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91
290화 화약, 강철, 믿음 (7)
영락제 주체는 한왕부의 한 궁궐에서 조용히 차를 마셨다.
그 앞에는 엄청난 양의 서류가 쌓여있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폐하.”
정화는 영락제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명나라 본토에 있던 사람 중 유일하게 알고 있었다.
영락제가 그만은 신뢰하여 몰래 밀사를 보냈으니까.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그리 생각했지.”
“…….”
“사고가 아니었구나.”
영락제는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종이를 보며 말했다.
이는 한왕 주고후의 책사 장원기와 한왕부의 수많은 이들을 고문하여 실토받은 사항을 낱낱이 적어둔 것이었다.
“송구하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하얀 옷을 입은 정화가 담담하게 말하며 그대로 넙죽 엎드렸다.
첩보를 총괄하는 동창의 제독인데도, 황제를 살해하려 했던 계획을 미리 알아내지 못했다니.
만 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대죄였다.
적어도 정화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어찌 그대의 잘못이겠나. 동창이 설립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천하를 감시하는 일이 쉽지 않을 터인데. 더욱이 내 아들놈이 한 짓이고.”
아무리 성격이 난폭하고 야심이 많다고는 하나, 아들이 정말 자신을 죽이려고 할 줄이야.
표정에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영락제는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다.
“쿨럭! 쿨럭!”
“폐하. 괜찮으십니까?”
정화가 급히 다가가 비단천을 가져다주었다.
“쿨럭! 쿨럭! 커억!”
정화는 비단에 쏟아진 새빨간 선혈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폐, 폐하!”
“괜찮다. 오랫동안 북방의 찬바람을 맞다 보니 몸이 약해진 모양이야. 나도 이제 늙었군.”
“폐하…….”
“괜찮대도. 짐은 할 일을 마치기 전에는 절대 쓰러질 수 없노라.”
위풍당당하게 북원의 수도이자 유일한 도시인 카라코룸을 불태웠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이변은 잔당을 토벌하고 전리품과 약탈을 위해 잠시 머무는 사이 발생했다.
진영 곳곳에서 곽란 환자가 출현한 것.
전염병 환자가 생기면 격리하고 진영 간 거리를 벌려야 했으나, 50만 대군이 머무는 곳은 북원의 중심이었다.
군대를 넓게 배치하면 저 야만적인 기병들에 의해 각개격파 당할 위험이 너무 컸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 곽란은 빠르게 전염되었고, 영락제는 곧바로 회군을 결정했다.
하지만…….
마치 이때를 노렸다는 듯이 몽골 기병들이 곳곳에서 공격해왔다.
영락제는 목숨을 건 탈출을 했고, 유목천 인근에 이르렀을 때는 거의 빈털터리가 된 상태였다.
그때, 또다시 몽골 기병이 다가왔다.
‘여기까지인가?’ 생각했을 때, 몽골 기병은 오히려 손을 내밀었다.
자신들이 북원을 지배하고 대칸의 칭호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면, 무사히 중원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때 알아차렸다.
이들은 황금 씨족에 맞서 싸우고 있는 오이라트의 부족이라고.
황금 씨족과는 달리 오이라트는 자신이 직접 왕작에 봉하는 등 여러모로 친교가 있었다.
그 위기 상황에서 영락제는 오히려 역으로 제안했다.
동창에 의해 명나라 곳곳에 건문제의 수하가 숨어들었다는 첩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건문제 본인도 명나라 안으로 들어왔다는 은밀한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다.
영락제는 도박을 하기로 했다.
죽은 척 위장하여 숨어있는 쥐새끼들을 모조리 박멸하기로 한 것.
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를 황제로 떠받들던 사대부들이 건문제와 결탁하리라고는.
또, 아들인 한왕 주고후가 황위를 노려 반란을 일으키리라고는.
차라리 민심이 저쪽으로 향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받아들일 만한 일이었다.
“짐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숨기라. 오직 그대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계속해서 서류를 읽었다.
그는 이전에도 일을 워낙 많이 해서 건강을 해칠 우려가 컸다.
몸이 이렇게 안 좋아진 상황에서도 이렇게 과로를 하다니.
정화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 찼다.
“한왕 주고후도 처리하였으니, 요양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안 된다. 이는 시간 싸움이니라.”
“폐하…….”
“내 대에 생긴 문제를 첨기에게 넘겨줄 순 없다. 첨기는 총명하고 용맹하지만, 정이 너무 많아. 자칫 폐제와 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피를 보고도 약해지기는커녕 영락의 눈은 오히려 불타올랐다.
마치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강하게 빛을 내는 회광반조 같은 느낌이었다.
“최대한 빨리 군을 정비하라. 남경만 점령한다면 다른 호족이나 제후들도 다시 고개를 숙일 터.”
아무리 사대부들이 내부에서 배신하여 남경을 빼앗겼다고는 하나, 아직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했을 터.
이것이 북경에서 겨우 3만만 이끌고 한왕부를 공격한 이유였다.
한왕부를 공격하는 척하면서 남경을 수복하기 위한 성동격서.
본대는 이미 경항대운하를 따라 남경으로 향했다.
영락제는 오이라트의 기병과 주첨기의 3만의 힘을 합쳐, 늦지 않게 남쪽으로 밀고 가야 한다.
“이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끝낸다.”
***
함흥의 바로 위는 개마고원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
여기에 언제 호랑이가 덮쳐올지 모른다는 공포까지 가득했다.
“감사합니다. 아메리카.”
이름도 모를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이렇게 춥고 험난한 곳까지 오셨다니.
비록 전생의 일이지만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동시에 통일의 목전에서 훼방을 놓은 중국이 더욱 나쁘게 느껴졌다.
“역시 중국은 갈라져야 해.”
그걸 위해서 내가 이 고생을 하는 거고.
“근데 말이야. 요동은 정말 점령하기 쉬운가?”
“점령 자체는 쉽다.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아이신기오로 먼터무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만약 유지할 수 있다면 그쪽으로 터전을 옮길 건가?”
“터전을 옮기는 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불편해서 그래.”
“무엇이 불편하지?”
“다른 대륙의 작물이나 가축을 가져올 때 배달하기 어렵잖아. 여차했을 때 쌀을 지원해주기도 어렵고.”
또, 나중에 조선은 반드시 4군 6진을 개척하려 들 텐데, 동맹끼리 싸우면 나만 머리 아파진다.
그래서 미리 제안하는 것이다.
“지금 망설이면 조만간 그 근방에 엄청난 성이 들어설 텐데.”
만리장성 재축조부터 해서 청나라가 끝까지 함락시키지 못했다는 산해관도 아직은 건설되지 않았다.
또, 여진족을 감시하기 위해 요동에 엄청나게 많은 성을 축조하여 우주 방어를 해버리니, 이 탓에 여진족은 오랫동안 힘을 못 쓰게 된다.
“잘 생각해 보시게. 기회는 많은 것이 아니니.”
“그대는 명의 번왕이 아닌가.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서워서.”
“음?”
“난 저 거대한 땅덩어리에 한 명의 절대 권력자가 있는 게 무섭다. 그 사람 한 명의 기분 때문에 내 가족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거니까.”
“…….”
“주사위는 던져졌어.”
내가 대놓고 개기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첫 빠따를 맞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이미 동창도 알고, 정화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을.
“이제 곧 그대도 선택해야 할 게야. 명나라에 목숨줄을 건네고 평화를 유지하든지. 아니면 동맹과 함께 단호하게 저항하든지.”
“그대는 우리를 믿는가?”
“이 사람아. 어떻게 처음 본 사람을 믿을 수 있겠나.”
“그러면?”
“대신 하나의 공감대로 이어져 있지. 저 거대한 덩치를 상대로 혼자 대항하면 사람답게 살지 못하리라는 걸. 여진은 그리 생각하지 않나?”
“…….”
“나 역시도 마찬가지일세. 여진의 강력한 기병이 명나라에게 붙는다면 조선이 위험해지겠지. 조선이 위험해지면 대만도 위험해질 테고.”
“그것이 자네의 믿음이군.”
“그래. 우리는 서로의 목숨줄을 잡고 있지.”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나는 인간의 본성을 믿지 않는다.
인간이란 한없이 이기적인 존재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 가정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조직을 이루고, 국가를 이룰 수 있는 까닭은.
배신했을 때 이익보다 훨씬 더 큰 손해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협력한다면 대만은 조금 더 쉽게 안보를 얻고, 여진은 풍요를 얻겠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야.”
“만약 한쪽이 배신한다면 어찌 되는 건가?”
“대만은 여진을 징벌할 능력이 없네. 우리의 주력은 해군이거든.”
육지에 내리면 저 강력한 여진 기병에게 짓밟힐 것이다.
“대신 나는 여진족에 들어가는 모든 자원을 끊어버리겠지. 또한, 어업은 못 하게 되겠지.”
“만약 그대가 배신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복수할 수 있지?”
“조선이나 명나라에게 붙으면 되지 않나.”
“……나쁘지 않군.”
“나쁘지 않지.”
우리는 계속 산길을 따라 걸어갔다.
죄다 험준한 산일 거라 생각했는데, 협소하긴 해도 길이 있었다.
“어우. 끔찍하네.”
“아닐세.”
생각해 보면 만약 6·25전쟁 때 한국이 통일했다면, 군 생활을 이곳 개마고원에서 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잖아.
어차피 난 해군이라 안 갔겠지만, 국군 장병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차라리 통일 안 된 게 다행일 수도?
“하지만 결국 힘이 중요하네. 아무리 잘 지내려고 해봐야 강력한 군대가 공격해오는 순간, 힘없는 동맹은 순식간에 와해되겠지.”
“그렇겠지.”
“동맹의 믿음은 생겼다. 하지만 부족하다. 명나라가 대군을 휘몰아왔을 때, 대만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쉿.”
저 너머 풀숲에 갈색 털이 보였다.
줄무늬도 있는 것으로 보아 호랑이다.
그것도 꽤 큰.
나 같은 초심자도 호랑이를 발견할 수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포유류는 대부분 붉은색을 못 보기에 호랑이는 저 갈색 털로도 위장이 된다나.
하지만 인간은 붉은색을 구별할 수 있는, 그것도 매우 잘 구분하는 얼마 안 되는 희소한 포유류라고.
붉은색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신 현생 인류의 조상에게 감사드리며 총을 꺼냈다.
범과의 거리는 약 150m.
그리고 내 총은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강선총이다.
이 정도 거리라면 충분히…….
탕!
방아쇠가 당겨지고 총탄이 날아갔다.
운 좋게도 정확히 미간에 명중.
호랑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쓰러졌다.
“…….”
“…….”
내 선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태연했지만, 여진족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도 당연히 화약 무기의 존재를 알고 경험해봤다.
하지만 이렇게 손쉽게 다룰 수 있고, 저 멀리 있는 짐승의 왕을 일격에 잡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듯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나?”
“그, 그래.”
“내 장담하지.”
탁탁!
그가 선물해준 철갑옷을 쳤다.
보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가볍다.
완전 군장 메고 행군하는 것보단 쉽다고 해야 하나.
“대만의 화약과 여진의 강철이 합쳐지면 어떠한 적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무적의 군대가 될 것이라고.”
“…….”
“부족한 것은 서로를 향한 믿음뿐일세.”
지구는 밸런스가 망가진 맵이다.
하지만 무역과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나로서는 여진족이 단기적인 동맹이 아니라 수백, 수천 년을 함께할 수 있는 동맹이 되었으면 하니까.”
“재밌겠군.”
내 진심이 통했을까.
아이신기오로 먼터무는 나를 만나고서 처음으로 웃었다.
……첫인상 때문인지, 웃는 모습도 무척 무섭게 보였다.
“어르신의 활과 그대가 먼저 보여준 신뢰에 응답하여 약속하겠다.”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진은 대만의 혈맹이 되어 고락을 함께하겠다고.”
나 역시 그의 손을 잡았다.
“나 역시 약속하겠다. 여진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진실한 친구가 되겠다고.”
이제 준비는 완료되었다.
나는 영락제가 진짜로 죽었다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명나라는 이미 너무나도 큰 틈을 보였다.
이 틈을 노려, 영락제가 다시 돌아오더라도 예전의 성세는 찾을 수 없도록 확실하게 찢어버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