 진진이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으며 말했다.
“이 정도로 끝난 걸 감사한 줄 알아. 스승님이 네 단전을 폐하고 근맥을 잘랐어도 할 말이 없었으니까.”
몸을 홱 돌린 진진은 그대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서, 석아!”
조막생은 바닥을 기어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궁석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네가 스승님한테 잘 말씀드려 주면 안 될까? 넌 같은 남궁세가 출신이니까……. 내가 앞으로 너 시키는 대로 다 할게. 응?”
“경고 하나 할게.”
남궁석은 조막생 앞에 쪼그려 앉았다.
콰악!
그는 한때 과외 동기였던 소년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 올렸다.
마주친 눈에서 서늘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앞으로 어디 가서 내 숙부, 아니 남궁수 스승님의 이름을 팔거나 그분을 모욕하고 다니지 마. 그런 소문이 조금이라도 들려온다면, 내가 직접 너를 찾아서 죽일 거야.”
“으, 으으…….”
머리채를 놓아 준 남궁석이 빙긋 웃었다. 그리고 전낭에서 은자 몇 개를 꺼내 조막생의 품 안에 찔러 넣었다.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한때는 같이 무공을 배운 사이였으니까.”
잔뜩 얼어붙은 조막생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 알겠어.”
“그럼 이제 꺼져 줘. 난 네가 사라지는 걸 보고 난 후에 들어갈 거야.”
몸을 일으킨 조막생은 비틀거리며 남궁수의 저택에서 벗어났다. 남궁석이 보고 있을까 두려워서 뒤를 돌아보지도 못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억울하고 분했다. 비참하고 한심했다. 세상이 증오스럽고 전부 다 죽이고 싶었다.
조막생의 눈에 혈기가 일렁였다.
‘이게 다 내가 고아라서, 고아라서 그런 거야.’
조막생은 고아 출신이었다.
부모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섯 살쯤 버려져 고아원에서 쭉 자랐다.
운이 좋았던 건, 그가 버려진 고아원이 남궁세가에서 후원하는 고아원 중 한 곳이라는 점이었다.
고아원에서 기본적인 무공을 익혔다.
자질이 있으면 훗날 남궁세가의 무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익혔고, 천운이 따랐다.
-제법 자질이 있구나.
남궁수가 보는 앞에서 조막생은 실력을 증명했고, 결국 그의 눈에 들었다.
-올해 청룡학관 입관 시험을 봐라. 내가 도와주지.
남들은 수백 냥을 내고 받는 무공 과외를 공짜로 받게 되었다. 추천서도 남궁수가 직접 써 주었다.
-이쪽은 남궁석. 이쪽은 진진이다. 둘 다 너보다 훨씬 뛰어나니 많이 보고 배우도록 해라.
-남궁석이다. 잘해 보자.
-너 고아라며? 운도 좋네.
동기 둘은 다른 의미로 재수가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이대로 청룡학관에 입관만 하면, 그때부터 자신의 앞날에는 탄탄대로가 펼쳐질 테니까.
그래야 했는데…….
“냄새나는 노인네, 그리고 애새끼 하나 때문에 망치다니……!”
조막생은 이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팔이 잘리고 남궁수에게 버려져 저택에서도 쫓겨난 것.
전부 세상 탓이고, 자신이 고아인 탓이다.
‘내가 아니라 남궁석이 팔이 잘렸어도 가만히 있었을까?’
조막생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만약 남궁석이 똑같은 행동을 했다면, 남궁세가로 돌아가 더욱 끔찍한 형벌을 받았으리라는 것을.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 노인네, 그 애새끼가, 남궁석, 진진, 남궁수 탓이야……!”
피해의식은 세상을 향한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변했다.
몸 안에 불덩어리가 들어 있는 것처럼 뜨거웠다.
해소하지 않으면 타 죽을 것 같았다.
“흐흐…….”
광인처럼 웃는 외팔이를 본 사람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정처 없이 거리를 걷던 조막생은 어두운 골목길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골목길 벽에 등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흐흐. 전부 죽여 버리겠어. 위지천 그 새끼도, 그 늙은이도, 진진, 남궁석, 남궁수도 언젠가 모두 죽여 버릴 거야.”
그 전에 우선, 아무나 한 명을 죽일 것이다.
조막생은 이유 없이 골목길로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오줌을 누러 온 취객, 지름길로 서둘러 가려는 상인, 몸을 누일 곳을 찾는 거지, 길을 잘못 든 어린아이.
“흐흐. 아무나 상관없어. 갈가리 찢어 죽일 거야…….”
“그거참 다행이네. 나도 양심의 가책을 안 느껴도 되겠어.”
“!!”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조막생은 흠칫 놀랐다.
골목의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누, 누구…….”
다행히도 방금까지 죽이겠다고 욕한 남궁석이나 남궁수는 아니었다.
조막생이 전혀 예상치 못한, 하지만 아는 얼굴이었다.
“……백수룡?”
“선생님을 붙여야지.”
피식 웃으며 말한 백수룡이 조막생을 향해 다가왔다.
“흐음. 생각해 보니 아니구나. 넌 입관을 못 할 테니까. 그냥 편한 대로 불러라.”
“여, 여긴 왜…….”
“피차 시간 낭비하지 말자.”
휘익!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백수룡이 조막생의 목을 틀어쥐었다. 조막생도 기습에 대비는 했지만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컥, 커헉!”
백수룡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린 조막생이 눈을 부릅떴다. 억센 손아귀가 당장이라도 목을 부러뜨릴 것 같았다.
‘어째서?’
그 늙은이를 죽이겠다고 한 것 때문에?
위지천 그 새끼 때문에?
남궁수에게 사주라도 받았나?
아니면…… 자신이 고아이기 때문에?
뭔지 몰라도 조막생은 이곳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사, 살려 주세요…….”
“대답하는 거 들어 보고.”
청룡학관에서 오가며 몇 번 본 백수룡의 얼굴이 아니었다.
표정은 살수보다 차가웠고, 눈빛은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자처럼 광기로 일렁였다.
위지천에게 느낀 살기는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살기가 전신을 옭아맸다.
“너, 혈교의 첩자냐?”
혈교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조막생의 눈이 완전히 핏빛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