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97
196화 빛을 갈망하는 자 (3)
나와 기야스웃딘 사이를 이어주던 이븐 알 하쉬르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독에 당한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하필이면 내 방에서 나와 춘자, 그리고 이븐 알 하쉬르, 이렇게 셋이 한동안 시간을 보낸 후에.
하필이면 기야스웃딘의 친위대, 그것도 아사신으로 의심되는 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
정황만으로 따졌을 땐 내가 이븐 알 하쉬르를 독살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데도 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굴렸다.
과연 기야스웃딘이, 혹은 벵골 술탄국의 법원이 과학적으로 내 무죄를 증명해 줄 것인가.
당연하지만 그런 믿음은 없다.
그리고 나는 장전된 총을 남에게 맡기고 쏘지 않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다.
“밖에 누구 있는가! 안으로 들어와라!”
큰소리로 아랍어로 말했다.
친위대 몇 명이 안에 들어왔다.
그들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빨리 어의에게 데려가라. 시급하다. 빨리!”
친위대 한 명이 이븐 알 하쉬르를 업고, 그 옆에서 한 명이 보조하며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남은 여덟 명은.
특히 아사신으로 추정되는 이는 험악한 표정으로 내 앞을 가로막았다.
“잠시 대기해주셔야겠습니다.”
“대기?”
“유력한 용의자니까요.”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진실을 감추는 일은 있어도, 거짓말은 최대한 지양한다.
신뢰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가장 쉽게 잃어버릴 수 있는 공든 탑이니까.
“그것은 샤께서 판단해주실 일입니다.”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군.”
“무슨…….”
“기야스웃딘은 접대의 관습을 어기고 손님을 함정에 빠뜨렸다. 이에 단호히 저항하는 바이다.”
탕!
소매 속에 숨기고 있던 작은 총으로 녀석의 머리를 쏘았다.
증거는 없지만 아사신으로 추정되는 녀석이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어떤 무술을 익히고 있던 총 앞에서는 평등하지.”
친위대들은 곧바로 무기를 뽑아 들고 나에게 달려들었지만,
타타탕!
수석총병 두 명과 춘자가 곧바로 총을 쏘아 세 명을 쓰러뜨렸다.
이븐 알 하쉬르를 데려간 두 명을 제외하면 남은 건 네 명.
하지만 그들은 순식간에 쓰러진 네 명을 보고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불행한 일이야. 계획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잘 지내고 싶어도 이간질하는 녀석이 꼭 나타나니까. 하지만 이것도 인생이기는 하지.”
“Dharā!”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훈련된 정예답게 빠르게 달려들었다.
수석총의 단점.
장전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숙련된 사수라고 해도 1분에 4발 쏘는 게 한계다.
그것도 아무 방해가 없을 때 이야기이고.
하지만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약점을 알고 있으니 보완수단도 준비했다.
수석총병 둘은 총에 부착된 검을 이용해 창처럼 휘둘렀다.
방이라고는 해도 귀빈에게 배정된 방인 만큼 매우 넓어서 창을 휘두르는 데 장애는 없었다.
춘자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태생적인 한계로 힘에서는 밀리지만, 익숙하다는 듯 능숙하게 흘려내며 상대의 급소를 베어나갔다.
그리고 나는.
탕!
다른 총을 꺼내 쐈다.
이소군이 안전을 위해서라며 하도 잔소리를 해대서 가져왔는데, 진짜로 쓸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총은 더 있다. 죽고 싶지 않다면 멈춰라.”
소매에 손을 집어넣어 다른 총을 꺼내는 시늉을 했다.
거짓말이다.
이소군은 치마를 입기 때문에 양쪽 허벅지까지 해서 총 네 자루의 총을 숨겨두지만, 나는 바지를 입기 때문에 딱 두 자루만 가져왔다.
하지만 타짜의 기술을 이용해 총을 수납하고, 새로운 총을 꺼낸 것처럼 위장했다.
손은 눈보다 빠르기에 눈썰미 좋은 사람도 알아보기 힘들다.
“어서 무기를 버려!”
친위대는 상대를 쉽게 제압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 결국 무기를 버렸다.
불행 중 다행이다.
“우리는 함정에 빠졌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 총소리가 들렸을 테니 곧 벌떼처럼 모여들 거다.”
총의 단점 두 번째.
일을 은밀하게 처리하기 어렵다.
소음기 같은 건 원리도 모르니까.
우리는 친위대를 기절시킨 후 창문을 통해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잠시.”
가져왔던 짐 중 하나인 신호탄을 꺼냈다.
간이 압착점화기로 불을 붙이자, 신호탄에서 붉은 불꽃이 하늘로 올라갔다.
끼이익.
펑!
만약을 대비해 준비했다.
일반 신호탄은 위험하니 나를 구하러 오라는 뜻.
붉은 신호탄은 최악의 상황이니 각자 살길을 찾으라는 뜻이다.
……솔직히 붉은 신호탄은 쓸 일이 없기를 바랐다.
구조를 기다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라는 뜻이니까.
“이제로 어디 가지?”
밖으로 나가는 길은 안다.
하지만 그 길에는 분명 적이 깔려있을 터.
가장 위험한 길이다.
적이 없는 곳으로 돌아서 가야 하는데, 당연하지만 어느 나라든 왕궁 구조는 극비.
내가 알 리가 없다.
“이쪽입니다.”
춘자가 앞장섰다.
운이 좋은 건지, 그녀의 감각이 뛰어난 덕인지 적병과 마주치지는 않았다.
때로는 정원 풀숲에 숨고.
때로는 담을 넘으며 끊임없이 나아갔다.
다행히 우리 모두 신체 능력이 뛰어났기에 발목 잡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무술이나 운동 재능은 없어도, 기초 체력만큼은 뛰어나니까.
“근데 이 길이 맞아?”
“모릅니다.”
“응?”
“적의나 살기가 느껴지는 곳만 피하고 있습니다.”
“…….”
춘자는 현실에 매우 충실한 사람이구나.
나라고 해서 뾰족한 수는 없었기에 뭐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허를 찌르는 것이긴 하다.
보통은 밖으로 도망친다고 생각하지, 오히려 안으로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다음이 없다는 것.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석피와 춘자의 아버지께서 주신 가르침인가.
조선에서는 평범한 사냥꾼이라지만, 솔직히 자식들을 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 같았다.
“죽을 위기에 처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을 늦춰라. 그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어떤 일?”
“그거야 저도 모르지요.”
운에 기대는 방식은 내 취향이 아닌데.
틀린 말은 아니다.
얌전히 죽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훌륭한 가르침이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뒤로 대화 없이 계속 나아갔다.
자칫 말소리 때문에 들킬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안전한 장소에 도착했다.
“어…….”
어떤 의미로는 매우 위험하지만.
단번에 이곳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화려한 옷차림을 한 수많은 여인들이 사는 곳.
금남의 구역.
일부 남성에게는 도원향으로 여겨지는 장소.
술탄의 하렘이다.
특히 기야스웃딘은 역대 군주 중 손꼽히는 하렘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데, 그 규모가 무려 1만 5천 명.
하렘의 여인들을 위해 성벽을 두른 도시까지 만들었다고 할 정도다.
단순히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더욱 장관이었다.
하렘은 술탄만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반라의 미녀들이 기다리는 곳이 아니었다.
극장과 같은 오락시설, 옷이나 화장품을 거래하는 시장 같은 장소까지 갖춘 말 그대로 도시다.
여자들만 사는 도시도 아니었다.
아주 드물게 흑인 남성들이 있었는데, 수염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대부분 여성스럽게 생긴 것으로 보아 환관으로 추정되었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남자로서는 내 부하 몇 명이 죽는 것보다 내 아내의 침소에 외간 남자가 드나들었다는 사실에 더 분노하지 않을까.
심지어 하렘은 부인뿐만 아니라 어머니, 딸, 첩 후보도 있다.
“잘되었습니다.”
“뭐?”
“이곳이라면 무장한 군대가 쉽게 들이닥치지 못할 테니까요.”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하며 혼란을 진정시켰다.
지금 중요한 것은 살아서 무사히 왕궁을 탈출하는 것.
그 외 다른 잡생각은 모두 지우자.
“왕궁을 벗어나는 건 최우선 사항이지만, 그런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니야. 서남쪽에 바다로 이어지는 강이 있어. 거기까지 가야 한다.”
“나루터에도 적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알고 있겠지. 하지만 육로로 가면 더 답이 없어.”
외국인인 우리는 너무나도 눈에 띄니까.
게다가 지리를 거의 모르고, 벵골어도 모르는 만큼 더더욱 위험하다.
하렘 내에 있는 정원 풀숲 옆에 누웠다.
“잠시 쉬자. 밤이 되면 움직이고.”
“예. 그게 좋겠습니다.”
차마 말은 꺼내지 못했지만 석피와 무함마드가 걱정된다.
왕궁 외곽에 대기하고 있는 수석총병들도 걱정되고.
비상 신호를 보내긴 했지만, 그들이 위기에서 잘 벗어났을지는 모르겠다.
그나마 수석총병은 외곽에 있으니 빠져나갈 가능성이라도 크지만, 석피와 무함마드는 아마……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저 기야스웃딘이 바로 죽이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우리는 하렘 내 정원 구석에서 번갈아 가며 휴식을 취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잠깐이나마 잠을 자는 것도 능력이다.
체력이야말로 모든 일의 기본이니까.
***
“전하. 전하.”
“음.”
긴장하고 잔 덕인지 바로 눈이 떠졌다.
열대, 혹은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벵골 술탄국이라지만, 시기적으로 겨울인지라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급하게 나오느라 제대로 옷을 챙기지 못한 탓이기도 했고.
“이제 움직이셔야겠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
짙은 구름이 끼었다.
그나마 사물을 식별하게 해주는 달빛도 가려진 상태.
조금 멀리 보이는 건물의 불빛을 제외하면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밤 항해를 밥 먹듯이 하는 만큼, 밤눈은 밝은 편이다.
하지만 밤 항해 때는 세상 어디든 어둠 천지고, 지금은 손 뻗으면 닿을만한 위치에 불빛이 있다.
춥고, 졸리고, 배고픈 상태.
그 빛에 끌리는 건 당연한 본능이리라.
왜 불나방이 불 안으로 달려드는지 알 것 같다고 할까.
“가자. 하렘이니까 내부 경비는 적을 테니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자.”
하렘 밖에 나간 이후가 문제지, 하렘 내에서는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어느 방향으로 갈까요?”
지금까지는 적을 피해 움직이는 것을 우선했으므로 방향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탈출이 목적이므로 방향을 봐야 한다.
“어디 보자.”
나침반을 꺼냈다.
원정대에서 쓰던 물 위에 띄우는 지남부침이 아니라, 현대에서 흔히 보이는 그 나침반이다.
자석을 공업적으로 만든 건 아니고, 바늘 위에 지남철(指南鐵)을 올려놓은 방식으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남부침만큼 정확하지는 않다.
그래도 휴대하기 편하고 대략적인 방위를 알기엔 부족함이 없다.
“저쪽이다.”
지리적 위치로 봤을 때, 새로운 수도 판두아는 현대 인도의 카라그푸르(Kharagpur)라는 도시의 위치와 비슷하다.
인도에서 근무해본 한국인에게는 나름 유명한 공업 도시로, 인도 최초의 공과대학교가 창립된 도시이기도 하다.
캘커타와 근접해 있고, 면직물 산업이 발달해 있으며, 여러 원자재를 수급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기야스웃딘이 노리는 오디샤로 향하는 길목이기도 하고.
“서남쪽으로 오십 리(20km)쯤 가면 강이 나올 거야. 거기서 나룻배를 빌려 바다로 가자.”
몰래 가져가겠지만 빌려가는 거다.
살아남고 나면 열 배 이상의 보상을 해줄 테니까.
“강이라면 북쪽이 더 가깝지 않습니까?”
“거기는 경비가 깔렸을 테니까. 게다가 강의 폭이 얇아서 들키기 더 쉬워.”
문제는 나룻배로 캘커타까지 갈 수 있느냐 하는 건데…….
“이래서 내가 육지를 싫어해.”
길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처음부터 함대를 이끌고 왔다면 일이 조금 더 쉬워졌을 텐데.
새로운 판두아는 내륙에 있다.
강 두 개 사이에 있기는 하지만, 큰 강이 아니라서 보선 같은 큰 배가 오고 갈 수는 없다.
“잠시만요. 누가 이쪽으로 옵니다.”
“이 시간에?”
“쉿.”
그냥 지나가기를 바라며 숨죽이고 있는데, 등불을 든 젊은 여인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정확히 이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Sēkhānē kē‘u āchēna?”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랍어로 되묻고 싶었지만, 하렘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리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잠깐 정원을 거닐고 있었어요.”
춘자가 당당하게 그녀를 향해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 말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