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71
070화 조선의 용 (2)
조선은 재능이 있다.
국뽕이라 욕해도 상관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시아 국가 중 세계 10대 경제 대국 안에 들어간 나라니까.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 고꾸라지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데, 거기까지 올라갔다는 건 뭔가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같은 이유로 일본도 믿는다.
중국이나 인도야 말할 것도 없고.
대(對) 명나라 포위망을 구상하는 내게 있어 조선과 일본, 인도는 핵심 국가다.
특히 조선은 가장 가깝고, 가장 연이 있으며, 가장 잘 아는 만큼 핵심 중 핵심이다.
“조선에 오신 것을 환영하외다.”
“불초한 소신을 환대해주시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방원과 나는 서로 맞절했다.
제물포에서 대신들에게 인사받았던 것과 달리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킬방원은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철혈의 군주상이었으니까.
“이것은 제 개인적인 선물입니다.”
석피에게 눈치를 주자, 그는 하인들에게 수레에 담긴 상자를 내리게 했다.
“물소뿔 100개!”
검은 물소의 뿔이 담긴 상자가 차례로 열렸다.
조선 최고의 명궁인 흑각궁의 재료지만 조선에서는 나지 않는 그것.
수입하려 노력해도 명나라의 견제로 수입하기 어려운 물품이다.
“물소뿔?”
“본래 아유타야와 조왜에 서식하나 참파에서도 농업용으로 기르고 있기에 그곳에서 구했습니다. 황제 폐하의 허락은 받았으니 혹시라도 심려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계속하라고 손짓했다.
“후추, 정향, 육두구 등 향신료 100궤짝!”
“모두 남해 현지에서 가져온 최상품입니다.”
“구리 30궤짝! 주석 30궤짝!”
“팔렘방은 구리와 주석의 산지입니다. 값이 결코 저렴하진 않지만, 조선에 유통되는 가격보다는 훨씬 저렴하지요.”
“흑당봉 5궤짝! 말린 망고 5궤짝!”
“먹어보니 무척 달고 별미라 가져왔습니다. 뜻대로 처분하시옵소서.”
명나라 대신들이 은근히 눈치를 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조선에 선물을 준비한 것으로 보아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도 해야 했다.
나를 믿지 않아도 되지만, 무역이 조선에 이득이 된다는 점은 인식시키기 위해.
“······엄청난 선물이라 어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군.”
“망극한 말씀이오나 보답은 원하지 않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어떠한 답례도 받으면 안 되는 몸이기에.”
누구보다 청렴해야 했다.
안 그래도 박쥐 같은 놈으로 경계 받고 있는데, 이곳저곳 오가면서 받아먹으면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을 테니까.
잔치를 거부한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었다.
“100여 일간 참 많은 일이 있었는가. 그대의 눈빛이 참으로 많이 달라졌소.”
“선비는 헤어진 지 3일이 지나면 눈을 비빈 후 다시 만나야 한다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도 그렇군. 어서 오시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소.”
“······.”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칙사로서 해야 할 말은 많았지만, 그래도 이 말을 꼭 해보고 싶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못 해봤던 말.
“다녀왔습니다.”
***
재회는 훈훈하게 끝냈지만, 그 뒤엔 냉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복궁에서 칙서를 건네는 의식.
킬방원은 영락제를 상징하는 신패에 예를 갖췄다.
오배일고지례(五拜一叩之禮).
내가 영락제를 만날 때 했던 그 예법, 오배삼고지례(五拜三叩之禮)에서 고개를 숙이는 건 딱 한 번만 하는 예법이다.
숙이긴 하겠으나, 조선의 왕은 보통 신하와는 달리 조금 덜 하겠다는 의미인데······.
솔직히 말하면 기 싸움이다.
조선에서는 이에 대한 근거로 명나라가 조공국에 내린 예법인 ‘번국의주(藩國儀註)’에 관련 규정이 없다는 걸 들었다.
내가 봤을 때는 그거나, 그거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명나라와 조선에 있어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한다.
영락제가 반드시 오배삼고지례를 받아오라는 칙명은 내리지 않았으므로 적당히 넘어갔다.
오배일고지례가 끝나자 나는 경복궁 앞 돌로 된 단상 위에서 칙서를 펼쳤다.
킬방원은 물론 대신들도 모두 무릎을 꿇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흠흠······ 아······.”
영락제가 나 엿 먹이려고 일부러 이런 건 아니겠지?
하아······ 일단 읽자.
“고려의 배신 이인임의 손자 이방원은 들어라.”
나를 따라온 명나라 수행원을 제외하고 모두의 안색이 변했다.
안 그래도 종계변무로 사신단을 우르르 보낼 정도로 매우 민감한 문제인데, 영락제는 이를 대놓고 언급한 것이다.
‘너희 그따위로 나오면 절대 안 바꿔줘!’라고.
국가 간 기 싸움이 매우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내가 그사이에 끼어드니 골치가 아프네.
“조선은 어찌하여 짐이 건주위 도지휘사로 임명한 동맹가첩목아와 모련위 지휘첨사로 임명한 피아손에게 무역 단절로 보복하였는가!”
명나라와 조선 사이에는 여진족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사에서는 그냥 여진족으로 퉁 쳐버리지만, 유목민이 그렇듯 그 안에는 매우 다양한 부족이 있다.
그중 추장의 포섭과 관련된 외교 문제이자 국경 분쟁이다.
조선에서는 고토 수복을 명분으로 계속 북진하고 있고,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은 물론, 가능하다면 간도나 요동까지 먹고 싶어 한다.
반대로 명나라는 조선이 고구려의 후예라 생각하고, 명나라에 위협이 될까 봐 싹을 잘라놓고 싶어 한다.
“내 그동안 조선을 어여삐 여겨 후대해 주었거늘, 괘씸한 마음이 들어 분노를 주체할 하릴없도다.”
솔직히 그렇게 후대하지는 않았지.
다른 조공국에 비해서는 그래도 후대해줬긴 하는데, 영락제의 기본 방침이 팽창주의에 패권주의니까.
조선은 명나라 바로 옆에 있는 만큼, 압박을 심하게 받다 보니 그다지 후대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손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여진족은 짐이 관리할 터이니, 조선은 이에 관여치 말고 왜구의 발호를 저지하는 데나 힘쓰라.”
조선이 건국되던 해, 일본에서는 남북조 통일이 이뤄지면서 중앙의 통제력이 강화.
왜구의 난동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대마도는 본래 농사짓기 어려운 땅.
흉년이나 기근이 들 때면, 대마도의 농민이나 어민, 상인들은 일제히 칼을 들고 약탈에 나섰다.
당연히 가까운 조선을 주로 약탈할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는 않다.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의 중개무역으로 먹고사는 곳이니까.
게다가 조선에서는 대마도민에게 왜구가 되지 말라고 흉년이 들 때면 쌀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어째 한국과 겹쳐 보이는데.
아무튼, 이런 이유로 왜구는 기본적으로 명나라 해안가를 털었다.
예비 처가가 있는 광주나 대월, 참파까지도 갈 정도니까.
어디까지나 기본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조선에도 자주 온다.
조선 건국부터 지금까지 대략 40번 정도 왔나?
나중에 상왕이 된 킬방원이 이종무에게 대마도 정벌을 명했을 때가 대충 60번 채웠을 때였다.
“여기 짐이 총애······ 하는 대명의 내각군보 강해인에게 전권을 맡겨 대마도를 소탕할 것이니, 조선은 이에 응하여 차질없이 대마도를 정벌할 준비를 하도록.”
아. 잠깐만.
칙서의 내용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이따위로 표현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지는 않았는데 아무튼 너무 하네.
“······이상입니다.”
킬방원은 사람 하나 잡을 듯한 이글거리는 눈빛과 험악한 분위기로 다가왔다.
그리고 공손하게 칙서를 받았다.
“칙서는 분명히 받았소. 돌아가시기 전까지 답장을 준비하리다.”
죽이기 전에 답장을 주겠다는 뜻인가?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썩어 문드러져 가는 속과는 달리 킬방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태평하게 답했다.
일단 나는 영락제의 칙사로 왔다.
여기서 기죽은 모습을 보이면, 자칫 칙사를 교체해서 조선을 더 압박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칙사들의 패악질이 일어나게 놔두느니 어떻게든 내 선에서 끝내는 게 낫다.
우리는 서로를 한참을 노려보았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다들 숨을 죽였다.
그 기세가 어찌나 살벌했던지 명나라에서 따라온 수행원들도 안절부절못할 정도였다.
“태평관으로 안내하겠소. 하마연을 준비하였으니 편~히 즐기시오.”
너라면 편히 즐길 수 있겠냐.
“감사히 후의를 받겠습니다.”
***
하마(下馬)란 말에서 내리는 것.
먼 길을 온 손님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상징적인 단어다.
따라서 하마연(下馬宴)은 먼 곳에서 온 손님을 위로하기 위해 열리는 연회라는 뜻.
하마연은 태평관에서 열렸는데, 본래는 원나라가 고려에 설치한 내정간섭기구 정동행성이 원조다.
이를 태평관으로 바꾸고 개경에서 한성으로 옮겼는데, 킬방원은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위해 더욱 크게 고쳐 지었다.
태평관은 총 네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에 전(殿)이, 뒤에는 누각(閣)이, 전의 동서에 행랑채가 하나씩.
전은 칙사와 관련된 공적 업무를 보는 곳.
각에는 칙사를 비롯한 주요 인물이, 행랑채에는 칙사가 데려온 수행원들이 머무른다.
하마연은 태평관의 중앙 건물, 전(殿)에서 열렸는데 조선에 있어서 중대한 외교행사인 만큼 성대하게 치러졌다.
“······.”
“······.”
궁중 악사들이 풍악이 울리고 무용수들이 아름다운 가무를 추는 상황.
하지만 아무도 술을 쉽게 들이켜지 못했고.
아무도 웃지 않았다.
칙서를 건넬 때의 험악한 분위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그쯤 되니 이상함을 느꼈다.
칙사가 황제의 대리자라고는 해도 실질적인 권한은 없다.
칙서를 전해주고, 답장을 받아다 주는 역할이니까.
따라서 칙사를 압박해봐야 얻을 건 없다.
오히려 손해만 가득하다.
칙사는 마음만 먹으면 조선에서 온갖 패악질을 부릴 수 있으니까.
또, 명나라로 돌아가서는 황제에게 조선에 대해 온갖 나쁜 말을 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조선으로서는 매우 골치가 아파진다.
조선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금은을 요구한다든가.
국방력을 약화하기 위해 말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든가.
그렇게 받으면 명나라에서는 당연히 회사를 더 줘야 하긴 하지만, 도자기나 비단 같은 사치품으로 대체하면 된다.
명목 가치로는 조선이 이득이지만, 실질 가치로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고 할까.
이런 칙사를 험악하게 대접한다고?
킬방원은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똑똑하다.
따라서 분명 이유가 있다.
일부러 갈등을 유발하려는 이유가.
그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비록 나는 미래인의 교양을 갖춘 상식인이지만, 지금만큼은 나 자신을 잊고 똘끼를 발휘해보자.
나 같은 상식인이 연기해봐야 잘 먹히지는 않겠지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황궁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허허허. 칙사께서 재미있는 일이라 하실 정도니. 대체 얼마나 재미날지 무척 궁금합니다.”
곧바로 조선 대신 중 하나가 이를 받았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그렇다는 건, 미리 말을 맞춘 게 아니라 킬방원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뜻인데······.
일단 달려보자.
반응보고 방향을 틀던가 하고.
“못 들으셨나 봅니다. 명나라에서는 그야말로 엄청난 화제였는데 말입니다.”
“그······ 사신단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라······.”
사신단은 육로로 이동한다.
그쪽이 먼저 출발했음에도 내가 먼저 도착한 셈.
그렇다고는 해도 그 유명한 이야기를 모른다는 건, 정보력이 낮다는 증명이다.
아니면 민무구가 실책을 감추려고 손을 썼던가.
“전하의 처남 민무구가 황궁에서 엄청난 패악질을 저질렀습니다. 황제 폐하 앞에서 대놓고 큰소리를 쳤으며,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를 대놓고 무시하는 발언을 하였지요.”
다시금 분위기가 싸해졌다.
이전에는 한파였다면, 지금은 빙하기 수준이라고 할까.
보통 심각한 이야기가 아닌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신하도 많을 지경이었다.
다만 킬방원만큼은 차분했다.
“분위기가 왜 이렇습니까? 하하하! 무척 재미있는 일이 아닙니까! 폐하께서도 조선이 참 많이 성장하셨다고 극찬하셨습니다!”
“어, 어찌 그,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가장 새하얗게 질린 이는 다름 아닌 원경왕후.
킬방원의 아내이자, 중전마마로 민무구 형제의 누나다.
“그럼 제 눈이 잘못되었다는 뜻입니까? 하지만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대명의 대소신료는 물론, 조선 사신단을 포함하여 온갖 조공국 사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지요. 조선이 이렇게 대단한 나라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하하하하하!”
내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자, 풍악 소리는 잦아들었고, 무용수들은 춤을 멈추고 납작 엎드렸다.
“그것뿐이겠습니까. 민무구는 조공국 사신들 앞에서 조공국들을 가리켜 야만의 땅이며 오랑캐라 비하하였으니, 그 패기에 오줌 지릴 뻔하였습니다.”
킬방원의 반응이 없다.
내가 잘못 짚었나 싶긴 했지만, 일단 생각대로 가보기로 했다.
내 예상대로라면 분명······.
“아~ 그렇군요. 그때 지렸다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는데, 제가 생각이 짧아 그러지 못했으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 아아······.”
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은 돌아오지 않고 이방원의 말만 돌아오자 직접 창과 칼을 들고 뛰쳐나가려고 했던 강철의 여인.
고려의 기상을 이어받아 누구보다 강인했던 여장부가 무너졌다.
나는 양아치다.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양아치다.
떠올려라.
한국 영화에 나왔던 명배우들의 명품 양아치 연기를.
“왜 아무도 안 웃으십니까? 이렇게 재미난 일인데. 설마 제가 뭔가 실수를 한 겁니까?”
“흠흠. 칙사께서는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참찬(민무구)이 조선에 공이 큰 건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 어찌 이러실 수 있단 말입니까?”
민무구의 동생, 민무질이 인상을 찌푸리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의 얼굴을 보자, 작년에 그를 따라 사신단으로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참 고생이 많았지.
킬방원이나 중전마마를 타깃으로 삼기 좀 그랬는데, 마침 잘되었다.
“아이고. 높으신 공신이자 외척께서는 벼락출세한 상놈이 설치니 무척 불쾌하신 모양입니다. 존귀하신 외척께서 불쾌하면 안 되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주 큰~ 실수를 했어요!”
이어 명나라 수행원들을 보며 소리쳤다.
“거, 높으신 분들 불편하실 수도 있으니까 다들 일어나 짐 싸! 당장 명나라로 돌아간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예부 상서 마인환도 킬방원만 조심하면 된다고 했고.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제가 술 한잔 올리겠습니다,”
“고정하시지요. 이렇게 즐거운 날에 인상 찌푸릴 이유 있겠습니까.”
그러자 대신들이 화들짝 놀라며 만류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조금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폐하께서 다른 말씀은 없으셨소?”
킬방원이 굳은 얼굴로 묵직하게 물었다.
아. 진짜.
빨리 좀 반응하시면 안 됩니까?
뭔 속셈인지 짐작이 안가잖아요.
정확히 뭘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은 답은 안다.
외척 견제.
“대체 조선에서는 외척! 에게 얼마나 큰 권세를 주기에 이렇게 방자할 수 있느냐면서 강력한! 재발 방지 대책을 원하셨습니다.”
정확히는 ‘조선의 외척은 싸가지가 없어. 대명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외척을 평범한 가문으로 들이지.’라고 했지만.
이 정도 차이는 통역의 오류 정도로 넘어가면 될 것 같다.
“조선 건국에 공이 큰 처가를 과인이 어찌 벌할 수 있겠는가.”
킬방원이 사람 잡을 듯이 무섭게 인상을 쓴 채 근엄하게 말했다.
어······ 내가 잘못 짚었나?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니, 대명으로 돌아가 폐하께 잘······.”
킬방원은 더더욱 인상을 찡그렸다.
“······잘 말씀드려 보겠으나, 폐하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닌지라 무척! 어려울 듯합니다.”
표정이 풀렸다.
역시 이거 맞지?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하시게. 민무구 형제는 과인이 무척 아끼는 처남들. 그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천금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민무구뿐만 아니라 그 형제들도 함께 잡아달라는 뜻인가?
저기 저 새하얗게 질린 민무질도 함께?
“폐하께서도 민무구 개인의 일탈이라 여기고는 계십니다. 그 분노가 중전마마나 세자 저하, 대군께는 영향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과인은 처남들을 말하고 있느니!”
확실하다.
내 입에서 민무구 형제들을 숙청할 명분을 달라는 것이다.
“민무구의 아비, 여흥부원군 민제께서는 덕이 깊고 학문으로 이름 높다는 점!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폐하께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하네.”
“하지만 민무구 형제의 패악질은 저 또한 당한 적이 있을 정도로 조선에서 유명한바. 폐하께 거짓을 고할 수는 없을뿐더러, 저 역시 그들을 변론할 마음이 없습니다!”
“어찌 이런단 말이냐! 그대 역시도 조선인이었거늘, 고향에 대한 애착심도 없는가!”
“전하께서 뭐라 말씀하시든, 저는 민무구 형제들을 옹호할 생각이 절대 없습니다! 천금이 아니라 만금을 내어준다고 해도요!”
하마연이라는 중요한 연회임에도 살벌한 분위기가 오고 갔다.
상황이 계속 험악해지자, 이제는 영락제가 붙여준 명나라 수행원들조차 불안에 떨 정도였다.
“후우······.”
킬방원은 하늘이 원망스럽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이제 만족했다는 뜻?
“그렇다면 같이 따라간 조선의 공신들은 어찌 되겠는가?”
적당히 해요.
인생 너무 날로 드시려고 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