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01
99화. 소문 (4)
그럼 안윤승도 설득했겠다,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지.
‘말 나온 김에 바로 시작해볼까.’
나는 휴대폰을 들어 올려 연락처 상단의 인물에게 통화를 걸었다.
선우연에게 물어볼 것이 있기 때문이다.
***
오늘은 11월 10일.
입동(立冬)을 맞은 지 이틀째 되는 날이다.
남들은 벌써 겨울 찬바람이 느껴진다고 호들갑을 떨어대지만 나는 이 날씨를 즐겨볼 새도 없었지.
지금 바람이 문제가 아니라 피의 축제가 다가올 판이니까.
“여보세요? 선우연 씨,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의문의 보스 실종이 벌어진 지도 어언 3개월.
이제는 언제 사건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이기에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이무기 추적법을 당장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보다 논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선우연 씨, 혹시 협회 직원들은 게이트 낙찰 기록에 접근할 수 있어요?”
-물론이죠. 게이트 거래는 항상 공개로 이루어져서 검색하면 기려 씨도 볼 수 있어요.
“그런가요? 그런데 제가 지금 밖이라서, 죄송하지만 대신 검색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지금이요?
“예. 지금이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찰사원은 이무기를 숨길 장소를 이전부터 신중히 골랐을 것이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성장하는 보스처럼 희귀한 개체를 아무 곳에나 넣어두진 않았을 것 같거든.
하지만 원하는 게이트가 있다 해도, 위치에 따라선 자기들 마음대로 점거하기가 어려우니…….
결국 그들은 특정 게이트를 안정적으로 소유하기 위해 이 방법을 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협회를 통한 정식 소유권 이전.’
그렇다면 그들의 물색한 게이트의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항목으로 아래의 4가지를 꼽는다.
◆ 8월 이전 거래
우선 이무기가 사라진 것이 8월경의 테러였으니 이보다 먼저 장소를 준비해야 했을 테고.
◆ 개인 낙찰 건
기업의 거래는 모두 제외한다. 테러에 쓸 게이트를 구하는 데에 사업체 명의를 써서 얻을 이득이 없다.
◆ 물 속성 친화적 환경
물론 육성할 몬스터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이 조건을 빼놓을 수 없으며.
◆ 보스를 숨기기에 충분한 크기
이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흠.”
아무튼, 나는 나름대로 나찰사원의 생각을 추론하여 그들이 사들였을 게이트를 골라냈다.
-검색 결과가 13건이네요.
그러자 모든 조건에 맞는 게이트가 총 13종이 나왔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직도 입구가 열려있는 곳을 다시 제외하면….
-결과가 많이 좁혀졌어요. 5종입니다.
그래. 5종.
개인에게 팔렸으면서, 협회에 이미 던전이 클리어됐다고 보고된 그 5종의 게이트 사이에 나찰사원의 ‘닫힌 게이트’가 섞여 있을 수 있다.
어디까지나 확률이 그렇다는 것이다.
“….”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번 더 경우의 수를 줄였다.
내가 만약 수예휘였다면.
던전 쇼크는 천벌이며.
인류는 몬스터에게 죽어 속죄해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무기의 요람을 고르는 데 마지막으로 이 조건을 고려했을지도 모르니까.
◆인구 밀집 지역
이 국가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는 서울.
[검색 결과 1건]그리고, 이무기를 키우기 적합한 게이트 중에서 발생 위치가 서울인 장소는 단 한 곳뿐이었다.
[음습한 동굴] [등급 : E] [설명 : 맹독을 사용하는 포이즌 프로그가 보스로 등장합니다.]물론 내 추측은 전제부터 틀렸을 가능성도 높기에, 이곳에 이무기가 있다고 확답은 못하겠지만…….
“일단 전화는 끊겠습니다.”
헷갈리면 직접 확인하면 그만.
나는 선우연과의 통화를 마치고 곧장 걸음을 옮겼다.
***
나찰사원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자기들이 가장 게이트를 잘 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발상은 위험하지.
어느 외계인도 이미 규칙파악을 끝냈으니까.
‘던전은 내부에 지구인이 남아있으면 그들을 밖으로 배출하려 노력해.’
게이트의 창조자들은 헌터들이 그 별세계 안에서 무의미하게 고립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보스를 죽이면 항상 출구가 나타났던 것이다.
어서 지구로 돌아가라고, 밝은 빛으로 발광하는 친절까지 보이며 헌터의 귀환을 유도했으니.
“흠.”
그런데 여기에서 등장하는 ‘보스를 죽이면 생성되는 출구’는 일반적인 통로와 특성이 달랐다.
파괴 면역.
그야말로 안에 있는 생존자가 다 돌아갈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열려있게 설계됐기에.
‘거참 친절도 해라.’
아마 사이비들의 닫힌 게이트 안에는 던전의 우두머리가 아직 살아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이 특수성을 대입해 보면, 보스가 죽는 순간 사이비의 숨겨진 공간에 절대 제거할 수 없는 구멍이 뚫리고, 지구와 연결된 통로가 발생해버리면 아무리 그들이라도 경찰의 추적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우연이 찍어준 좌표대로면 이 근처인데…….”
그럼 추론은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검증을 해보자.
“아! 여기다.”
나는 서울의 한 골목에 서 있다.
이곳은 [음습한 동굴]이라는 이름의 게이트가 등장했던 자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푸르게 빛나는 게이트 대신 휑한 아스팔트만 보일 뿐.
그 던전은 보고된 바로는 지난 9월에 이미 공략이 됐다고 한다.
‘흐음.’
물론 소유자의 보고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
그래서 나는 음습한 동굴에 나찰사원의 조작이 가해졌는지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정확히는, 아까 떠올렸던 게이트의 특성을 이용해서 말이다.
‘여기 보스가…. 포이즌 프로그라는 E급 마물이랬나?’
재차 말하지만 던전의 출구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열쇠는 보스 몬스터.
모든 보스는 언제든지 출구를 만들 수 있도록 지구의 특정 좌표와 연결되어 있다.
입구가 파괴되어 공간이 단절된 상황에서도 그 특정 좌표만은 절대 놓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표현하면, 살아있는 보스는 그 좌표에 항상 흔적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고.’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을 미루어보아, 대부분의 던전은 출구가 게이트 출현 위치에 바짝 붙어 생기는 경향이 있었으니…….
역발상이다.
나는 [음습한 동굴]의 출구가 생겨야 할 위치를 지레짐작해, 이 좌표와 연결된 포이즌 프로그의 마력흔을 거꾸로 탐지할 생각이었다.
‘…….’
뭐, 아무튼 이론은 그렇다는 건데…….
‘이 개념을 지구인인 선우연에게 설명하면 과연 알아들을지?’
나는 눈을 굴리다 곧 생각을 관뒀다.
어차피 걔한테 이런 과정을 다 알려야 할 필요도 없고.
솔직히 말하면 이 추적법은 성공 확률이 극악에 가깝다.
어찌 보면 호수에 섞인 잉크 한 방울을 찾아내라는 거나 다름없어서.
‘흔적이 너무 미약하잖아…….’
지구의 기술로는 상상도 못할 옅은 마력을 탐지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일단 이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한다.
-툭.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물론 그딴 건전한 사유로는 아니고.
마나를 느끼는 건 영혼의 재능이다.
하지만 나는 예나 지금이나, 이 세상의 마나들에게 가장 편애받는 영혼이라.
‘내가 이딴 것도 못할 리가 없지.’
타고난 축복은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그로부터 24시간 뒤.
나는 헌터 협회의 상담실에 앉아 있다.
그것도 피에 젖은 휴지를 코에 대고 있는 볼품없는 몰골로.
“김기려 헌터.”
“네.”
“그…. 혹시 다치셨어요?”
“아뇨.”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는지 설명하려면 지금으로부터 하루 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계획을 성공하기 위해 자그마치 24시간을 꼬박 지새웠으니까.
“그냥 과로해서 코피 난 거예요.”
우선 결론부터 말하겠다.
나는 [음습한 동굴]을 추적한 끝에 그곳의 보스인 포이즌 프로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됐다.
그 게이트가 바로 나찰사원이 점거한 비밀 요람이었던 것이다.
“과, 과로요?”
하지만 지구인들에게 이런 고등한 추적법을 말해버리면 내 능력이 너무 드러나니.
지금은 여태까지 모은 증거로 ‘음습한 동굴이 위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근거 자료를 만들어 경찰과 협회에 보고하는 중이었는데…….
“그나저나 좀 충격이네요. 협회에서는 결국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소리 아닙니까?”
“그, 안 한다기보다는 못하는 것에 가깝달까…….”
“허, 경찰이랑 협회를 다 돌았는데 고작 그 장소에 CCTV 하나 설치하는 게 다라니.”
뭐, 결과는 보다시피.
아무래도 여기의 높으신 분들은 이무기한테 진짜 물려봐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다.
새로운 정보를 아무리 가져와 봐야 변하는 게 없었으니 말이다.
‘에라이.’
아니, 그 사이비들이 테러리스트인 것도 뻔히 알고, 게다가 보스들이 증발한 것도 사실인데 왜 이무기가 나타날 거란 내 말만 안 믿는 거야?
이 정도로 정보를 떠먹여 주면 아예 나찰사원을 웃대가리부터 다 잡아들여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 녀석들은 자꾸 아직 사건이 일어난 게 없으니 자기들이 조치할 게 없다느니 뭐라느니.
“기려 씨?”
됐다.
역시 열등한 포유류들을 믿는 게 아니었어.
나는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휴대폰으로는 항공사 홈페이지를 켰다.
당장 제주도행 항공권을 끊을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어디 보자, 가장 빠른 비행기가…….’
나는 순간적으로 올겨울을 섬에서 보내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먼 곳에서 펑, 하고 큰소리가 울리더라고.
“음?”
마치 공장이 폭발하는 듯한 거대한 소음.
나와 선우연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밖에서 난 소리죠?”
“그러게요.”
그리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복도로 나가보니 다른 이들도 놀란 얼굴로 두리번대고 있던 터라.
“뭐야?”
“사고 났나?”
“던전 브레이크 아니에요?”
“어어! 저기 연기 난다!”
이윽고 어떤 남자가 창가를 가리켰다.
그 말에 행인들은 일제히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가 가리킨 방향을 보자마자 피가 식는 기분이 들었다.
그야 저곳은….
내가 꼬박 하루를 보냈던 바로 그 장소니까.
“이런.”
“설마…….”
아마 선우연도 이 순간만큼은 나와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 우리는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위치는 찾아냈지만 정작 아직 가장 중요한 정보를 몰랐지.
“설마 지금?”
테러가 일어날 정확한 시간!
그걸 자각하니 머릿속에서는 싫어도 한 가지 가정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젠장!’
나는 곧바로 복도의 창을 확인했다.
“헉!”
그러자 저 멀리, 고층 빌딩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져 있는 게 보였다.
아주 거대한 검고 긴 생물이, 70층 높이의 건물을 칭칭 휘감으며 하늘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으악!’
당혹스럽다.
A급 보스인 이무기는 원래 12m 정도 길이의 날쌘 몬스터였을 텐데, 저건 뭐 미터가 아니라 거의 킬로미터잖아!
“야야, 분석기 켜봐!”
“무슨 몬스터가 저렇게 크지?”
나는 순간 저것이 그 이무기가 아닌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판단은 PIXY의 분석 기구도 비슷했는지. 이윽고 지구의 기계가 그 생물을 이렇게 표현했다.
[ ? ? ? ] [등급 : ?] [설명 : 등록된 설명이 없습니다.]복도의 사람들은 그 미지의 존재에 겁을 먹기 시작했다.
알지 못함이란, 으레 지성체들에게 공포를 주는 법.
하지만 여기에서 분석기의 숨겨진 기능이 작동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함에서 공포를 얻는다면, 반대로 말해 그 존재를 분류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일부 해소된다는 뜻이니.
분석기의 정보 업로드를 담당하는 국제 헌터 연맹은 비슷한 모습의 신규 몬스터가 동시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두었다.
바로, 신규 몬스터에게 임시명을 붙이는 것.
그리고 이 시스템은 빠른 분류를 위해 무작위의 단어를 조합하니…….
[미□□□□□□]드르르르륵.
이윽고 한 칸씩 확정되기 시작하는 몬스터의 이름란.
[미필연한□□□]그 공백들은 이내 특정한 단어가 되어 괴물을 명명했다.
[미필연한 악성]그래.
이것이 바로 검은 재앙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꺄아아악!”
“뭐야, 저거!”
한국의 첫 S급 던전 브레이크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