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221
221. 내가 모르는 게 어디 있어?
“토끼는 생각했어요. 용왕님께 간을 내드리면 자신은 살 수 없을 거라고요. 그래서 토끼는 거북이에게 내 간은 저기 바위 뒤에…….”
“선생님! 선생님! 간이 뭐예요?”
“음…… 해찬이 순대 먹어 봤지?”
“네. 순대 어엄청 좋아해요.”
“그럼 순대 사면 같이 주는 넙적한 거 알지? 퍽퍽해서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거.”
“네. 알아요. 저 그거 대따 좋아요.”
“그게 간이야.”
“……!”
“용왕님은 순대를 사면 간만 골라 먹는대.”
“……저…… 정말요?”
“그럼, 정말이지. 우리 해찬이 간도 잘 먹고, 이다음에 커서 용왕님 되는 거 아냐?”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보육원의 마당.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던 이현아가 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화의 내용이 뭔가 이상하지만, 오늘은 엉뚱하고 유쾌한 이현아다웠다.
나는 씩 웃으며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러자 등 뒤의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내가 손을 들어 인사를 하자, 그녀는 가장 큰 아이에게 책을 전해 주고, 내게로 다가왔다.
“여긴 어떻게 알았어?”
“내가 모르는 게 어디 있어?”
토요일마다 이 보육원으로 봉사를 나오는 이현아 대표.
그녀의 기억을 들었기에, 이곳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후…… 참 오빠답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거 칭찬이지? 그리고 지금 오빠라고 한 거야?”
“왜. 다른 남자들처럼 오빠라고 불러 주니까 좋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원 이사님이라고 하면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랄까?”
“어이구 원 이사님이 날 그렇게 생각하셨어? 그동안 귀찮은 강아지 취급하던 거 아니었어?”
“아니 귀여운 강아지지.”
“하긴, 내가 한 귀여움 하지. 무슨 일이야?”
“귀여운 강아지가 방황하는 거 같아서 찾아왔어.”
“방황?”
“그래. 방황.”
나는 보육원 마당의 한적한 곳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쪽으로 가서 얘기 좀 하자.”
한적한 벤치.
주머니에 있던 캔 음료를 꺼내, 이현아 대표에게 건넸다. 그녀는 온기가 남은 캔을 자신의 볼에 가져다 대며 입을 열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난 모르는 일이야. 알바오 때문이라면 헛걸음했어.”
“누가 뭐래?”
“그럼 여긴 왜 온 거야?”
“말했잖아. 귀여운 강아지 방황을 끝내 주러 온 거라고.”
“…….”
“왜, 강석호 회장의 제안을 거절한 거야? 잘만 하면 너한테도 큰 도움이 됐을 텐데. 할머니한테 인정도 받고.”
내 말에, 이현아 대표는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멀리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등학교 때였나? 덩치 큰 아저씨가 자기 아들이랑 같이 할머니를 찾아와 무릎을 꿇더라고. 그리고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난 아직도 그날이 또렷이 기억나.”
“…….”
“너무 무섭고, 미안해서 할머니 뒤로 숨어 버렸어. 생각해 봐. 어린 나이에 얼마나 놀랐겠어.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할머니 뒤에서 고개만 내밀었는데, 하필 그 아저씨 아들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어. 그 눈빛. 누군가를 경멸하는 그 눈빛…… 아직도 못 잊어.”
기업 사냥꾼 할머니의 뒤에서 많은 일을 겪었을 이현아.
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 안다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이해해.”
“아니. 오빠는 모를 거야. 정말, 그 눈빛을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온몸에 털이 쭈뼛 서고 혀가 굳어서 말도 나오지 않는 그 기분을.”
“그래서 아직도 강석호를 무서워하는 건가? 아니, 연민이라고 해야 하나?”
이현아는 내 말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
“그렇게 무섭고 미안한 사람인데, 이번엔 왜 거절한 거야?”
“어떻게 알았어?”
“말했잖아. 나 모르는 거 없다고.”
“미치겠다 정말. 사람들 뒷조사도 하고 다니는 거야?”
“먹고 살려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현아.
나는 그녀가 벤치에 내려놓은 캔 음료를 따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 안에 담긴 그녀의 조금 전 기억을 들으며.
“그래서 디몰에 투자했던 거야? 반대하는 할머니 졸라서.”
“……!”
“강석호에게 미안했겠지. 넌 그런 아이니까.”
“…….”
음료 캔에서 들려온 기억.
디몰에 투자한 것은 김선녀 여사가 아닌 이현아였다. 반대하는 김선녀 여사를 조르고 또 졸라, 어렵게 투자한 것이었다.
단지, 강석호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그날 자신을 경멸하는 그 눈빛 때문에.
하지만 지금의 디몰은 완전히 망가졌고, 이현아는 할머니에게 신뢰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할머니에게 맡겨진 이현아.
그런 그녀에게 할머니의 신뢰는 전부였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부했고, 지금도 그 이유로 회사를 물려받으려는 것을 잘 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넌 이 짓이 안 어울려.”
“…….”
“할머니도 이미 아실 거야. 네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걸.”
고개를 푹 떨구는 이현아.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현아야. 할머니도 네가 행복하게 사는 걸 더 좋아하실 거야. 할머니니까. 네 할머니니까.”
“……정말 그럴까?”
“그래, 아까도 말했잖아. 나 모르는 거 없다고.”
내 말에 잠깐 고민하던 이현아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래도 내가 벌린 일인데 내가 마무리해야지. 할머니도 그걸 원하실 거야.”
“거짓말. 자신 없어서 지금도 망설이고 있는 거잖아.”
“아니야!”
“그래서 내가 왔잖아.”
“……?”
“바론 주주들을 설득해 줘. 너도 이미 알잖아. 강석호가 바론의 돈을 자신이 만든 페이퍼 컴퍼니로 돌리려 한다는 것을. 할머니 믿고 투자한 주주들이 그냥 그놈에게 당하게 할 거야?”
이현아는 놀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알았어?”
“또 잊었나 보네. 난 다 안다니까.”
지난 며칠.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기억을 들으며 강석호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그리고 답을 얻었다.
최두영의 이름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강석호.
알바오와의 거래는 물론 그 페이퍼 컴퍼니로 할 것이다. 그리고 레토로트를 만들기 위한 식재료들의 매입은 바론의 자본으로 하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주주들의 눈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불리려는 수작이다.
이현아는 나를 물끄러미 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정말 할 수 있겠어?”
“내가 누구냐?”
“이건 강석호가 몇 년 전부터 준비한 일이야.”
“그러니까 서둘러야지. 길게 끌수록 불리해져.”
“…….”
“할머니 주식 안 지킬 거야? 할머니 믿고 바론에 투자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도 곧 당했다고 할 텐데? 그래서 너도 강석호의 이번 제안을 거절한 거잖아.”
“……!”
“잘 생각해 봐. 알고도 묵인하면 너도 공범이 되는 거야.”
“…….”
“김선녀 여사님과 다른 분들의 지분도 모두 모아 줘. 그날 바로 끝낼 수 있도록 말이야.”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군 이현아.
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해 볼게.”
* * *
딩동! 딩동!
거대한 저택의 벨을 누르자, 곧바로 문이 열렸다.
그리고 긴 정원을 지나 걸어오는 한 남자가 양팔을 벌리며 내게 소리쳤다.
“매제! 매제가 무슨 일이야, 우리 집에 다 오고?”
환하게 웃는 BO 푸드의 김지욱 회장.
나는 가볍게 그와 끌어안고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형님께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부탁?”
“네.”
“자자. 날도 추운데 들어가자. 밥은 먹었어?”
“네. 지금 몇 시인데요. 당연히 먹었죠. 차나 한 잔 주세요.”
“그래.”
잘 정돈된 정원이 훤히 보이는 거실.
김지욱 회장은 소파의 상석에 앉아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회사는 별일 없지?”
“네.”
“그래. 무슨 일이야? 내가 뭘 도와주면 되는데?”
“바론의 주주들이 필요합니다.”
현재 식품회사 1위인 바론과 2위인 BO 푸드.
대주주들이 주식을 나눠서 투자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흠…….”
“가능할까요?”
내가 묻자, 김지욱 회장은 큰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근데 왜?”
나는 차분히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게 모든 사연을 들은 김지욱 회장은 한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매제가 지금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알아?”
“네. 압니다.”
“잘못하면 매제가 더 다칠 수 있어. 강석호 그놈이 어떤 놈인데…….”
“저도 만만한 놈은 아닙니다.”
“하긴 우리 매제가 좀 저돌적이긴 하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좋아하고. 하핫.”
“…….”
“시간을 좀 줘. 나도 생각해 볼 것들이 좀 있으니까. 이건 우리 주주들도 위험해질 수 있는 사항이잖아.”
“네. 이해합니다.”
“식겠다. 차 들어. 이거 귀한 차니까.”
그렇게 김지욱 회장은 내게 차를 마시라 권유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 *
“어머 도련님!”
현관문을 연 김재열 이사의 아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사님 계세요?”
“네. 지금 자는데.”
“벌써 자요?”
“아뇨. 아직이죠. 어제 밤새도록 술 처먹고 들어와서 아직도 자는 거예요.”
“와. 형수님은 그걸 그냥 두세요? 저라면 바로 내쫓았을 텐데?”
“그러게, 내가 부처지. 이후…….”
“제가 좀 깨워도 될까요?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네. 들어가 봐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안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육중한 몸을 웅크리고 잠든 김재열 이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사님.”
“이사님. 이사님. 이사님!”
그는 내가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침대의 옆에 걸터앉아 그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이스 샷!”
김재열 이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을 벌떡 일으켜 박수를 쳤다.
“나이스! 나이스!”
“어제도 골프 하신 거예요?”
“어…… 왔어?”
까치집을 지은 머리를 내리며 씩 웃는 김재열 이사.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술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네. 얼마나 마신 거예요?”
“그냥 적당히. 아 맞다…… 지훈아 지금 몇 시야?”
“여섯 시요.”
“벌써?”
부랴부랴 일어나 벗어 둔 티셔츠를 입는 김재열 이사.
아마 오늘도 술 약속이 있나 보다.
“또 술 마시러 갑니까?”
“내가 좋아서 이러냐? 다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하는 거지.”
“좋아서 그러는 거잖아요.”
“무슨!”
김재열 이사는 내 옆으로 바짝 붙어,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대며 말을 이었다.
“형수한테 절대 그런 말 하지 마라. 저 사람 순진해서 진짜 그런 줄 안다.”
“오늘 또 나가면 형수님이 짐 싸 놓는다고 하셨는데요?”
“진짜?”
“네. 진짜요.”
그의 굳어지는 표정에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쉬고 가족이랑 외식이라도 좀 해요.”
“하…… 그나저나 집까지 무슨 일이야?”
“전화를 하도 안 받으셔서.”
“전화했었어?”
“네. 많이 했죠.”
김재열 이사는 침대 옆에 휴대전화를 보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어제 너무 많이 마셔서 완전히 뻗었네.”
“이사님. 바론 주주들 좀 모아 줄 수 있으세요?”
“응, 거기 주식 좀 있는 분들 많지. 근데 갑자기 바론은 왜?”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지금까지의 얘기를 모두 했다.
그러자 김재열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직접 나서려고?”
“네.”
“그럼 오히려 역효과 나지 않을까? 바론에서 강석호는 신이야. 절대적으로 추앙하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네. 대충은 압니다.”
“그놈들은 네가 떠들면 안 믿을걸? 아무리 사실이라고 해도 절대 믿지 않을 거야.”
“믿지 못하면 뭐, 자기만 손해 보는 거죠.”
“할 수 있겠어?”
“네.”
김재열 이사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 고개를 저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너, 뭔가 있구나?”
“당연히 있죠.”
“뭔데?”
“비밀입니다.”
“나한테도 비밀이야?”
“아니요. 이사님한테만 비밀입니다.”
“나쁜 놈.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해 주실 거죠?”
“그럼 해야지. 원지훈이가 뭐 있다면 무조건 해야지.”
“고맙습니다.”
나는 씩 웃고, 침대 밑에 널브러진 트레이닝 복 바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김재열 이사의 옆에 던져 줬다.
“그리고 이건 다른 부탁인데, 바지 좀 입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