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83
82화. 눈을 감아도 되고‘독!’
흑영은 방 안에 퍼진 독기를 알아차린 순간 숨을 멈췄다.
하지만 이미 미량의 독기가 체내에 침투한 뒤였다.
웬만한 독에는 내성이 있던 그녀의 이마에서 벌써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무영이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꽤 지독한 독이지. 너라도 해약 없이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대체 왜…….”
무영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역시 무뎌졌구나. 예전의 너였다면 독이 퍼지기 전에 대처했을 것이다. 내가 그리 반가웠느냐?”
“…….”
흑영은 조용히 무영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표정이 사라졌다.
살수는 그 어떤 순간에도 동요해선 안 된다.
눈앞의 사내가 그녀에게 가장 먼저 내린 가르침이었다.
“역모……입니까?”
자신을 바로 죽이지 않고 독을 풀어 제압했다.
그것은 곧 대화의 의지가 있다는 뜻이었다.
흑영에게도 상황을 좀 더 파악하고 독을 몰아낼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무영도 흑영의 그런 생각을 모르지 않았다.
“역모라니. 어찌 그런 불경한 말을 하느냐. 승상을 죽이는 것이 어째서 역모가 되는 거지?”
“승상께서는 황제폐하의 스승이십니다. 폐하께서는 그분을 당신의 어버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것이 문제다.”
무영은 탁자에 놓인 차를 느긋하게 마셨다.
그 동작은 얼핏 빈틈투성이처럼 보였지만, 흑영은 섣부른 도박을 하지 않았다.
“승상은 폐하께서 어릴 때부터 옆에서 보필하며 눈과 귀를 대신했다. 폐하를 등에 업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누렸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수많은 충신을 죽였다.”
“……왜 그런 헛소리를 하십니까.”
흑영은 무영의 말이 헛소리라고 단언했다.
공손수는 평생을 국가와 황제를 위해 일한 충신이었다.
그가 정말로 자신의 권력만 생각하는 인간이었다면, 오랜 황궁 생활로 심신에 병이 들어 고향으로 요양을 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헛소리라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줄이야. 승상에게 죽은 자들 중에 충신이 단 하나라도 있었습니까?”
금의위의 정보 단체인 ‘천영’은 황궁에서 일어나는 온갖 더러운 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권력자들의 실체와 그들 간의 알력다툼, 차마 세상에 밝힐 수 없는 지저분한 사건들.
흑영이 아는 것만 해도 진저리가 처질 정도인데, 조직의 수장인 무영이 아는 정보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승상은 무서운 권력자다. 하지만 보기 드물게 존경할 만한 권력자이기도 하지.
과거에 그렇게 말했던 무영이, 지금은 승상을 간신이라 말하고 있었다.
흑영은 이 상황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편안히 말년을 보내다 얌전히 죽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무슨 말을…….”
무영이 웃었다. 이번에는 진짜 웃음이었다.
진짜라서 더욱 소름끼치는 그런 웃음.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그가 확언하듯이 말했다.
“승상의 병이 악화되어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는 폐하께서 총기를 되찾으셨으나, 승상의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폐하께서 그를 다시 불러들이려 하셨지. 이에 많은 충신들이 승상의 복귀를 걱정하였다.”
“설마…….”
무영을 바라보는 흑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주 보고 있는 무영의 두 눈에서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그것은 황궁의 그림자로 활동하며 수없이 본, 권력을 향한 욕망이었다.
무영의 눈이 가늘어지고 입가에는 비열한 미소가 맺혔다.
“충신들이 내게 부탁하길, 황제 폐하께서 다시 승상의 꼭두각시로 전락할까 염려된다고 하더구나.”
“……폐하의 그림자가 간신들과 결탁해 권력을 탐하기로 했습니까. 그게 역모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흑영은 질문을 하며 몸 안의 독기를 한곳으로 모았다.
임시방편이었지만 몸을 움직이기가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고 손가락을 떨었다.
무영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평생을 권력의 꼭두각시로 살아왔다. 어째서 나는 권력을 누리면 안 된다는 말이냐.”
그 말에서 느껴지는 광기에 흑영은 흠칫했다.
그녀는 지금껏 무영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살수에 가장 어울리는 사내라고 생각해 왔다.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만약 이 일에 금의위 전체가 연관돼 있다면…….’
소름끼치는 생각이 든 흑영은 무영을 바라봤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해서 질문했다.
“천살(天殺)께서도 이 일을 허락하셨습니까?”
그 말에 무용의 표정이 다소 굳었다.
“……허락이라? 너도 천살이 내 위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예리한 살기가 목덜미를 훑었으나, 흑영은 오히려 안심했다.
‘천살은 이 일을 모른다. 즉, 금의위는 저들에게 넘어가지 않았단 거야.’
천살은 금의위의 수장이자 최고수였다.
10년 전, 환영마군과 독안마군이라는 두 악인이 있었다. 둘은 의형제로, 관아를 습격해 재물을 훔치고 황제를 모욕하는 글귀를 남기길 여러 차례 반복했다.
관의 요청을 받은 무림맹의 고수들이 두 악인을 척살하려 했지만, 두 악인의 무공이 너무나 고강해 오히려 추살대로 보낸 정파의 고수들이 몰살을 당했다.
그때 두 악인 앞에 나타난 것이 관복 차림의 한 사내였다.
-황명이다. 이 자리에서 너희를 즉참하겠다.
관복의 사내는 자신을 비웃는 환영마군과 독안마군을 십 초 만에 죽이고, 그 목을 잘라 한 달 동안 효시했다.
그 후로 사내는 천살이라 불리게 되었고,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십존의 일인이 되었다.
‘천살께 이 일을 알려야 한다. 그럼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어.’
흑영은 속으로 결심하며 은밀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두 팔 정도는 이곳에 떼어 놓고 갈 각오를 했다.
최소한 그 정도의 각오 없이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테니까.
그때 무영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흑영. 너에게도 살 기회를 주마.”
작은 목함이었다. 뚜껑을 열자 은은한 향이 나는 약재가 담겨 있었다.
“승상의 탕약은 매일 네가 직접 달인다고 들었다. 이것을 달여 승상에게 먹여라.”
이 약재가 보약이 아니라는 것쯤은 바보도 알 수 있었다.
흑영이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제게, 어르신께 독을 먹이란 말입니까? 제 손으로 그분을 죽이라고요?”
“이게 가장 깔끔한 방법이다. 어차피 얼마 전까지 앞으로 몇 년 살지 못할 거란 소리를 듣던 노인이다. 내일 아침에 심장이 멎어도 이상하지 않지.”
“…….”
흑영은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목함을 바라봤다.
그녀가 고민 중이라고 생각했는지, 무영이 한결 다정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도 승상이 너를 아끼는 것을 안다. 그러니 너는 무사히 풀려날 것이다.”
“…….”
“이번 일만 끝나면 네게 완전한 자유를 약속하마. 승상이 네게 부귀영화를 약속했겠지. 하지만 그것을 약속할 수 있는 이는 승상뿐만이 아니다.”
무영은 또 다른 목함을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안에는 시커먼 독단이 들어 있었다.
“삼켜라. 그리고 돌아가서 탕약을 달여 오늘 밤 승상에게 먹여라. 시체를 확인하면 바로 해약을 줄 것이다.”
“…….”
흑영은 무영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독단을 삼키는 순간, 그녀는 다시 천영이란 목줄이 매인 개가 될 것이다.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음을 택할 것이냐?”
어차피 흑영에게 다른 방법은 없기에 무영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흑영은 지금 중독된 상태인 데다가, 더 이상 과거에 그가 알던 냉혹한 살수도 아니었다.
‘감정을 느끼게 된 살수는 자기 목숨을 아까워하게 되지. 흑영. 너는 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영은 잘못 알고 있었다.
흑영이 감정을 느끼게 된 이유, 살수로서 무뎌진 이유가 공손수의 개인 호위가 되면서 나태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하지만 흑영은 부귀영화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지난 수년 동안 단 하루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공손수라는 노인에게 깊은 정이 생겼다.
“어르신을 배신하느니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이제 공손수는 그녀에게 받들어 모셔야 할 승상이 아닌, 유일한 가족이었다.
목숨을 걸어 지켜도 아깝지 않을 가족 말이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물론입니다.”
그와 동시에 흑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녀의 소매에서 암기가 발출됐다.
파바바박!
암기는 둘 사이에 있던 탁자에 꽂혔다. 무영은 탁자를 세워 암기를 막음과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어차피 기습은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흑영은 당황하지 않고 다음 공격을 이어 나갔다.
흑영의 서슬 퍼런 기세를 본 무영이 혀를 찼다.
“이게 네 대답이라니. 실망이구나.”
그 순간 천장에서 네 명의 살수가 흑영에게 떨어졌고, 바닥에서 둘이 솟구쳤다.
순식간에 여섯의 살수에게 포위된 흑영은 양손에 단도를 꺼내어 쥐고, 천영의 독문무공인 암영류를 끌어올렸다.
스스스슷…….
그녀의 몸이 안개에 휩싸여 사라질 듯 흐릿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살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같은 무공을 익혔고, 서로 안면도 있는 사이였다.
‘천영의 정예를 모두 데려왔구나.’
놀랄 시간도 없었다. 흑영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칼날을 피하고 쳐 내기 바빴다.
까가가가강!
공손수의 개인 호위가 되기 전에도, 그녀는 무영을 제외하곤 천영에서 최고수였다. 흑영이라는 이름을 받기 전에는 ‘일영(一影)’이라 불렸다.
그만큼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그녀였지만, 그녀를 포위한 살수들 역시 모두가 실력자였다.
게다가 독과 함께 준비된 함정까지.
흑영은 순식간에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멀리 물러나서 지켜보고 있던 무영이 말했다.
“죽이지는 마라. 천천히 한 번 더 설득해 볼 것이다.”
물론 두 번째 설득에는 고문과 미약 등이 동원될 것이다.
“쿨럭…….”
흑영은 처절하게 싸웠다. 점점 늘어나는 출혈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독기에 피부가 시커멓게 변했다.
그래도 이를 악물었다. 활로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전장을 주시했다.
‘아직 아니야.’
천영의 살수들은 지독했다. 여섯의 살수 중 셋을 죽였지만, 죽어가면서 누구 하나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독하기로는 흑영이 한 수 위였다.
“……지독한 것.”
무영은 악귀처럼 싸우는 흑영의 모습에 질린 표정이었다.
승상의 개인 호위가 되어 떠난 후 무공 수련을 게을리한 줄 알았는데, 오히려 5년 전보다 더 강해졌다.
만약 그녀가 방심하지 않았다면……. 무영은 섬뜩한 생각에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하지만 여기까지구나.”
털썩.
결국 흑영의 무릎이 꺾였다. 죽은 살수의 자리는 다른 살수가 채웠고, 쌓여 가는 상처에 육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그러나 흑영의 정신은 아직 또렷했다.
‘오른팔은 더 이상 못 쓴다. 그렇다면 차라리…….’
흑영은 몸에서 힘을 풀었다.
무영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사정거리에 들어온 순간, 오른팔을 미끼 삼아 내주고 그의 목을 칠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통할지 안 통할지 모르지만…….’
아니, 통해야만 한다.
최소한 무영이라도 죽여야 놈들의 계획이 일그러질 것이고, 어르신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아직 포기를 못 했구나.”
하지만 무영은 흑영이 정해 놓은 사선 밖에서 멈춰 섰다. 살수의 예리한 감각이 발동한 것이다.
무영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혈도를 짚어라.”
사방에서 날아온 지풍이 그녀의 마혈을 짚어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그리고 살수 한 명이 다가와 그녀를 뒤에서 제압했다.
입도 뻥긋할 수 없게 된 그녀는 무영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어르신…….’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다만 이제야 겨우 삶에 행복을 찾은 어르신을 더 이상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했다.
……겨우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더 이상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도 분했다.
-허허. 네가 시집가면 내가 참으로 서운할 게야.
어쩌면 그런 날이 정말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오면, 아버지 역할을 해 달라고 졸라 볼 생각이었는데.
“……우는 거냐? 흑영 네가?”
무영이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분해서 흘러나온 눈물이 시야를 뿌옇게 가린 탓에, 흑영은 그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어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역시 따라오길 잘했네.”
“!!”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살수들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그러나 그보다 한발 먼저 검기가 날아왔다.
촤아아아악!
흑영을 뒤에서 제압하고 있던 살수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살수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그 빈틈을 틈타 한 줄기 바람이 흑영에게 불어왔다.
“괜찮아?”
흑영은 자신의 앞을 막아선 사내의 등을 멍하니 올려봤다.
“누구냐!”
무영은 처음 보는 사내를 향해 소리쳤다.
푸른 장포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얼굴이 창백한 미남이었다.
그의 검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붉은 피가 그의 푸른 장포와 강렬한 대비를 이뤘다.
사내가 삐딱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말하면 니들이 알아?”
“……밖에 살수들이 경계하고 있었을 텐데.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백수룡은 검을 들어 무영을 겨눴다.
“당연히 다 죽이고 들어왔지.”
흩어졌던 살수들이 그를 포위하며 거리를 좁혀왔지만 백수룡의 표정은 태연했다.
그는 고개만 살짝 돌려 뒤에 있는 흑영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보는 건 못 본 거로 해. 아예 눈을 감아도 되고.”
“…….”
흑영은 백수룡이 시키는 대로 눈을 꼭 감았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순간, 백수룡의 검에 핏빛 검기가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