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dark-haired alien RAW novel - Chapter (359)
〈 359화 〉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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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와 함께 식사를 한 뒤에 본격적으로 휴식시간을 소모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세계에서는 딱히 놀만한 것이 없었다.
애초에 즐길 거리 자체가 희박한 곳이다. 이게 현대인인 나의 시선으로 봐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명백히 놀 거리가 부족하다.
일단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면 요즘은 몰라도 옛날에는 그냥 남는 시간에 퍼질러 자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보고는 했었다. 거기에 밥 먹을 돈이 있다면 체력단련을 추가했고, 여유가 있으면 목욕탕에 갔다.
말하자면 휴식이라기보다는 그냥 내일 살아남기 위해 대비를 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피로를 회복하고 지식을 쌓으며 체력을 늘린다.
병나면 뒤지기 십상이니까 위생 또한 최대한 신경 쓴다.
거기에 겸사겸사 장비도 점검하고 모험가 길드에 죽치고 앉아서 정보 수집을 하거나, 가끔 맘씨 좋은 교회에서 행하는 자선 행사 같은 것에도 참가하기도 했다.
오직 생존을 추구하던 생활… 아, 씨발.
이 좆같은 기억들 대체 뭐야.
아무튼 이딴 것은 절대로 휴식시간이 아니다.
그저 일의 연장선일 뿐이다.
이세계 생활 초창기의 김캇트는 그런 식으로 치열하게 살았었다. 어쩌면 나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영혼은 그때 죽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원래 나름대로 유머를 아는 남자였는데… 씁쓸하군.
지금 나조차도 휴식시간에 대해서 제대로 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엘리제를 즐겁게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억지로 놀려고 해봤자 난생처음 보는 수련회 교관이 꼴에 재밌는 척을 하는 것 같다는 비참한 취급을 당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엘리제에게 그딴 취급을 당했다가는 내 영혼이 울부짖게 될 것이다.
“엘리제…!”
“성도님…!”
그렇다면.
“투기장으로 간다.”
폭력적인 것을 좋아하는 엘리제니까 이것은 분명 먹힐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것이라면 몰라도 몬스터와 싸우는 파트는 100% 취향 저격이다. 질서신께서는 몬스터도 증오하시니까.
무엇보다 내가 직접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검투사들과 몬스터들이 즐겁게 해주는 것이니 문제없다. 이래 봬도 이세계 최고의 컨텐츠가 바로 투기장이다.
도박까지 하면 재미가 두배.
“투기장이라. 그러고 보니 그런 곳이 있었지요.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가본 적은 없습니다.”
“흐흐흐, 엘리제. 나는 무려 검투사로도 활동한 적이 있다고.”
“무, 무엇이…! 정말입니까!”
“그래! 검투사로서 투기장의 사악한 몬스터들을 처단했었지!!!!”
“그럴 수가! 이 어찌 경건한!”
나는 거의 경악하는건지 기뻐하는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소리를 친 엘리제의 손목을 붙잡고 투기장으로 향했다. 투기장이 뭐 매일매일 열리는 것은 아니긴 한데, 일단 가보도롣 하자.
두르반… 잘 지내고 있니?
너 때문에 벌버자와 생사결을 펼친 것은 아직도 잊지 못한단다.
물론 그 늙은 오크 처형자와의 격렬한 사투는 내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고마운 일이기는 하지만, 두르반 역시 내 피와 살이 되어야 함이 옳다.
벌버자의 복수를 해야 한다.
ㅡ와아아아!
ㅡ우오오오!!!
그리 투기장 앞에 도착하니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경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리번거리는 엘리제와 함께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금 한창 싸우는 중인 것 같으니 입장료만 낸다면 즉시 전투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엇… 자네는? 야만전사 캇트가 아닌가.”
“아,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들어가니, 입구를 지키던 직원이 아는 척을 해와서 반사적으로 누군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잘 지냈지. 그리 물어봐 주니 고맙군. 그런데 갑자기 검투사를 관두다니,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흐흐, 그렇습니까? 뭐, 사정이 있어서요. 전업 검투사도 아니었고. 아무튼 오늘은 관객으로 왔습니다.”
“그렇군. 뭐, 입장료는 안 받겠네. 누가 보기 전에 잽싸게 들어가게.”
아니 이럴 수가.
“아이고,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역시 인격이 좋으십니다.”
“살면서 그런 말을 다 들어보는군. 그런데 이쪽 수녀님은 누구신가?”
“친구입니다.”
엘리제가 조용히 목례를 했다.
내 친구라고 입장료를 받지 않겠다고 해서 인사를 마치고 후다닥 안쪽으로 들어갔다. 반사적으로 공손하게 대했을 뿐인데 이런 횡재가 생기다니.
역시 산적들이 깨닫게 해 준대로 이세계도 살만한 것 같다.
“성도님께서는 제법 명망 높은 검투사였나 보군요.”
“나름 그렇지. 브루탈 엔젤 김캇트라고 불렸을 정도니까.”
“야만적인 천사라… 후훗. 상당히 어울리는 별명 같습니다.”
“그래. 막 날개도 달고 날아다니기도 했다고.”
“그건 믿을 수가 없군요.”
“진짜라니까, 아. 못 믿네.”
투기장의 안쪽은 비교적 한산했다.
아니, 한산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가 오프닝을 했을 때에 비해서 사람 수가 적었을 뿐이니까. 나는 상당히 거물이었다.
ㅡ채앵! 채앵!
ㅡ우오오오오오오!!!!
밖에서 들었던 대로, 이미 경기는 시작한 상태였다. 아직 아침이라서 그런지 오프닝을 하는 중인 것일까?
ㅡ케에에에엑!!!
ㅡ뒤져라, 괴물!!!
헐벗은 검투사가 고블린 같은 잡몹들과 싸우고 있다.
제법 근육질이었는데, 일류검객인 김캇트의 치명적인 눈썰미로 봤을 때, 칼 다루는 솜씨가 비참한 상태였다.
그래도 고블린는 써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서 혼자서 다섯을 동시에 상대했다.
ㅡ촤악!
ㅡ쐐액!
“크아아아아아!”
검투사가 칼을 크게 휘두르자 그 궤적에 있던 고블린들의 가슴이 갈라지며 피가 흩뿌려졌다. 칼 솜씨는 별로지만, 애초에 고블린을 상대하는데 그런 것은 크게 필요 없다.
저레벨 몬스터는 깡만 있으면 잡을 수 있으니까.
애초에 인간보다 약한 존재다.
“오, 오오! 성도님! 보십시오! 전사가 몬스터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흥분한 엘리제가 소리쳤다.
역시 좋아하는군.
“일단 위로 올라가서 자리에 앉자고. 앉아서 제대로 봐야지.”
“아, 알겠습니다.”
엘리제는 굉장히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였다. 계단을 오르는 중에도 이미 떨리는 두 눈은 투기장 쪽을 응시하고 있는 중이다.
“자, 투기장이라는 곳은 저렇게 검투사와 몬스터가 싸우는 것을 감상하는 공간이야. 돈만 내면 누구든지 볼 수 있지. 휴식시간을 보내기에 더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해.”
“그, 그렇군요. 확실히 그럴 것 같습니다. 벌써 기대가 됩니다. 그런 경기를 한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
“이제 앉아서 보자.”
그리 엘리제와 좌석까지 올라가서 착석을 하고 투기장을 구경했다.
ㅡ크아아아아!!
“자ㅡ앗!!!!! 과연!!! 솔리쓴은 혼자서 사악한 괴물들을 처단할 수 있을 것인가앗ㅡ!!!!”
검투사가 함성을 지르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아줌마 아직도 있었나 보다. 역시나 높은 텐션을 자랑하며 중개를 하는 중이다.
ㅡ케레레렑!!!
그 순간이었다.
투기장의 창살 문이 열리더니 급작스럽게 뼈 갑옷으로 무장한 탱탱한 고블린 10여 마리가 혼자인 검투사에게 달려들었다. 오늘 무슨 데스매치라도 하고 있나?
검투사는 이미 피투성이 상태다.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 고블린 무리를 목도했다.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저 정도 솜씨라면 이겨도 치명상을 입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투기장의 몬스터들은 학대로 인해 많이 사나워진 상태니까. 열이 동시에 덤빈다면 맨몸으로는 다칠 수밖에 없다.
“서, 성도님! 보십시오! 고블린들이 추가가 되었습니다!”
“보고 있어!!!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모르겠습니다! 현재 검투사는 많이 지쳐 보이는 상태입니다!”
반쯤 경악한 엘리제는 이미 불안감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서, 설마 죽는 것은 아니겠지요!”
돌연 내 손을 잡아채더니 몸을 떨면서 울부짖듯이 말했다.
아니, 감정이입하는 속도 너무 빠르잖아.
“죽을 수도 있어! 조심해!”
“그런…! 믿을 수 없습니다!”
“아냐! 현실이야!”
“크윽!”
엘리제는 투기장에 대한 지식은 있지만, 오늘처럼 보러 오는 것은 처음이다. 이곳은 안전한 곳이 아니다. 바로 생과 사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그것을 똑독히 지켜봐라, 엘리제!
“처단하십시오! 쓰러지는 순간 끝입니다, 검투사여!”
흥분한 엘리제가 주먹을 꽉 쥐고 검투사를 응원했다.
“크아아아악!!”
ㅡ케륵! 케르륵!!!
그런 엘리제의 염원이 통했을까, 검투사가 능숙하게 선두의 고블린에게 킥을 날리고 뒤이어 달려드는 놈의 미간에 칼을 박아 넣었다.
ㅡ오오오오오!
ㅡ와아아아아!
ㅡ꺄아아아아아!!!
“좋습니다!!”
순식간에 두 마리를 아작내고 전투에 돌입하자 관중들의 함성과 함께 엘리제가 탄성을 터트렸다.
볼만한 광경이긴 하다.
검투사가 사투를 벌인다. 그는 물량빨 때문인지 공격 몇 번을 허용하여 맨살에서 뜨거운 피가 튀었지만, 역시 검투사는 검투사인지라 고통을 씹고 고블린들을 요격했다.
그 모습을 보니까 옛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저기서 혈전을 치르는 맨몸의 검투사.
나도 옛날에는 변변찮은 장비 하나 없이 몬스터들과 싸웠었다. 퀼티드 아머 하나 마련하기 전까지 진짜 굉장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내 몸에 흉터가 많은 것도 당시에 갑옷조차 없이 싸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몬스터의 손톱이 내 몸을 할퀴고, 이빨들이 육체를 물어뜯는다. 그리고 도망치다 구르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그런 것을 반복하며 살아왔으니 몸이고 얼굴이고 흉터로 씹창이 나버리고 말았다.
노숙을 하고 있으면 싸움도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얻어맞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래, 그렇게 살았었지.
“솔리쓴의 승리입니다앗ㅡ!!!!!!!!!!!!! 역시 우리들의 검투사 솔리쓴!!!! 굉장한 솜씨로 사악한 몬스터들을 도살했습니닷!!!!”
잠시 상념에 잠겨 있으니, 결국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검투사가 승리했다.
“승리, 승리입니다! 성도님! 검투사가 이겼습니다!”
엘리제 역시 격정적인 감정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많이 흥분한 엘리제는 지금 극도의 기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승리해 우뚝 서 있는 검투사에게 들리지도 않을 공치사를 늘어놓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래, 다행이야! 흐흐, 엘리제. 이제 뭐 투기장이 뭔지 좀 알겠지? 누가 이길지 조마조마하게 보는 것이 바로 투기장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검투사를 내보내고, 그와 싸울 몬스터를 내보낸다라… 이건 혁신적입니다. 단지 전투를 감상할 뿐인데 이렇게나 가슴이 뛰다니. 확실히 성도님의 말씀대로 휴식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적절한 공간인 것 같습니다.”
좋아하니 다행이군.
“이런 자리에 저를 데려와 주시다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역시 성도님께 부탁드리기를 정말 잘했습니다. 다른 관객들과 함께 몬스터 몬스터의 잔혹한 최후를 감상할 수 있다니, 굉장히 좋은 일이지요.”
마지막 말이 좀 걸려.
“뭐, 어렵지도 않은 일이니까. 나중에도 휴식시간 부여받으면 투기장도 찾아가고 그래 봐.”
“그렇군요. 그래야겠습니다. 이렇게나 즐거울 줄이야… 허나, 검투사가 패배한다면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즐겁다는 듯 빠르게 말하던 엘리제가 돌연 우울함을 내비쳤다. 당연히 좋지는 않겠지. 솔직한 반응이다.
어떤 미친놈들은 오히려 검투사가 패배하는 것을 즐기는 쪽도 있다고는 하는데, 엘리제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극단적인 기준이 몇 가지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인이고 상식인인 것이다.
명백히 감수성이 풍부한 10대 소녀다.
“그런가? 뭐, 그렇겠지. 아, 그리고 몬스터랑 싸우는거 말고 사람끼리 싸우는 것도 있어.”
“사람과 사람이 싸운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것은 별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죄인을 처형하는 쑈도 있다고.”
“그건 굉장히 솔깃합니다!”
“솔깃하지? 여러가지 많이 있으니까 취향껏 보면 돼.”
그리 엘리제와 남아있는 경기를 몇 개 더 감상했다.
다행히 3경기 연속으로 몬스터전이라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이 넘어가, 사람끼리 싸우게 되자 주저 없이 바깥으로 나왔다.
웃음꽃이 핀 엘리제가 이것저것 경기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현대 지구로 따지자면 마치 영화를 보고 나와서 그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는 무슨. 그럼 이제 뭐 하러 갈까? 아, 맞다. 수녀복 빼앗긴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럼 옷이나 사러 가자. 이번에 번 돈 있으니까 팍팍 쓰고 가자고.”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이 돈은 개인적으로 교회에 헌금을ㅡ”
“ㅡ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아니, 교회 명령으로 일을 하고 왔는데 대가를 받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번 돈으로 헌금을 한다고?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메이징한 이야기였다.
“이번엔 다 써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