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90
289화 화약, 강철, 믿음 (6)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
답은 간단하다.
벵골 호랑이와 싸우면 사자가 이기고, 시베리아 호랑이와 싸우면 호랑이가 이긴다.
동물 세계에선 체급이 제일 중요한데, 육상의 ‘육식’ 동물 중 시베리아 호랑이는 최강의 체급과 피지컬을 자랑한다.
북극곰이나 그리즐리 베어는 잡식성이니 제외하도록 하고.
심지어 나무도 잘 타고, 고양잇과인데 물도 좋아한다.
도망칠 곳이 없다는 뜻이다.
근데 한국 호랑이는 시베리아 호랑이랑 종이 같다.
또, 나는 몰랐던 사실인데 지금 한반도에는 표범도 많다.
아무르 표범이라고.
한국 설화에서 잘 나오지 않은 이유는, 한반도 사람들이 ‘표범도, 줄범도 다 호랑이지.’라며 굳이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줄범은 수컷, 표범은 암컷이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함흥 바로 위가 그 유명한 개마고원.
한반도에서 가장 춥고, 시베리아 호랑이와 아무르 표범이 득실대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사냥이라니.
솔직히 자살행위다.
호랑이를 사냥하려면 사냥의 고인물로 이루어진 레이드 파티를 데리고 가야 한다.
괜히 호랑이를 사냥하는 특수부대인 착호갑사가 임기를 마치면 종4품의 벼슬을 주는 게 아니다.
엄청난 무예를 소유해야 하며, 그런데도 임기를 마치기 전에 다 죽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거다.
“어르신의 활을 소유한 청년과 범 사냥이라. 심장이 뜨거워지는군. 흐흐흐.”
계속 무표정이던 여진족들은 범 사냥 이야기가 들려오자 다들 전의를 불태웠다.
“오랜만에 사냥입니까? 좋군요.”
사냥꾼 출신인 석피도 기분이 좋은 듯했다.
“잉글랜드 남자의 힘을 극동에서 떨쳐 보이겠습니다.”
심지어 헨리 왕자도 몸이 달아오르는 모양이다.
뭐야.
다들 미쳤어.
난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이걸 받으시게.”
어떻게 하면 발을 뺄까 고민하는 나에게, 아이신기오로 먼터무가 무언가를 건넸다.
“이건?”
“최고의 정예병만 입을 수 있는 갑옷일세. 물론 마갑도 준비했네.”
열어보니 철갑옷이었다.
한때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송나라까지 빈사 상태로 몰았던 금나라 철기병의 갑옷.
이들의 무예가 어찌나 대단한지, 17명의 철기병이 송나라 병사 2천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니, 그야말로 인간병기들이 입는 갑옷이라 할 수 있다.
“…….”
“마음에 들지 않는가?”
“아닐세. 고맙소.”
생긴 게 마치, 그…….
고구려의 최정예였다는 개마무사의 갑옷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해서.
혹시 고구려의 유산이 여진족에게 이어졌나?
생각해보면 고구려의 피지배층이었다는 말갈족도 반유목, 반 농경에, 수렵채집, 어업까지 했다고 하던데.
발해가 멸망을 기점으로 사서에 말갈족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여진족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툭 튀어나왔단 말이지.
흥미가 깊구나.
“별건 아니지만 나도 선물을 드리지.”
내가 준비한 것도 갑옷이다.
“철갑옷 안에 받쳐입으면 괜찮을 것이오.”
“따뜻해 보이는군.”
“머나먼 서쪽의 영길리의 최고급 양털로 만든 누비 갑옷일세. 이것의 경우 갑옷이라기보다는 일상복에 더 가깝게 제작되었지.”
“철갑옷 안에는 굳이 두꺼운 누비 갑옷을 입을 필요 없지. 딱 좋네.”
다행히 마음에 든 듯했다.
“저…… 전하. 저 위에 고원은 무척 높습니다. 철갑옷을 입으면 무척 힘드실 텐데요.”
“석피야.”
“예. 전하.”
“차라리 힘들래.”
“네?”
“죽는 것보단 그게 낫지.”
내가 무술 센스는 없어도 홈 트레이닝은 항상 하고, 뱃일로 다져진 덕에 몸은 매우 튼튼하다.
갑옷이 상당히 무겁기는 하지만, 무게 분산이 잘 되어 있어서 걷는 데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가보자. 너만 믿는다.”
“예. 전하.”
깔끔하게 사냥을 끝내서 전사로 인정받고, 친교도 끝내자.
***
땅이 흔들리며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 왔다.
그럴수록 장원기의 본능은 위험하다고 비명을 질렀다.
“대체…….”
도망가자니 마차에 실린 금 때문에 무거워서 속도를 낼 수 없다.
다 버리고 도망치기엔 이미 늦었다.
“소, 속도를 높여! 그, 금붙이를 뿌려라!”
장원기는 고민 끝에 그런 명령을 내렸다.
뒤따라오는 이들이 탐욕스럽기를 바라며.
두두두두두!
큰 착각이었다.
뒤따라오는 이들은 반짝이는 물건에는 관심도 주지 않은 채 빠르게 이쪽으로 달라붙었다.
“멈춰라! 멈추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뒤에서 능숙한 명나라말이 들렸다.
거짓이 아니라는 듯, 화살 몇 개가 마차 주변에 박혔다.
도망칠 수 없다.
상대의 숫자를 보아하니 싸워도 가망이 없다.
결국, 장원기는 마차를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이냐!”
공포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큰소리를 쳤다.
무섭게 자신을 노려보는 기병들 사이에서.
멋진 갑옷을 입은 장군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대인. 빠뜨린 게 있소.”
“자네는…….”
오이라트의 기병이다.
순녕왕 토곤이 보낸 선봉대 2천에 포함된 장군.
그의 얼굴을 보자 조금 안심했다가, 다시금 털이 삐쭉 솟는 느낌이 들었다.
아. 알겠다.
전에 느낀 위화감이 무엇인지.
분명 오이라트의 오랑캐인데, 왜 이렇게 북경어를 잘하는 거지?
명나라 말을 잘하는 건 이해할 수 있어도, 오이라트와 멀리 떨어진 북경의 방언을 구사하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내가 무얼 빠뜨렸단 말이냐?”
“감히 폐하를 배신했다면 마땅히 내놓아야 할 게 있지 않겠소?”
“그게 무슨…….”
“대인의 목 말이외다.”
그 말과 함께 공격이 시작되었다.
남해에서부터 10년 가까이 동고동락했던 심복들이 저항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괴물이다.
인간을 살육하는 백정.
장원기는 극심한 공포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분명 잘만 했으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터인데, 어찌 폐하를 배신하셨소이까?”
“나, 나는 폐하를 배신하지 않았다! 처, 천하에 나보다 충신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그렇다면 묻겠소.”
가당치도 않다는 듯.
장군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가 섬기는 폐하란 누굴 가리키는 것이오?”
누구?
설마 세 황제 중 하나를 선택하란 말인가?
“…….”
“왜 대답을 못 하시오? 그대가 섬기는 하늘이 누구냐고 묻지 않소.”
장원기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그러다 이내 냉정하게 생각해보았다.
일단 건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는 북쪽에서 왔고, 북경 방언을 주로 쓰니까.
황태손 주첨기도 아닐 것이다.
그는 유일하게 제위에 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당연히 천명의 천자를 말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그대는 왜 도망가고 있소?”
“도망이 아니다! 대명이 천명을 공격하고 있으니, 이 틈을 노려 진명에게 대명을 치라고 설득하기 위함이니라!”
“크크큭.”
장군은 웃었다.
그에 따라 오이라트의 기병들도 웃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뭐?”
“주고후는 주제도 모르고 하늘을 탐한 멍청이일 뿐이지.”
오이라트는 처음부터 천명을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천혜의 요새인 장안성을 열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을 뿐.
상황 파악이 된 장원기는 넙죽 엎드렸다.
이제 곧 순녕왕 토곤의 군대가 물밑 듯이 장안성으로 들어올 터.
그렇게 되면 중원은 재앙이다.
최소한 북쪽은 깡그리 잡아먹힐 것이다.
“지, 진정한 천자는 순녕왕 전하이십니다. 곧 천하를 얻으시어 태평성대를 열 것이옵니다! 순녕왕 전하 만세! 만만세!”
“…….”
장군은 물론 오이라트 기병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말이 필요 없는 작자로군.”
“예?”
“보여주겠다.”
장군은 병사를 시켜 장원기를 포박했다.
이제 곧 녀석은 지옥을 맛보리라.
“진정한 하늘을.”
***
장원기는 장안성으로 끌려갔다.
불과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장안성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멀쩡했던 집이 한순간에 귀신들린 음산한 집으로 변한 것 같다고 할까.
곳곳에는 미약하지만, 전투의 흔적까지도 있었다.
대체 누가?
‘누가?’라고 물었지만, 장원기는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세력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궁금한 것은 오이라트의 군대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도 없이 침략당해왔던 명의 군대는 오이라트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강하게 감시했을 것이고.
그런데 어떻게?
장원기는 계속 끌려갔다.
바짝 묶은 밧줄로 인해 팔에는 피가 통하지 않아 괴사할 지경이고, 끌려가는 과정에서 몇 번이고 넘어져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지만, 상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과거의 한왕부.
지금은 천명의 궁궐.
어제까지 장원기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세를 떨치던 곳.
궁궐에 들어서자 전투의 흔적이 확연히 보였다.
곳곳이 그슬렸고, 어떤 문은 파괴된 흔적이 보였다.
부족했다.
비록 전투의 흔적이 있으나, 한 나라의 수도에서 일어난 공방전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전투의 흔적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이 정도면 가히 무혈입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체 왜?
궁궐의 대전에 들어서자, 포박당한 채 무릎 꿇려진 주고후가 보였다.
주고후를 따르던 무관들도 죄다 묶인 채 무릎 꿇려져 있었다.
그는 장원기를 보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네놈 때문이다! 네가 버러지 같은 계획을 주장하는 바람에 내가 이런 꼴을!”
“대체 이게 무슨…….”
“무슨 일인지 궁금하겠지.”
둘의 논쟁을 끊어내듯, 한 남자가 들어섰다.
하얀 비단옷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사내.
장원기는 그를 잘 알고 있다.
주고후의 밑에서 여러 계책을 짜내면서 가장 경계했던 요주의 인물이니까.
“정화! 어째서 그대가…….”
“동창이 가지 못할 곳은 폐하의 침소 외엔 없지.”
정화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으나,
“네 이놈! 빌어먹을 고자 새끼! 내 진작에 네놈을 쳐 죽였어야 했다!”
주고후는 길길이 날뛰며 그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하지만 정화는 익숙한 듯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오. 한왕 전하. 어찌하여 진심으로 폐하를 섬기시지 않고 간신들의 꼬드김에 빠져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단 말이오.”
“폐하? 폐하? 누가 폐하란 말이냐! 천하에 진정한 천자는 오직 나뿐이다! 폐제를 사칭하는 놈도, 그 어린 애송이도 천자의 자격은 없단 말이다!”
“그렇소이까? 그렇다면 이 분은 어떠신지…….”
정화는 허리를 숙이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대전 안에서 거대한 체구에 위엄찬 풍모를 지닌 사내가 황룡포를 입은 채 밖으로 걸어 나왔다.
주고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상상도 못 한 인물이었기에.
“못난 놈.”
이어 주고후를 보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아, 아바마마…….”
주고후의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어…… 어째서…… 어째서 당신께서 여기에 있는 겁니까!”
대체 왜?
분명 죽었다고 들었는데?
북원의 수도 카라코룸을 불태웠으나, 치명적인 전염병인 곽란(콜레라)의 유행.
극심한 탈수 증상으로 50만 대군 중 3할이 죽었다.
더는 진군이 어렵다고 생각하여 회군을 결정.
북경으로 회군하던 도중 오이라트의 기병들에게 급습 받아 붕어…….
오이라트?
그동안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이라트라고 해도 다양한 부족이 있고, 순녕왕의 부족이 공격한 건 아니라고 들었으니까.
“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구나. 천하가 혼란스러워졌으나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이것으로 충신과 간신이 확실하게 구분되었으니까.”
온갖 상상이 떠올랐다.
만약 거기서 아바마마와 오이라트가 밀약을 맺었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혼란이 다 아바마마의 계획이었다면.
아니.
아니다.
자국을 파탄 내면서까지 해야 할 계획이란 없다.
아무리 철혈의 황제라고 해도 그건 말이 안 된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신 겁니까!”
“무엇을 말하느냐?”
“파탄 난 이 나라가 보이지 않으십니까? 무사하셨다면 바로 오셔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다면…… 그랬다면…….”
조금 더 착실히 준비해서 일을 벌였을 텐데.
“약간의 사고가 있었으나 대명은 건재하다. 짐이 이렇게 무사하지 않은가.”
하지만 주체는 아무런 감흥 없이 대답했다.
“짐이 곧 대명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