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GAME RAW novel - Chapter 62
2012년 11월 28일. 데이튼, 오하이오. 에드윈 C 모제스 불러바드. UD 아레나(Dayton, OH. Edwin C Moses Blvd. UD Arena).
□ 경기 결과
WSU(1-2) 62 VS 61 Dayton(4-1)
Min-Hyuk Kim : 18MIN(4PTS/3AST/4REB/2TO)
(2/7FG , 0/3 3P)
(+/- : -3)
++++++++++++
데이튼, 오하이오. 터미널 드라이브. 데이튼 국제공항(Dayton, OH. Terminal Dr. Dayton International Air-Port).
데이튼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것은 솔직히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미드-메이저 컨퍼런스 중에서도 경쟁력이 높기로 소문난 컨퍼런스 소속인데다, 이번 시즌 4승 1패로 승승장구중인 분위기 좋은 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농구란 변수가 가장 많은 종목 중에 하나이다.
실제로 경기장 위에서 뛰는 선수의 숫자는 프로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적은 축에 속하다보니, 특정 선수의 컨디션에 따라 경기 결과가 바뀌기도 한다.
오늘은 카일 트레스낙이 주인공이었다.
“이봐, 카일의 옆 자리는 누구야?”
“나인 것 같은데?”
“아니, 넌 안 돼. 글렌하고 바꿔.”
“왜? 왜, 난데?”
발끈한 쪽은 글렌이다.
본래 내 옆에 앉을 예정이었는데, 졸지에 7피트의 카일 옆으로 옮겨가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대학생인 우리에게 비행기를 타는 원정 자체가 사치다. 즉, 널찍하고 쾌적한 환경은 꿈에도 바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가뜩이나 비좁은 좌석일 텐데, 우리 중에 가장 덩치가 큰 카일의 곁에서 있는 것은 분명히 큰 고역일 것이다.
“좀 바꿔줄래?”
“말도 안 돼.”
잔뜩 좌절하는 글렌을 내버려두고, 나는 또 다른 주인공인 뱀포드의 곁으로 다가갔다.
오늘 시합은 우리의 이번 시즌 경기들 중에서 유일하게 TV 중계가 잡혀있는 것이었다. 의 카메라들이 경기장 도처에 깔려 있었고, 덕분에 선수들은 평소보다 더 집중력을 발휘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난 오늘 썩 뛰어나지 못했다. 다이숀 피에르(Dayshawn Pierre)와 데빈 올리버(Devin Oliver)라는 좋은 수비수들 사이에서 허우적댔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카일과 뱀포드가 각각 16점과 15점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 전반 20 : 28로 뒤졌던 경기를 후반 시작과 동시에 33 : 28로 뒤집은 일등 공신이 되었던 것이다. 리온도 9득점과 8개의 리바운드로 힘을 보탰다.
반면, 베리는 여전히 고전 중이다.
“헤이, 스코티.”
“응?”
“너도 내일 오는 거지?”
“그야, 물론이지.”
내일부터 시작이 될 추수감사절 휴일을 맞아, 우리 WSU의 선수들은 아크웨이 유소년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비록 프로는 아니라지만, 대학 선수들의 지역사회 활동은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좋아. 친구.”
헤드셋을 끼는 뱀포드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겨 자리로 돌아왔다. 아직 비행기의 탑승 시간까진 20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그래서 난 휴대폰을 꺼내들어 기사를 검색하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홈페이지에 접속해 손가락을 움직여 본다.
“…….”
[WSU가 매우 놀라운(Big Surprise) 승리를 거머쥐다.]컨퍼런스는 전통의 강호인 재비어(Xavier)와 템플(Temple)을 포함해, 이번 시즌에는 꾸준한 리쿠르팅의 결과로 상위권으로 도약한 세인트 루이스(St. Louis)와 버지니아(VCU)가 포함되어 있는 곳이다.
거기다 내년, 메이저 컨퍼런스로의 편입이 확정 된 버틀러도 의 가장 뛰어난 팀 중 하나였다. 그리고 데이튼은 이번 시즌 중상위권을 목표로 잡고 있었다.
‘인사이드를 지배한 괴물이라…….’
그리고 경기를 중계한 는 막상 카일이나 뱀포드가 아닌, 조엘을 주목했다.
조엘 볼럼보이는 오늘, WSU 데뷔 후 가장 많은 33분을 소화했고 이 시간동안 7득점과 12개의 리바운드, 3개의 블록슛을 기록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수비에서 인상적인 재능을 엿보인 재비어에 대한 이야기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휴우우-”
하지만 기사의 그 어떠한 곳에서도 나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옆 자리에 앉아도 될까?”
“응? 오-! 물론이죠.”
그리고 이 때, 스탠리가 곁으로 와 앉았다.
“최근 분위기가 바뀐 것 같더군.”
“네?”
“코트 위에서 말이야. 스스로 좀 더 많은 패스를 받고, 더 많은 슈팅을 던지길 원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어.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
언젠가 스탠리와 대화를 하게 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런 질문을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옳다. 나는 더 많은 패스를 받고, 더 많은 슈팅을 던지길 원했다.
그렇지만 어째서 그러고 싶어졌는지를 탁 꼽아서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나보군.”
이번에도, 스탠리가 핵심을 짚어왔다.
“어디 보자.”
그리고 그는 다리를 꼬며, 먼 곳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 유럽과 미국이라면, 조금은 나을 지도 몰라. 하지만 아시아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지. 모든 것이 새로워. 한 개인이 집단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단이 한 개인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
“…….”
“우리에겐 당연한 것이 네겐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러면서 스탠리는 최근 자신이 느낀 것들을 하나씩 말해주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내가 지나칠 정도로 수동적이었다는 점이었단다. 안정된 미래를 포기하고 당당히 미국무대에 도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스스로 헤쳐나가려는 모습은 부족했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난 전화를 걸기로 결정했지.”
“전화? 누구에게요?”
“코치 유(Coach Yu).”
스탠리는 유명학 감독님에게 전화를 해 나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명학 감독님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포장하나 없이 솔직한 답변을 하셨다.
한국의 농구와 교육, 문화에 묻어있는 전반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자립심을 앗아간다고 말이다. 과거보다 훨씬 더 영리해졌지만, 정작 벽에 부딪혔을 때 이를 헤쳐 나갈 능력은 부족하다고 말하셨단다.
[“그에게 시련을 주세요.”]그래서 유명학 감독님이 말한 것은 나를 방치해두는 것이었다.
내 스스로 문제에 부딪치고, 그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도록 만들었다. 그 동안 스탠리는 나를 외부에서 관찰할 기회를 얻었고, 비로소 나라는 사람을 조금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단다.
전혀 다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이러한 과정은 필수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라면서 말이다. 또한 스탠리는 LA에서의 이야기도 덧붙였다.
“내가 널 스카우트하기로 결정한 것은 네가 코트 위에서 경기를 주도 할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지. 그건 단순히 득점을 많이 하는 걸 뜻하는 게 아니야. 분위기를 주도하고 팀 전체를 끌어 올릴 능력을 뜻하는 거지. 여기엔 이런 말이 있단다.”
[Makes Teammates Better]“과거에는 매직이 그랬고, 존 스탁턴이 그랬지. 하지만 우리는 현재 이 분야에서 역대 최고의 선수를 지켜보고 있어. 바로, 르브론이 그렇지.”
“…….”
“하지만, 봐. 매직이나 존 스탁턴은 포인트 가드야. 하지만 르브론은 아니지. 하지만 그는 정말 코트 위에서 모든 것을 해내고 있어. 네게서 그러한 것을 봤다는 말은 하지 않으마. 그건 르브론에게 실례일 테니까.”
나도 동감이다.
“우린 점점 전혀 다른 세대를 살아가고 있어.”
윌트 체임벌린, 줄리어스 어빙, 모제스 말론, 빌 러셀, 카림-압둘 자바.
196, 70년대에는 우승을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빅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의견은 정설로 굳어져 거의 20여년을 지배했다. 그러다 마이클 조던이 등장했고, 의식의 흐름이 바뀌었다.
패트릭 유잉, 칼 말론, 샤퀼 오닐, 데이비드 로빈슨, 알론조 모닝.
이들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전체를 풍미했던 최고의 빅맨이었지만, 마이클 조던 앞에서 번번이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마이클 조던은 공격과 수비에서 최고 수준에 올라있는 유일한 스윙맨이었고, 이에 영감을 받아 자란 세대들이 NBA에 데뷔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린 수없이 많은 실책을 저질렀지.”
“…….”
소위 다재다능이라는 항목이 NBA 스카우트 리포트의 으뜸에 서던 시대를 뜻하는 것이다. 마이클 조던의 두 번째 은퇴 뒤, 그를 그리워한 이들의 향수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마이클 조던처럼 할 수는 없다.
심지어 코비, 르브론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코비는 마이클 조던의 적자 같은 느낌이지. 그는 많은 부분에서 닮았어. 하지만 르브론은 아냐. 그는 전혀 다른 유형이지. 하지만 그는 곧 자신만의 방식으로 리그를 지배했어. 그와 동시에 핸드체킹 룰의 강화가 일어났고, 트렌드가 또 한 번 바뀌지.”
“저도 알아요.”
오그던에서 적응하던 초반,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에 나와있는 내용이었으니까 말이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거대하고 인구가 많은 만큼, 참으로 쓸모없지만 요긴한 지식이 담긴 서적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그 서적에서는 르브론의 데뷔와 더불어, 시대의 흐름이 또 한 번 요동쳤다고 되어 있었다.
르브론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문제였고, 단순히 그 시기가 겹쳤을 뿐이었다.
크리스 폴, 데론 윌리암스를 선두로 뛰어난 포인트 가드들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데릭 로즈와 러셀 웨스트브룩으로 이어졌고 현재까지도 리그는 우수한 가드를 뽑는 것을 리빌딩의 첫 번째 과제로 꼽는다.
NBA 최고의 단장으로 꼽히는 OKC의 샘 프레스티가 케빈 듀란트의 파트너로 러셀 웨스트브룩을 점찍은 이유이기도 했다.
[“케빈에겐 좋은 파트너가 필요하죠. 그리고 좋은 가드를 보유하는 일은 모든 팀들의 최우선과제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게 우리가 러스를 지명한 이유이죠.”]작년 샘 프레스티가 OKC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008년 당시만 하더라도, 러셀 웨스트 브룩이 지나치게 높은 순위에서 뽑혔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샘 프레스티는 단호했다.
[“우린 지금 코비와 르브론의 시대에 살고 있죠. 하지만 곧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만 할 겁니다. 날 믿어요. KD와 러스가 바로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될 겁니다.”]룰의 변화이든 아니면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든. 이유가 뭐가 되었건, NBA의 트렌드는 항상 변화해왔다. 물론 절대적인 몇 가지 덕목들은 견고했지만, 리그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항상 등장했다는 뜻이다.
내가 읽었던 책의 저자는 이것이 바로 NBA가 세계 최고인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항상 연구하고 변화하며, 발전을 모색하는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면서.
스탠리는 자신도 그 중 하나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한 번씩 그런 상상을 해. 3점 라인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쉽게 슈팅을 던지는 남자가 등장하는 것이나, 7피트의 선수가 가드처럼 움직이고 포워드처럼 뛰어 올라, 마음껏 덩크를 하는 장면을 말이야.”
“하하. 말도 안 돼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사람들은 전부 믿지 못했지. 마이클 조던이나 샼, 르브론이 직접 눈앞에서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
“넌 너만의 스타일이 있었어. 최소한 LA에서 내가 널 처음 보았을 때에는 그랬지. 나는 네가 쉐인 베티어와 같은 유형이라 생각했고, 아직까지도 그럴 거라 믿고 있어. 하지만 넌 정말 중요한 것 하나를 착각했지.”
그게 뭘까?
“NBA에서 뛰는 3&D의 선수들 모두, 대학 시절에는 팀 내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였다는 사실이야.”
“…….”
“만약 우리, 그러니까. 미국인들이 너와 같은 조언을 들으면, 우린 이렇게 생각을 해. 그건 언젠가 내 미래의 일이고, 내가 발전해야 할 방향이라고.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최고가 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지만 나는 달랐다는 말이다.
“3&D가 목표가 된 순간, 넌 이곳 WSU에서도 3&D플레이어가 되려는 것처럼 굴었지. 그건 뭐랄까. 창의력이 부족한 거야. 주입된 이야기에 대해서만 받아들이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방법은 전혀 모른다는 거지. 그게 네 가장 큰 약점이라는 것을 알았어.”
“하하. 그럴 지도요. 하지만 사실 전혀 와닿지는 않아요.”
“당연하겠지. 왜냐하면 그게 너라는 사람이니까.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들이 널 그렇게 만든 거야. 그건 결코 나쁘다거나 잘못 된 것이 아니지.”
스탠리는 이제 겨우 한 발을 내딛은 것뿐이라 몇 번이나 강조했다.
“만약 네가 경기 때마다 10개씩 슈팅을 던지기 시작한다면,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
“…… 무슨 뜻. 아니, 스스로 생각하죠.”
“좋아. 좋은 태도야.”
나의 어깨를 두드린 스탠리가 자리에서 일어섰고, 홀로 남아 이어폰을 꽂은 나는 음악이 나오는 척 눈을 감았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항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음들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것은 단순한 농구선수로서가 아닌, 나라는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출발할 시간이 되어 눈을 떴을 때, 나는 정말로 이제 겨우 한 발을 내딛은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걸어왔다고 믿었던 길은 정작, 준비운동을 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진짜로 경쟁을 준비해야 되는 시기는 바로, 지금 부터였다.
‘나는. 나를. 이긴다.’
그리고 난 그 경쟁을 즐길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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