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24
223화 위대한 나라, 프레스터 조선 (1)
내가 너무 막 나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양반이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넘어 인도에 도착했을 때 곧바로 교역하고자 했다.
그들은 향신료를 원했으니까.
하지만 매우 큰 문제가 생겼다.
인도인들이 포르투갈의 교역품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
그도 그럴 게 인도인들이 보기에 포르투갈의 교역품은 기술력이 낮아 하나같이 잡동사니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교역품 중 최고의 명품인 모직물이, 더운 인도에서는 쓸모없었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그 탓에 목숨을 건 항해를 했는데도 제대로 된 교역을 할 수 없다.
고민 끝에 포르투갈은 인도보다 앞서는 얼마 안 되는 기술을 사용하기로 했다.
훌륭한 대화수단.
선박과 대포를 사용한 것.
그렇게 인도양은 피바다가 되었다.
이러한 원 역사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평화적인가.
“알겠습니다.”
“음?”
지브롤터와 세우타를 넘겨준다고?
진짜?
“대신 포로에 더해 한 가지 조건을 더 요구하겠습니다.”
“말해보게.”
“동방의 상품을 우리와도 교역해 주십시오.”
“그대들은 이미 맘루크 술탄국을 통해 교역하고 있지 않나?”
유럽과 아시아의 무역을 중개하는 나라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맘루크 술탄국이다.
하지만 인도양 무역을 맘루크의 상인만 하지는 않는다.
같은 이슬람 세력이라는 특성 덕에 온갖 무슬림 상인이 인도양까지 왕래하니까.
개중에는 카르타고로 유명한 튀니지의 상인도 있다.
가끔 그라나다의 상인도 인도양까지 온다.
보통은 벵골 술탄국까지는 안 오고 캘리컷에서 돌아가기는 하지만.
“맘루크 술탄국을 지나치려면 상당한 관세를 내야 합니다. 도중에 육지도 거쳐야 하기에 어렵기도 하고, 위험도 많은 데다, 많은 양을 운송할 수 없지요.”
여기서 위험은 도적 떼를 말한다.
“게다가 아시다시피 캘리컷의 왕은 상당히 오만하지요. 너 말고도 올 상인 많다며 큰소리 뻥뻥치니 그 비위 맞춰주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매우 겸손하던데.”
“예?”
“아닐세.”
물론 캘리컷에 갈 때, 원 역사처럼 스리랑카에서 습격할까 봐 원정대 3만을 이끌고 가긴 했다.
유럽으로 향할 전진기지도 마련해야 했으니까.
여기에 캘리컷 항구 근처에서 해적선을 발견해서 대포로 깔끔하게 침몰시키기도 했고.
그리고…….
내 후광으로 벵골 술탄국에 명나라 사치품이 잔뜩 들어가면서 캘리컷의 거래량이 줄었다고 들었다.
인도 전역에 혼란한 상황에서 벵골 술탄국이 내부 정리를 마치고, 옆 나라인 오디샤를 정복하기도 했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겠구나.
“그러지.”
이슬람과 교역한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되진 않는다.
카스티야, 포르투갈, 아라곤도 그라나다 왕국과 교역하고 있으니까.
이들이 휴전조약을 체결할 때면 늘 포함되는 조항이 ‘무역 재개’다.
“그리고…….”
“조건이 자꾸 붙으면 이쪽도 조건을 더 걸 수밖에 없네.”
“마린 왕조와는 거래하지 말아주십시오.”
기독교 세력도 아니고, 같은 이슬람 세력끼리?
그렇게 마린 왕조를 견제하다가는 나중에 그라나다 왕국이 위기에 처하면 도와줄 나라가 없을 텐데.
“거절한다. 나는 무역의 자유를 추구하지. 마린 왕조가 우리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한 일부러 소외시키지는 않을 걸세.”
물론 교역량 배분을 통해 얼마든지 갑질할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당신께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맞습니까?”
뭐라는 거야?
“아시겠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지브롤터와 세우타는 마린 왕조의 영토였습니다. 그곳에서는 고토를 수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지요.”
“온다면 응징한다. 그뿐일세.”
“예. 그때는 꼭 그라나다 왕국도 찾아주시기를. 아무래도 육지에서는 어려움이 많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그라나다 왕국 외교관은 방긋 웃었다.
뭔가 위화감이 들었지만, 보험이라 생각하고 적당히 넘겼다.
“아, 그리고.”
“또 뭔가?”
“거래는 아닙니다. 소문에 의하면 ‘나가 라자’는 현지의 발전을 중시하여 지부를 설치하고, 현지인들 위주로 선원을 뽑기도 한다지요?”
이 새끼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더니 다 알고 있었구나.
하긴.
내가 포르투갈에 도착한 지도 몇 달이 지났다.
이슬람 세계에도 소문이 쫙 퍼졌을 터.
더욱이 유럽 상인과는 달리 이슬람 상인들은 지중해 끝에서 인도양까지 왕래한다.
나에 관한 소문은 유럽인보다 훨씬 상세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형이 거기서 왜 나와?’라는 반응이지 않을까.
그라나다 왕국이 나를 몰랐다고 해도, 내가 포르투갈에 도착한 순간 나에 관한 소문은 하나도 빠짐없이 수집했겠지.
그게 정치고 외교니까.
“부디 지브롤터와 세우타에서도 ‘차별’ 없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는 거 봐서.”
“나가 라자의 공명정대함을 믿습니다.”
그라나다의 외교관은 그렇게 말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붙잡힌 아국 군대를 잘 치료해 주시고 온전히 보살펴주신 것처럼요.”
***
그렇게 지브롤터와 세우타는 내 영토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협상으로 영지가 넘어가는 일은 흔하기에 별문제 없이 진행될 것이다.
다만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주변국에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에 잠시 돌아가야 하는데. 잼민아. 너는 어떻게 할래?”
“잼민이가 전가요?”
엔히크 왕자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 말고 누가 있겠니.”
“엄…… 저는 여기 남을래요.”
“무슬림이 가득한 이곳에?”
“선장님의 선원이라고 하면 양해해 주지 않을까요?”
“양해해 주겠지. 하지만 네 아버지는 양해해 주지 않을걸?”
“어제 꿈에서 봤어요. 웃으면서 허락하셨습니다.”
주앙 1세가 뒷목 잡고 쓰러져서 꿈에 나왔나 보다.
동양에서는 현몽이라고 하는데.
“웃기지 말고. 너도 같이 리스보아로 돌아갈 거다.”
돌아간 김에 대금 청구도 해야지.
왕자 회항으로 본 손실과 엔히크의 보호비를 함께.
“아앙. 그냥 배 한 척만 따로 보내버리죠.”
“어디서 앙탈이야.”
“하아……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허락을 받아보겠습니다.”
나는 옆에서 열심히 안 된다고 방해해야겠다.
도움이 되긴 하지만, 역시 어린 왕자를 보호하는 건 부담이 크다.
“선장님!”
“왜?”
“김치 맛있습니다.”
김치라기보다 짜사이에 가까운데.
“그래서?”
“쳇. 안 통하네. 아! 통조림 고기도 맛있어요.”
향신료가 많이 들어갔으니까.
그냥 많이 때려 넣은 게 아니라 잘 배합해서 넣었기에 어지간한 고기보다 맛이 좋다.
“어쩌라고?”
“제 입맛에는 왕궁 음식보다 항해용 음식이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포르투갈 음식이 별로라서.
사실 포르투갈 음식뿐만이 아니다.
이 시대 유럽 음식은 이탈리아 음식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맛이 없다.
애초에 요리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희미하다고 할까.
이는 교회의 영향 때문이기도 한데, 교회에서 맛에 대한 욕구를 죄악시하기 때문이다.
음식이란 신께서 주신 신성한 것인데, 여기에 인간이 인위적으로 맛을 넣는다는 건 신성 모독이라고 주장한다.
듣기론 프랑스 궁중 요리는 그나마 맛있다고 하던데, 요리 방식을 살펴보면 중동의 요리법에 가깝다.
하지만 이베리아반도는 이슬람에 대한 증오가 큰지라 그 방법을 잘 따라 하지 않았다.
……프랑스 쪽보다 가난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먹을 것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아직 4 윤작법에 해당하는 노퍽 농법이 나오지 않았고, 여전히 주기적으로 휴경하는 삼포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쌀이 대단하다.
지력을 많이 소비하지도 않으면서, 엄청난 인구를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단위면적 당 수확량이 많으니까.
아시아에 괜히 인구가 많은 게 아니라고 할까.
“그러니까…… 아바마마 설득하시는 거 도와주실 거죠?”
“싫은데.”
“아앙!”
“어디서 앙탈이야?”
“대신 제가 프레스터 조선 왕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지 잘 알려드릴게요.”
다급해지니까 조선이라고 제대로 발음하네.
엔히크 왕자는 그냥 아무렇게나 말하긴 했지만, 나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는 내용이기도 했다.
아무리 왕위 계승과 거리가 있다고 해도, 이 시대에 왕자의 발언은 상당히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상황 봐서.”
“옙!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돛을 올렸다.
리스보아를 향해서.
***
다시 리스보아로 돌아가는 길.
일을 마치느라 조금 늦은 시간에 출항했더니 해가 지고 달이 떴다.
“선장님! 선장님!”
“왜?”
곧 주앙 1세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암울한 미래를 잊고 싶은 듯, 엔히크 왕자는 끊임없이 나에게 달라붙었다.
내가 어린아이한테 인기가 많은 체질인 건 몰랐네.
“프레스터 조선 왕국의 화포는 왜 그렇게 발전했나요?”
“생각해보렴. 너네 왕국군이 3만이야. 근데 100만이 쳐들어와. 얌전히 나라를 넘겨줄래?”
“목숨을 걸고 용맹하게 싸워야죠!”
“그래. 훌륭하다. 목숨을 걸고 용맹하게 싸운 덕에 대승을 거두었어. 너희 왕국의 피해는 1만이야. 적의 피해는 50만이야.”
“와우! 역사에 길이 남을 대승이네요.”
“근데 너희 왕국이 1만을 충원하는 동안 적군은 60만이 충원되네?”
“……피로스의 승리로군요.”
“그거란다.”
역사 덕분에 조상님들은 깨달았다.
저 큰 엉덩이를 걷어차는 것보다 적당히 깔려 사는 게 낫다고.
하지만 계속 수그리면 어디까지 요구할지 모르니, 효율적인 대량살상 무기인 화포를 개발해야겠다고.
그 DNA가 이어져 탄생한 결실이 바로 대한민국 포방부다.
“그리고요.”
“잼민아. 지금은 밤이란다. 슬슬 잘 시간이야. 적당한 해먹에 올라가서 코 자렴.”
아직 어려서 그런가?
진짜 에너지가 넘치네.
“선장님은 뭐 하세요?”
“천문 관측과 기록 정리.”
“천문학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안 된단다.”
“왜요?”
“포르투갈 왕국은 주요 기술을 아무에게나 가르쳐주니?”
“에이. 우리가 남인가요?”
“남이란다.”
완벽한 남이다.
조선에서는 사돈에 팔촌까지 따지면 가족 아닌 사람이 없다지만, 정말 생판 완전 남이다.
지구 거의 반대편에 있잖아.
“제 후견인이시잖아요. 저를 잘 가르쳐주시면 나중에 큰 보상이 돼서 돌아올 거예요.”
“너를 가르쳐서 보상을 얻는 것보다, 내가 지금 독점해서 얻는 게 더 크지 않을까?”
“유럽은 커요. 선장님이 다 삼킬 수는 없을 거예요. 게다가 유럽에만 계실 것도 아니잖아요. 여기 남아서 선장님의 세력을 불려줄 사람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포르투갈이 아니라 나를 따르겠다? 네 아버지가 허락할까?”
“성인왕 해인의 프레스터 조선 왕국과의 우호를 위해서라면 아바마마도 허락하실 거에요.”
처음에는 장난으로 그러더니, 진짜 프레스터 조선이라고 믿고 있네.
이것도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나?
“네 아버지의 허락을 받으면 생각해보마.”
“정말이요? 약속하신 거예요?”
“그래.”
굳이 여지를 남긴 이유는 교회의 견제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지동설이 퍼질 수밖에 없는데, 교회에서 신성 모독이라고 게거품을 물까 봐.
그 탱커로 엔히크 왕자를 세우면 덜 아프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근데 천문학은 항해를 위해서 배우려는 거니?”
“그런 것도 있고, 천문학을 연구한다고 하면 교회에서 크게 지원해주기도 하니까요.”
“응? 교회에서? 왜?”
“여기서 달력은 교회가 만들어요. 부활절 날짜를 정해야 하니까요.”
오. 그런 디테일이.
그래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그레고리력을 만들었구나.
참고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역대 교황 목록을 다 확인해봤는데 그레고리오라는 이름을 받은 교황 중 가장 최근 사람이 그레고리오 12세다.
그는 100년 전에 선종했다.
그래도 100년 전에 그레고리오 12세까지 나왔으니까, 13세도 곧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지금 달력으로 하면 부활절이 계속 늦어져요. 이대로 가다간 부활절과 성탄절이 같은 날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몰라요.”
부활절은 춘분 이후 보름달이 뜬 뒤 맞이하는 첫 번째 월요일이다.
성탄절은 12월 25일로 고정이고.
“윤년 때문이네.”
“네. 윤년 때문이죠.”
이 시대 달력은 1년을 365일.
그리고 4년에 한 번 윤년이라 하여 366일이라 한다.
이렇게 계산하면 하루에 2초 정도, 1년에 11분 정도 차이가 난다.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달력을 천 년 이상 쓰다 보면 무시 못 할 오차가 된다.
현시점에서 이렇게 계산한 지 1500년쯤 되었고.
단순 계산으로 달력상 춘분과 실제 춘분이 열흘 넘게 차이 나는 것.
그래서 현대에서는 몇 가지 조건을 더 붙인다.
4년에 한 번 윤년.
100으로 나누어지지만, 400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해는 평년.
400으로 나누어지면 다시 윤년이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달력 개혁을 계속 논의하고 있는데요. 이 땅을 중심으로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하니까, 아무리 계산해도 오차가 수정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음…….”
“학자들 사이에서는 우주의 중심이 이 땅이 아니라 태양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우주의 중심이 태양이라고 하면 교회가 뭐라고 안 하니?”
“네? 그런 거 없는데요.”
어라?
갈릴레이의 일화는 구라였나?
“성경과 모순된다는 이야기는 있기는 하지만, 성경은 항상 해석의 여지가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교회는 천문학자에게 항상 호의적이에요. 신의 뜻을 연구하는 학자니까요.”
“그렇구나.”
“태양이 중심이든, 이 땅이 중심이든 만약 정확한 달력을 만들 수만 있다면 교회의 엄청난 후원을 받을걸요?”
“그래?”
역시 현지의 지식인과 함께하는 건 돈이 된다.
아니, 도움이 된다.
“우리 잼민이. 천문학이 알고 싶다고 했지?”
네가 탱커 좀 해줘야겠다.
아니, 확성기 역할을 해줘야겠다.
나의 부와 명성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