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94
193화 왕관의 보석 (3)
국민을 위해서.
한국에 살 때도 정치인들이 늘 입에 담는 말.
정작 그 국민이 대체 누굴 가리키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말이다.
지금 시대도 마찬가지다.
극심한 빈부격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빈민층이 다수인 상황에서 말치레 일지라도 ‘백성을 위한다.’라는 지도자의 발언이 중요하다.
물론 일본처럼 그딴 거 안 따지는 나라도 많기는 하지만, 적어도 기야스웃딘은 아니다.
사법부를 독립시키고 가난한 과부에게 진심으로 사죄할 정도로 백성을 위하는 왕이었으니까.
속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그렇다는 뜻이다.
“캘커타의 백성들을 위해서 허락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는 벵골 술탄국 전역의 백성들에게도 큰 이득이 될 것입니다.”
“흠…….”
“만약 샤께서 받아들이지 않으시겠다면…….”
“나를 협박할 생각인가?”
기야스웃딘의 표정이 단단하게 굳었다.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격하게 반응한다는 건 그만큼 위협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아니요. 샤께서는 아무 일도 하시지 않았는데, 제가 샤를 협박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흠흠. 그래서 뭘 할 생각인가?”
“소문은 들으셨겠지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원정대를 전부 불러들였습니다.”
그 수 3만.
인구가 많은 벵골 술탄국으로서도 쉽게 볼 숫자는 아니다.
“원정대로 갠지스강을 장악하여 북부 영지를 말려 죽일 것입니다.”
“…….”
말할 것도 없이 기야스웃딘과 가네샤는 정적이다.
하지만 북부 군벌은 이빨이 빠지긴 했어도 여전히 호랑이인 델리 술탄국으로부터의 침략을 방어해주는 입술 같은 존재다.
그들이 고사하고 나면 이가 많이 시리겠지.
“평화 조약을 맺은 것으로 알고 있다만?”
“어디까지나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공격하지 않아도 타격을 입힐 방법이야 수도 없이 많지요. 그렇군요. 예를 들면…….”
기야스웃딘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다른 영지에 무기를 넘겨주고 대신 싸우게 한다든가.”
그 다른 영지가 꼭 벵골 술탄국 내의 영지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무서운 사람이었군.”
“예. 무서운 사람이지요. 하지만 착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만한 힘과 지혜를 갖고도 먼저 침략하고자 한 적은 없으니까요.”
먼저 건드린 건 그쪽이다.
난 대가를 받아내는 것뿐이다.
“눈이 참 맑아.”
갑자기?
“눈은 맑은데 광신도가 보여주는 광기보다 더한 걸 보여주는 사람은 처음일세.”
“광기라니요. 저처럼 단순 명확한 논리로 움직이는 사람도 적을 겁니다.”
친구가 되고자 한다면 협력한다.
관심 없으면, 이쪽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때리면 문다.
이보다 명확할 수 있을까?
“백성을 위한 현명한 결단을 부탁드립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군. 나라의 안보를 판돈에 올릴 수는 없으니.”
기야스웃딘은 결국 수긍했다.
평소였다면 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그는 북부 군벌에게 여러 제약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서 큰 이득을 얻은 상황.
이 정도는 양보해줘야 북부의 불만도 달랠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벵골 술탄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실수라 불리게 될 것이다.
나는 각 지역에 지부를 설치함으로써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경제를 완전히 장악해 나갈 테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또 뭔가?”
“서쪽으로는 오디샤, 동쪽으로는 아라칸 왕국에 손을 뻗으려고 하고 계시지요?”
오디샤는 벵골 술탄국 서남쪽의 토후국이다.
새로운 판두아의 경계에 있는 나라로 한때는 나름 찬란한 역사를 꽃피웠으나, 이렇다 할 특산품이나 자원이 없어 경제적으로 무척 낙후된 지역이다.
수도를 국경에 배치한 이유가 정치적인 이유도, 외국의 침략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서남쪽으로 영토를 더 넓히겠다는 계획도 있으리라.
“그렇다만?”
“원하신다면 무기를 팔 용의도 있습니다.”
“총포를 말하는가?”
“용왕의 분노를 말합니다.”
내 말에 기야스웃딘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게 정말인가?”
“예. 물론이지요. 값만 제대로 쳐준다면 못 팔 것도 없지요.”
기계와는 달리, 화학 제품은 뜯어본다고 해서 복제할 수는 없다.
다이너마이트 역시도 마찬가지고.
“사지. 얼마든지 사겠네.”
“꽤 비쌉니다만?”
“병사의 목숨값에 비하면 싸겠지.”
“그건 그렇지요.”
징집병이야 좀 죽어 나간다고 해도 별문제 없겠지만, 상비군이 죽는 건 정말 뼈아플 테니까.
“개당 은 20냥입니다.”
“……너무 비싼 게 아닌가.”
“그만한 가치를 한다고 봅니다만. 뭉쳐서 쓰면 어지간한 성도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애초에 산을 뚫으려고 만들어진 거니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건 잘 아네. 하지만 소모품이 아닌가. 부유한 벵골 술탄국이라 해도 자칫 허리가 휘청일 수도 있네.”
“설마 그 귀중한 무기를 물 쓰듯이 쓰려는 건 아니시지요?”
“전쟁이라는 게 어디 예측으로 돌아간 적이 있던가?”
확실히 좀 세게 부른 감이 있긴 하다.
일부러 그랬다.
그래야 유리한 조건을 받아낼 수 있으니까.
“좋습니다. 은 10냥으로 하지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또 뭔가?”
“용왕의 분노를 사용할 때, 이는 ‘자라트카루의 가호’임을 분명하게 밝혀주세요.”
벵골 술탄국에 오고 나서 알았다.
나름 글로벌 스타라고 생각했는데, 인도에 오니 백성 레벨에서는 나를 아는 이가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을.
따라서 내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인지도를 쌓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백성 대다수가 믿는 힌두교 쪽이면 더욱 좋다.
이슬람은 각 지역의 라자들에게 협력을 얻어내면 되는 거니까.
“물량은 얼마나 되나?”
“생각보다 많습니다. 꾸준히 생산하고 있으니까요.”
“……세계의 패자(覇者)가 되려는 건가?”
“백성을 위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엄청난 무기를 만들어 놓고 백성을 위해서다?”
“용왕의 분노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산을 뚫어 길을 내기 위해 만든 것이지요.”
하지만 무기로 써도 효율이 너무 좋다.
제대로 던지면 한 개로 훈련된 정예병 수십 명을 죽이거나 빈사 상태로 만들 수 있으니까.
“산을 뚫어…….”
“저는 도로와 항만을 정비, 그리고 치수야말로 평화의 시기에 군주가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니까요.”
기야스웃딘은 깊게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저렴하게는 안 되나?”
“은 열 냥에서는 한 문도 깎아드릴 수 없습니다. 이 제안을 거부하신다면 거래는 없던 것으로 하지요.”
“……알겠네. 그 조건으로 하지.”
빙고.
“그러면 계약서를 작성할까요?”
이제 아사신에 대해 파악만 하면, 필요한 준비는 완료된다.
왕관의 보석.
인도 아대륙을 내 영향권에 넣을 준비가.
인도 아대륙을 손에 넣고 나면 유럽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는 셈.
또한, 영락제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인도인 용병으로 구성된 강력한 군대를 가지게 될 테니까.
***
강해인의 경호는 춘자에게 맡긴 채, 무함마드와 석피는 왕궁 내부를 걸어 다녔다.
물론 기야스웃딘이 정해준 범위 내에서.
“왕궁이 생각보다 좁지요?”
“어우 깜짝이야.”
석피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기척은 처음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그가 놀란 건 상대의 외모.
태어나서 이렇게 까만 사람은 처음 본다.
“어…… 그게…… 무함마드. 뭐라고 하는 거냐?”
“왕궁이 생각보다 좁지 않으냐고 말했어.”
“대만 왕궁보다는 큰데.”
“그렇게 전해주지.”
아랍어를 모르는 석피는 입을 다물고, 대신 무함마드가 대화를 받았다.
“벵골 술탄국에서는 보기 드문 외모네요. 혹시 에티오피아 제국에서 왔습니까?”
“오. 창해 주식 상단 분이라고 들었는데 에티오피아를 아시다니 의외군요.”
“잘 알지요. 솔로몬 왕의 후손이자, 악숨 제국의 후예가 세운 나라가 아닙니까.”
현 에티오피아 제국은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 사이의 아들, 메넬리크의 후예가 세웠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말을 믿는 이는 없지만, 아니라고 우기는 것도 이상해서 그냥 적당히 넘어가는 모양새다.
참고로 이슬람교에서도 솔로몬은 지혜의 대명사로, 아랍어로는 술라이만, 튀르크어로는 쉴레이만이라고 한다.
“동쪽에서 오신 분이 고향에 대해 아실 줄은 몰랐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환관 하브시라고 합니다.”
“에티오피아 인이 벵골의 술탄을 섬긴다고요?”
그것도 환관?
“노예로 팔려왔습니다. 아, 물론 지금은 아닙니다. 정의로운 샤께서 해방해 주셨으니까요.”
그는 기야스웃딘에 대해 상당한 충성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샤의 노예라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다만 무함마드는, 특히 석피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미약하게나마 피 냄새가 났으니까.
피 냄새는 나지만 아사신의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왕궁을 안내해 드릴까요?”
“그래 주신다면야 저희야 좋지요.”
둘은 환관 하브시와 함께 왕궁을 걸었다.
“이곳은 전시관입니다. 주로 시와 문학작품을 보관하는 곳이지요.”
“시?”
“샤께서는 학자와 시인의 후원자이기도 하시니까요. 페르시아의 유명시인인 하페즈의 시도 있을 정도입니다.”
“여기서 제일 유명한 시는 뭐죠?”
“벵골 최초의 무슬림 시인인 샤 무함마드 사기르의 ‘유스프-줄레카(Yusuf-Zulekha)’가 유명합니다. 그는 현재 궁정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시에 별로 관심이 없던 무함마드는 가볍게 넘겼다.
사실 무함마드가 잘 몰라서 그렇지, 유스프-줄레카는 벵골어 문학 중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유스프와 줄레카의 사랑을 묘사한 낭만적인 이야기다.
“하하하. 다음 곳으로 가볼까요?”
환관 하브시는 그들이 예술에 별로 관심이 없음을 눈치채고 정원으로 데려갔다.
정원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녹색.
잔디나 풀은 물론, 나무도 녹색 일색이었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알록달록한 꽃을 심어두었을 텐데.
그러한 것도 없었다.
자칫 단조롭다는 생각도 들 수 있으나, 정원 가운데에 있는 붉은 건물이 포인트를 줌으로써 상당히 조화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정원도, 도로도, 건물도 전부 네모반듯하니 무척 안정감을 주었다.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여기도 차가 있습니까?”
“물론 있지요. 귀한 손님께는 용왕차를 대접합니다만, 두 분께는 특별한 것도 아니지요?”
“하핫.”
특별하지 않을뿐더러, 거의 매일 같이 지겹도록 마시는 게 용왕차다.
이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에 가깝다.
강해인이 이상한 괴질에 걸릴 수도 있으니, 항상 끓인 차를 마시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차가 부족할 때면 보리를 넣고 끓인 차를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용왕차를 마시면 정말 무병장수할 수 있습니까?”
“장수는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히 병에 덜 걸리는 것 같기는 해요. 예전에 믈라카에서 그 난리가 일어났을 때도 선원들은 대부분 건강했거든요.”
이는 항상 차를 끓여 마시는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강박적으로 손을 씻고, 매일 몸을 찬물로 몸을 닦게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예. 귀빈이시니까요. 편하게 질문하셔도 됩니다.”
무함마드는 지나가듯이, 아주 태연하게 물었다.
“혹시 그쪽이 아사신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샤께서도 압니까?”
무함마드의 말에 환관 하브시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