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06
205화 고결한 야만인 (3)
나는 전생에 남미를 몇 번 가봤다.
가서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며 느낀 점은 그들은 남아메리카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만나본 사람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항상 라틴 아메리카라는 단어를 썼다.
라틴 아메리카는 중남미와 남미를 거의 다 포함하는 지명이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들은 대부분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개인적으로는 신기한 일인데,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수리남이나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프랑스령 기아나는 라틴 아메리카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무튼, 이러한 라틴 아메리카에서 거의 유일하게 스페인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
바로 남미의 맹주, 언럭키 미국이라 불리는 브라질이다.
브라질이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게 된 데에는 포르투갈 왕실의 꼼수 때문이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로 향하는 신항로를 발견하고 이에 갈등이 생긴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규모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동쪽에는 오스만 제국이 점점 더 세력을 키워가고 있는 상황.
교황은 두 해양 강국의 전쟁을 방관할 수 없었다.
항로를 독점하기 위해 양국에서 로비를 많이 하기도 했으니, 돈값을 해야 하기도 했고.
그래서 중재안을 내세워 스페인 서부 도시인 토르데시야스에서 합의안을 맺게 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토르데시야스 조약이다.
경도 어느 선을 기점으로 서쪽은 포르투갈이, 동쪽은 스페인이 소유한다는 조약이다.
이 조약 덕분에 조선, 일본, 명나라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 포르투갈의 소유가 되었다.
참고로 이때는 임진왜란 전으로 당시 국력을 비교했을 때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합의하려고 할 때마다 포르투갈은 계속 그 경계선을 서쪽으로 밀어내려고 했다.
스페인으로서는,
‘쟤들 왜 저래? 그 선 조금 더 민다고 달라질 건 없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이 조약의 표면상 내용은 아메리카는 스페인, 인도는 포르투갈이 먹자는 거니까.
그리고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맺고 5년인가 6년 뒤.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희망봉으로 향하는 더 좋은 항로를 찾다가 ‘우연히’ 남미, 그러니까 브라질 동쪽 끝을 발견했다.
그제야 스페인도 알아차렸다.
이 새끼들, 이미 알고 있으면서 아메리카에도 발 뻗으려고 모르는 척 협상을 질질 끌었다고.
이미 조약은 체결한 상황.
뒤늦게 깨달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포르투갈은 브라질에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었고, 그 탓에 브라질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거의 유일하게 스페인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역사는 바뀌었다.
브라질 동쪽 끝에 먼저 도달한 건, 이름 모를 포르투갈 항해사가 아닌 내가 되었으니까.
“여긴…… 어딥니까?”
“저기 바둑판처럼 생긴 산이 또 있네요.”
“와. 숲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강도 엄청나게 커요!”
“근데 덥네요.”
남미의 동쪽 끝.
현대 이름으로 브라질 나타우(Natal) 항구에 도착한 선원들은 모두 감탄을 내뱉었다.
사실 이들은 모르지만, 우리는 굉장히 편하게 온 것이다.
남미는 해안선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많아서 배를 댈 곳이 굉장히 적으니까.
내가 항구로 삼을 만한 땅의 경도와 위도를 알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바로 온 것이다.
“어이쿠! 여기에도 육지가 있는지 미처 몰랐네~”
내 발연기를 본 선원들이 벙쪘다.
“……전하. 미치셨사옵니까?”
이 새끼들이 배에서 내렸다고 바로 편하게 하네.
아주 좋아.
목숨이 위험한 선상에서라면 모를까, 기본적으로 난 권위주의를 싫어하니까.
“아~ 어쩔 수 없다. 여기도 찜을 해놓고 우리의 보급기지로 쓰자~”
“……그래서 여기가 어디입니까?”
“어디 보자.”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펼쳤다.
“지도를 보아 짐작하건대, 이곳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신천지다.”
“네에?”
선원들이 일제히 놀랐다.
“뭐, 가다 보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섬이나 대륙이 있을 수도 있지. 그게 탐험의 묘미 아니겠냐.”
“그럼 이렇게 큰 땅에 주인이 없다는 뜻입니까?”
“알려지지 않은 땅이라는 뜻이지, 원주민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 전에 아프리카에서 봤던 사람들처럼 여기에 사는 부족들이 있을 수도 있지.”
근데 잘 모르겠다.
미국 땅에는 천만의 인디언들이.
멕시코에는 죽음의 제국 아스테카 제국과 신비의 왕국 마야.
그리고 아메리카의 가장 거대한 제국 잉카 제국.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부에 사는 마푸체족.
딱 이렇게만 안다.
그 외에는 자연환경이 험난한 관계로 1000명 이하의 소규모 부족들이 난립해 있다는 이야기만 기억난다.
“대만으로 귀국하면 할 일이 많군요. 중간 보급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섬을 개척하는 것부터, 원주민과 교류하기 위한 원칙 제정 등…….”
이소군이 말했다.
가만 보면 많은 일을 겪을수록 상단원들의 성격이 특정 방향으로 향하는 것 같다.
석피는 호위와 무술 외에는 다 신경 쓰지 않는 방향으로.
이소군은 모든 걸 사업으로 생각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그나마 무함마드만이 처음 봤던 때의 모습 그대로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
걔는 초심 좀 잃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많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런데 지나쳐온 섬에 깃발을 꽂으신 건, 그 섬도 기항지로 삼으실 생각입니까?”
희망봉에서 남미 동쪽 끝 나타우까지 대략 6000km.
개량된 보선으로 달려도 2주일은 걸리는 거리다.
이번에는 20일이나 걸렸는데, 항해 도중 우연히 섬을 발견해서 잠시 쉬었기 때문이다
물론 말이 우연이지, 내가 그쪽으로 유도했다.
“장기 항해야 이제 익숙해졌겠지만, 연안 항해와는 달리 대양 항해는 위험천만하니까. 중간에 보급기지가 있으면 큰 도움이 되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에는 넓은 대서양만 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드문드문 섬이 있다.
가장 유명한 장소가 세인트헬레나 제도.
세인트헬레나섬.
어센션섬.
트리스탄 쿠냐섬.
이렇게 3개 섬을 가리킨다.
영국령이며, 영국이 나폴레옹을 유배 보낸 섬도 여기다.
수에즈 운하 개통 이후에는 중요성이 떨어졌지만, 포클랜드 전쟁 때 아주 요긴하게 잘 써먹었다.
나도 대영제국의 알박기를 본받아 그대로 깃발 꽂아놨다.
다행히 무인도라 문제는 없었다.
“보급기지는 많을수록 좋지. 중간중간에 괜찮아 보이는 섬은 다 우리가 가져가자고.”
“좋은 생각입니다. 확실히 남해와는 달리 파도의 크기부터 다르더군요. 작은 배로 왔다면 난파되었을 배가 한두 척이 아닙니다.”
“그러게.”
아직도 궁금하다.
대체 콜럼버스는 연안용 배 규모인 산타마리아호로 어떻게 대서양을 횡단했을까.
간단히 비교하자면 보선은 배수량 1000t을 넘기는데, 산타마리아호는 배수량 150t이다.
그 정도 크기의 배로 대양을 항해했다가는 큰 파도가 오면 그대로 작살 난다.
배의 속도도 보선의 절반 이하고.
희망봉을 발견한 바스톨로뮤 디아스도, 인도로 가는 직항로를 발견한 바스쿠 다가마도 허접한 배로 신항로를 개척한 건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 발견한 땅에서 엄청난 악행을 저지른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진짜 목숨 걸고 왔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을 테니까.
물론 이해한다는 게 ‘네 사정이 뭔지는 알겠어.’라는 의미지,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하기엔 인간 이하의 악행을 펼쳤으니까.
능력은 좋았으되, 인성은 반비례했다고 할까.
“그런데 사람들에게 듣도 보도 못한 땅으로 이주하라고 하면 받아들일까요?”
“빨리하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하면 돼. 나중엔 다 지원자가 생겨.”
원 역사에서는 보통 이런 섬들을 개척할 때는 죄수들을 보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죄수라고 해도 흉악범들로 구성된 이들을 보낸 건 아니고, 주로 장발장처럼 빵을 훔치는 등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죄수들을 보냈다.
당시는 사유재산을 매우 중요하게 보던 시기라 절도나 무전취식의 처벌을 엄격하게 했기 때문이다.
죄수들이 어느 정도 살기 좋게 개척해 놓으면 민간인을 보냈다.
여러 경제적 유인을 주면서.
그러니까 호주 사람들을 보고 ‘죄수의 후예’라고 하는 건 굉장한 모욕이자,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라는 증명이다.
“어차피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잖아. 나중에는 감당 안 된다는 국가들도 늘어날 거야. 차차 지원자들을 받지 뭐.”
아시아의 장점.
인구가 많다.
그리고 빠르게 불어난다.
게다가 황인종이라 불리는 이들은 생존에 몰빵해서 진화한 인종이라, 추위도 잘 버티고 더위에도 잘 적응한다.
여기에 창해 주식 상단의 자금력으로 제대로 지원해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러려면 역시 아메리카에서 감자, 토마토, 옥수수를 가져와야 할 텐데…….
아메리카가 원산지라는 것만 알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른다.
“전하.”
석피가 다가왔다.
석피가 거느리는 아사신 부대는 배 위에서는 특별히 일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갑판을 닦는 정도.
대신 배에서 내리면 누구보다 먼저 주변을 살피고 경계를 선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고.
“어때?”
“전하의 예상대로 원주민이 있었습니다.”
“그래?”
“하지만 우리를 경계하여 다가오지는 않고 멀리서 살피기만 하는 모양입니다.”
“생긴 건 봤어?”
“비주 땅과는 달리 이곳 원주민들은 저희와 비슷한 생김새더군요.”
그렇겠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유라시아의 사냥 고인물이라는 클로비스인이 조상이니까.
그들은 빙하기에 육지로 연결된 베링 해협을 넘어 아메리카로 갔다가, 해빙기가 되자 단절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한 마디로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인종이 북아시아인이라는 뜻이다.
물론 2만 년 가까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동일 인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아시아인을 황인이라고 한다면, 아메리카 원주민은 홍인이라 부른다.
“아무튼, 경계하고 있다고 하니, 자극할 필요는 없다. 돌아올 때 또 기회가 있겠지.”
“이대로 가는 겁니까?”
“그냥 가기는 그렇고 선물이나 주고 가자.”
여기도 말라리아가 많을 텐데.
희망봉에서 검증된 개똥쑥 술을 남기고 가자.
다행히 만약을 대비해 엄청 많이 가져왔기에 두 항아리 정도 준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다.
“경계는 늦추지 말고, 교대로 푹 쉬어라. 다음 기항지는 구라파가 될 테니까.”
“예!”
***
결국 우리는 브라질의 원주민을 만나보지 못한 채 선물만 남겨두고 다시 항해를 떠났다.
아쉽다면 아쉽지만, 일단 다짜고짜 공격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항해를 시작한 우리는 세네갈 서쪽의 카보베르데 제도까지 6일 만에 도착.
이어 대항해시대의 전초기지라는 카나리아 제도까지 5일 만에 도착했다.
그리고.
카나리아 제도에서 3일.
내가 그토록 염원하던 유럽.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보아에 닿았다.
항해를 시작한 지 약 70일 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