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day when the tagger goes blind RAW novel - Chapter 75
75화
감언이설 같은 꾀에 넘어갔다. 돌이켜 보니 후회가 막심한 산영이었다. 아내를 착취하는 낭군으로 나설 작정인지, 머릿속을 쌀 반죽인 양 뭉개려고 하는 것인지, 떠받들어주듯 침상에 눕혀두더니 재주껏 사내의 욕심을 태우는 중이었다. 이러면 아니 된다, 정신을 챙기시라, 눈물로 간청해도 그때뿐. 산영의 아래를 짓이기는 남근은 어쩜 양심이 없었다.
“아흐!”
몇 번째 치닫는 절정인지 모르겠다. 침상에 박혀 몸을 뒤트는 것이 서너 번. 짓누르듯 위에 있는 사내는 달뜬 숨을 내쉬었다. 담지 못한 씨물을 흘릴 때마다 음험하게 웃는다. 엄밀히 말해 회까닥했다고 볼 수 있었다.
씨물을 싸지르는 양물이 앞뒤로 천천히 오고 간다. 치밀한 자극에 산영은 자지러지고, 절정을 만끽한 사내는 다음을 준비했다. 애걸 말고 나올 게 없는 산영의 입술을 부단히도 빨아 젖혔다. 산영은 낭군이 아니라 약탈자를 막는 꼴이었다.
“쉬, 쉬는 게 어떨지…….”
안 먹힐 부탁인 줄 알면서도 계속하는 것은 일말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 잔혹한 낭군은 산영의 입 주위를 쓱 핥았다. 씨알머리없는 말이 늘면 하루를 더한다는 소리였다.
희망을 뺏긴 산영은 목에 비비대는 입술이 시작임을 알았다. 입술로 연분홍 순흔을 만든 다음, 정해진 순번처럼 그의 허리가 들렸다.
“아, 아이, 으……!”
힘 풀린 산영의 다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자, 그의 너른 손이 붙잡아 고정시켜 둔다. 지독한 낭군의 정욕에 메말라가는 새색시였다. 잠이 들고파 눈을 감을라치면 아래를 파고드는 양물의 성질머리가 어찌나 더러워지는지. 소심한 산영은 끝내달라며 희사의 어깨를 쥐었다.
밤 놀이 못 해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산영이 속으로 흉을 보는 사이, 극점을 누르던 양물이 집중하라는 듯 세차게 들어온다. 금세 부풀어 빠듯이 드나드는 놈이 소스라치게 놀란 속살을 살그머니 긁어준다. 가려운 데를 긁힌 것처럼 물을 흘린 음부의 작태에 희사가 웃고, 산영은 이게 오늘 내일로 끝날 일이 아님을 깨우쳤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음전하시던 사내가 침상에만 올라오면 석 달 굶은 야차로 바뀌는 것이다. 혼인을 잘못한 것은 아니냐며 허탈에 잠길 즈음. 사늘한 목소리가 입술에 부딪혀 왔다.
“어디에 정신을 두었을까. 나의 부인께서.”
해명을 해보았자 한 번 골이 난 낭군을 달래는 건 천지신명을 데려와도 어려웠다. 익숙해진 산영은 낭군의 목을 끌어안고 눈감을 수밖에. 참말 사람은 알다가도 모른다더니 이 무슨 촌극이란 말인가. 맨정신일 때 참된 얘기를 나누어보아야겠다. 반쯤 포기한 산영의 넋은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첫날 밤이라고 일컫는 밤이었으나, 대체 첫날 밤을 언제까지 끌어가려고 하는지. 산영뿐만이 아니라 온 형제 산이 질리는 참이었으리라.
* * *
금년으로 형제 산에 산 지가 오백 년이 훌쩍 넘는 명우는 전 주인이 새삼 그리워졌다. 이모저모 따져 보자면 전 주인은 훌륭한 축에는 들지 못했으나, 적어도 새 주인보다는 우매하고 다루기 쉬운 이였지 않았나. 그렇다고 새로 군림하신 주인께서 까탈스러우냐 하면 그것은 아니올시다였다.
도리어 영물인 잡것을 아끼고 아랫것에게 곤란한 주문을 하는 법이 없으니, 잘만 하면 전 주인보다 수월하고 편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음이다. 하나 이번 새 주인에게는 크나큰 흠이 하나 있었는데, 그야말로 딸려 있는 혹이 보통 혹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담도 크지. 저라면 벌써 보따리 싸 들고 도망쳤을 혼례를 당당히 올리건만, 근래 신방에 틀어박힌 지가 곧 사흘째였다. 간간이 지나갈 때마다 여인의 앓는 소리를 들었다는 종들이 속출하고 있었으나 파리 목숨인 종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안 되는 일이었다. 새 주인이 같이 있는 이가 누구고, 작금 형제 산에 머무는 사내 두 명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를 사람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해도 혹여나 배를 곯을까 싶어 문 앞에 상을 차려두면 감쪽같이 들고 들어가 아내를 먹이는 모양이었다. 어떤 종은 자기 남편 방망이는 시원치 않은데 저쪽은 좋겠다며 호호거렸지만 어느 여인이 사흘 가까이 신방에서 죽어 나가는데 좋다고만 할쏘냐. 명우는 신방에 얼씬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잠이 들려는 순간에 명령이 머릿속으로 쳐들어왔다.
모로 보나 명령을 내린 사람은 새 주인의 낭군이었다. 다행히 명령을 받은 종은 저뿐만이 아니었고, 죄 비몽사몽한 얼굴로 부엌에 모여 명령을 시행하는 중이었다.
개중 가장 중책을 맡은 명우는 그릇을 들고 신방 앞을 서성거렸다. 문을 함부로 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명령을 어길 수도 없으니. 앞에는 적군이고 뒤에는 강물인 것이 딱 제 처지였다.
옹졸한 한숨을 삼키며 문지방을 뚫어져라 볼 차였다. 안에서 여인의 신음이 그치자마자 환대하는 것처럼 문고리가 흔들렸다. 뜻을 알아챈 명우는 문고리를 잡고 시선을 아래로 두었다. 절대 보지 않겠다는 일념하에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음탕한 냄새보다 요란한 침상으로 눈이 가고 말았다.
말세다, 말세야. 입이 떡 벌어진 명우는 허둥지둥 시선을 돌렸건만 잔상은 떫은맛처럼 남았음이다. 폭정을 일삼는 사내는 나신일 게 분명하고, 그 위에 엎어져 간신히 숨 쉬는 가여운 이가 주인이었다.
배 위에 올려두고 농락을 자행하는 중인가 보다. 다행히 이불에 덮여 있어 주인의 알몸은 구경 못 했다. 얼굴만 빼꼼 내민 주인은 이불 아래서 어지간히 당하는지 때때로 앓는 눈치였다.
“이리로 가져와.”
막 정사를 마친 사내답지 않게 음전한 목소리로 저를 가르치려 드는데, 고거 웃기지도 않는다고 콧방귀를 뀌고 싶었으나 제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명우는 비굴하게 허리를 숙이고 그릇을 사내의 앞에 가져왔다.
사내는 까만 물이 출렁거리는 그릇을 한 손에 잡아다가 아내의 입가에 대번 가져왔다.
“부인.”
“으, 아니…….”
빈 그릇을 챙겨가야 하는 명우는 새 주인의 눈물을 훔쳐보았다. 안 본 사이 홀쭉해진 뺨이 그간의 고생을 말해주는 듯했다. 하물며 사내가 챙기는 보약은 평범한 보약이 아니니. 하늘 사람이 먹는 보약 중에 첫째로 쓴 보약이며, 애 소식이 몇 년 없는 아내를 수태하도록 돕는 보약이었다. 명우는 먹어본 적이 없지만 먹어본 이의 말로는 차라리 쓸개를 빠는 것이 낫다는 말도 있었다.
예상대로 맛이 별로였는지 뭔지도 모르고 마시던 산영의 안색은 흑색이 되었다.
“맛, 맛없어!”
“다 마시면 한숨 자게 해주려 했는데.”
싫다고 도리질 치던 주인이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수탈에 시달려 떠는 손으로 보약 그릇을 잡았다. 그 쓴 것을 군말 없이 마시는 것을 보니 오죽 한숨 주무시고 싶으셨기에 저럴까. 그간 산영에 대해 어리어리한 주인일 뿐이라고 여긴 명우조차 안쓰러운데 저 사내는 피가 동결된 게 틀림없었다.
“다 마셨, 끝냈습니다. 예?”
꿀떡꿀떡 잘도 마신 주인이 빈 그릇을 내밀었다. 사내는 웃으며 그 빈 그릇을 받아 명우에게 주었다. 명우는 서둘러 빈 그릇을 받아 챙기고 떠나려 했으나 사내의 사악한 면모에 발걸음이 멎었다. 분명 명우의 귀로도 똑똑히 들었음이다. 원하는 만큼 보약을 마셔주면 한숨 자겠다고 한 게 방금 전이었다. 한데 이불이 들썩들썩한 모양새에다가, 체면을 잊은 주인의 입에서 비명이 나왔다.
“아! 아으!”
도톰한 이불에 가려져 있지만 알 거 다 아는 나이의 어른이었다. 요에 바람든 것처럼 들썩거리는 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배 위에 올려두고 맛나게 잡수는 중일 게다. 하물며 저 자세는 도망도 요원한 일이었다.
배신당한 주인의 눈에 눈물이 마를 새 없다. 하나 도와줄 일손은 없었다. 빈 그릇을 챙긴 명우는 허리를 숙이며 문지방을 넘었다.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종들은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지는 원색적인 신음에 경악하는 얼굴이었다. 저러다가 다들 일을 치겠지 싶은 모양이다. 명우도 다를 바는 없지만 이 신방 앞에 오래 있다가 어떤 화를 당할지 몰랐다.
“어서 가세.”
불난 집 앞에서 부채질해 봤자 주인을 구할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형제라고 있는 분들조차 이 신방 근처에 얼씬도 안 하는 중이었다. 모종의 합의가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우에게 정떨어진 참인가 보다. 명우는 쑥덕거리는 종들을 뒤돌아보며 입단속을 시켰다.
“쉿. 수다는 됐고, 밥상이나 넉넉히 차리게. 반찬 가짓수도 넉넉히.”
저기서 배 터지게 먹여,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도록 하는 것이 나을 터. 신방에서 제법 떨어졌음에도 산영의 가녀린 신음이 주변을 맴도는 것 같았다. 심란한 마음을 숨기고 숙사로 이어진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였다. 앞을 본 명우는 놀란 마음에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아이구!”
아까 침상에 있던 얼굴이 똑 떼어져 여기에 있었다.
“많이 놀랐구나.”
천만다행으로 가장 너그러우신 분에게 불경을 저지른 모양이었다. 명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일 잘하는 종답게 물었다.
“여기까진 어인 일로……. 찾으시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저 똑같은 얼굴이 얼마나 사악하게 주인을 착취하고 있었던가. 똑바로 보기 힘든 명우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음, 방금 아우가 시킨 일이 무언지 궁금해서.”
방도 멀리멀리 떨어져 있으신 분들이 이 반대편서 일어나는 일을 손바닥 올려두듯 자세히 알고 있을까. 명우는 표정을 갈무리하고 공손하게 답을 올렸다.
“예. 수태를 돕는 보약 한 첩 지어 올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자다가 머릿속에 그 명령이 틀어박혔지. 보면 볼수록 범인을 넘는 형제의 능력에 종들은 멀미 날 지경이었다.
“그래. 수태, 라.”
큰 형님으로 보이는 자의 한숨이 길어졌다. 명우는 착잡해 보이는 그 얼굴에 대고 당신 제수께서 죽어가시는 모양이니 구하라고 하고 싶건만, 목숨이 하나뿐인지라 속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한데 이 큰 형님은 속내를 읽는 술법이라도 있는지 신방이 있는 방향으로 떠나는 것이다.
하기야. 사흘은 심했지, 사흘은.
주인을 구하는 일에 한몫 보탰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책감을 간장 종지만큼 던 명우는 뿌듯해졌다. 부산스레 치마폭을 휘날리며 외양간지기들을 냉큼 불렀다.
“가서 그 주인님의 영물을 데려와라.”
눈물이 앞을 가릴 만큼 보고 싶으셨을 게다. 오늘이야말로 두 발 뻗고 잘 수 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