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54
053화 전후처리 (2)
“원보라면 시골의 구석의 노인네도 욕심낼 만하지. 크크큭.”
뭔 소리지?
원보는 으뜸가는 보물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은원보 하면 은으로 만든 화폐 중 으뜸으로 치니까.
무려 은자 50냥 가치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조의가 언급한 건 은원보가 아닐 것이다.
으뜸가는 보물이라면······ 설마!
“엑스칼리버?”
“······뭐?”
아닌가 보네.
그럼 뭐가 있지?
롱기누스의 창도 아닐 테고.
모세의 성궤도 아닐 테고.
그렇다면 그것밖에 없다.
“성배의 위치를 알고 있나?”
“크크큭. 의뭉 떠는 꼴이 먹이를 두고 고심하는 승냥이 같구나.”
이것도 아닌가 보다.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서양 쪽으로 생각한 것 같다.
여기는 동양인데 말이다.
동양 최고의 보물 하면 역시 진시황의 전국옥새지.
가장 완벽한 옥이라는 화씨지벽으로 만든 천하의 주인······.
옥새?
설마 대명전국지새?
“······.”
대화를 정지합니다.
정지하겠습니다.
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아~ 난 정말 모르겠다.”
난 여기서 빠져나가야 되겠어.
옥새의 행방은 알아야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안 된다.
내가 따로 대명전국지새의 행방을 찾고 있다는 걸 들키면 온 세상이 내 적이 될 테니.
하필이면 여기엔 듣는 귀가 너무 많다.
그것도 의리라고는 털끝도 찾아보기 힘든 해적들이.
······아니, 이거 진짜 억까 아니냐.
어쩌다 이런 전개가 일어난 거지?
“원보라면 너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아이고 맙소사.
난 이제 죽었어.
잠깐만.
대명전국지새가 이 근처에 있다고?
그걸 진조의가 어떻게 알지?
“정확한 위치를 알고 싶나? 걱정하지 마라. 네가 거부해도 원보의 주인이 널 찾아갈 테니.”
“······.”
“엄청난 비밀을 알려주었으니, 나도 하나만 더 묻자.”
“난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면 해주지.”
“내가 홍무제와 다른 게 뭔가. 홍무제도 홍건적에서 황제가 됐는데 왜 나는 안 되는 거지?”
무슨 질문인가 했더니.
너무 쉬운 질문이네.
“너에겐 천명이 없었다.”
“무슨 헛소리냐.”
“홍건적은 엄청나게 큰 세력이었어. 하지만 두령 대부분은 도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행동했지.”
홍건적이라고 해서 하나의 단일 세력이 아니다.
붉은 두건을 썼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 안에도 수많은 군벌이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 같이 눈앞만 보고는 보이는 대로 약탈하고 죽였다.
“하지만 홍무제 폐하는 달랐다. 민중의 안전을 보장했고, 부자들의 재산을 보호했으며, 학자들의 사상을 인정했다.”
원나라는 물론, 도적이나 반란군이 민심을 잃어갈 때, 홍무제만은 빠르게 태세를 전환해서 환심을 샀다.
“천명이란 그런 거야. 모두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전망이 있는지, 나중에는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있는지.”
“그놈이 벌인 피의 숙청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느냐! 내가 죽인 자보다 그 인간 백정 놈이 죽인 자가 훨씬 더 많다!”
“바보야.”
“뭐?”
“그랬든, 안 그랬든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렇게 믿느냐, 아니냐 하는 거지.”
그 믿음을 천명이라 부른다.
왕조가 창업, 번영, 재해, 쇠망의 주기를 반복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사람들이 도저히 국가를 믿기 어려워졌을 때, 혁명이 일어나 체제를 뒤엎는다.
그리고 새로이 믿음을 얻은 자가 새로운 왕조를 창건하지.
민주주의가 괜찮은 정치체제인 이유도 이것이다.
‘평화로운 정권 교체’가 가능한 얼마 안 되는 방식이니까.
이렇게 말하면 의회 습격 같은 사건을 떠올리는 이도 있는데, 그것조차 평화로운 것이다.
평화롭지 않은 정권 교체는 엄청난 피를 흘린다.
백, 천 단위가 아니라 백만, 천만 단위다.
또,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권을 얻기 위해선 정치가들이 끊임없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 약속이 이뤄지든, 아니든.
더 많은 사람을 믿게 하는 쪽이 정권을 차지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쉽게 말해서 왕정은 패키지 게임.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업데이트가 이뤄지는 온라인 게임이다.
“넌 악이야. 왜냐하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악이라 생각하는 행동을 했으니까. 그 악을 덮을 정도의 선을 행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의 불만을 압도할 정도로 큰 힘을 지니지도 않았지. 그러니 망한 거다.”
“······그렇군.”
“의외로 고분고분하네?”
“네놈을 책사로 뒀다면 미래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어.”
“내가 뭐가 아쉬워서 도적놈 밑에 들어가냐?”
“그것도······ 그렇군.”
진조의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든 걸 보면, 폭발 사고 때 폐까지 화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남경으로 압송되어 처형되겠지만,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만 더 하자.”
“······해.”
“영끌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해적들도 평정했겠다.
이제부터 영끌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지.
진조의.
넌 못 보겠지만.
***
영끌은 영끌이고.
하루 정도는 푹 쉬어야겠다.
그렇다고 방 안에만 처박히면 오히려 피로가 안 풀리는 법.
적당히 산책을 해줘야 한다.
오후가 되자 나는 석피, 이소군과 함께 팔렘방의 내항, 시장을 돌아다녔다.
“오오. 인드라!”
사람들이 나를 보며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인드라라는 말은 확실히 들렸다.
“부칸 인드라.”
내 이럴 때를 대비해서 조왜어 하나는 배워놨지.
부칸.
아니라는 뜻이다.
참 외우기 좋더라.
북한은 아니다.
“라자 나가!”
“부칸 라자 나가.”
나가가 용이니, 대충 용왕이라는 뜻이겠지.
“시이저 공주님이 말씀하시더군요. 구항에서 대인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다고요.”
사람들이 나를 떠받드는 모습을 보며 이소군이 입을 열었다.
여자라는 공통점 덕인지 고새 시이저와 친해진 듯했다.
“칭송은 안 해도 되니까 물건 좀 싸게 넘겨줬으면 좋겠는데.”
인도네시아엔 가지고 갈만한 교역품이 많다.
주석도 그렇고, 향신료도 잔뜩 있으니까.
이걸 왕창 들고 참파로 가서 적당히 팔고.
빈 화물칸만큼 물소 뿔이나 특산품을 사서 광주로 가고.
광주에서 적당히 팔고 차와 도자기를 사서 조선으로 간다.
그야말로 엄청난 부를 긁어모을 수 있다.
이런 개꿀이 있나.
“그러고 보니 시이저 공주님이 묻더군요. 대인께 조선 인삼이 없는지. 혹시 몰라서 잘 모르겠다고 답해두었습니다.”
“인삼은 왜?”
“그간 마음고생이 심하셨는지 시진경 전하의 기력이 많이 떨어진 듯합니다. 어떻게든 보양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나쁘지 않지.”
하나 선물해줘야겠다.
그러려고 가지고 왔고, 시진경이 기력을 되찾으면 홍보도 될 테니.
“혹시 고무는 없나?”
“고무가 무엇입니까?”
“나무의 수액인데 굳으면서 말랑말랑해지는······ 아니다.”
생각해보니 고무나무의 원산지는 아메리카다.
있을 리가 없지.
신대륙에서 가져와야 할 게 참 많네.
······언제 가냐.
아프리카에서도 커피나무랑 팜유의 원료인 기름야자를 가지고 와서 여기에 심어야 하는데.
“있습니다.”
“응?”
“대인께서 원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혜의 나무라 불리는 반얀나무의 수액이 말씀하신 것과 비슷하다고 들었습니다.”
맙소사.
있다고?
정말 고무가 있다면 항해가 정말 쉬워진다.
조잡한 철통 안에 주석을 도금하고, 뚜껑을 덮은 후 고무로 밀봉하면 통조림이 되니까.
기술이 없을 때는 납으로 밀봉했는데, 이거 까딱하면 납 중독 걸려서 골로 가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밀랍으로 밀봉하자니 너무 비싸고.
반면 고무만 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바퀴나 신발 만들기에도 좋고.
“다만 수액에는 독성이 있어서 그리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고무는 원래 독성이 있어.”
해적왕을 쓰러뜨리고 나니 모든 게 잘 풀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매우 좋았다.
마치 막힌 혈이 뚫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
하지만 이소군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근심이 떠오른다.
내가 잘못 짚지 않았다면 원보는 대명전국지새.
원보의 주인은 건문제를 말하는 것일 터.
건문제가 나를 찾아온다?
만약 내가 하수라면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영락제에게 이르면 된다.
그러면 나는 공신으로 봉해지고, 한층 더 쉽게 세력을 키우고 항해를 할 수 있을 테지.
대신 20년 동안 언제 숙청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한다.
영락제가 죽는다고 해도 뒤를 잇는 홍치제나 선덕제도 그리 만만한 군주가 아니다.
성격이 온화할 뿐, 영락제보다 능력 있는 군주인 만큼 더 위험해질 수 있다.
애초에 명나라의 국력은 조선과 동남아의 힘을 끌어모은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반면 건문제를 이용한다면.
어떻게든 명나라에 분열을 일으켜서 여러 개의 명나라로 만든다면.
오히려 내가 주도권을 쥘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라면 영락제가 급사하고 황태자 주고치, 한왕 주고후, 건문제 셋이서 명나라를 3분할하는 것.
이는 조선에도 좋다.
역사적으로 춘추전국, 삼국 시대, 오호십육국, 오대십국 같은 중원의 혼란기에 한반도는 부흥했으니까.
게다가 혼란기라고 칭했지만, 여러 왕국이 존재할 때 동양은 다각적으로 발전했다.
춘추전국 시대에는 백가쟁명을 통해 사상의 폭발이 일어났고.
오호십육국 시대에는 동양의 연금술이라는 연단술이 발전하여 화약이 개발되었으며.
오대십국 시대에는 생산력의 비약이 일어나, 이를 통합한 송나라는 산업혁명의 문턱에 다다랐다.
만약 명청시대가 아니라 다시금 전국시대가 일어난다면 살아남기 위해 계속 혁신을 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현재도 명나라에서는 석탄을 쓰거나, 땅을 파고 들어가 석유를 뽑아내기도 하는데, 제대로 쓰지는 않는다.
이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핍이 없으니 발전 역시도 더딜 수밖에.
“혁신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예?”
나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절대적인 건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인류는 경쟁과 협력을 통해 발전한다.
“이소군. 전에 말한 적 있는 것 같은데 혹시 기억할지 모르겠네.”
“대인의 말씀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걸 말씀하십니까?”
“세상은 언제나 세상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못한 자에게 가혹하다고 했던 이야기.”
“기억합니다. 사람은 한 치 앞을 예상하지 못하는 존재니까요.”
“그러니 미래는 나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 나가야만 하지. 그것만이 유일한 살길이니까.”
다가올 미래가 내게 유리해지려면 영락제는 없어져야만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시밭길이든, 지옥 길이든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이소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르면서.
확실한 건 하나다.
내 미래에 영락제는 필요 없다.
***
팔렘방은 전후처리로 분주했다.
전후처리라고 해도 해적과의 전투 뒤처리를 하는 것.
할 일이라고는 시신과 잔해를 정리하는 정도밖에 없다.
아, 하나 더 있다.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
“대체 어떻게 번개 폭풍 속에서 무사할 수 있었던 겁니까? 정말 용왕의 가호입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시진경은 그동안 압박에서 해방된 덕분인지 이 연회에서만큼은 굉장히 즐거운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정화와 나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췄다.
“요즘 구항의 어린아이들은 이러고 논다고 합니다. ‘시바알!’하고 외치면 벼락이 떨어진다나.”
“······죄송합니다.”
제가 팔렘방에 독을 풀었습니다.
“죄송할 게 무엇입니까. 아이들이 모두 대인을 닮고 싶어서 그런 것인데요. 자자. 더 드시지요. 마자파힛 왕실에도 납품되는 귀한 술입니다.”
시진경은 내게 친히 술까지 따라줄 정도로 좋아했다.
도시국가 수준이라지만, 일국의 왕이 하기엔 파격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조선 인삼. 명성만 들었는데 정말 좋더군요. 바로 힘이 불끈불끈 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인삼은 약효가 강하니, 효험을 보셨다고 해도 다량으로 복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명심하지요.”
정화는 우리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술도 마시지 않고, 여색도 즐길 수 없는 그에게 연회란 참 귀찮은 행사겠다 싶었다.
“강 사관.”
“예. 제독.”
“난 자네가 큰 인물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네.”
“제독께서 믿어주셨기 때문에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감사할 필요는 없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본의 아니게 자네를 지옥에 던져 넣은 것밖에 없으니.”
“하하하. 그럴 리가요.”
정말 본의가 아니었을까?
“이제 우리 원정대는 남해의 패권을 잡았고, 이에 따라 마자파힛의 내전에도 참전할 명분이 생겼어.”
“······.”
“그래서 하는 말이네만······.”
설마 또 전쟁입니까?
제발!
편하게 돈 좀 법시다!
“자네가 진조의를 남경으로 압송해줘야겠어.”
“예?”
“임무이긴 하네만, 휴가라고 생각해도 좋네. 자네가 남경에 다녀오는 사이, 나는 주변국과 조공·책봉을 마무리하고, 마자파힛의 혼란을 수습하지.”
개꿀인데?
드디어 내게도 볕이 드는구나.
“다만······.”
그럼 그렇지.
뭔가 더 있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겠지만, 웬만하면 조선에 들르지는 말고 곧장 돌아오게.”
······이건 또 뭔 소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