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dark-haired alien RAW novel - Chapter (39)
〈 39화 〉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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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게 내려앉은 썩은 낙엽의 향기가 마치 거미줄처럼 얼굴에 휘감겨온다. 먼지가 자욱한 오래된 던전(Dungeon)은 단지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벌레가 피부에 들러붙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 그 어떤 모험가라도 입구에서부터 들어서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들어가겠습니다.”
거침없는 엘리제를 선두로 우리는 던전에 진입했다. 안쪽에서부터 찬 바람이 불어왔다. 그 죽음 같은 서늘함에 나는 입장부터 개 빡긴장을 했다. 칼을 쥔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랜턴을 켜야겠군.”
“기름 어따 넣냐.”
“잠시… 이 안에 넣으면 되는 거군.”
던전의 안쪽은 빛이 한점도 들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진짜 존나 어두웠다. 불빛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진입한 지 20초도 안 돼서 콥슨은 랜턴을 꺼내 들었다. 이래서야 아침에 내려온 의미가 전혀 없었다. 오밤중에 들어오나 한낮에 들어오나 똑같을 것이다.
지하라 태양 빛조차 들지 않으니 시계확보는 전적으로 랜턴에 의지해야 했다.
“됐다. 이제 불을 피워야지.”
기름을 넣은 나는 화섭자를 쪼개서 그 불씨로 랜턴에 불을 붙였다. 랜턴에 주황색 불이 붙으니 제법 깔쌈하고 중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오오, 빛이 주황색! 주황색이야! 보이나? 바바리안 쉑! 빛이 주황색이라네!”
“지, 진정해.”
콥슨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유로 기뻐 소리쳤다. 역시 이 새끼는 정상이 아니야. 어쩌면 던전의 불길한 마력이 그를 광기에 사로잡히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우리는 그 작은 불빛에 의지해서 지하로 내려갔다. 석재로 만들어진 계단을 끊임없이. 어둠 저 너머에 무엇이 도사리는지 알지 못한 채로…
그때였다.
“꺄악!”
“씨팔!”
내 뒤에서 따라오던 메리아가 돌연 비명을 지르며 내 어깨를 잡아 크게 놀라고 말았다! 입에서 태초의 울부짖음 같은 욕설을 터져 나온다. 습격인가! 나는 재빨리 뒤로 돌아 메리아의 어깨를 잡아 끌어 내 뒤로 보냈다.
“어떤 씹년이야!”
그리고 그대로 칼을 겨누며 적이 있을 만한 곳을 향해 위협적으로 찔러넣었다. 그 광경에 콥슨과 엘리제 역시 굳은 얼굴로 각자의 무기를 겨눈 채로 다가왔다.
“바바리안 쉑? 무슨 일이지?”
“적습입니까?”
그러나 뒤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비행형 몬스터나 시꺼먼 색상의 괴물인가 싶어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눈깔이 빠질 정도로 탐색을 했는데도 뭔가 보이는 것은 없었다.
나는 메리아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 뭐야. 메리아.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없는데? 설마 귀신이라고 하진 않겠지?”
나는 세상에서 귀신이 제일 무서웠다. 놈들은 벨 수가 없기 때문이다, 라는 이유를 들이대면 나름대로 멋져 보이겠지만, 나는 그냥 좆겁쟁이 새끼라 귀신이 항상 무서웠다. 손발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언데드가 나타난다더니 귀신도 나오는 것인가? 고스트(Ghost)도 언데드에 포함되는 몬스터긴 하겠다.
“아… 미안.”
“응?”
“발이 걸려서…”
“아.”
메리아가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너무 빡긴장을 한 나머지 과민반응을 한 듯싶다. 오히려 메리아보다 내가 더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적을 위협하기 위해 일부러 큰 소리를 냈거늘…
“크크크, 기합소리에 힘이 넘치더군. 바바리안 쉑. 이거 참 믿을만 하겠어.”
“제길.”
“큰 문제가 아니라면 다시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시계가 없어서 얼마나 내려온 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깊이 내려온 듯 싶었다. 그렇게 조금 긴장이 풀린 상태로 내려가고 있자니, 메리아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저기.”
“엉?”
“그… 방금은 고마웠어.”
그녀는 별안간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내가 방금 무슨 고마운 짓을 했던가? 내가 한 짓이라고는 큰 소리로 욕을 하며 허공에 칼질을 붕쯔붕쯔한 것밖에 없다.
“내가 소리 지르자마자 반응해서 뒤로 빼내 줬잖아. 만일 진짜 적이 있었다면 그대로 내 목숨을 살려준 셈이 되는 거니까.”
메리아는 내가 곧바로 반응하여 내 뒤쪽으로 빼내 준 것에 대해서 감사를 느끼는 것 같았다. 전투 중에 부상당한 동료를 지키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반쯤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행동이라 감사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아아, 그건가. 뭘 그런 걸 가지고. 비명 지른 거 보고 습격이라도 당했나 싶어서 일단 뒤로 빼낸 거야. 부상자는 후방으로 보내야지.”
“아무튼 고마워.”
그렇게 잡담을 하면서 내려가니, 마침내 끝이 보였다. 지하 1층에 이제서야 도착한 것인가. 규모가 상당하다더니, 과연 그 말대로였다. 엄청난 깊이. 아마 수십 미터는 내려왔을 것이다.
“여기가 지하 1층으로 보입니다.”
“그런 것 같군요.”
지하 1층은 굉장히 넓었다. 대충 랜턴을 들고 빛을 비추며 이리저리 살펴보니까 아주 거대한 공동 같았다. 여기서 좌판을 깔고 시장을 열어도 대성황일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 깊은 지하에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규모였다.
“다른 모험가들의 흔적인가?”
나는 살짝 압도되었음을 느끼며 바닥을 수색했다. 이런저런 사용된 소모품들이 늘어져 있는 것이 전부 다른 모험가들의 흔적 같았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탐사 중에 다른 파티와 조우할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아무튼 소모품중에 재사용이 가능해 보이는 거라던가 돈이 될 만한 것들은 안 보였다. 아쉽게도 전부 쓰레기다.
“으음… 갈림길이 굉장히 많은걸?”
“그러게.”
이곳 지하 1층은 아무래도 원형구조로 보였고, 대충 돌아다니면서 수를 세니까 14개의 지하로 내려가는 다른 입구들이 있었다. 말하자면 이곳은 대기 장소인 셈이었다. 본격적인 던전으로 진입하기 전에 쉬어가는 관문.
“입구가 뭔 14개나 있구만.”
“어디로 내려가야 하는가? 바바리안 쉑. 야만의 감을 내게 들려주게.”
“이 새끼 또 헛소리한다.”
“음, 내 생각으로는 14개나 되니까 어디로 내려가든 딱히 상관은 없을 것 같아.”
우리가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데나 찔러서 들어가 봐도 괜찮을 듯싶다. 함정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디에 뭐가 있는지 완전히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일단 들어가 보는 방법 말고는 없는 것 같다.
“엘리제 수녀님. 어디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글쎄요.”
그래도 나는 우리들 중 가장 경험이 풍부할 것이 분명한 엘리제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도 딱히 묘안은 없는듯했다.
“저희 교단 행운의 숫자가 4니까 왼쪽을 기준으로 4번 입구는 어떻겠습니까? 저는 그쪽이 마음이 끌립니다만.”
행운의 숫자가 4라는 사실은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우리 문화권에서 4는 죽음을 의미하는 숫자로 쓰인다. 이세계까지 와서 그런 한국적 미신이 통할 리는 없지만. 콥슨은 별로 상관없는 듯 보였고, 메리아는 입구의 숫자를 세었다.
“괜찮겠지. 그쪽으로 가세.”
“하나, 둘, 셋, 넷. 여긴가?”
엘리제의 말대로 4번 입구를 골라서 다시 더 깊은 지하를 향해 나아갔다. 이번에는 그렇게 많이 내려가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 2층에 도착했다. 이곳은 거대한 방이 아니라 양옆으로 뻗어진 통로 같아 보였다.
“여기서 다시 갈림길.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슬슬 왔던 길을 기록해놔야지 싶다. 길이 양옆으로 뻗어진 걸 보아하니, 갑자기 모퉁이라도 생기면 이곳은 말 그대로 미로 같은 것으로 변화하고 만다. 실제로 그럴 것이다. 괜히 던전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겠지. 던전이라는 것은 미로인 것이 상식이었다.
“누구 지도 좀 그리는 사람 없어? 길 같은 걸 간단히 그려놔야 될 것 같은데.”
“제가 그리겠습니다. 그 부분은 맡겨 주십시오.”
“아, 감사합니다.”
엘리제의 지도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지만, 본인만 알아볼 수 있다면야.
일행 중에 왼손잡이가 없었으므로, 오른쪽으로 가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그렇게 오즌쪽으로 쭈욱 가니까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갈림길이 생겼다. 이번에는 세 방향이었다. 직진과 좌우.
“와아, 갈림길이 또 나오네?
“완전히 미로로군.”
“이거 좆된거 아니냐?”
나는 좆됐음을 직감했다. 이 던전은 완전한 미로였던 것이다.
일단 선택지는 세 개다. 그중 특이한 점으로는 직진의 경우 다시 또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벌써 지하 3층이라니, 이 던전의 끝은 어디인가.
“이번 계층에 뭔가 몬스터들이 있었다면 저희가 못 봤을 리가 없겠지요. 아무래도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엘리제의 말이 맞았다. 1층에 몬스터들로 보이는 흔적은 딱히 찾을 수 없었고, 2층 역시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먼저 온 모험가들이 던전의 초입 부분에 있는 몬스터들을 싹 정리해 놨을 수도 있다.
“내려가죠. 야. 콥슨. 랜턴의 상태는?”
“얼마나 썼다고 그러나. 이 정도 기름이면 몇 시간은 더 쓸 수 있을 것이네.”
그대로 3층을 향해 움직였다. 이번에 우리를 반긴 것은 돌로 된 문이었다. 파티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고, 고개를 끄덕였다. 문은 우리 네 명의 힘을 합쳐서 민 끝에야 겨우 열렸다. 이 문을 혼자서 연다는 것은 어지간한 초인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것이다.
“흠… 방인가? 방이 많이 있구만.”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길의 양옆으로 나 있는 수많은 방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사실 고대 고시원 같은 건가? 어쩌면 병사들이 대기하던 숙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방은 저마다 독실 정도로 생각될 만큼 작았는데, 썩어빠진 가구들의 흔적과 상자 같은 것들이 늘어져 있었다.
“오오, 이것은 내가 평소에 지내는 여관방보다 좋은 것 같군.”
“대체 어떤 돼지우리에 살고 있는 거냐, 너는.”
“요즘 이런 저런 일이 많아서 숙박비를 아끼고 있는 중이라네.”
사는 걸로 궁상떠는 것은 나나 콥슨이나 똑같았다. 일행들은 저마다의 감상을 한마디씩 내뱉었다. 메리아는 고개를 빼꼼 들이밀면서 방안을 살펴보았고, 엘리제는 벽을 짚고 천장을 살펴보며 말했다.
“흐음, 여긴 뭐하는 곳일까?”
“사람 사는 곳 같은 냄새는 물씬 풍기는데… 감옥 같지는 않다만.”
“생긴 것은 저희 교회의 생활관과 비슷하군요. 고대인이라고 특별히 다른 것은 없나 봅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생활하던 곳이겠지요. 전부 독실인 걸 보니… 흠, 어떤 지위의 사람들이었을까요.”
방은 길을 따라 양옆으로 수십 개는 되는 듯했다. 그래도 사람이 살던 곳이니 뭔가 굴러다니는 것은 있지 않을까? 고대인의 책이라던가, 생활용품이라던가.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쏠쏠한 벌이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방을 하나씩 수색해 보자고.”
“알겠네. 바바리안 쉑.”
“알겠습니다.”
우리는 왼쪽 첫 번째 방부터 수색을 시작했다. 사실 두 개 조를 운용해서 양쪽을 동시에 수색하는 것도 좋겠지만, 아쉽게도 랜턴은 하나뿐이었다. 엘레지의 신성 라이트 마법으로 빛을 비춘다는 선택지도 있기는 하나, 그것은 비상용으로 남겨둬야 했다.
“딱히 뭐가 없네.”
“흠… 유용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군요.”
역시나 별다른 것은 없었다. 돈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안 보였고, 거의 썩어버린 목재들 말고는 보이는 것도 없었다. 기대와는 다르게 별다른 소득은 없다. 어쩌면 이곳도 다른 모험가들이 진작에 털고 떠난 곳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루한 수색이 이어졌을 때였다.
“어니 씨발, 이게 뭐야!”
내 입에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대로 놀라서 집까지 날아갈 뻔했다!
“뭔가 발견한 것인가?”
콥슨이 물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정면에 있는 것을 가리켰다.
그것은 낡은 보물 상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