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01
200화 천명
“책임지고 샤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그리고 그대를 벵골 술탄국의 샤로 추대하겠네.”
기야스웃딘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외교적으로 대참사긴 하다.
나 역시 번왕이긴 해도 정식 왕이고, 아시아 최고의 부국이자 손꼽히는 강국이라는 벵골 술탄국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책임을 지고 왕 위에서 스스로 내려온다?
역사에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 정도면 내 진심이 전해졌으리라 보네. 굳이 왕궁으로 가지 않아도 되니, 잠시 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죄송하지만 한번 신뢰가 깨진 상대는 철저하게 의심하는 성격이라서요. 왕궁으로 가긴 어렵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기야스웃딘은 투구를 벗었다.
그리고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도 풀어서 친위대에게 넘겨주었다.
“물러나라.”
이어 나를 보았다.
“내가 먼저 그대를 믿겠네. 이만하면 되겠는가?”
“……그러죠.”
기야스웃딘의 무예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장전된 총이 있다.
여차했을 때 유리한 건 이쪽이다.
“물러나라.”
나 역시도 군대를 뒤로 물렸다.
개발되지 않은 강 하구의 빈 공터.
무기를 든 이들은 거리를 벌렸고, 그 한가운데 나와 기야스웃딘 둘만이 남았다.
“난 이제 얼마 살지 못하네.”
“……네?”
“독인지, 병인지 모르겠어. 어의의 말에 의하면 2년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하네.”
“찾아보면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희망은 중요하지. 하지만 나는 샤로서 실패했을 때를 생각해야 해. 만약 내가 갑작스럽게 죽는다면, 벵골 술탄국의 미래는 어려울 거야.”
“자식이 많지 않습니까?”
“내 자식들은 하나같이 뛰어나지. 하지만 너무 바르게 키웠어. 의심하는 버릇이 없네. 가네샤를 비롯한 각 지역의 라자도 그렇지만, 왕궁에서 암약하고 있는 아사신의 마수를 피하기 어려울 거야.”
기야스웃딘의 자식들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딸인 비디아 신하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은 가능했다.
하렘이라는 온실 속에서 커서 그런지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지적으로 모자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어떻게 하면 성인이 이렇게 순수할 수 있냐는 생각을 했지.
“원래 계획대로라면 수도를 옮기고, 그대의 옛 주군이었던 조선 왕처럼 손에 피를 묻혀가며 자식들의 앞길을 열어주려고 했네. 그리하면 분명 벵골 술탄국엔 정의와 태평성대가 열리리라…… 그리 생각했지.”
내가 쓴 기록의 첫 장에 등장하는 게 바로 조선이다.
그리고 조선의 정치에 대해서는 상세히 쓰여 있다.
“하지만 난 실패했어. 법을 강조하고 철저하게 지킨 나머지, 내 손으로 위법을 행할 수는 없었네. 그 결과 남은 것이라곤 위험한 탐욕자들과 순진한 자식들뿐이었지. 그때 자네가 왔네.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은가?”
“보통은 그런 상황이라고 해도 외국인에게 왕위를 넘겨줄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아니지. 외국인이라고 해도 강대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고, 나라를 크게 키울 능력이 있으며, 왕위에 크게 집착하지 않은 자라면 충분히 넘겨줄 만하지 않은가.”
“샤께서 특이한 겁니다.”
말하면서도 내가 너무 동북아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필리핀의 술루 술탄국의 경우, 무함마드의 방계 후손을 사위로 맞아들이고 왕위를 물려주었다.
동남아의 패자였던 마자파힛 제국의 경우, 딸인 기타르자를 왕위로 내세웠다가 그녀의 아들인 하얌 우룩 황제에게 제위를 물려줌으로써 전성기를 구가했다.
벵골 술탄국도 수많은 암살로 인해 국호는 그대로되, 왕조가 수도 없이 바뀌는 경험을 해야 했고.
오히려 무조건 창업 군주의 후손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편협한 생각이다.
“나라고 해서 무작정 그대를 믿은 건 아닐세. 왕궁 내에 도사리고 있는 아사신들이 그대를 노림에도 일부러 방관했지.”
“왜죠?”
“만약 천명이 그대에게 있다면, 정말로 신이 그대를 선택했다면 어떠한 위기에도 반드시 살아남으리라 생각했으니까.”
“비겁한 변명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인간에겐 무언가 믿을 게 필요하네.”
“알라를 믿는 것만으로는 모자랐습니까?”
“모든 것은 알라의 뜻이기에 알라의 뜻을 정확히 헤아리기 위한 시험이 필요했네.”
그동안 겪었던 고생과 위기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기야스웃딘의 처연한 태도에 마냥 분노하기도 어려웠다.
엄밀히 말하면 날 죽이려 한 것은 그가 아니니까.
그저 방관함으로써 시험하려 했던 것뿐이니까.
그 역시도 죄라면 죄지만…….
“아사신들이 그대를 노리는 틈을 타, 나는 그대의 부하들에게 접근했다. 부귀영화를 약속하고 회유하려고 했지.”
“그런데요?”
“어떤 조건을 제시해도 아무도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네. 아무도 그대가 죽거나 패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어떠한 보급도 주지 않았는데 알아서 잘 살아남더군.”
“…….”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충성을 얻을 수 있는가. 나는 그때 천명이라는 것을 느꼈네.”
계속해서 나오는 단어.
천명.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신의 뜻’이라고 번역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기야스웃딘은 신의 뜻이 내게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에서 살아남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도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런 자를 믿고 나라의 운명을 맡겨봐도 되지 않겠는가.”
“원하는 건 그것뿐입니까?”
“그대는 대명의 황제를 상대하려고 하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예상은 했지만 눈치채고 있는 사람이 생겨났구나.
자칫 무언가 일을 벌이기 전에 역모죄로 죽을 수도 있을 터.
설마 이것으로 협박할 생각인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분명히 말하겠네. 황제를 상대할 수 있는 이는 황제뿐일세. 이곳의 말로 하면 샤한샤뿐이지.”
미약하게 부정했지만, 기야스웃딘은 내 말은 듣지도 않았다.
이미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그대가 내게 권유했던 대로, 그대가 벵골 술탄국을 중심으로 이 대륙 전부를 다스리는 샤한샤가 되게.”
“…….”
“그리하여 내 딸 비디아 신하와의 사이에서 낳은 후손에게 샤의 자리를 물려주게. 그것이 내 조건일세.”
냉정히 생각하면 내게는 이득뿐인 제안이다.
샤한샤가 아닌 샤의 자리를 요구함으로써 정실 자리를 탐하지는 않겠다고 선을 그은 셈이기도 하고.
남은 것은 하나.
내가 가장 궁핍하고 어려울 때, 나를 믿고 온갖 지원을 해준 허신애를 배신해야 한다는 것인데…….
“전에 자네는 우리의 계약을 들먹이며 이렇게 말했지.”
1. 캘커타는 벵골 술탄국의 땅임을 분명히 한다.
2. 기야스웃딘 아잠 샤는 새로이 캘커타의 라자가 된 강해인에게 완전한 자치권을 보장한다.
3. 캘커타의 라자는 캘커타의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
4. 캘커타가 벵골 술탄국 내의 거래에 참여할 때는 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5. 캘커타는 벵골 술탄국의 내정에 간섭하거나 참여하지 않는다.
1항과 2항은 없는 셈 치고.
3항과 4항의 모순을 이야기하며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교역의 확장을 허가받았다.
“백성을 위해 현명한 결단을 부탁하겠네.”
이번에는 기야스웃딘이 역으로 3항과 5항에 모순을 말하며, 나에게 샤의 자리를 받으라 권한다.
“거절하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이번 사건의 주동자는 법에 따라 처벌받을 테고. 하지만 처벌받아야 할 사람은 주동자뿐이 아닐세.”
기야스웃딘은 내 군대가 있는 쪽을 보았다.
정확히는 벵골 술탄국의 공주임에도 아군 측에 있는 비디아 신하를.
“비디아 신하는 다른 내 딸들의 명예를 위해 죽어야겠지.”
“처음부터 이중 함정이었군요.”
“그대가 발목 잡는 자를 냉정하게 버릴 수 있는 잔혹한 군주였다면, 이런 고민은 할 필요 없었겠지.”
이 역시도 시험이었다는 뜻이다.
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버리지 못했는데, 모든 일이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조력자인 비디아 신하가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있겠냐는 말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 샤한샤가 되게. 그리되지 못한다면 자네는 대명의 황제에게 죽을 것이고, 그리된다면 아내는 한 명만 둘 수 없네.”
“역대 황제 중에도 아내를 한 명만 두는 예도 있습니다.”
“자네는 수성 군주가 아니라 창업 군주니 경우가 다르지. 창업 군주 중에 그런 이는 없었네.”
이소군이야 원래부터 그렇게 밀고 있었으니 당연히 찬성할 테고.
허신애는 명나라 공주를 상대한답시고 연합전선을 펼치겠다는 말을 했지만, 그녀 속마음은 새로운 부인이 들어오는 걸 싫어한다.
그녀의 허락을 구하겠다는 이야기도 위선에 가까운 이야기다.
허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네가 결정하라고 하는 것은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뜻과 같으니까.
이 업보는 내가 가져가서 평생 속죄해야겠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
작은 어촌에 불과하던 캘커타.
이곳에 보기 드물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기야스웃딘과 왕궁 관리.
벵굴 술탄국의 라자.
인근 군주들이 보낸 사신들.
그리고.
이소군을 비롯한 창해 주식 상단의 간부들.
3만의 원정대와 함께한 명나라 예부의 관리까지.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래도 즉위식인데 너무 초라한 곳에서 하시는 것 아닙니까?”
“왕궁이나 구 수도 판두아에서 즉위식을 치렀으면 더욱 화려하게 하실 수 있었을 텐데요.”
사람들의 뒷말이 들렸다.
이해는 한다.
즉위식이나 왕의 결혼식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나라의 국력을 보여주는 국가적인 행사이기도 하니까.
괜히 왕족의 즉위식이나 결혼식 때 2~3년씩 준비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굳이 급하게, 단출하게 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소박하게 함으로써 주변을, 특히 영락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위에서 통치하는 것이 아닌,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래도 격을 완전히 낮출 수는 없었기에 건물만 초라할 뿐, 식장의 장식은 어지간한 귀족도 쉽게 보지 못한 최고의 명품으로 가득했다.
명나라의 비단과 자기.
조선에서 보내온 대륜선(大輪扇)과 같은 황칠 공예품.
일본의 은 장식품.
벵골 술탄국의 면직물.
대월의 레 리가 보낸 비취옥 장식.
그리고 동남아 여러 국가에서 보내온 값비싼 특산품 등.
각국의 특산품이자 명품으로 가득찬 화려한 즉위식이자 결혼식이다.
결혼식에 앞서 즉위식이 먼저 치러졌다.
“짐은 스스로 부족한 군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기야스웃딘이 내 앞에 섰다.
“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시대의 흐름을 앞서나갈 수 있는 자에게 샤의 자리를 맡기고자 한다. 그것이, 짐이 생각할 수 있는 벵골 술탄국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샤의 상징인 벵골 술탄국의 왕관을 벗어 들어 올렸다.
“나가 라자 강해인.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누구보다 빨리 적응하고 앞서나가는 신인(神人). 알라께서 선택하신 선지자이며, 힌두교에서 말하는 시바의 화신이자 자라트카루의 후손이기도 하다.”
순간 얼굴 근육이 움찔했다.
그렇게 소문을 퍼뜨리긴 했지만, 직접 들으니 중2병 같아서 얼굴이 간질간질해진다.
“그를 외지인이라 생각하지 마라. 그의 어머니는 고대 아유타국 공주의 후손으로 천년의 세월을 거쳐 우리에게로 돌아온 것뿐이니까.”
아유타국 공주란 김수로 왕의 아내인 허황옥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굉장히 낮지만, 원래 역사라는 게 명분과 정통성이 중요하지, 진실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진실이 중요하다면, 현대 영국 왕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옛 왕의 DNA 검사를 해도 문제없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나가 라자 강해인. 그대는 벵골 술탄국의 샤로서 라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법률을 준수하며, 백성을 위할 각오가 있는가?”
“말씀하신 바를 지키며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1년 후에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도록 그런 정치를 할 것입니다.”
“이는 만인 앞에서 하는 약속이자 계약이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좋다.”
기야스웃딘은 나에게 왕관을 씌워주었다.
“후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기야스웃딘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잠깐 사이 급격하게 늙은 것 같았지만, 표정만큼은 편해 보였다.
“벵골 술탄국을 잘 부탁하네.”
“더욱 발전시켜서 샤의 후손에게 되돌려드리겠습니다.”
“돌려준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제 우리는 네 것 내 것이 없는 사이지. 안 그런가, 사위?”
“……예.”
곧이어 결혼식이 이어졌다.
붉은색 전통 옷을 입은 채 환하게 웃는 비디아 신하가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인의 손을 잡고 다가왔다.
내 속마음은 편하지 않았지만, 새신랑이 죽상을 하고 있어서야 서로에게 좋지 않다.
나 역시도 환하게 웃었다.
살다 보면 원치 않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어떻게 긍정적인 결과로 바꾸느냐 하는 것.
나는 이것을 빚이라 생각하고 평생을 거쳐 꾸준히 갚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강대한 존재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더라도, 반드시 내 가족들을 지켜낼 것이다.
오늘의 양위와 결혼식으로 모든 최소 조건이 채워졌다.
영락제와 겨룰 수 있는 힘과.
유럽으로 향할 힘을.
이제 다음 무대는.
세계다.
#2부 프롤로그
이슬람과 기독교는 오랫동안 싸우고 반목해왔다.
십자군 전쟁과 비잔틴 제국의 중요성으로 인해 주로 동쪽 전선에 주목되지만, 사실 서쪽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벌어진 전쟁.
서양 역사 시각에서 레콩키스타(재정복), 혹은 국토회복운동이라 불리는 일련의 전쟁과 타협의 과정.
이 일련의 과정을 하나의 전쟁으로 본다면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한 781년간의 갈등이다.
그리고 15세기에 들어서자 승패는 확실하게 윤곽을 보이고 있었다.
이베리아의 왕국들은 완전한 승리를 목전에 두었음에도 속내가 편하지 않았다.
동쪽 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비잔틴 제국이 몰락함에 따라 지중해에 둔 거점 도시들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차근차근 점렴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면 유럽의 변방국이자 빈국으로 몰락할 상황.
어떻게든 상황을 타파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나라는 포르투갈 왕국.
포르투갈의 지식인들은 서쪽 항로가 아닌 남쪽으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아프리카 최북단에 있는 거점 도시.
이베리아반도에서 불과 14km 떨어진 항구인 세우타를 점령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으음? 저건 뭐여?”
포르투갈의 항구, 리스보아에서 일하던 청년 레온은 시력이 뛰어나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빨리 이변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뭐가 있다고 그래? 이 새끼 또 뺑끼치려고 하네? 신소리 말고 일이나 해.”
항구의 숙련된 노동자는 레온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아 씨!”
하지만 레온은 이전처럼 죄송하다고 하지는 않고 오히려 성질을 냈다.
“저거 안 보여요? 배잖아요. 배!”
레온이 가리키는 방향을 봤음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망망대해뿐.
“예끼 이놈아. 배가 온다면 서쪽에서 오거나 남동쪽에서 오겠지. 남서쪽에서 올 배가 어디 있겠느냐?”
“아니. 진짜라니까요.”
“온다고 해도 카사블랑카나 라스팔마스에서 온 거겠지. 흔한 일은 아니지만, 호들갑 떨 일도 아니다.”
“그게…… 배 생김새가 특이해요. 처음 보는 형태인데요. 저렇게 생긴 돛도 본 적이 없다고요.”
레온의 말에 숙련된 노동자가 다시 유심히 쳐다보았다.
뭔가 보이긴 하는데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자 숙련된 노동자에게도 배의 모습이 확연히 보였다.
“맙소사!”
“그죠? 제 말이 맞죠?”
“너 이거 알아서 처리해라.”
“어디 가시게요?”
숙련공은 한평생 항구에서 살았고, 지중해 끝은 물론 북해의 아이슬란드까지도 가 본 항해의 베테랑이다.
그렇기에 알아차렸다.
저런 생김새의 배는 없다고.
저렇게 큰 배도 없다고.
그렇다는 건 결론은 하나다.
자신이 모르는 강대국에서 배를 이쪽으로 배를 보냈다.
그 강대국이 천축국인지 신비의 나라 한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보통 사건이 아니다.
“관청에!”
숙련공은 관청으로 달리면서 생각했다.
이것이 기회가 될 것인가.
위기가 될 것인가.
확실한 것은 하나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