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32
231화 잡혀있는 기강 (1)
지중해에서 이슬람 사략 함대의 악명은 자자하다.
대표적으로 해적왕 하이레딘 파샤.
일명 바르바로사(붉은 수염)로 불리는 이 녀석은 오스만 제국의 해군 제독까지 되어 기독교 왕국 연합 함대를 박살 낸 괴물이다.
물론 내가 바르바로사를 만나게 될 일은 없다.
100년 뒤의 인물이니까.
하지만 이슬람 사략 함대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을 리는 없고, 그 전부터 이미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 역사만 해도 수백 년은 거뜬히 넘어간다.
심지어 로마 교황청까지 쳐들어가서 기독교의 대성전이자 세계 최대의 성당인, 성 베드로 성당마저 약탈한 적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이슬람 사략 함대의 최대 후원 세력은 다름 아닌 하프스 왕조.
현대의 튀니지다.
아마 하프스 왕조는 내가 아프리카를 돌아 유럽에 온 일로 분노하고 있을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대 수혜국은 맘루크 술탄국이지만, 그다음이 하프스 왕조니까.
“조심하세요. 20년 전에 프랑스와 제노바가 연합해서 십자군 원정을 떠났지만 결국 공략하진 못했어요. 바르바리 해적은 그만큼 강력해요.”
엔히크 왕자가 긴장하며 말했다.
“바르바리 해적?”
그게 벌써 있다고?
“주로 바르바리 해안을 근거지로 한다고 해서 바르바리 해적이에요.”
아. 바르바로사가 아니구나.
발음 때문에 헷갈렸다.
“흠…… 일단 알겠다. 잼민아. 선장실에 들어가 있어라. 밖에 있으면 위험하다.”
1500년대, 이 지역 배경이면 항상 나오는 바르바리 해적.
이들의 주특기는 선상 백병전이다.
당연히 지금도 선상 백병전이 특기겠지.
따라서 근처에 오기 전에 조져버려야 한다.
“네! 선장님!”
선장의 명령은 절대적이라는 규율을 떠올렸는지, 엔히크 왕자는 별말 없이 선장실로 들어갔다.
자, 그럼…….
유럽에서 첫 해적 사냥을 해볼까?
“포문 개방.”
“포문 개방!”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문제없다.
가까이 왔을 때, 샷건 같은 포도탄을 날리면 빗맞힐 수가 없다.
그렇게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선장님!”
“보고 있어.”
갑자기 저쪽에서 불빛이 켜졌다.
‘설마 화공인가?’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백기가 올라갔다.
그냥 백기를 게양하면 우리가 미처 못 볼까 봐 불까지 켜준 것 같다.
아니…….
그럴 거면 차라리 물러나는 게 낫지 않나.
위장 항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괜히 무섭잖아.
저쪽도 그런 점을 의식했는지, 배 한 척만 이쪽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안심했다.
해적들의 배가 생각보다 작네.
보선이 생각보다 크기도 하고.
이 정도 높이차면 저쪽에서 건너올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혹시 라자 나가입니까?”
상대는 내가 알아들을 거라 예상했는지 아랍어로 말했다.
오. 내 별명이 튀니지까지 알려졌구나.
“훗. 그렇다만.”
지중해에 악명을 떨치는 해적들마저 쫄게 만드는 용왕의 위명.
키아. 주모~ 국뽕 한 사발 주소.
“저희는 그 무함마드에게…… 그…….”
“무함마드? 어떤 무함마드?”
무함마드가 한두 명이어야지.
‘서울에서 김씨에게…….’라고 하면 누군지 어떻게 아냐.
“몇 달 전 여기를 지나간 라자 나가의 부하 말씀입니다.”
아. 맞다.
잠시 잊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걔도 이 항로를 지나쳐 갔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분께서 전해 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뭔데?”
“‘전하~ 이 구역은 내가 제패했으니 그냥 편하게 오시면 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야.
해적들이 날 방심시키려고 거짓 정보를 뿌리는 건가?
“이걸 받아주십시오. 이걸 걸고 다니면 지중해에서 라자 나가의 배를 건드리지는 않을 겁니다.”
해적들은 나에게 곱게 접힌 천 조각을 내밀었다.
“…….”
상황 파악이 정확히 안 돼서 망설여졌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깃발 같은데.
설마 기독교 왕국들과 싸움 붙이려는 계책인가?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꼭 달아주십시오.”
“왜?”
“네?”
“그 천이 뭔데?”
“이 배는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칼리프의 명이 적혀있는 깃발입니다.”
저 깃발을 받기 위해선.
또, 정확한 사정을 듣기 위해선 일단 배 위에 태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다리 내려.”
“예!”
아래를 보며 말했다.
“대표만 올라와라.”
“예!”
나에게 말을 걸었던 이가 천천히 올라왔다.
“자기소개부터 하지.”
“예. 저는 하프스 술탄국의 칼리프, 아부 파리스 압둘 아지즈 2세의 사략 함대를 지휘하고 있는 포시에라고 합니다.”
신기하지.
현대와 비교하면 600년 전 과거인데, 이름이 굉장히 익숙해.
“나는 강해인이라고 한다. 강이 성이고, 해인이 이름이다.”
“라자 나가의 위명이라면 상인들에게서 익히 들었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녀석이로고.
“듣기론 하프스의 술탄은 상당한 명군이라 들었다만.”
본래 하프스 왕조는 60년 전에 모로코를 지배하고 있는 마린 왕조에 의해 멸망 직전까지 몰렸다.
그러나 마린 왕조가 흑사병으로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그 틈을 타 하프스 왕조는 재기에 성공했다.
특히 현 술탄인 아부 파리스는 하프스 왕조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명군.
그의 사후, 하프스 왕조는 매너리즘에 빠져들다가 오스만의 속국이 되면서 왕조가 끊긴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왕조의 명운은 10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해적왕 바르바로사가 본래 하프스 왕조의 지원을 받았다가, 그의 세력이 너무 강력해지자 견제를 받아 알제리로 좌천되었다.
하지만 바르바로사는 알제리를 점령하여 술탄이 되고, 스페인의 토벌을 두려워하여 오스만에 항복했다가, 오스만의 지원을 받아 하프스 왕조를 멸망시키니까.
“예. 칼리프께서는 강력한 정복 군주이자, 누구보다 신실한 무슬림입니다.”
현대의 편견 때문인지, 신실한 무슬림이라니까 무섭게 느껴지네.
“흠. 그대는 칼리프라고 부르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으니 술탄이라고 부르겠네.”
칼리프는 이슬람의 종교 지도자를 말한다.
현재 칼리프라고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곳은 맘루크 술탄국의 술탄인데, 오스만을 비롯한 다른 술탄국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마치 서방교회에서 서로 진짜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근데 지금 시대인 15세기 초반은 진짜 내전과 분열의 시대네.
어떻게 전 세계가 이렇게 약속한 듯이 내전과 분열을 하는 건지 참 신기해.
……명나라도 다시 내전 어게인 했으면 좋겠다.
건문제랑 한왕 주고후는 뭐 하냐.
영락제가 몽골로 친정을 떠난 지금이 찬스인데.
“그 강력한 술탄께서 나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다고?”
“칼리프께서는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일부 세금을 폐지하셨습니다. 부족한 분은 저 간악하고 오만한 침략자를 응징하여 받아내고 계시지요.”
해적질과 노예무역으로 삥 뜯고 있다는 말을 잘도 포장하네.
“하지만 라자 나가는 저 간악한 침략자들과는 다르시지요. 정의로운 수호자 아닙니까. 따라서 칼리프께서는 라자 나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십니다.”
“…….”
“왜 그런 눈으로…….”
“진짜 그런 이유 맞나?”
아까 무함마드 이야기를 꺼낸 것.
깃발을 꺼내며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꼭 달아주십시오.’라고 한 점.
이로 보아 선발대인 무함마드의 함선을 건드렸다가 피 본 것 같은 느낌인데.
“혹시 원정대의 선발대를 건드렸나?”
“…….”
“거짓말할 생각이라면 그만두게. 지금 만나러 가는 길인데, 만약 거짓말이라는 게 확인된다면 그 빚은 확실히 갚아줄 테니까.”
“이미 다 때려 부쉈으면서 뭘 더 갚겠다는 거야…….”
상대가 작게 중얼거렸다.
“뭐?”
“아닙니다. 약간의 오해가 있던 건 사실이지만, 그 뒤 오해를 풀고 화해했습니다.”
“흠…….”
일단은 무함마드를 만나봐야 정확한 사정을 알 것 같다.
“아무튼,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도 라자 나가와 분란을 일으킬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알겠네. 받아주지.”
천을 받아서 펴보니 녹색 깃발이었다.
아랍어로 ‘칼리프의 신성한 명령으로 보호받는 상선’이라고 쓰여있는.
딱히 보호를 받겠다고 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괜히 귀찮게 해적들과 드잡이를 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언제 튀니스에도 들려주십시오.’ 같은 말은 없었다.
마치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라는 느낌이랄까.
“가보게.”
“예!”
그렇게 악명 높은 바르바리 해적들은 떠나갔다.
“전투가 없어서 좋긴 하다만 뭔가 찝찝하네.”
뭔지 잘 모르겠지만, 무척 피곤하다.
기록만 마치고 자러 가야겠다.
***
하프스의 술탄이 준 깃발을 걸고 항해를 하자니, 과연 해적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슬람 사략 함대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대신 유럽의 사략 함대가 다가왔다.
게임이나 영화의 영향으로 이 시대 지중해에는 이슬람 해적들만 설쳤다는 선입견이 많은데, 당연히 그렇지 않다.
해양 왕국인 아라곤이나 곳곳에 식민 도시를 건설한 제노바, 베네치아에서도 강력한 사략 함대를 운영한다.
이들은 주로 이슬람 상선을 공격하지.
안타까운 일이지만 하프스의 술탄이 준 깃발은 이슬람 사략 함대의 면역 효과를 가져온 대신, 기독교 사략 함대의 도발 효과도 가져왔다.
저기 아라곤의 사략선이 다가오는 걸 보면 말이다.
땡땡! 땡! 땡땡! 땡!
낮에는 괜찮은데, 꼭 밤에 이런단 말이지.
“포문 개방.”
“포문 개방!”
포문이 열리고 대포가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쏘기 전, 최후통첩을 날리는 의미로 확성기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공식적으로 우리 함대는 이슬람 사략 함대의 적도, 기독교 사략 함대의 적도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략 함대가 공식 명령을 따르는 건 아니니 경계는 해야 한다.
“여기는 극동의 원정대이자, 하모니아의 함대이기도 하다. 너희는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그러자 상대 함대는 약속한 것처럼 멈췄다.
그러더니 배 한 척이 백기를 게양한 채, 천천히 다가왔다.
이래서 백기를 쓰는구나.
이렇게 달빛이 밝으면 밤에도 잘 인식이 되니까.
“하하하. 어두워서 잘 안 보였는데, 성인 예하의 배였군요. 이슬람 사략 함대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넉살 좋게 말했다.
“배의 형태를 보면 모르나? 이곳에는 이런 형태의 배가 없을 텐데?”
“무슬림 놈들이 신형 배를 개발했다고 여겼습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인가!”
“정말입니다! 전에도 성인 예하의 배와 비슷한 함대가 지나쳤는데, 거기에 무슬림들이 잔뜩 타고 있었습니다.”
당연하지만 현재 이슬람 세력에는 보선같이 생긴 배가 없다.
보선과 비슷한 생김새를 찾으라면 그나마 조선의 배.
베트남 쪽만 가도 배의 형태는 확연히 달라진다.
즉, 상대가 언급하는 함선은 내가 선발대로 보낸 무함마드의 배다.
혹시 몰라서 무슬림 선원들을 다 몰아서 태웠으니까.
“설마 공격했나?”
“배가 좀 커서 고민했지만, 그래도 적이니까요.”
무함마드는 악운을 타고났나 보다.
이 넓은 바다에서 이렇게 공격받기도 쉽지 않은데.
……가만.
그동안 내가 험한 꼴을 본 게 혹시 무함마드의 악운에 휩쓸린 건가?
생각해보면 무함마드가 없을 땐, 항상 좋게좋게 끝난 것 같은데.
“어떻게 되었지?”
“상대의 대포가 워낙 강력해서 접근도 못 해보고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배 위에서, 그렇게 빨리 대포를 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충격도 받았지요.”
“눈치챘겠지만, 이슬람 함선 중엔 이처럼 생긴 배가 없어. 자네들이 공격한 배는 내가 선발대로 보낸 배일세. 혹시라도 이베리아의 기독교인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무슬림 선원을 전부 태워 보냈지.”
혹시라도 이쪽에 책임을 돌릴까 봐 ‘자네들이 공격한 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행이군요.”
“응?”
“만약 저 간악한 무슬림들이 그런 함대를 소유하고 있다면 유럽에는 재앙일 테니까요.”
“그래서 너흰 누구냐?”
“저희는 아라곤 왕국 시칠리아 소속 함대입니다. 만약을 대비해 경비를 굳건히 하고 있었지요.”
아라곤.
강력한 해양 왕국이지.
하지만 지금 왕위 계승 전쟁으로 정신이 없고, 극심한 재정난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어서 웬만하면 적을 늘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걸 보면.
“저…… 성인 예하.”
“말해.”
“혹시 간악한 무슬림들에게 넘어간 건 아니시죠?”
“내 믿음을 의심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됐네.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면, 이쪽에서도 공격할 생각은 없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근처에도 가지 않겠습니다.”
“알겠네. 그럼 이만 가 봐도 되겠지?”
“예! 늦은 밤에 실례 많았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그렇게 말하고는 아라곤 함대는 쏜살처럼 사라졌다.
마치 내 마음이 바뀔까 봐 그야말로 전속력으로 도망간 것 같았다.
“단순히 혼란과 재정난 때문에 이 정도 저자세는 나오지 않을 텐데.”
무함마드 이 자식.
대체 뭘 했기에 이렇게 위엄이 쩌는 건지.
의문을 품은 채 우리는 계속 오스만 술탄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