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28
227화 위대한 나라, 프레스터 조선 (5)
발표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리스보아의 궁전에서 시달려야 했다.
처음에는 천문학자와 신학자들만 달려들었는데, 그다음에는 온갖 분야의 교수들이 다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프레스터 조선 왕국과 유럽의 지식을 비교 및 보완하고 싶다나.
그들은 마치 스토커처럼, 기레기처럼, 사생팬처럼 내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관찰하고 조금만 의심이 생기면 질문을 해댔다.
막힘없이 대답한 덕에 나는 이전보다 훨씬 큰 유명세를 치렀다.
덕분에 온갖 초대장이 날아들었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양이다.
심지어 저 멀리 신성 로마 제국 북부 귀족에게서도 왔다.
웬만하면 다 거절하는데, 가끔은 거절하기 힘든 파티 초대장도 날아온다.
이번이 그랬는데, ‘엔히크 왕자의 무사 출항을 기원’하는 파티라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되었다.
주앙 1세가 진짜 정치력이 좋다.
내 성격을 파악하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을 만들어내니까.
그리고 파티에 참여하자마자 또다시 온갖 사람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역시 프레스터 조선 왕국입니다. 철학도 상당히 발전했군요.”
“역시 프레스터 조선 왕국입니다. 수학도 크게 발전했군요.”
“역시 프레스터 조선 왕국입니다. 하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과학이 발전하지 않은 나라가 이렇게 우수한 선박을 만들고, 항해술이 발달했을 리 없지요.”
교수들은 나와 이야기할 때마다 ‘프레스터 조선 왕국’을 외치며 연신 감탄했다.
개인적으로는 ‘오스만 조 로마’라고 불러줬으면 좋겠…….
아니, 이게 아니라.
“언제나 말씀드리지만, 프레스터 조선 왕국이라는 곳은 없습니다. 조선은 그냥 조선입니다. 그리고 조선은 생각보다 그리 발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기독교도 아니고요.”
아직 킹갓세종대왕 님이 즉위하기 전이니까.
이번 역사에서는 어떻게 되려나.
“하하하. 참으로 겸손하십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하의 선원들도 모두 겸손하더군요. 유럽에서는 자기 자랑하기 바쁜데 말입니다.”
“진짠데…….”
“예하의 말씀이 옳다고 해도, 조선은 성인 예하를 배출한 나라입니다. 성인의 고향이라면 기독교 왕국이라 할 수 있지요. ‘산토 해인’ 같은 도시도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산토는 성인(聖人)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산티아고가 있는데, 성 야고보를 라틴어 발음으로 읽어서 ‘산토 이아고’가 변한 단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진짜 산토 해인이라는 도시가 세워진다면 ‘산태인’같은 이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극동에는 저 간악한 무슬림의 마수가 점점 뻗쳐나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엔 교수에서 성직자로 바톤 터치인가.
“뭐, 그렇지요. 무슬림 상인들은 대명까지 오니까요. 대명의 항구 도시 중에는 그들의 사원인 모스크도 있습니다.”
“허허허. 이것 참…… 어떻게 해야 무슬림들을 막을 수 있을까요?”
“……네?”
“이슬람교가 극동까지 퍼져나간다면 세계적인 대재앙이 될 것입니다. 프레스터 조선 왕국도 위험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동남아시아는 몰라도, 동북아쯤 되면 민족 통합 정책이 엄청나게 강력하다.
불순분자를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추방하거나, 귀화시키거나, 처형하겠지.
실제로 명나라도 홍무제 주원장이 모스크에 와서 무슬림들에게 연설하는 등 친 무슬림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영락제를 비롯해 해금령을 내린 이후에는 이슬람교를 철저하게 탄압했다.
조선도 회회력법 때문에 무슬림들을 잘 대우해주고 있지만, 이것도 한순간이다.
강력한 민족 통합 정책의 부작용으로 다른 민족에게 극심한 배타적 성향을 보이니까.
조선에 들어온 중동인들은 조만간 귀화하거나, 다른 나라로 떠나야 할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이럴 때가 아니지! 예하! 극동을 신의 가르침대로 개종시켜야 합니다. 그곳에도 빛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빛이 있으라!”
“어허. 이게 무슨 망발인가! 예하. 저희 예수회에게 맡겨주시면, 저희가 성직자를 보내어 알아서 전도하겠습니다. 빛이 있으라!”
“저희 수도회에 맡겨주십시오. 아무리 험난한 파도와 사이클론이 덮친다고 해도 그 땅에 복음을 전파하겠습니다. 빛이 있으라!”
마치 창해 주식 상단 선원이 싸우기 전에 외치는 ‘공자 수 분투’처럼 외치네.
이렇게 보면 광신도처럼 보이겠지만, 그들도 나름 다 생각이 있다.
현재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거둘 권리가 있다.
이 때문에 유럽 왕가나 영주들은 세금을 많이 거둘 수 없어 늘 골머리를 앓지.
그리고 미지의 땅에 새로이 전도하여 교구로 삼는다면, 새로이 전도한 성직자가 그 지역에 십일조를 거둘 권리를 얻는다.
즉, 이들에게 중동 너머의 땅은 아직 긁지 않은 복권인 셈이다.
특히 명나라의 광주나 천주 같은 무역도시를 개종하게 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얻게 되는 셈이지.
해당 전도사의 교파는 교황청에서 발언권도 강해지고 말이다.
물론 높으신 분들이 직접 가지는 않는다.
젊고 열정 있고 뒷배 없는 이들을 보내지.
“그대들이 전도하는 것을 방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와 문화를 생각하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대들이 말하는 극동에는 절대 왕정이 많습니다. 왕이 지방에 관리를 임명하여 다스리고, 마음대로 교체할 수도 있지요. 즉, 귀족과 종교의 권리는 왕권과 비교하면 상당히 미약합니다.”
조선은 그래도 신권이 높은 편이지만, 명나라는 어림도 없는 소리지.
일본은 절대 왕권이 아니지만, 일왕이 신토라는 토속 신앙의 교주이자 정치의 상징적인 인물로 높게 떠받들어 지고 있다.
실권은 거의 없지만, 여차하는 순간 쇼군이 ‘일왕을 위하여!’라는 이유로 기독교인을 철저하게 탄압할 것이다.
“또한, 황제와 왕은 하늘의 대리자로서 나라를 통치한다는 통념이 강합니다. 그런데 그대들이 새로이 하늘의 대리자로 주장할 경우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입니다.”
“그럼 무슬림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종교를 퍼뜨리고 있습니까?”
“교역을 무기로 지배층부터 개종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지요. 물론 그것도 인도와 그 옆 향신료 제도까지 닿았을 뿐, 그 위로는 올라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조선까지 이어지는 라인에는 불교와 유학이 꽉 잡고 있으니까.
“그대들의 방식은 기독교를 접해보지 않은 동방에는 큰 저항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는 전도와 무역에도 큰 악영향을 주겠지요.”
일부러 ‘무역’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라고.
실제로 인도네시아가 이슬람 국가가 된 건 포르투갈의 삽질 탓이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무력으로 동남아 교역의 중심지인 믈라카를 점령한 후, 유럽에서 하던 대로 이슬람 상인들을 죄다 쫓아냈으니까.
무슬림 상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거점을 옮겼고, 그 덕에 인도네시아는 기독교 외의 상인들을 위한 무역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흠…… 생각해 볼 문제군요.”
“천천히 생각해 보시지요.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지, 방식이 중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지요. 중요한 것은 진리인 기독교를 퍼뜨리고, 가짜인 이슬람이 퍼지는 걸 막는 거니까요.”
“…….”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슬람교는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이며 매우 훌륭한…….
됐다.
누구한테 변명하고 있는 건지.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 역시도요.”
엄청 귀찮기는 했지만, 유익한 건 사실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지동설의 어떤 부분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지 알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단순히 이론만 주야장천 써놨던 지동설 이론에 문과적인, 신학적인 감성 한 스푼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
문답과 연회를 마치고 하모니아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집필 작업을 시작했다.
‘기술에 감성이 녹아들면 감동이 됩니다.’
어느 광고의 문구처럼.
나는 단순히 사실을 전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감성을 어루만져줄 책을 쓰기로 했다.
+ + +
빛이 있으라.
창세기에 나오는 구절이자, 성경 원본에 나오는 최초의 문장이다.
빛이란 무엇인가.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이 땅에 어둠이 내려오듯, 빛이란 태양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신께서는 태양을 창조하셨을까.
미소한 인간이 위대한 뜻을 헤아릴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미가 코끼리를 더듬듯 조금씩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는 있으리라.
태양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작물은 자라지 않을 것이며, 풀을 먹고 자라는 짐승 역시 없을 것이다.
또한,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척박하고 추운 혹독한 환경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태양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은 태양이 있기에 이렇게 위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태양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신의 뜻에 거역하는 게 아닌.
마땅히 좇아야 할 진리의 이정표이고, 신이 인간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에 대한 고찰일 것이다.
(중략)
내 고향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지극한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다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천동설을 보며 의문이 생겼다.
수식이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선현들의 지혜와 노고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천문학의 발전을 위해 헌사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그리스 학자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바친다.
그들의 노력은 프톨레마이오스에게,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은 중동의 알마게스트(가장 완벽한 것)로 발전했으며, 그것은 아득히 머나먼 극동에게도 전해졌다.
나는 그것을 보고 배움으로써 천문학에 발을 들였다.
만약 그분들이 없었으면 나도 없었을 것이다.
또, 나는 그분들의 어깨 위에 서 있을 뿐, 결코 그들보다 위대하거나 현명하지는 않다.
후세에도 누군가가 우리의 어깨 위에 서서,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우리가 만들어낸 이론의 허점을 보완하여 더 아름다운 이론과 수식을 만들어낼 것이다.
나 역시 그 발판이 되기를 바라며 이 이론을 남긴다.
(중략)
천동설의 이론은 매년 아주 조금씩 오차가 발생하고, 행성의 역행을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이라는 개념을 끼워 넣었다.
전지전능한 신께서 굳이 어렵게 만들었을까.
또한,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면 어디에서나 같은 원리로 작용할 터인데, 천동설은 지역에 따라 다시 관측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이상하다.
이 의문은 내가 천문학의 이론을 새로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 이론을 보면 그대들은 생각할 것이다.
행성은 등속원운동을 하지 않고, 완전한 원을 그리지 않는다.
신이 만들어낸 것이 완벽하지 않을 리 없다.
반대라고 생각한다.
신은 인간을 창조했지만,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지 않기에 인류는 장점을 갈고 닦고, 단점을 보완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동안 접점이 없던 극동의 조선 사람인 내가 유럽으로 온 것이 그 증거이다.
완벽하면 발전이 없다.
그렇기에 신께서는 우리를 ‘일부러’ 불완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불완전은 결핍을 낳고, 결핍은 변화와 발전으로 이끈다.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인간이 살 곳이기에 불완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천체가 완벽하다고 생각해 보아라.
계절의 변화는 없을 것이고, 낮과 밤은 일정할 것이며, 우리는 별의 움직임에 의문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어떠한 의문도 없고, 어떠한 연구도 하지 않는 인류.
그리고 변화에 의문을 갖고 끊임없이 보완하며 연구하는 인류.
과연 어느 쪽이 더 발전할 것인가.
작고 어리석은 내 생각으로 감히 신의 뜻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또한, 평생을 신학에 매진한 신학자들보다 신의 뜻을 잘 알리도 없지만.
내 마음속의 신앙은 이것을 신의 뜻으로 여긴다.
변화와 발전이다.
+ + +
이 서문과 함께 출판된 내 책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생각 이상으로 폭발적이면서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다.
덕분에 내 명성은 하늘을 뚫고 올라갔고, 로마 교황청과 포르투갈 왕가의 선견지명을 찬양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생겼다.
프레스터 조선 왕국의 환상이 매우 크게 부풀어졌으니까.
프레스터 조선 왕국에 대한 환상은 향신료와 함께 동방으로 향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덕분에.
유럽 전역에 과도하다 싶은 항해 열풍을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