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86
85화. 어머, 언니!
“천영이 실패했습니다.”
흑의무복의 사내가 무릎을 꿇고 보고했다. 감정의 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실패했다고?”
앉아서 보고를 받는 이는 무림의 삼대 살수 조직 중 하나인 흑림(黑林)의 간부였다.
그에겐 이름도 별호도 없었다.
세 번째 살행대의 대주이기에 삼(三)대주라 불릴 뿐.
삼대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무영 그자, 우리는 나설 필요도 없을 거라더니……. 황궁 출신답게 입만 산 놈이었군. 흑영이라는 호위가 탈출한 것이냐? 목표물의 위치는?”
삼대주는 자신이 생각한 실패의 범위에서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수하의 대답은 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천영의 살수들이 몰살당했습니다. 흑영의 위치는 현재 파악되지 않으며, 목표물은 아직까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뭐?”
삼대주는 부하의 보고에 무슨 오류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천영의 살수들이 몰살당하다니.
감히 흑림의 살수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지만, 그들도 제법 쓸 만한 살수들이 있는 조직이었다.
“무영은 지금 어디 있지?”
“다른 살수들과 함께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흑영이라는 호위 혼자서 한 짓인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시체들의 상태를 보면 한 명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
삼대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임무 성공을 자신했던 천영이 실패했다.
단순히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몰살을 당했다고 한다.
‘흑영이라는 호위가 상상 이상의 고수인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호위가 더 있었나…….’
현재로선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그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어쩐지 임무를 맡을 때부터 불안하더라니.’
삼대주는 사실 이번 의뢰에 회의적이었다.
한 나라의 승상까지 지냈던 권력자를 죽이는 일.
자칫했다가는 나라가 뒤집힐 수도 있었다.
-림주님. 이 임무는 위험부담이 지나치게 큽니다.
이곳에 오기 전, 삼대주는 흑림의 주인이자 스승이기도 한 림주에게 읍소했다.
그러나 림주는 기어이 이 의뢰를 받아들였다.
-……살막과 혈방이 수락했다. 우리만 나서지 않을 수는 없다.
살막, 흑림, 혈방.
무림 삼대 살수 조직이라 불리는 살문의 살수들이 모두 이번 일에 동원되었다.
천영이 워낙 자신한 탓에 다들 전력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전력을 보내지도 않았다.
당장 흑림만 해도 세 번째 살행대를 이끄는 자신이 직접 오지 않았던가.
-삼대주.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일이 쉽게 풀리면 조용히 있다가 보수만 받아서 돌아오면 되는 일이다.
‘저도 그렇게 되길 기대했습니다만……. 어렵게 된 것 같습니다.’
천영이 실패했으니, 이제 다른 살수들이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삼대주가 한숨을 내쉬며 수하에게 물었다.
“……준비는?”
“열 개 조 사십 명 전원, 투입 준비가 끝났습니다.”
“살막과 혈방의 움직임은?”
“저희와 거의 비슷하게 정보가 들어갔을 것입니다. 혈방은 바로 움직였습니다.”
혈방이 먼저 움직였단 말에 삼대주는 코웃음을 쳤다.
“혈방은 무시해도 된다. 숫자만 많지, 별 볼 일 없는 놈들이니까.”
애초에 혈방은 밑바닥 낭인들이 먹고살기 위해 마구잡이로 살인 청부를 받아들이다가 커진 단체였다.
그들이 삼대 살수 조직으로 꼽히는 것은 그 규모가 커서일 뿐, 흑림은 혈방을 같은 살수로 취급하지 않았다.
삼대주가 신경 쓰는 것은 다른 쪽이었다.
“……살막에선 누가 왔지?”
“알려지기로는 칠살(七殺)입니다.”
“칠살이라……. 거물이 왔군.”
혈방을 밑바닥 낭인들이라 무시하던 삼대주였지만, 살막에 대해서 이야기할 땐 표정을 굳혔다.
살막(殺膜).
명실상부 무림 최강의 살수 집단.
그 인원은 모두 합쳐도 서른 남짓으로, 그 안에서도 십살(十殺)에 꼽히는 열 명의 살수는 초절정고수조차 암살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현 흑림의 림주도 과거 살막의 살수 중 한 명이었다.
“살막의 움직임은 수시로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예.”
“후우…….”
한숨을 내쉰 삼대주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살막(殺幕).
흑림(黑林).
혈방(血放).
무림 삼대 살수 집단이라 묶여서 불리지만, 현실은 위에 언급한 순서대로라는 것이 대부분의 무림인들의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에겐 기회다.’
흑림의 목표는 살막을 뛰어넘어 무림 최고의 살수 조직이 되는 것.
삼대주는 림주의 명령을 떠올렸다.
-삼대주. 계획대로 천영이 성공하면 조용히 보수만 받아서 돌아오면 된다. 하지만 그들이 실패한다면…… 승상의 목을 취하는 것은 반드시 흑림이어야 한다.
상황을 보아 신중히 개입하되, 하게 된다면 제대로 하라는 것.
-결코 다른 놈들에게 목표물을 빼앗기지 마라.
의뢰인들이 이번 청부에 약속한 보수는 돈뿐만이 아니었다.
황궁의 권력자들은 흑림의 살수들에게 내려진 수배령을 모두 거둬 주기로 약속했고, 쓸 만한 위조 신분도 여럿 만들어 주기로 했다.
또한 천영이 전멸했으니, 그들의 빈자리를 채울 일거리를 맡길 수도 있었다.
흑림이 승상의 목을 들고 간다면 말이다.
‘결국 위험부담이 클수록 보수도 큰 법이지.’
생각을 정리한 삼대주는 무릎을 꿇고 대기 중인, 칙칙한 눈빛을 내뿜는 살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서 승상의 목을 가져와라. 최대한 빨리.”
고개를 끄덕인 살수들이 동시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파앗! 파바밧!
같은 시각, 살막과 혈방의 살수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
[이호. 목표물을 확인.] [삼호. 목표물을 확인.] [사호. 목표물을 확인.]차례대로 세 번의 전음이 들려왔다.
조원들의 위치를 확인한 일호는 한 명씩 모두에게 전음을 보냈다.
[일호. 목표물 확인. 다들 현 위치에서 대기.]“빙탕후루 사세요! 달고 맛있는 빙탕후루 사세요~”
일호는 남자였지만 지금은 후덕한 인상의 중년 여인으로 변장해 있었다.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경계심이 덜한 법이고, 펑퍼짐한 옷을 입기에도 좋기 때문이었다. 그의 치마 속에 숨겨진 암기만 수십 개가 넘었다.
“빙탕후루 사세요~”
일호는 작은 수레를 끌며 목표물과의 위치를 조금씩 좁혔다.
그의 지시에 4인 1조로 이루어진 살수들이 한 몸처럼 움직였다.
살수는 극도의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다.
목표물은 항상 주위를 경계하기 마련이고, 그 주변에는 강한 호위들이 물샐틈없이 경계하고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목표물이 한때 승상까지 지낸 권력자라면…….
“허허허! 밖에 나오니 좋구나!”
……비록 저렇게 조심성이 부족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곧바로 접근하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다.
평소의 일호였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했을 것이다.
하지만,
-승상을 목을 가져와라. 최대한 빨리.
삼대주의 명령을 떠올린 일호는 평소보다 빠르게 조원들을 움직였다.
하지만 시장통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수많은 인파에 섞여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들킬 확률은 평소보다 훨씬 적다고 판단했다.
[이호. 반각 이내에 사정거리 이내에 목표물과 접촉할 가능성 큼.] [삼호. 저격 가능 장소에 도착.] [사호. 예상치 못한 진상 손님과 조우. 반각 이내에 처리 후 움직이겠음.]조원들의 전음을 모두 확인한 후, 일호는 지시를 내렸다.
[반각 후 사냥을 시작한다. 현 시각부터는 휘파람 소리로 지시하겠다.]전음은 한 명씩 일일이 전달하고 대답을 들어야 하는 것에 반해, 단순한 명령을 전달하는 것은 휘파람이 훨씬 편했다.
휘익!
일호가 휘파람을 불자 세 명에게서 ‘알겠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휘익! 휘익! 휘익!
특수한 청각 훈련을 거치지 않은 민간인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
기감이 예민한 무인이라면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하면 그냥 거슬리는 소리일 뿐이었다.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잘 들리지도 않는 휘파람을 신경 쓸 무인은 없을 터.’
약속된 반각이 금세 지났다. 목표물을 시야에 포착한 일호는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일호는 ‘대기하라.’라는 의미의 휘파람을 분 후, 목표물을 향해 수레를 밀고 나아갔다.
“빙탕후루 사세요~ 달고 맛있는 빙탕후루 있어요~”
목표물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거리에서 차력을 보여 주고 있던 이호가 입에서 칼을 꺼냈고, 건너편 건물의 창가에 서 있는 삼호가 소맷자락에서 특수 제작된 소형 쇠뇌를 꺼내 은밀히 겨눴다.
그런데 진상 손님과 실랑이 중이라던 사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진상을 못 떨쳐낸 모양이군.’
일호는 당황하지 않았다. 살행이란 원래 계획대로 다 되는 경우가 더 드물다.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목표물과 눈을 마주쳤다.
“어르신~ 빙탕후루 하나 드셔 보세요. 아주 달고 맛있어요. 옆에 손자들도 사 주면 정말 좋아할걸요?”
“허허. 빙탕후루라. 어릴 때 참 맛있게 먹었었지.”
공손수가 전낭을 꺼내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일호는 입술을 살짝 모으고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휘이익-
‘살행 준비.’
그 신호에 이호와 삼호가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도록 몸을 긴장시켰다.
일호는 수레에서 빙탕후루를 꺼내며 헤실헤실 웃었다.
“산사나무 열매랑 명자나무 열매가 있는데.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당연히 둘 다 맛봐야지. 두 개씩 주시구려.”
“아이구 감사해라.”
빙탕후루는 나무 열매를 대나무 꼬치에 꿰어 물엿으로 굳혀서 만든 간식이다.
하지만 얇은 대나무 꼬치도 살수의 손에 들리면 무시무시한 암기가 되는 법.
“여기…….”
양손에 빙탕후루를 나눠 든 일호가 눈웃음을 치며 공손수에게 다가갔다. 동시에 은밀하게 내공을 일으키고, 입술을 모아 휘파람을 불 준비를 했다.
휘…….
그가 휘파람을 불면 이호가 몸을 날려 덩치가 큰 소년의 시선을 끌 것이고, 삼호가 쇠뇌를 쏘아 작은 소년을 노릴 것이다.
그렇게 두 호위의 신경이 분산된 순간, 이 얇은 대나무 꼬치가 공손수의 목을 단숨에 뚫을 것이다.
휘……이…….
입술을 모은 일호가 마지막 휘파람을 불려는 순간이었다.
“어머! 복순이 언니!”
갑자기 끼어든 웬 여자가 공손수와 일호 사이를 가로막았다.
“누구……?”
맹세코 처음 보는 여자였다.
복순이라니!
일호는 그런 촌스러운 가명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여자가 호들갑을 떨며 일호를 덥석 안았다.
피부가 하얗고 큰 키에 호리호리한 미인이었다.
“언니! 저 옥이에요! 기억 안 나? 십 년 전에 돈 번다고 고향 떠나더니, 이런 데서…….”
파바밧!
순식간에 등의 혈도를 제압당한 일호의 눈이 놀라서 부릅떠졌다. 빙탕후루가 바닥에 떨어져 흙투성이가 되었다.
다가오던 공손수가 뒤로 물러났다.
그는 두 여인(?)의 해후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허허. 옛 인연을 만난 모양이구만.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이야기들 나누시게.”
“어머. 감사해요, 어르신. 십 년 만에 만난 고향 언니라서요. 언니! 우리 저기 찻집으로 가자!”
“…….”
일호는 갑자기 일어난 현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눈만 끔뻑거렸다. 아혈이 짚인 탓에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호는? 삼호는?’
눈동자를 굴려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정하게 팔짱을 낀, 자칭 고향 동생이라는 여자가 그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흑림? 혈방? 살막일 리는 없고.”
“!!”
그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낮은 남자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