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63
262화 화체설 (1)
가까운 교회라고 해서 조그마한 교회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상당히 컸다.
아니, 대성당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컸다.
“노트르담 대성당 같기도 하고…….”
정면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군.”
할 일이 없다기보다는, 이 시대는 오락 거리가 무척 적다.
그래서 공개 처형도 하나의 유희로 생각할 정도다.
이런 시대에 종교 재판, 그것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성인으로 인정받은 극동의 왕에 대한 종교 재판이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나타나니 안 모이는 게 더 이상하겠지.
아마 이번에 모인 시민들은 기대하지 않은 깜짝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자극적인 소재를 더욱 자극적으로 만들어줄 준비물을 가져가는 중이니까.
“죄송합니다. 예하.”
“할. 그대가 왜 미안한가?”
“롤라드파의 존 올드캐슬은 제 친구입니다.”
“그대의 친구가 나를 고발했다고 해서 그대가 미안해야 할 이유는 없겠지.”
말하다가 의문이 들었다.
“롤라드파는 대체 뭔가.”
대충 알고 있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물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니까.
“혹시 존 위클리프라고 아십니까?”
“30년 전, 잉글랜드 땅에서 크게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라 알고 있네.”
종교 개혁의 시조 격인 인물이다.
그러고 보니 종교 개혁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 내 옆에 있긴 한데.
슬쩍 얀 후스를 보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렇듯 묵언 수행을 하는 고행자처럼 고요히 있을 뿐이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는 교회의 분열을 보며 크게 실망하여, ‘교황의 권위나 성직자의 권력은 성경에 근거가 없다.’라고 주장했지요.”
“오…….”
“아시다시피 당시 교회는 그에 대응할 정신이 없었고, 잉글랜드는 섬나라인 만큼 교회의 힘이 그리 강하게 미치지 않습니다.”
“그래도 기독교의 영향이 꽤 강해 보인다만.”
건물 양식도 그렇고.
이렇게 큰 대성당이 있는 것도 그렇고.
“예. 하지만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본인 앞가림도 못 하면서, 분열된 교황청 양쪽에서 세금을 뜯어가려는 행태에 귀족들까지 분노하고 있는 상태였지요.”
“확실히 화날 만하겠군. 그래서 존 위클리프의 주장을 묵인했나?”
“묵인을 넘어 지지했습니다. 덕분에 존 위클리프의 개혁 교회는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브리스톨 대성당 앞 정원을 계속 걸었다.
시기상 무척 추운 계절임에도,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고 꽤 따뜻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모인 것 같다.
“하지만 존 위클리프는 무리수를 두었습니다. 화체설을 부정하고, 성육신의 원칙을 부정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걸 먹어봐야 그리스도화 되지도 않는다는 말이고.
내가 듣기엔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종교라는 게 원래 이성의 영역이 아니지 않은가.
함부로 건드리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러한 존 위클리프를 따르는 무리가 롤라드파입니다. 화체설을 부정한 탓에 지금은 귀족들에게 그리 환영받고 있지 않지요.”
“존 올드캐슬은?”
“롤라드파는 주로 하층민들에게 환영받습니다. 그들은 성체성사를 할 여유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존 올드캐슬은 얼마 안 되는 귀족 출신 롤라드파입니다. 지도자 격이죠.”
“그런데 말일세. 빵과 포도주는 하층민들도 먹고 마실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냥 빵과 포도주로는 안 됩니다. 성체성사 때의 빵과 포도주만이 그러한 힘을 지니지요. 평민은 성체만 할 수 있을 뿐, 성혈은 하지 못합니다.”
다시 한번 얀 후스를 보았다.
얀 후스는 화체설을 부인한 게 아니라, 성체성사 때 평신도도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전혀 다르긴 하지만, 근본은 비슷하다.
성직자들에게 너희만 특권을 누리지 말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그러니 더 의문이 생기는군. 화체설을 부정하는 롤라드파가 왜 나를 고발했느냐 하는 것.”
빵과 포도주를 마신다고 해서 그리스도화 되는 것도 아닌데, 웬 신성모독인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알겠네.”
상황은 대충 파악했고, 누울 자리도 알아봤다.
다리 쭉 펴도 될 것 같다.
나는 대성당의 정원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췄다.
“여기에 자리를 마련하게.”
“예?”
내 말에 성직자들이 놀랐다.
“날씨도 좋고, 좋은 문답은 시민들이 들어서 나쁠 게 없지 않은가.”
“그건…….”
“이래 봬도 난 성인으로 인정받은 사람일세. 그대들이 로마 교황청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따르게나.”
“너무 갑작스럽게 이러시면…….”
“그대에게는 갑작스러웠는지 몰라도 나는 아닐세.”
기 싸움이다.
간단한 행동을 통해 우위를 보여주는 것.
만약 상대가 잉글랜드 왕의 후원을 받는 저명한 성직자였다면 적당히 맞춰줬겠지만, 끗발 없는 롤라드파라면 이쪽이 맞춰줄 필요는 없다.
“너희들도 보고 싶지 않으냐!”
“Yes!”
그렇지.
이런 개꿀잼은 놓칠 수 없지.
“준비하게.”
“……예.”
***
종교 재판장이라고 해야 할지.
토론장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무대가 준비되었다.
무대라고 해도 별건 없고, 천막 몇 개를 치고, 의자를 몇 개 가져다 놓았을 뿐이다.
“처음 뵙겠소이다. 동방의 귀빈이여. 코브햄의 군주 존 올드캐슬이요.”
존 올드캐슬의 생김새는 말끔했다.
다만 뭐라고 할까…….
냄새가 많이 났다.
소인배 냄새.
영화에서 보면 자주 나오는 간사한 인물들 있지 않은가.
간사한데 뭔가 어설픈 잔챙이.
서민들이 많이 믿는 롤라드파를 지지한 귀족이라고 해서 깨어있는 지식인을 상상했건만.
외면만 봐서는 크게 실망이었다.
내면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야겠지.
“강해인이라고 하네. 직위를 열거하면 말이 길어질 것 같으니 적당히 생략하겠네.”
“이 자리는 신성한 자리입니다. 예의를 갖추시지요.”
“훗.”
재밌네.
“대명의 번왕, 대만의 국왕, 벵골의 왕이며, 조선의 창해공이자 안정 사관, 대마도의 도주, 지팡구 나가사키의 후원자, 싱아푸라의 군주, 한타와디 왕국의 후견인, 하모니아의 영주, 지브롤터와 세우타의 주인, 로마 교황청의 공인 성인, 그리고 동로마 제국의 부마일세.”
아마 현대인이라면 이 직위의 대단함을 알 것이다.
향후 바다를 지배할 알짜배기 땅은 죄다 갖고 있으니까.
해운의 물동량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 정도만 제외하면 핵심 지역은 거의 다 갖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했다.
솔직히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져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물론 직접 지배한다고 하면 반발이 심할 테니, 자치권을 주고 연방에 편입시키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시군요.”
하지만 그는 가볍게 넘겼다.
얼마나 대단한지 전혀 모르는 듯한 눈치.
이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 거겠지.
“그래서 무슨 일로 날 고발한 건가?”
“롤라드파에서는 우상 숭배를 엄격히 금합니다.”
“내가 특별히 우상을 숭배한 적은 없다만?”
“우두를 몸에 넣으면 천연두를 몰아낼 수 있다고 선동하시지 않았습니까?”
존 올드캐슬은 웅변하듯이 큰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목소리가 중후하지 못하고, 웅변기술을 배우지 못했는지 딱히 위엄있지는 않았다.
“레위기에 따르면 ‘누구든 제 자식을 몰록에게 바치면 돌을 던지고, 사형에 처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몰록은 기독교에서 가장 유명한 악마 중 하나다.
생긴 건 미노타우르스처럼 생겼는데, 이 악마가 유명한 이유는 어린아이를 인신 공양으로 요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인이라고는 하나 소를 숭배하고 자식을 소 역병의 제물로 바치니 이는 심각한 신성모독이자 성서 위반입니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사서에 따르면 페니키아인들은 청동으로 몰록의 형상을 만들고, 여기에 불을 지핀 다음 아기를 굴려 넣었다고 한다.
동시에 수많은 북과 플루트 소리를 연주하여, 아이의 울음소리나 아이 부모의 절규가 들리지 않도록 더 큰 소리로 덮었다고.
페니키아인이라면 로마와 지중해 패권을 다퉜던 카르타고의 지배층이다.
아마 로마가 한니발에게 된통 당하고 카르타고를 악마로 묘사하기 위해 그런 프로파간다를 퍼뜨린 게 아닐까 추측한다.
“첫째. 나는 다른 이들에게 그리하라고 한 적이 없네.”
설득하려면 귀찮으니까.
효과를 보면 알아서 하겠지.
이쪽은 우두의 고름을 충분히 얻었으니, 이걸로 잘 접종하면 된다.
아시아의 소에 감염시키면 자체 생산도 가능하려나?
“둘째. 성서에서는 몰록을 숭배하지 말라 하였지, 소를 적대시하라고 하지는 않았네. 자네들도 다 우유를 마시지 않는가.”
마음 같아서는 ‘몰록 개객기!’라고 외치면서 사상 검증해주고 싶긴 한데, 체통을 지키도록 하자.
“셋째. 자신의 명성을 높이고자 다른 이를 깎아내린다고 해서 그대의 명성이 높아지진 않네. 오히려 그대의 본성만이 더욱 잘 드러날 뿐이지.”
선원들에게 손짓했다.
내 수신호를 알아본 선원들은 존 올드캐슬을 상대를 제압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잘 생각해보게. 내가 왜 굳이 이 자리에 참석했을 것 같은가?”
무시해도 그만이다.
이제 이런 잔챙이와 어울리기엔 내 급이 너무 높아졌다.
하지만 종교 재판 참석을 요구받는 순간, 이를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개가 짖는다고 개랑 같이 짖을 필요는 없지만, 무대를 마련해줬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지.
“이제는 내가 질문하지. 신은 전지전능한가?”
“그, 그렇습니다.”
“신은 선량한가?”
“당연한 말씀을!”
“전지전능하고 선한 존재라면 악인을 처벌하고, 선인을 구하시겠군. 맞나?”
“…….”
“대답.”
“예, 예. 그렇습니다.”
“좋군.”
나는 옆에 차고 있는 주머니를 꺼내어 흔들었다.
“이게 뭔지 아는가?”
“…….”
“대답.”
“모릅니다.”
“이것은 말일세. 천연두 환자의 고름일세.”
“…….”
“안심하게. 혹시라도 효과가 약화할까, 햇빛에 말린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네. 오늘 갓 채취한 고름이지.”
그리고 바늘을 꺼냈다.
“거기 사제분.”
“저, 저 말입니까?”
늙수그레한 가톨릭 사제가 당황했다.
“그래. 그대 말일세.”
“무, 무슨 일이신지…….”
“그대가 해줘야 할 일이 있네. 이 바늘로 천연두 고름을 듬뿍 묻혀서, 나와 저자의 팔에 찌르게.”
“…….”
“그렇게 광인처럼 바라보지 말게.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성직자에게 말하고는 다시 시민들을 보았다.
“그대들은 분명히 겪어 보았을 것이다. 천연두로 인해 수많은 친지를 그리스도의 품으로 보낸 경험을!”
참 안타까운 일이다.
바로 옆에 그 해결책이 있는데, 선입견과 과학에 대한 무지로 인해 안타까운 피해자가 생겨버렸다.
“브리스톨은 그리스도의 가호가 내려진 번성한 항구이다. 그렇기에 이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신의 계시를 받았지.”
브리스톨은 항구 도시다.
그것도 번성한 항구.
이 말은 곧 정보가 빠른 도시라는 뜻이다.
아마 교황의 선종과 은광의 예언도 들어본 이가 꽤 있을 터.
아마도 그들이 살과 과장을 보태어 소문을 퍼뜨려 주겠지.
“공자 수 분투…… 가 아니라, Deus vult. 신께서 이것을 원하셨다. 그렇기에 난 하였다. 그리고 지금!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확실하게 증명하겠다.”
존 올드캐슬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았다.
천연두 자국이 없다.
그 말은 천연두 내성도 없다는 뜻.
“나는 이제 천연두가 두렵지 않다. 천연두는 신의 계시를 받은 내 기휘를 결코 범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압된 존 올드캐슬을 보았다.
그러니까 건드릴 사람을 건드렸어야지.
외국인이라고 만만하게 봤나?
“과연 그대도 그러할까?”
이번엔 다시 성직자를 보았다.
“뭐 하는가. 어서 찍어라. 듬뿍 찍어서 팍팍 찍어라.”
“저,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자칫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믿음이 부족하구먼. 그럴 일 없네. 설사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아니,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 그대의 교구에 금화 천 개를 기부하지.”
이것으로 확실해지리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호를 받는 성인이고.
내 발언은 그 어떤 성인의 말씀보다 더욱 고귀하고 값지게 되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