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85
84화.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알겠습니다.”
공손수를 미끼로 삼아 살수들을 사냥하자는 말에, 격렬하게 반대할 줄 알았던 흑영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룡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정말? 설득하기 꽤 힘들 줄 알았는데.”
“어르신에겐 죄송하지만…… 살수 교육을 받은 제가 생각해도, 그 방법이 지금으로선 가장 효율적이에요.”
오히려 흑영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그녀가 아는 백수룡은 정파인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정파 무림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토록 살수들의 심리를 잘 안단 말인가.
‘게다가 조금 전의 싸움에선…… 무공 실력을 떠나 사람을 베는 데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어.’
여러 가지 의문이 솟구쳤으나 지금은 자세히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
그녀의 생각을 읽었는지 백수룡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학생을 가르치려면 뭐든지 잘 알아야 하는 법이거든.”
“그렇게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 더 묻진 않을게요.”
두 사람은 건물을 빠져나왔다.
백수룡이 안으로 진입하기 전에 주변의 살수들을 미리 처리한 터라, 주위에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다.
“저는 당장 황궁에 은밀히 연락을 취하고 오겠습니다.”
“나는 믿을 만한 사람들을 모아 볼게. 우리 둘이서 모든 살수를 모두 막는 건 아무래도 무리니까. 시간은 얼마나 있지?”
아직은 천영이 실패했다는 사실이 다른 살수 조직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길어 봤자 한 시진. 그 안에 천영의 살수들이 몰살당했다는 사실이 다른 살수들에게 알려질 겁니다.”
즉, 한 시진 안에 공손수를 지키고 살수들을 사냥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남은 시간을 가늠해 본 백수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빨리 움직이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곧바로 떠나려던 흑영이 멈춰서서 백수룡을 바라봤다.
“……어르신에겐 이 모든 사실을 바로 알릴까요?”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옛날 같으면 생각할 것도 없이 모든 사실을 어르신에게 고했겠지만, 지금의 흑영은 그때와 달랐다.
지금의 흑영은 단순히 공손수의 신변을 지키는 호위가 아니라, 아버지의 꿈을 응원하는 딸과 같은 존재였으니까.
“……대련 시험이 끝난 뒤에 말씀드릴까요?”
백수룡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고. 어르신이 안다고 뭐가 크게 바뀌는 것도 아니잖아. 당장은 시험 말고 다른 것에는 신경 쓰게 하지 말자.”
그리고 어르신이 모르는 쪽이 미끼로서 움직임도 자연스러울 테고 말이야, 라고 말하며 백수룡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웃음에 한결 마음이 편해진 흑영의 표정이 밝아졌다.
무척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백수룡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그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알겠습니다. 황궁에 연락을 취한 후에 바로 청룡학관으로 찾아가겠습니다.”
흑영은 경공을 펼쳐 순식간에 멀어졌다.
백수룡은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일단…… 청룡학관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부터 설득해야겠지.”
그런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백수룡의 표정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상대의 반응이 벌써부터 예상됐기 때문이었다.
* * *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는 게냐?”
매극렴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하나뿐인 외손주를 바라봤다. 그의 하얀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이놈이 순찰 임무를 보냈더니 한 시진 가까이 늦게 와놓고는, 변명이랍시고 한다는 말이…….
매극렴의 두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뭐? 승상? 살수? 청룡학관이 불타고 줄줄이 잡혀가? 네놈이 나를 놀리는 게냐!”
검만 뽑아 들지 않았을 뿐이지, 그는 앞에 있는 백수룡을 당장 찜쪄먹을 기세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늦었으면 죄송하다고 사과부터 할 일이지. 어디서 술을 처먹고 와서 대낮부터 헛소리를 늘어놓는 게야!”
“하, 할아버님. 헛소리가 아닙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전부 사실이라고요!”
“네놈이 정녕 매운맛을 봐야……!”
당장 검을 뽑으려던 매극렴이 멈칫했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백수룡의 몸에 밴 피 냄새를 맡은 것이다.
이어서 소매 끝자락에 남겨진 희미한 흔적들이 눈에 들어오고, 검집과 검파에 휘두른 흔적들도 보였다.
“설마…….”
검객의 예리한 눈은 그 모든 것을 놓치지 않았다.
매극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디까지가 사실이냐?”
“전부 사실입니다. 모자라면 모자랐지, 과장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백수룡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평소 자신의 눈치를 보면서도 능글맞게 굴던 얄미운 손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매극렴은 비로소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인지했다.
“허. 대체 무슨…….”
“시간이 없습니다. 곧 살수들이 승상을 노리기 시작할 겁니다. 그 전에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
“할아버님.”
백수룡의 나직한 부름에, 잠시 침묵하던 매극렴이 어렵게 입을 뗐다.
“계획이 있느냐?”
“예. 일단 사람들을 몇 명 불렀습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악연호, 명일오, 제갈소영, 그리고 흑영이 도착했다.
“형님?”
“갑자기 급한 일이라고 부르시면…….”
“정말 중요한 일 아니면 저 바로 돌아가야 해요. 남궁 선생님께 말도 안 하고 몰래 빠져나왔다고요.”
다들 갑작스러운 호출에 불만스러워하는 가운데, 백수룡이 상황을 전달하자마자 모두 뒤집혔다.
“거짓말!”
“이런 미친…….”
“노, 농담하시는 거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으나, 차분하게 설득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짝!
손뼉을 쳐서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백수룡이 빠르게 말했다.
“입관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승상을 살수들로부터 지켜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역으로 승상을 노리는 살수들을 사냥할 겁니다.”
백수룡은 그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그 기세에 감히 토를 달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자리에는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 모았습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셔야 승상을, 청룡학관을 지킬 수 있습니다.”
“…….”
더 이상 백수룡은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평소에는 얄밉고 능글맞은 말과 행동으로 종종 사람을 열 받게 하는 그지만, 한 번씩 보여 주는 진지한 모습에는 항상 이유가 있었다.
악연호가 자신의 창을 단단히 움켜쥐며 말했다.
“저희가 뭘 하면 돼요?”
“우선은…….”
백수룡이 빠르게 계획을 설명했다.
그의 계획을 뼈대로, 종종 흑영이나 매극렴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계획을 보충해 나갔다.
그때 제갈소영이 소심하게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일이면 관주님께도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백수룡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고민해 봤는데. 관주님께는 말씀드리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어째서요?”
“그분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요. 움직였다간 적들이 바로 눈치를 챌 겁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것이었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노군상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청룡학관주 노군상은 분명 대단한 고수이고 평소에 백수룡에게 호의도 가지고 있지만, 백수룡은 그를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교육과 정치는 완전히 다른 문제거든.’
게다가 위치가 위치인 만큼, 황궁의 권력자들과 끈이 닿아 있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 노군상이 어떻게 나올지, 백수룡으로서도 쉽사리 예측할 수 없었다.
‘그 옆에 있던 남궁제학도 의심스럽고.’
남궁세가는 과연 이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까?
만약 모르고 있다고 해도, 오대세가 중 누구보다 권력과 친한 가문인 그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지 않을까?
지나친 추측일 수도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지금은 조용히 움직일 수 있는 소수정예가 훨씬 낫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흑영까지 그렇게 말하자 제갈소영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매극렴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럼 여기 있는 여섯 명이,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의 전부로군.”
“아뇨. 한 명 더 있습니다.”
백수룡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한 명이 더 있다고?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누굴 말하는 게냐?”
“평소에는 좀 못 미더운 녀석이긴 한데…….”
백수룡은 지금 공손수의 옆에 있을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이번 기회에 밥값이나 좀 시키려고요.”
* * *
“끙…….”
“원강 선배. 왜 아까부터 똥 마려운 강아지 같은 표정인가?”
“내, 내가 뭐. 내 표정이 어때서. 똥? 똥 마렵냐고? 안 마려운데? 화장실 안 갈 거거든?”
“……헛소리하는 걸 보니 정말 어디 아프기라도 한 겐가.”
“아, 아프긴 누가 아파! 할아범 몸 걱정이나 해!”
“내 몸은 왜?”
“선배님. 정말 어디 아프신 거 아니에요?”
“아까 차 마시다가 뿜은 것도 수상쩍고 말이야. 선배. 우리끼리만 있으니 그냥 솔직하게 말해 보게. 조금 전부터 주위를 힐긋힐긋 둘러보는 걸 보니……. 이 안에 마음에 드는 처자라도 있나?”
짓궂게 웃으며 묻는 공손수의 말에 헌원강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아무것도 아냐. 신경 끄고 둘 다 시험 걱정이나 하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사람의 말에 헌원강은 평소처럼 툴툴댔다.
하지만 속으로는 미칠 지경이었다.
‘갑자기 살수라니! 미쳤냐고!’
셋이서 밥을 먹고 차를 한잔하던 중이었다.
헌원강은 오후에 있을 마지막 대련 시험을 앞둔 두 사람의 긴장을 풀어줄 생각이었다.
그들보다 먼저 청룡학관에 입관한 선배로서, 두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줄 생각이었다 이 말이다.
어디선가 백수룡의 전음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원강아. 어르신을 노리는 살수가 있다.]“푸!”
그 순간 입에서 뿜어져 나온 찻물이 얼마나 힘찼는지, 찻집에 있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행동해.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어르신과 천이에게는 말하지 말고, 너만 알고 있어.]……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는, 예전에 심심풀이로 본 무협 소설에서도 본 적 없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였다.
‘설마 날 놀리려고?’
잠시 백수룡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그렇다고 하기엔 목소리가 너무 진지했다.
[우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살수들을 사냥할 거다. 그래서 어르신 가까이는 못 가. 살수들이 경계할 테니까. 하지만 너는 자연스럽게 어르신 옆에 있으니 살수들도 덜 경계할 거야. 청룡학관 학생이라고 해 봤자 열일곱짜리 애송이이니까.]뭔가 불쾌한 평가가 섞여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대부분 우리가 사전에 차단하겠지만, 만약 우리가 뚫린다면 네가 어르신을 지켜.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전음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뭔가 더 지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벌써 일다경째 아무런 말도 없었다.
“끄응…….”
헌원강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이유였다.
“허허. 원강 선배가 답답한 모양이군. 밥도 든든하게 먹었고 차도 한잔했으니, 소화도 시킬 겸 주변이나 좀 둘러보다가 시험 보러 가자꾸나.”
“아니, 난 별로 안 답답한데…….”
공손수는 이미 휘적휘적 걸어 나가고 있었다. 헌원강이 그 옆으로 바짝 붙었다.
“으응? 왜 이리 가까이 붙나?”
“추워서 그래.”
“……음?”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핑계였으나, 헌원강은 자세히 묻지 말라는 눈빛을 강하게 쏘아 보냈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세 사람은 찻집을 나와 거리로 나섰다.
청룡학관 입관 시험의 여파로 어디를 가나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그걸 본 헌원강의 표정이 바로 어두워졌다.
“그, 최대한 사람 적은 데로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 괜히 시비에 걸릴 수도 있고…….”
“오늘 같은 날에 사람이 적은 곳이 어디 있다고.”
“그래도 잘 찾아보면…….”
“자, 우리 오늘을 즐기세! 같은 날은 두 번 오지 않는다네!”
공손수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아무것도 모르는 위지천이 그 옆에서 따라 걸었고, 오만상을 찌푸린 헌원강이 두 사람보다 한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본인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헌원강과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슬금슬금 옆을 비켜서기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