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26
225화 위대한 나라, 프레스터 조선 (3)
하모니아에 있는 작은 궁정.
궁정이라기보다는 관청이라 해야 옳을 정도로 작은 성이다.
워낙 좁아서 실생활에 필요한 시설만으로 꽉 찬다.
그래서 나는 성 옆 공터에 새로운 시설을 만들었다.
내 아이디어를 실현할 공방을.
대만에는 엄청나게 큰 공방 단지가 있는데.
본진에서 멀리 떨어진 유럽에서 하는 거니까 시작은 소소하게 만족하기로 했다.
“이건 뭔가요?”
여느 때처럼 엔히크 왕자가 잼민이처럼 달라붙었다.
“압착기란다. 발음이 어려우면 프레스라고 하렴.”
현대의 프린터나 복사기라면 전자 기술을 이용해 깔끔하게 인쇄하겠지만, 이 시대에는 될 리가 없다.
잉크가 골고루 묻지 않을 때를 대비해 충분한 압력을 가해줘야 한다.
“여기에 이렇게 금속으로 만든 활자를 끼우고, 이걸 돌려주면…….”
금속판은 천천히 내려가 밑에 준비해 놓은 종이에 닿았다.
이 시대 종이는 풀의 질이 좋지 않아서 잘 찢어진다.
그래서 좀 두껍게 만드는 편이다.
“종이에 닿았어요!”
“아직이란다. 깔끔하게 인쇄하려면 조금 더 힘을 가해줄 필요가 있어.”
종이에 닿았는데도 손잡이를 조금 더 억지로 돌리자, 쇠가 마찰을 일으키며 ‘끼룩. 끼룩.’ 갈매기가 우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아주 조금 더 내려갔다.
“이 정도면 됐겠지.”
이번엔 손잡이를 반대로 돌렸다.
부드럽게 올라갔다.
유럽의 야금술도 내 생각보다 훨씬 발전한 듯했다.
“와 깔끔하게 되었네요!”
“문제는 이제부터란다.”
기초 기계 공학을 알고 있는 내게 압착기는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쉽다.
“이제 모든 문자를 금속으로 만들어서 준비해둬야 해.”
근데 금속 활자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왜 꼭 금속으로 해야 하나요?”
“나무나 점토는 금방 닳잖아.”
“납이나 주석은 어때요?”
“물러서 안 좋아.”
한반도에서는 이미 고려 시대에 금속 활자를 만들었다.
이를 더욱 발전시켜 킬방원은 금속 활자를 만드는 기관인 주자소를 설립하고, ‘정해자’라는 금속 활자를 창조했다.
나도 금속 활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대만에 금속 활자를 연구하는 기관을 설치했다.
정확히 말하면 창해 주식 상단 대만 지부 소속이다.
덕분에 나도 금속 활자를 만드는 기술이나 방식을 안다.
조선에서 배웠지.
문제는 문자다.
한자는 문자의 개수가 너무 많아서 금속 활자를 만들어야 하는 개수가 끝도 없으니까.
금속 활자를 이용하기엔 한글도 그리 좋은 문자는 아니고.
인도 문자는 너무 다양하고, 아랍 문자는 내가 알아보기가 힘들다.
반면 알파벳은 금속 활자를 활용하기에 너무 좋은 문자다.
그래서 영 탐탁지 않다.
유럽에서 지식의 폭발이 일어날 것 같아서.
이쪽의 역사도 원 역사처럼 흘러갈까 봐.
지금이라도 멈춰야 하나?
에이. 유럽의 정보를 끊임없이 알려줄 텐데 지도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아서 잘 대처…… 대처…….
만약 유럽이 원 역사보다 빨리 아시아에 오게 된다면 그 시대 왕은 선조 이전일 텐데.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조선 망하려나?
“이 기계를 통틀어서 뭐라고 하나요?”
“음…….”
원래라면 구텐베르크가 해야 하는데, 내가 그 업적을 날치기하는 셈이니까…….
에이. 어차피 구텐베르크는 당시엔 인정을 못 받았다.
구텐베르크의 제자와 동업자가 다 해 처먹은 바람에.
그래도 양심이 있으니까 그의 이름을 따자.
이 정도로 직지심체요절을 약탈한 복수는 갚은 것으로 해주지.
“요하네스라고 할게.”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니까.
“프레스…… 요하네스…… 그러니까 프레스터 요한(John)을 기념하기 위한 발명품이군요!”
“너 자꾸 끼워 맞추지 마라. 그리고 내가 발명한 게 아니라 동방에는 수백 년 전부터 있던 거야.”
“어디서 최초로 발명했나요?”
“엄…….”
원 역사에서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로 인정받은 인쇄물은 고려의 직지심체요절이다.
하지만 세계 역사 학자들은 중국에서 먼저 발명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문제는 인정받으려면 ‘금속 활자를 발명했다.’라는 기록으로는 안 되고, 금속 활자 유물 혹은 금속 활자로 인쇄한 판본이 있어야 증명이 된다.
근데 그게 문화대혁명으로 삭제되는 바람에…….
중국의 문화 밸런스 패치는 언제 생각해도 대단하단 말이야.
주기적으로 초기화만 안 했다면 진짜 세계를 정복했을 텐데.
“잘은 모르겠지만, 내 고향에서는 확실히 발명했고, 발전했단다.”
원 역사에도 그런 기록이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금속 활자는 고려 시대 꽤 중요한 수출품이었다.
중국과 일본으로 수출될 정도로.
그만큼 정교하게 잘 만들었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이걸로 뭘 인쇄하실 건가요? 전에 말씀하셨던 대로 천문학인가요?”
“그래야겠지.”
성경이 가장 큰돈이 되겠지만, 그 양이 방대해서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여야 할 것이다.
성경인데 글자가 번지거나 오·탈자가 발견되면 교황청에서 입에 거품을 물 테니까.
“그러면 천문학책을 쓰실 내용은 정리하셨나요?”
“인쇄할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 해야겠지.”
금속 활자를 만드는 동안 내용을 정리하고 퇴고해야겠다.
***
안타깝지만 퇴고는 고요한 방에서 사색에 잠기는…….
그런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보시오! 성인 양반! 태양이 이 땅을 도는 게 아니다 이 말인가? 지동설이라니, 아니 이 땅이 돌고 있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지동설이라니!”
“이 땅이 돌고 있는데 나는 영 감각이 전혀 없으니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거요?”
나이를 꽤 드신 듯한 어르신들이 단체로 하모니아로 와서 난동을 부렸으니까.
“잼민아.”
“예. 예하!!”
“쟤들은 뭐냐?”
작은 성 위에서 아래를 보며 물었다.
“아…… 그…… 코임브라 대학의 교수들이네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신봉하는 분들이죠.”
현재 포르투갈의 수도는 리스본이지만, 리스본은 불과 200년 정도 전까지만 해도 이슬람의 땅이었다.
그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포르토(Porto)나 코임브라(Coimbra)가 더 발전한 도시다.
이 두 도시의 역사는 포르투갈 백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니까.
코임브라 대학도 마찬가지다.
리스본 대학은 아직 설립도 되어있지 않은데, 코임브라 대학은 120년 전, 그러니까 서기 1290년에 설립되었으니까.
사실상 포르투갈 학문의 중심지다.
“코임브라 대학교수들이 왜 여기까지 온 거지?”
“아하하…….”
“잼민아. 설마 네가 뭔가 했니?”
“그게…… 실은 제가 항해를 준비하기 위해서 천문학자와 천문학 교수들을 후원하고 있거든요.”
역시 금수저.
열여섯 살인데 벌써 후원을 할 정도라니.
유럽에서는 의외로 흔한 일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왕위에 오른 게 스무 살 때.
그리고 페르시아를 정복한 게 스물두 살 때 일이다.
이 전설적인 영웅담은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 청년들에게 전해져 야심 찬 청년은 ‘알렉산더 대왕은 스무 살에 페르시아를 정복했는데, 나는 뭘 하고 있단 말인가!’라는 한탄을 하고는 한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뭔가를 하려고 하지.
참고로 오스만의 메흐메트 2세도 그런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으로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로마의 2천 년 역사를 끝장내니, 그의 나이가 스물한 살이었다.
“그런데?”
“혹시 예하께서 책을 쓸 때 도움이 될까 싶어서 코임브라 대학의 천문학부 교수들에게 물어봤거든요.”
“…….”
“저, 정말 예하를 도와드리려고 그런 거예요. 미리 검증을 받아서 혹시라도 미비한 점이 있으면 보완하고, 예상 질문을 받아서 더 완성도 높은 책을 쓰려고…… 죄송합니다.”
엔히크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왕위 계승권자긴 하지만, 왕이 될 생각도 없고,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고개를 숙이는 데 거리낌이 없다.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숙이는 건 본 적이 없지만.
“교수들이 이렇게 하모니아까지 찾아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혹시 코임브라 대학교수는 할 일이 적니?”
설마 이 시대에도 대학원생을 갈면서 편하게 교수 생활하나?
전생에 ‘뉴턴’이라는 보드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보드게임에서 교수는 유럽을 돌아다니며 스탬프를 모아 책을 쓰고, 그사이 대학원생은 갈리면서 자원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어쩌면 현실 반영일지도 모르겠다.
“할 일이 없지는 않죠. 하지만 새로운 이론이고, 그것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극동의 이론을 처음 접하는 거니까요.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온 거겠죠.”
“무거워 보이기는 한다.”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보면.
모자를 쓰고 있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머리는 벗겨져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얘는 왕자면서 선원들이나 쓰는 언어를 익혔네.
말도 안 통할 텐데 대체 어떻게?
아랍어로 소통했나?
어떤 방법인지는 몰라도 이 아이의 앞날이 걱정된다.
“들여보내.”
“괘, 괜찮으시겠어요? 학자 중에는 신분 신경 안 쓰고 막 나가는 괴팍한 사람이 많아요.”
“그래 보인다.”
그중에서도 극성 종자들이 왔겠지.
삽화 별도 첨부
아니면 코임브라에서 하모니아까지 올 생각을 못 할 테니까.
그래도 포르투갈이 그렇게 큰 나라는 아니어서, 서울에서 부산보다는 가깝다.
“하지만 괜찮다.”
미리 백신을 맞아둔다고 생각하자.
어차피 책을 출판하면 ‘오직 성경!’만 외치는 광신도들을 상대해야 할 테니까.
“오! 역시 예하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이번엔 계획이 아니라 대응이지. 예상치 못한 상황이니까.”
대비는 되어있다.
바로 나의 지식.
천문학이라면 내 전공 분야 중 하나다.
현대의 항해사는 만약을 대비해서, 그리고 혹시라도 기계의 오차가 생길 때를 가정해,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위치를 국제해사기구에 보고해야 하니까.
“예전 일이 떠오르네.”
명나라 관리들과 중상주의를 두고 백가쟁명 시즌2를 찍었던 기억이.
그때 유학자들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신봉하는 텔신봉자들은 나를 갈가리 찢어버리려고 하겠지.
현재 유럽 지식인들은 내가 아프리카를 돌아 포르투갈에 도착한 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지만, 유럽인들도 자신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발전한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히 스푸트니크 쇼크 급이다.
일부에게서는 동방을 배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이런 사람은 소수다.
오히려 ‘항해술은 너희가 뛰어났지만, 과학은 우리가 더 뛰어나다.’라고 국뽕을 들이키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다.
또, 새로운 이론이 나오고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교수나 학자가 명성을 드높일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뽕 지식인들에게 내 이론은 아주 좋은 먹잇감이다.
내 이론을 과학과 논리로 무너뜨리면 유럽의 과학이 더 우수함을 알릴 수 있고, 이러한 공을 세운 학자는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칠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질문은 그 어떤 현자도 대답하지 못했어요. 예를 들면…….”
“이 땅이 움직이고 있는데, 왜 나는 그걸 느끼지 못하느냐고?”
“어? 어떻게 아셨어요?”
“저기 교수들이 떠들고 있네.”
“혹시 답도 알고 계세요?”
“알고 있지.”
뉴턴 역학이 언제 나오더라?
대충 300년 뒤의 일로 알고 있는데…… 이걸 벌써 알려줘도 되려나?
잠시 고민한 나는 몸을 돌렸다.
“내게 유럽은 꼭 필요하다.”
이들의 우수한 무기와 실전 검증은 내게 큰 힘이 되어줄 테니까.
따라서.
유럽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다면, 유럽을 확실하게 내 영향력 아래에 두어야겠다.
압도적인 지식과 학문으로.
“엔히크 왕자.”
“예! 예하!”
“금속 활자가 제대로 만들어지기 전까지 시간이 있어.”
“예! 예하!”
“그러니까 유명한 대학교수나 학자들을 전부 리스보아로 불러와.”
“……네?”
“어차피 저 교수들을 논파해봤자, 다른 교수들이 나타날 거 아니냐. 하나하나 상대하기엔 시간이 별로 없다.”
“왜 시간이 없나요?”
“내 딸이 이제 한 살이다. 부인이랑 딸이 얼마나 보고 싶겠니.”
하지만 올 수밖에 없었다.
부인이랑 아기를 영락제의 마수로부터 지킬 힘을 얻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건 단순히 추측이 아니다.
영락제가 북원을 정벌하고 돌아오면, 천도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천도를 시작하면 자신을 싫어하던 사대부들을 숙청하고, 다시 해금령을 내릴 수도 있다.
원 역사에서 그랬으니까.
대운하만 있으면 남부의 생산물을 북경으로 옮기는 데 문제가 없고, 땅의 민족인 한족에게 바다는 쓸데없이 위험을 늘리는 새로운 국경에 불과하니까.
“그러니까 한 번에 끝내자.”
“예! 최선을 다해 초빙하겠습니다. 근데 솔직히 포르투갈 왕국의 발언력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라서요…….”
“뭐가 필요한데?”
“예하의 이론을 간략하게나마 요약해서 주시면 훨씬 효과적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러지.”
오스만으로 가기 전.
유럽에 제대로 대형 폭탄을 터뜨리겠다.
그리하여 유럽에서 나를 신봉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