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GAME RAW novel - Chapter 327
딸깍.
“지루해.”
딸깍.
“이것도 마찬가지.”
딸깍.
“이런! What the fuck is this? 잠깐만 멈춰보게!”
“…….”
프로젝트로부터 쏘아진 화면이 멈춰서고,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던 사무실에 환한 불빛이 들어왔다. 27 제곱미터(약 8평) 남짓의 공간에 디귿자로 놓인 테이블 앞에는 총 여섯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의 시선은 그 중 희끗한 머리를 지닌 이에게 쏠려 있었다.
잘 빗어 넘긴 머리 아래로 짙게 패인 두 개의 주름은 이 남성이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알려주는 것만큼이나 깊고 선명했다.
지난 2월을 기해 67세(1945년 2월 23일)가 된 그는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대(Era)를 걸어가고 있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치프 스카우트인 윌리 팔라치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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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3일. 샌안토니오, 텍사스. AT&T 센터 파크 웨이. AT&T 센터(San Antonio, TX. AT&T Center Pkwy. AT&T Center).
“지금 이게 최선인가? 전부 하나 같이 머저리들만 내게 보여주고 있군!”
“그게, 윌리. 당신은 가끔 너무 기준이 높을 때가 있어요, 그거 알죠?”
프로(Pro) 스카우트 담당인 클라우디오 크리파(Cludio Crippa)는 2009-10 시즌부터 스퍼스에 합류한 남자이자, 현재는 윌리 팔라치오와 가장 오랫동안 일한 사람 중 하나이기도 했다.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이는 프로 스카우트인 미구엘 산토스(Miguel Santos)였는데, 그는 오늘 아직까지 미팅에 참여를 하지 않은 상태이다.
보나마나 아무데서나 만난 여자와 자신의 집에서 뒹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클라우디오 크리파는 진절머리를 내며 이야기를 이었다.
“그거 알아요? 최근 10년 동안 당신의 입맛을 만족시킨 남자는……”
“아무도 없지. 단, 작년의 카와이를 빼면 말이야.”
“응?”
“미안해요, 윌리. 조금 늦었어요.”
“조금이라고?”
뻔뻔한 표정으로 얼굴을 드러낸 미구엘 산토스를 보며, 클라우디오 크리파가 들으라는 듯 불만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매끈한 외모를 지닌 37살의 스카우트는 이를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천연덕스럽게 회의에 합류한 그는 인턴에게서 커피 한 잔을 받아들었다. 그 순간 회의실 안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남자들은 모두 눈치 챈 듯 했다.
작년 12월에 새롭게 채용이 된 레일라(Layla)라는 여성은 올 해로 고작 21살이었고, 어젯밤 미구엘과 함께 있었던 것이 누구인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른한 표정으로 커피를 들이키는 미구엘에게 사나운 시선이 쏟아지지만, 윌리는 그러한 것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바로 이러한 부분도 클라우디오 크리파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다. 만약 윌리가 좀 더 스퍼스라는 팀을 사랑한다면, 당장 미구엘 산토스를 해고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는 스카우트 팀의 기강을 해치기만 할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윌리는 미구엘의 의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였고, 바로 이러한 부분이 최근 몇 년간 스퍼스의 스카우트가 열 번도 넘게 바뀐 이유였다.
‘전설적인 윌리 팔라치오도 이젠 퇴물이 되었다는 뜻이지.’
클라우디오 크리파는 이번 시즌이 끝나고 난 뒤 팀을 떠날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금과 같은 대접을 받고서는 도저히 근무를 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연봉이 더 높아진다면 참아 볼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럴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2000년대 접어들어서면 벌써 세 차례나 NBA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스퍼스이지만, 동시에 수익에 언제나 목마른 스몰마켓이었으니까 말이다.
“음, 그게 윌리. 제가 생각하는 후보를 좀 봐 줄래요?”
“…….”
윌리의 손짓에 가방을 뒤적인 미구엘 산토스가 프로젝터의 코드를 자신의 노트북으로 연결해 화면을 띄웠다. 그리고 이런 멋대로인 모습도 윌리와 미구엘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눈에는 곱게 들어오지 않았다.
최소한 지금은 앞서 영상을 틀고 있던 이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윌리 팔라치오가 수석 스카우트로 있는 회의실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순 없었다.
그는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카우트 중에 하나였고, 스퍼스의 현재를 있도록 만든 남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1999년 2라운드 27번째로 지명한 마누 지노빌리, 2001년 28픽의 토니 파커와 2002년 2라운드 25픽의 루이스 스콜라(Luis Scola)가 모두 이 남자의 작품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후, 윌리 팔라치오의 업적은 평범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냥 운이 좋았던 것뿐이야.’
클라우디오 크리파는 급기야, 윌리의 업적을 단순한 운으로 치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미구엘 산토스를 감싸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상사에 대한 커다란 반발심을 이끌어냈기 때문이었다.
2007년 이 후로 우승이 없는 스퍼스의 내부사정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좋지 못했다. 이 팀은 늙어갔고, 포포비치와 팀 던컨이 은퇴를 하면 암흑기에 접어들 거라는 게 스퍼스 스태프들의 공통적인 생각이기도 했다.
‘고집불통의 늙은이인 윌리 팔라치오.’
그는 사람들이 윌리 자신을 이렇게 부른다는 것을 절대로 모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
2012년 3월 31일. 샌안토니오, 텍사스. 리온 밸리. 포레스트 미도우 스트리트.
딸깍.
“…….”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어두침침한 거실을 비추는 불빛이라고는 TV가 뿜어대는 것뿐이었다. 지루한 표정으로 채널을 돌리던 윌리 팔라치오는 인상을 찌푸리며, 무겁게만 느껴지는 몸을 일으켰다.
저녁 동안에 먹은 술이 과했던 탓인지, 몇 번 비틀거리는 과정에서 그는 소파 옆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꽃병을 바닥에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다행히도 유리가 깨지지는 않았지만, 안에 담겨있던 물이 카페트를 흥건하게 적시고야 만다. 내일 가사를 도우러 올 르번이 이를 보게 된다면, 틀림없이 크게 혼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황급히 무릎을 꿇고 앉은 순간, 윌리는 자신이 왼 손에 술을 들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런!!”
물에 이어 위스키까지.
이제는 확실히 르번에게 혼이 날 것이다.
“휴우-”
이렇게 생각한 윌리 팔라치오는 어쩐지 맥이 풀려 그냥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는 아무렇게나 손을 뻗어 소파테이블 위에 놓인 술병과 리모컨을 자신의 앞으로 끌고 왔다.
“지루해.”
딸깍.
“얘는 완전히 병신이고.”
딸깍.
“오. 여기 또 다른 병신이 있군 그래.”
딸깍.
윌리의 TV에서 나오는 화면은 전부 노트북에 연결이 된 것이었고, 그가 리모컨을 누를 때마다, 젊고 탄탄한 몸을 지닌 농구선수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윌리 팔라치오의 마음을 채울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이 너무 빡빡하며, 최근에는 노망이 들었다거나 혹은 과거의 업적이 단순히 운에 기댄 것이라 떠들고는 했다.
그렇다.
윌리 팔라치오는 주변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에 관한 모든 부분을 알고 있었다. 스카우트라면 그래야만 하니까.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흘리듯 말하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언제나 귀를 쫑긋거릴 준비가 되어있어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스퍼스에 있는 남자들은 아마추어나 다름없었다.
로버트 윌리엄스(Robert Williams), 잭 헐리(Jack Herley), 윌리엄 레일스(William Layles) 모두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 클라우디오 크리파는 끈기라곤 찾아 볼 수 없고, 불평만을 내뱉었다.
이제는 R.C 뷰포드에게 더 이상 싫은 소리를 하기 싫었기 때문에, 미구엘 산토스가 계속해서 스퍼스에 남아있을 수 있던 것이기도 했다.
딸깍.
“패배자.”
딸깍.
“거품.”
딸깍.
윌리 팔라치오는 평생 동안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었던 열정이 지금은 모두 사라져 남아있지 않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몇 번이나 팀을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뷰포드와 포포비치가 자신을 붙잡곤 했다. 차라리 다른 구단들처럼, 오퍼레이터를 두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권한을 가져가라고도 했다.
일선에서 물러나 후임을 육성하겠다는 절충안에도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스퍼스는 여전히 윌리에게 단순한 스카우트가 가질 수 있는 권한 그 이상을 주었다.
그러다 작년 조지 힐을 인디애나에 건네고 카와이 레너드를 데려오는 빅샷을 터뜨렸지만, 그것이야 말로 행운이었다. 오랫동안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무언가를 그가 살짝 건들기는 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윌리는 자신의 판단이 옳은 지를 확신 할 수 없었다.
시즌이 끝나가는 지금, 카와이 레너드의 영입은 윌리 팔라치오의 또 하나의 성공으로 남게 되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이런 영광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딸깍.
“지루해.”
딸깍.
TV의 불빛이 깜빡일 때마다 윌리가 내뱉는 한 마디는 새벽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
2012년 4월 12일. 샌안토니오, 텍사스. AT&T 센터 파크 웨이. AT&T 센터.
“휴가를 가겠다고요? 지금 이 시기에?”
“그렇네. 뭔가 문제라도 있나?”
“…….”
문제라니.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단장인 R.C 뷰포드는 아침부터 들이닥친 윌리 팔라치오의 요구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즌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 된 NBA 팀의 단장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았다.
팀의 성적과 선수들의 건강을 신경 쓰는 것은 물론이고, 재계약을 앞둔 이들의 심기가 망가지지 않도록 모든 스태프를 제대로 통제해야만 했다.
거기에 언론을 만나는 일도 있었고, 플레이오프에 상대하게 될 팀을 예상하고 전력 분석을 할 수 있는 인원을 확충하는 것 또한 단장의 몫이었다. 거기에 프런트 오피스의 관리를 포함한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합하면, 뷰포드는 늘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팀의 수석 스카우트가 대뜸 휴가를 요청하고 있었다.
“얼마나요?”
“일주일이면 될 것 같네.”
“…….”
뷰포드는 외투를 벗으려다 말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질렀다. 최근 많은 이들로부터, 윌리 팔라치오를 해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곤 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이를 무시해왔지만, 최근의 소문은 도를 넘어서는 것들도 섞여 있었다.
포포비치는 윌리의 은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 “그를 해고한다면, 나도 당장에 팀을 떠나는 걸세. 무슨 뜻인지 알겠나?” ] 라 답을 했다.
그리고 포포비치의 은퇴는 곧, 스퍼스 프랜차이즈의 종말과도 같았다.
제대로 된 대비를 하기도 전에, 이 스몰마켓 프랜차이즈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랜 암흑기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즉, 많은 이들의 직장을 보전해 줄 수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뷰포드는 이를 절대로 원하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던 뷰포드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려 윌리가 앉아있던 자리를 쳐다본다.
헌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아 시선을 돌려보니, 윌리 팔라치오는 어느새 단장실에 있는 미니바로 걸어가 작은 미니보틀 하나를 꺼내들고 있었다.
[ “윌리가 근무 중 술을 마셔요, R.C” ]‘이런, 세상에나! 정말이었어!’
윌리 팔라치오와 3일만 일을 해보면, 그가 어떠한 남자인지를 쉽게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는 단호하면서도 까탈스러웠고, 동시에 입이 거칠면서도 상대방의 기분을 망치는 방법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남자였다.
소위 말해, 지랄 맞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NBA에서 가장 뛰어난 스카우트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에 있어서 만큼은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뷰포드는 스퍼스로 오기 전, 많은 NBA의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윌리 팔라치오보다 더 이 볼게임을 사랑하고 또 특별한 남자는 없었다.
지금도 많은 NBA의 전문가들은 윌리 팔라치오가 보인 두 가지의 용단이, NBA의 드래프트 역사를 바꿔 놓았다고 말을 하곤 했다.
그것은 바로 마누 지노빌리와 토니 파커를 영입한 일이었고, 이를 계기로 NBA는 좀 더 해외의 선수들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정작 윌리 팔라치오 본인은 형편없는 결정이었다고 말하지만, 2004년의 베노 우드리히(Beno Udrich)와 2005년의 이안 마힌미(Ian Mahinmi), 2007년의 티아고 스플리터(Thiago Splitter), 2009년의 난데 드 콜로(Nane De Colo)등.
스퍼스의 스카우트가 막다른 골목에 막혔을 때마다, 윌리는 언제나 해외에서 해답을 찾아내곤 했다.
국내 선수에 대한 의견도 대단히 날카로운 편이라서, 작년 카와이를 데려 온 일이나 트레이드 에셋으로 활용한 조지 힐의 지명도 윌리 팔라치오가 아니었다면 모두 없었을 일들이었다. 즉, 스퍼스의 2000년대 프랜차이즈를 세운 건 바로 이 남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R.C 뷰포드는 윌리 팔라치오를 해고 할 수도, 지금의 휴가 요청을 거절 할 수도 없었다. 지금의 모습은 주정뱅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휴우우-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일주일은 안 돼요, 윌리. 컴바인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았고, 거기에서 당신은 분명히 필요 하니깐요.”
“내가? 미구엘을 보내는 게 어떤가?”
“미구엘은 곧 해고를 할 생각이에요. 그는 여자에 관해 문제가 너무 많아요. 며칠 전에는 당신의 조카에게 추파를 던졌고.”
“……지금 뭐라고 했나?”
뷰포드는 자신이 곧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윌리 팔라치오의 조카인 애들레이드 팔라치오(Adelaide Palacio)는 웃을 때마다 들어가는 보조개와 덧니가 인상적인 여성으로, 지금은 사무실의 몇몇 남자들로부터 구애를 받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이제 겨우 23살인 그녀는 12살 때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 윌리와 함께 생활을 해왔다. 최근에는 룸메이트인 루시 황(Lucy Hwang)이라는 한국계 미국인 친구와 시내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애들레이드는 윌리의 친딸이나 다름없었고, 두 사람의 사이가 얼마나 각별한지도 잘 알고 있었던 뷰포드였다.
“자, 잠깐만! 윌리! 대체 어딜 가는 겁니까?”
쾅!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윌리 팔라치오가 성큼성큼 걸어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다급하게 일어서던 뷰포드는 어설프게 벗었던 외투가 의자의 팔걸이에 걸리는 바람에 한참 뒤에서야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게 되었다.
사무실의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높여 윌리가 어디로 향했는지를 묻자, 사람들은 이내 한쪽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가 매우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고 대답했다.
다급해진 뷰포드가 미구엘 산토스의 사무실로 거의 다가갔을 무렵,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일이 벌여졌음을 직감한 윌리가 문을 열자, 사무실의 바닥에 나동그라진 미구엘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당신 이거 봤어요? R.C? 이 영감은 미쳤다고요!”
“입 닥쳐, 미구엘! 자넨 해고야!”
“뭐라고요?!”
“우린 자네의 여자 문제에 관해 모두 알고 있어. 그리고 우리가 가진 정보를 외부로 빼돌렸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 그러니 말해 봐. 여기에 있는 일을 잊고 당장 짐을 싸서 그 더러운 엉덩이를 치우겠어? 아니면 법정에서 나를 상대해보겠나.”
“…….”
당황한 미구엘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R.C 뷰포드가 말을 잇는다.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 스퍼스에는 텍사스에서 가장 잘 나가는 8명의 변호사가 있다는 거야. 듣기론 자네의 카드빚이 엄청나다던데. 어떤가?”
“크흠. 여기에 있는 일은 잊도록 하죠. 그리고 전 계속 일을…….”
“아니, 안 될 말이지. 에이 벡!!”
“Yes Sir?”
R.C 뷰포드가 복도를 향해 큰 목소리로 외치자, 건장한 체격을 지닌 백인 남성이 사무실의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경비원인 로니 벡포드(Roney Beckford)로, 벡은 그의 애칭이었다.
“여기에 있는 이 빌어먹을 작자가 사무실 밖으로 나갈 때까지 감시하게! 그리고 나가기 전에 토니에게 짐을 모두 검사하게 해. 알겠나?”
“Yes, Sir.”
“윌리! 윌리!! 날 따라와요.”
“…….”
미구엘 산토스를 싸늘하게 쳐다보던 윌리 팔라치오가 먼저 사무실을 떠나고, R.C 뷰포드가 그 뒤를 따랐다. 복도로 나선 그는 윌리에게 그쪽 방향이 아니라고 소리를 쳤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말없이 윌리가 뷰포드의 뒤를 따라왔다.
소란이 벌어진 탓에 업무를 중단한 이들에게 그렇게나 한가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인 뷰포드가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서고, 그는 윌리가 마시다 놓고 간 미니 보틀을 들어 올렸다.
화끈한 느낌이 목구멍에 이어 뱃속을 채우고, 순식간에 알콜 기운이 올라옴을 느꼈다. 사실 뷰포드는 그리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아마도 오후에 분명 일찌감치 곯아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스퍼스의 단장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거 알아요, 윌리?”
“…….”
“사람들이 겉에서 보는 만큼, 이 생활은 멋지고 화려하지 않아요. 전 단장을 맡고 있지만, 진짜 단장이 된 기분을 느끼는 건 단 두 개의 순간뿐이죠.”
“드래프트. 그리고 트레이드이지.”
“맞아요! 고마워요!!”
과장 된 몸짓을 보이는 뷰포드를 보며, 윌리는 이것이 술에 취했기에 나온 행동이라는 걸 대번에 파악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크리스탈로 된 잔에 얼음과 술을 담에 건네는 선택을 했다. 물론 하나는 자신의 몫이었고 말이다.
아무런 거부 없이 이를 받아든 뷰포드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이야기를 이었다.
“마치 전 가정부가 된 것만 같죠.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전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고요. 티미는 매년 자신의 은퇴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매번 플레이오프에 올라가지만 정작 우승과는 거리가 멀죠! 빌어먹을 마이애미와 르브론 제임스가 번번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으니까요! 그거 알아요? 앞으로는 분명 서부에서 또 강자가 나타날 거라는 거.”
“매년 그랬었지, R.C. 언제는 아니었던 적이 있던가?”
“Damn! 전 이 직업이 너무나도 싫어요!”
사람들은 이것이 R.C 뷰포드 – 윌리 팔라치오 – 그렉 포포비치의 일상적인 모습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어느 하나가 감정을 잃고 흔들리면, 다른 두 사람은 놀랍도록 냉정해져 그 곁을 지켜주었다.
딱히 계획을 했다거나 억지로 꾸미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퍼스라는 팀은 늘 그래왔다. 어쩌면 이 지긋한 연결 고리를 끊어낼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R.C 뷰포드는 생각했다.
“후우- 그래서 어디로 갈 생각이에요?”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뭐, 그냥 물어 본 거예요. 제나에게 당신의 티켓을 예약해 두라고 부탁하죠.”
“아니, 괜찮네. 이번에는 직접 운전을 해서 갈 생각이야.”
“…….”
테이블에 놓인 스피커폰에 손을 뻗으려던 R.C 뷰포드가 잔뜩 걱정을 담은 표정으로 윌리에게 물었다.
“운전 하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니에요?”
“하-! 자네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한 운전이니, 걱정하지 말게!”
“윌리.”
“……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그리고 절대로 죽으려고 하지 않는다고도.”
“……좋아요. 그거면 돼요. 카드는 들고 있죠?”
“내가 누구라고.”
윌리의 가슴팍에 꽂혀있는 카드는 전부 스퍼스의 앞으로 청구되어 나오는 것이었다. 뷰포드는 윌리에게 이것을 주며 언제든 사용해도 된다고 말을 했지만, 정작 이것이 사용이 된 횟수는 지난 5년 동안 1번밖에 되지 않았다.
그 한 번도 윌리가 지갑을 잃어버렸던 날에, 마트에서 우유를 구매하기 위해 사용된 1달러 50센트가 전부였다.
뷰포드는 틀림없이 이번에도, 자신들에게 날아 올 영수증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린 당신이 필요해요, 윌리. 그러니까. 절 좀 도와 달라고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면, 생각을 해보지.”
윌리 팔라치오의 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다. 그것이 설령 그렉 포포비치나 팀 던컨이라고 할지라도 불가능하다는 걸, 뷰포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필요하다는 말은 진짜였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바라봐야 할 스퍼스는 팀 던컨 이 후의 세대를 생각해야만 했다. 카와이 레너드가 그 대체자가 되어줄 거라는 믿음은 지금으로써는 그저 망상이나 다름없었다.
분명히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곤 있지만, 이번 시즌을 앞두고 15번째로 지명이 된 이 애송이 포워드는 여전히 증명해야 할 것 투성이었으니까 말이다.
스퍼스 역사의 산증인이 떠난 자리를 쳐다보며, R.C 뷰포드는 생각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NEXT 팀 던컨만이 아니라, NEXT 토니 파커, NEXT 마누 지노빌리라는 것을 말이다. 현대 농구는 이제 더 이상, 한 명의 위대한 선수만으로는 우승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커다란 퍼즐조각의 크기가 줄어든 게 아니라, 퍼즐판 자체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커다란 퍼즐을 연결해 주는 중간 크기나 작은 크기의 퍼즐의 비중도 높아졌다.
뷰포드는 언제나 이러한 부분이 어려운 것이라 믿었다.
NBA의 단장으로써 하나의 팀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마치 거친 파도와 맞서게 될 배를 제작하는 것과도 같았다. 항해를 하다보면 맑은 날이 계속 될 수도 있지만, 어떨 때에는 폭풍우와 맞서 싸워야만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 좌초되지 않으려면, 배를 만들 때 정말로 제대로 된 설계를 해야만 했다. 배를 내부에서 갉아먹는 쥐새끼를 내쫓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바로 몇 분 전, 미구엘 산토스를 해고한 것처럼 말이다.
딸깍, 삐이-
“제나? 윌리가 휴가를 떠난다고 해.”
“그에게 사람을 붙일까요?”
“그래 줬으면 좋겠어. 또 전처럼 멋대로 죽는다고 하면 곤란하니까.”
“지금 바로 레이에게 전화를 할 게요.”
“부탁해.”
딸깍.
시즌이 끝나가는 지금, 뷰포드는 윌리의 도움이 정말로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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