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94
293화 중원의 화로 (2)
구약에서 강조하듯.
흑사병으로 겪었듯.
현대의 지식이 말하듯.
전염병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완전 격리다.
이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흑사병이 창궐할 때 유럽의 수많은 도시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방역을 한 도시는 밀라노.
이들은 흑사병이 걸렸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병자와 가족을 모두 아사할 때까지 집에 가둬두는 것이었다.
이보다 훨씬 인도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있으니, 전염병이 퍼지기 전 교류를 차단하는 것이다.
다행히 대만은 섬나라.
배만 잘 통제하면 전염병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모든 창해 주식 상단 및 상인에 전한다. 당분간 중원 본토와의 무역을 금한다.”
대신 전염병이 들어올 수 있는 모든 루트를 차단한다.
“동맹에게도 전하라. 중원과의 교류를 잠시 중단하라고.”
다행히 중국과의 무역을 원하는 나라는 많지만, 필수인 나라는 없다.
애초에 명나라는 무역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까.
부족한 것은 국가 간 교역으로 보충할 수 있다.
“전하. 그…… 전하의 처가댁은 어떻게 할까요?”
“광동성과 복건성은 우리의 영역이다. 또한,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지. 그들에게도 본토와의 교역을 철저하게 차단하라 이르라.”
다행히 대만으로 들어온 중국인은 대부분 민남인과 광동인.
바다를 터전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강과 땅의 민족인 한족과는 성향이 다르다.
이번 기회에 이 점을 부각하여 확실하게 갈라쳐야겠다.
다행히 내게 가장 중요한 무역품인 차와 도자기, 비단이 이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므로 여기만 건사해도 문제 대부분은 사라진다.
모자란 건 조선 등지에서 보충하면 되고.
“하지만 그곳은 인구에 비해 식량 생산이 많지 않습니다.”
“쌀이야 남쪽에 넘쳐난다. 그렇지 않은가?”
참파와 크메르에 있는 메콩강 삼각주.
이곳은 최근 개간에 개간을 거듭하여 엄청난 곡창지대로 성장했다.
여기에서 얻는 쌀로 동남아시아인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다.
“비누를 써서 손을 씻어라! 강박적으로 씻어라!”
“백성들은 비누를 살 돈이 부족합니다.”
“내가 산 거로 하고 백성들에게 나눠주어라.”
이미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기름야자 나무가 동남아시아 곳곳에서 재배되고 있다.
이를 이용해 팜유를 만들고, 팜유를 이용해 비누를 대량 생산하고 있다.
“음식과 물은 반드시 팔팔 끓여 먹어라! 용왕차는 그대들의 건강을 보장한다!”
산업 혁명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그리고 프로토 타입 기계는 나왔다.
이에 따라 예전부터 다가올 미래를 위해 곳곳에서 석탄을 찾고 채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여진족에게 요동을 차지하라고 한 이유도 이것이다.
거기에는 노천 철광이나 석탄이 많다고 들었거든.
아무튼, 석탄을 캐서 가루를 내고, 이를 점토에 섞어 가공한 연탄도 시장으로 나오는 상황이다.
땔감이 부족할 일은 적을 것이다.
“복면(마스크)을 계속 사들이고 만들어라!”
장영실 덕분에 실을 뽑는 방적기와 직물을 짜는 방직기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량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기계를 대량 생산할 수도 없고.
하지만 우리에겐 인도가 있다.
인도의 섬유산업은 기원전부터 발전해 내려왔다.
이 시대 인도의 섬유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
특히 캘리컷의 캘리코와 벵골의 모슬린이 유명하다.
“우두가 만들어지는 대로 접종하라. 예외는 인정하지 않는다.”
잉글랜드에서 홀스타인종 젖소를 가져오기도 했고.
우두 고름을 잔뜩 가져와 이걸 아시아의 소에 전염시키기도 했다.
소를 숭상하는 힌두교도들에 소요가 있었기는 하지만, ‘인간이 소의 신성함을 받아들이기 위한 신성한 의식이다.’라고 설득해서 어떻게든 넘어갔다.
평소에 ‘나는 시바 신의 사자이며, 자라트카루의 환생이다.’라고 충분히 구라를 쳐놨더니, 진짜로 그렇다고 믿더라.
“항생제를 총력을 다해 생산하라! 이것이 우리의 목숨줄이다!”
상녕공주가 백사병(결핵)에서 회복된 이래, 항생제 연구는 점점 더 발전했다.
당연히 현대에 비하면 비교하는 게 우스울 정도로 미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인력과 돈을 때려 부어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제는 푸른곰팡이를 배양할 때 쓰는 당귤 같은 시트러스의 껍질은 하나의 자원으로 취급될 정도였다.
“전하.”
대만의 총리 마이상 가오궈이와 여러 간부가 내게 다가왔다.
“이보다는 전쟁 대비가 더 급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전쟁 대비다.”
팬데믹이 쉽게 일어나는 건 아니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연적으로 내버려 둘 때 이야기고.
중국에서 가장 덥고 습한 지역에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났다.
그런데 약한 쪽이 생물학 병기를 가지고 있다.
건문제가 어떤 병균을 보유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고.
“우리는 역사상 그 누구도 상대해 본 적 없는 미증유의 강적과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차피 적은 대만 해협을 건너오지 못한다. 그렇지 않은가?”
명 수군과 원정대는 전부 나를 따르기로 했는데 어떻게 오냐고.
오기만 해봐.
죄다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주지.
“동맹들에게 격문을 돌렸습니다만…… 그건 어떻게 할까요?”
“대기하라고 해라.”
“예?”
“곧 케이크처럼 쉽게 떠먹을 수 있을 것이다.”
전염병으로 양대 세력이 공멸한 이후에 사방에서 달려들면 지들이 어떻게 막을 건데.
“예? 케이크처럼?”
“식은 죽을 먹는 것만큼 쉬울 것이라는 뜻이다.”
“그…… 예. 전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리되겠지요.”
그동안 내가 워낙 허무맹랑한 말을 많이 하고, 그걸 실제로 이룬 덕에 이제 이들은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다.
“하지만 대월 쪽은 지원이 필요해 보입니다.”
“대월?”
“대월에 주둔 중인 명군이 무창으로 향한 틈을 노려 레 리 공자가 남산(藍山)에서 봉기했습니다.”
독립운동이 시작된 건가.
“그와 함께 레 리 공자는 전하께 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창으로 향한 명군은 어느 쪽 편인가?”
“예?”
“대월 주둔군의 지휘관은 현 황제가 임명한 자다. 그렇다면 현 황제와 협공하러 간 것인가? 아니면 선 황제를 도우러 간 것인가?”
“죄송합니다.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흠…….”
그냥 도와주면 대놓고 명나라에 반기를 드는 꼴이라 좋지 않은데.
어디까지나 나는 명나라를 갈라놓고 등쳐먹을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적이 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명분.
명분이 필요하다.
베트남의 근 300년 역사는 비슷하다.
리 왕조가 서기 1000년부터 1225년까지 존속했고.
리 왕조의 사위이자 국서였던 쩐까인이 아내인 여제를 폐위하고 황후로 삼아 쩐 왕조를 건국한다.
쩐 왕조는 1225년부터 쭉 이어지다 12년 전 1400년에 쩐 왕조의 사위인 호꾸이리에 의해 멸망.
호 왕조가 건국되었으나 얼마 가지 않아 영락제에게 점령된다.
“그러고 보니 조선에 화산 이 씨가 있었지?”
화산 이씨는 리 왕조 황족의 후손이다.
“조선에 사신을 보내라. 화산 이씨의 후예를 보내 달라고.”
“그를 대월의 왕으로 세울 생각입니까?”
“아니. 하지만 사람들은 전설과 신화, 영웅담을 좋아하지.”
정확히는 희망을 좋아하는 것이다.
물에 빠진 자에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월에 소문을 퍼뜨려라. 고려로 향했던 리 왕조의 후예가 대월을 먹여 살릴 거리를 가지고 돌아온다고.”
베트남에서 리 왕조의 시조는 한국으로 치면 세종대왕급으로 여겨진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심각하게 어려울 때, 미국에서 엄청난 부자가 된 세종대왕의 후예가 달러를 왕창 갖고 도와주러 온다면 한국인은 어떻게 반응할까?
“레 리 공자에게도 오해가 없도록 확실하게 전하라. 이는 황권을 경쟁하기 위함이 아닌, 대월인의 단결과 명분을 얻기 위함일 뿐이라고.”
“예. 전하.”
상황이 재미있게 되었다.
영락제가 대월을 점령하면서 주변국들은 바짝 쫄아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대월이 당당하게 독립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예 조선한테도 칭제를 하라고 부추겨볼까?”
베트남도, 일본도 황제를 칭하는데.
조선도 못 할 거 없지.
이왕이면 다 황제 하라고 하자.
잉와도 운남성 먹고 황제하고.
여진족도 만주 먹고 황제하고.
티베트도 사천 먹고 황제하고.
광동성과 복건성도 독립시키고.
영락제와 건문제가 싸우는 사이 죄다 뜯어먹자.
***
강해인이 전염병을 대비하고, 동맹을 움직여 명나라 곳곳을 뜯어먹을 계획을 하는 사이.
무창성에서는 치열한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막아라! 막아!”
“사다리를 밀어!”
“돌이 날아온다! 숙여!”
일반적으로 공성보다는 수성이 훨씬 쉽다.
하지만 영락제 군은 수없이 많은 실전을 거친 정예병들.
게다가 장군들도 전장 경험이 풍부한 명장들이었다.
그런 탓에 공격 쪽이 더 유리해 보였다.
언뜻 보기엔 말이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건문제 군은 그야말로 결사의 각오로 필사적으로 싸웠다.
지면 역적이 되어 십족이 몰살된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영락제가 공포로 통치했던 부작용 탓이다.
사대부들은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각종 노래를 만들고 방을 붙여 공포를 더더욱 부채질했다.
만약 영락제가 성을 점령하면 무창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소문은 이미 파다했다.
하지만.
정신력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폐하. 이대로 가면 한 달을 버티기 어려울 것입니다.”
병부상서 철용이 냉정하게 전황을 말했다.
“아직 화로에 불이 완전히 타오르지 않았건만…….”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경험으로 알았다.
더우면 더울수록.
습하면 습할수록.
전염병은 훨씬 잘 퍼진다는 사실을.
“이미 충분히 덥고 습하지 않습니까. 상처 입은 병사들의 상처가 금방 썩어들어가고, 때로는 그 안에서 구더기가 들끓고 있습니다.”
“아직 초입이다. 충분히 더 덥고 습해질 수 있다.”
“…….”
“하지만 전쟁에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지.”
결심한 건문제는 명령을 내렸다.
“역병을 준비해라.”
역병이 퍼지는 데 시간도 필요하니까.
“……예.”
“방법은?”
“무창은 비가 자주 내리는 곳입니다. 따라서 강에 살포하는 것은 그리 큰 효과를 낼 수 없을 것입니다. 결사대를 파견하여 우물을 오염시키겠습니다.”
“부족하다.”
건문제는 남해에 있을 때 강해인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 덕에 열 배가 넘는 해적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가 두려워하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모기, 쥐, 박쥐였다.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모기를 막기 위해 모기장을 개발하여 사용하는 것을 보고.
또, 모기장을 사용한 강해인의 선원들은 학질에 걸리지 않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이것들은 전염병과 관계가 있다고.
모기는 구할 수 없고 제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쥐와 박쥐는 다르다.
“이전에 쥐와 박쥐를 잡아두라고 명했다. 어느 정도 준비되었나?”
“충분히 준비되었습니다.”
“좋다. 그들에게 역병을 먹여 적진으로 살포하라.”
이제 놈들은 진정한 지옥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