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90
089화 날개를 펴다 (3)
황제는 왕을 임명할 수 있다.
딱히 특별하지도 않은 이야기.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진 않다.
정도와 규모는 다르지만, 왕은 자치권과 병권을 갖출 수 있으니까.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반란의 위협이 생긴다.
한나라의 오초7국의 난, 서진의 팔왕의 난, 당나라의 안사의 난 등 역사적 사례는 수도 없이 많고.
영락제 본인도 연왕으로 있다가 정난의 변을 일으켜 황위에 오르지 않았던가.
“폐하. 왕작이라니요. 제가 폐하께 충성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후환이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명나라에서는 오직 황족에게만 왕위를 내린다.
주씨가 아닌 이를 왕으로 임명한 사례는 명나라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없다.
그런데 역사가 바뀌었다.
왜?
어쩌면 시험일 수도 있다.
나를 숙청하기 위한 시험.
“대두국에 대해 아느냐?”
“물론입니다.”
대만 중서부에 있는 부족 연맹체.
사실 나라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냥 부족 몇 개가 있을 뿐이니까.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은 대만이 명나라 영토가 아니라는 점.
명나라로서는 딱히 가치 있는 곳도 아니었고, 해금령으로 인해 바다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래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대가 대마도를 점령하여 왜구 토벌의 전초기지로 삼은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군사 1만을 주신다면 즉시 대두국을 점령하여 폐하께 바치겠습니다.”
“그대가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만, 이는 포상이다.”
언제부터 포상이 ‘남의 걸 뺏어도 되는 권리’가 된 거지?
“또한, 이는 그대에게 내리는 명령이기도 하다. 부산포, 대마도, 큐슈, 류큐, 대두국을 이어 대명의 해안을 철통같이 방비하라.”
“제가 어찌 폐하의 명을 거역하겠습니까. 하오나 역시 왕작은 너무 과분하옵니다. 폐하의 신하로서 그리하라 명하소서. 이리하겠다 답하겠습니다.”
캬아.
내가 생각해도 멋진 대답이었다.
“그러니까 대두국왕이 되어 대명의 해안을 방비하라지 않느냐.”
진짜 나한테 왜 그러는 거냐.
내가 왕이 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라고.
군대를 키우는 순간 영락제 너부터 견제할 테고, 같은 왕이랍시고 한왕 주고후랑 킬방원도 나를 견제할 텐데…….
킬방원?
부산포?
맙소사.
조선인인 나로 조선을 견제하려는 거구나.
그러다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숙청.
어차피 현재 대만은 인구도 별로 없고, 명나라와 가깝다.
또한, 남해에는 영락제의 책봉을 받은 조공국과 3만의 군대로 이루어진 원정대도 있다.
영락제가 마음먹으면 한순간에 밀어버릴 수도 있겠지.
이렇게 되면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어진다.
아무리 간자를 보낸다고 해도, 내가 투명하고 청렴하다는 사실밖에 알아내지 못하기도 할 테고.
“예. 폐하의 명을 받들어 바다의 만리장성이 되겠습니다.”
“그것으로 되었다. 왜구 정벌에 함께했던 군사 5천을 줄 터이니, 먼저 대두국을 평정하라.”
“예. 폐하.”
왕의 작위는 기본 무품(無品)이다.
정1품, 종5품 이런 식으로 품계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왕작을 받은 이상 벼슬은 의미가 없어진다.
더 이상의 포상도 의미가 없고.
물론 여기서 만족할 내가 아니다.
나중에 갖은 이유로 독점 거래권을 차근차근 받아와야지.
“이어 척찬궁에게 포상을 내리겠다.”
그 뒤로도 포상은 계속되었다.
냉정하게 따지면 이번 왜구 토벌에서 명나라군의 공은 적다.
그런데도 상당히 후한 포상이 내려졌다.
심지어 병사에게까지도 은이나 쌀이 내려졌다.
아마도 대월 정벌을 앞두고 장병의 사기를 고양하기 위함일 터.
역사를 아는 나로서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광경이다.
앞으로 점점 대외 원정이 무리하게 늘어날 터인데, 벌써 이렇게 포상을 남발한다?
명나라 재정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겠지.
그때가 기회다.
명나라가 휘청거리고, 점점 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될 테니까.
***
논공행상이 끝나고.
영락제는 후계자인 황태자 주고치와 독대하며 잔을 나눴다.
황제와 황태자가 아닌, 아비와 아들의 대화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엇이 말이냐.”
“강해인에게 자치권과 병권을 하사하신 것 말입니다.”
“필요한 일이었다.”
영락제는 술을 들이켠 후 안타까운 눈으로 황태자 주고치를 보았다.
대명제국의 황태자이자, 황제의 적장자로서 충분하다 못해 훌륭한 인품과 능력을 지녔다.
다만 너무 살이 쪄서 건강이 우려된다.
그 점만이 황태자에 대한 유일한 걱정이자 결점이다.
“내 아들이지만 고후 그 녀석은 제위에 앉으면 안 돼.”
한때는 자신을 닮은 한왕 주고후를 총애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못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고 신료들의 지지와 민심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녀석이 황제가 되는 순간 명나라의 운명은 거기까지겠지.
“이제라도 녀석의 권력을 줄여놓을 필요가 있어. 하지만 내가 직접 권력을 거두면 녀석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막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직접 죽일 수밖에 없음을 경계한다.
“적어도 네 어미를 안심시켜줘야 병이 나을 가능성이 늘어나지 않겠느냐.”
“후우…… 저도 그 점이 걱정입니다. 계속 어머니께 효험 있는 약재를 찾고는 있습니다만…….”
영락제 주체의 정비이자, 황태자 주고치와 한왕 주고후의 어머니는 서황후.
개국공신 서달의 딸이다.
여성 편력이 대단한 영락제라고 해도 서황후에게는 예의를 갖췄으며, 의외로 둘의 금슬은 무척 좋았다.
서황후는 천성이 온화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많은 책을 읽고 교양과 기품이 흘러넘쳤다.
단점이 있다면 아들에게는 무척 무르다는 것.
특히 아픈 손가락인 한왕 주고후에 대한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황태자 주고치에게도 늘 동생을 부탁한다는 말을 할 정도로.
이 때문에 황태자는 한왕 주고후를 냉정하게 쳐내지 못하고 있다.
“강해인을 앞세워 고후 녀석의 권력을 줄이겠다. 그래야 네 기반이 더 튼튼해지지 않겠느냐.”
“그런 이유였군요. 저는 아바마마께서 조선을 견제하기 위해 그러신 줄 알았습니다.”
“잘 알고 있겠지만, 지도자는 하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의 효과만을 노리면 안 된다.”
한왕 주고후, 조선 왕 이방원뿐이 아니다.
왜국과 류큐, 그리고 남해의 여러 조공국을 동시에 견제 및 압박하기 위한 인사다.
“다만 강해인은 범상치 않은 인물입니다. 어쩌면 대두국이라는 벽지에서도 순식간에 세력을 쌓아 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바마마께서는 그를 믿으십니까?”
“내가 믿는 사람은 세 명이다. 너와 네 어미와 정화뿐이지.”
“그럼 어째서 위험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십니까?”
“한곳에 오래 머물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주는 세력의 중심을 잡아주는 게 중요하다.
따라서 영락제 같은 정복 군주에겐, 황태자 주고치 같은 내정에 뛰어난 인재가 꼭 필요하다.
“녀석은 끊임없이 돌아다닐 터. 당연히 세력은 촘촘하지 못하고 성길 수밖에 없다.”
그 안에 넣으면 된다.
영락제에게 충성을 다하는 인재들을.
“그것뿐입니까?”
“무엇이?”
“모든 권력은 황제에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접고, 병권과 자치권을 내려준 까닭 말씀입니다.”
“…….”
역시 내 아들이다.
정말 훌륭하게 컸다.
살 좀 빼고, 건강을 챙긴다면 바랄 게 없을 텐데.
“녀석을 발탁하고 나서 모든 것이 편해지지 않았느냐.”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는 남해 원정도.
건국 이래 늘 근심거리였던 왜구 토벌도.
심지어 대월 정벌도 쉽게 풀리고 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말이다…….”
꿈같은 이야기.
닿을 리 없는 이상.
“대명이 정말 온 천하의 질서를 다시 세울 수도 있지 않겠느냐.”
말이 안 된다는 건 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왜 이리 가슴이 뛰는가.
마치 사랑의 열병을 앓는 것처럼 아프고 괴롭다.
그렇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비록 평생을 노력한들 닿지 못한다고 해도.
죽을 때 후회가 없을 만큼 끝까지 가보고 싶다.
“솔직히 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황태자 주고치는 차가운 현실을 들이밀었다.
“그렇다면 너는 왜 강해인을 가까이 두려고 하느냐.”
“첫째는 고후를 조용히 억누르기 위함이고, 둘째는 사대부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셋째는 재정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은 천 냥, 은 오천 냥 등 황태자가 보기엔 푼돈에 가까운 금액일 뿐이다.
하지만 원래라면 얻지 못했을 돈이라는 점.
그리고 성장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점으로 인해 높게 평가하고 있다.
“강해인은 특수합니다. 사대부, 환관, 상인 모두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끌어내고 있어요. 이용가치가 많은 인재입니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조선인이라는 점입니다.”
언제 쳐내도 문제없다는 뜻.
“그러하냐. 나는 녀석의 안목과 이상을 더 높이 평가한다만.”
“저는 이상을 좇기보다는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것도 좋겠지. 하지만 잊지 마라. 태조께서 대명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현실보다 이상을 추구하셨기 때문이다.”
현실만 바라봤다면, 어찌 거지에 탁발승이었던 자가 황제가 될 수 있었겠는가.
“할바마마께서는, 그리고 아바마마께서는 창업 군주이시지만, 저는 그를 이어받아 수성 군주가 될 것입니다. 현실을 보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다만 강해인이 재정에 악영향을 주지 않고, 백성을 타락시키지 않는 한 최대한 용인해줄 생각입니다.”
“강해인의 가장 위험한 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종잡을 수 없는 인격입니다. 덕분에 필요 이상으로 휘둘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게 문제다.
분명 모든 면에서 이쪽이 압도적으로 위다.
그런데 정신 차려보면 강해인의 눈치를 보고 있다.
지금처럼.
“포상과 혜택을 주는데도 거절하지 않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점도 이상하게 느껴지고요.”
“처음 보는 유형이긴 하지. 권력과 지위, 재물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권력과 돈을 이용해 배를 타고 구라파까지 간다고 했던가.
정말 기괴한 녀석이다.
단순한 광인으로 여기면 될 일이지만, 차근차근히 해나가는 걸 보면 더욱 헷갈리게 만든다.
“내가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을 터이니, 너는 안심하고 그를 대해라.”
“예. 아바마마. 일단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날개를 달아주는 것도 괜찮을 듯싶군요.”
그 사람의 본성을 알고 싶으면 권력을 쥐여줘 보라.
이 문법을 따라볼 생각이다.
“목줄은?”
“조선과의 이간책을 더욱 심화하고, 이번에 강해인이 발족한다는 주식 상단의 지분을 대신이나 상인의 이름으로 최대한 사들이고 있습니다.”
“그래. 지금은 그것으로 되었다.”
어디까지나 지금은 말이지.
“과연 녀석이 대두국에서 어떤 일을 할지 기대되는구나.”
***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주식 상단을 발족할 준비를 하느라 바쁜 내게 석피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나리께서 대두국왕이 되신 건 좋지만, 그곳은 명나라 땅도 아니지 않습니까. 분명 전쟁을 치러야 할 텐데…….”
“전쟁? 안 할 건데?”
“그러면 원주민에게 어떻게 왕으로 인정받습니까?”
난 또 뭐라고.
별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네.
“돈 주고 살 거야.”
“예?”
“돈 주고 살 거라고.”
“나라를 어떻게 돈 주고 삽니까?”
석피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석피야.”
“예.”
“돈으로 살 수 없다면, 돈이 모자란 게 아닌지부터 생각하렴.”
“…….”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현재 대만섬은 제대로 된 나라도 없는 곳이다.
당근과 채찍을 적당히 이용하면 된다.
병력을 모은다고 해도 끽해야 5~60명.
부족들이 연합해봐야 1000명을 넘기 어렵다.
초기 화약 무기와는 달리 냉병기, 특히 창술은 엄청난 훈련을 필요로 하는 만큼,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군사도 아닐 테고.
심지어는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들었다.
도저히 명나라 5천 군사를 상대할 계제가 안 된다.
“어쩔 수 없다면 힘의 차이를 가르쳐줘야겠지만,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웬만하면 협상에 응하겠지.”
이후 류큐와 필리핀을 속국으로 삼고 아래로 내려간다.
뉴기니섬의 그래스버그 광산과 나우루의 인광석만 확보하면 동남아시아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한 셈이다.
남은 건 호주로 향할 것이냐.
인도로 향할 것이냐 하는 것.
고민은 많이 되지만, 일단은 눈앞의 일부터 처리하자.
“석피야. 시간 됐다. 가자.”
중세인들에게 자본주의의 맛을 보여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