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02
100화. 미필연한 악성
결국 발발한 나찰사원의 테러.
그런데 그 규모가 상상 이상이다. 아무리 성장이 가능한 보스라 해도 설마 저게 S급 수준까지 도달할 줄이야.
-쉬르르르르르…….
나는 고층 빌딩을 휘감은 괴물을 보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
.
탁탁탁탁.
나는 성장한 이무기의 등장을 확인하고 곧바로 협회를 나섰다.
한시라도 빨리 안전지대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도시를 떠야 해!’
하지만 밖으로 나와보니 협회의 정문 쪽이 이미 개판 오 분 전이더라고.
“질서를 지켜주세요!”
“아니, 왜 사람을 못 들어가게 하는 거야!”
“저 S급 몬스터 뭐예요?”
“협회장 나오라 그래!”
S급 몬스터의 출현 소식을 듣고 인근 주민이 혼란에 빠진 모양이다.
선우연은 정문에 모여든 사람들을 쳐다보며 일순 멈칫했다.
“아, 아무래도 저 몬스터를 보고 사람들이 당황해서 일단 협회로 왔나 봐요.”
“왜 하필 여기로?”
“헌터들이 많이 드나드는 장소니까요. 하지만 분명 협회는 공식 피난처가 아니니 저러지 말라고 몇 번이나 공지했는데……!”
아무리 규칙을 세워놓는다고 해도 S급 던전 브레이크 앞에 무슨 장사가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주민들은 협회의 담을 넘으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저들을 뚫고 어찌저찌 밖으로 나간다 해도 썩 답은 없을 듯싶었다.
-빠앙! 빠아아아앙!
-빵빵!
-부우우우웅……!
어차피 저런 도로 상황에서는 빈 택시를 잡는 것도 어려울 테지.
‘이런.’
나는 시끄러운 경적이 울리는 건너편 도로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럴 바에는 이쪽도 괜한 짓 말고 협회에 붙어있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 선우연 정도면 꽤 상급 헌터잖아! 어쩌면 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생존율이 늘지도 몰라.’
그러나 이 계획은 삽시간에 박살이 나고야 말았다.
“어?”
그로부터 5초 뒤.
저 멀리 있던 이무기가 하늘의 바람을 타고 이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으니까.
“…비행을, 할 줄 아네?”
정문에 가로막혀있던 시민도 그 광경을 보고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생물이 몸을 꿈틀이며 스르륵 다가오는 모습이란, 일종의 악몽과도 같았으니.
-쿠르르릉…….
이윽고 우리 머리 위로 작은 비구름이 진다.
그리고 그 구름에 의해 햇볕이 가려졌을 무렵에는, 이무기가 입을 쩍 벌리며 첫 마디를 꺼냈다.
-샤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
“아아아악!”
“미, 밀지 마세……!”
“도망쳐요!”
우르르.
담장에 모여있던 시민들이 이무기를 피하고자 일제히 달렸다.
하지만 이무기의 이동속도는 그들의 달음박질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저렇게 거대한 몸을 가졌는데도 이 협회의 건물로 고작 9초 만에 도달했으니.
“윽!”
콰과과과과!
협회에 도착한 괴물은 이곳의 너른 공터에 배를 깔아 누웠다.
그러자 후폭풍으로 길은 마구 부서지고, 흩날리는 먼지로 앞은 보이지 않고.
“콜록, 콜록!”
“엄마! 엄마아아아아!”
“꺄아아아악.”
결국 아수라장이 된 앞마당.
하지만 선우연은 이런 상황에서도 공황에 빠지지 않고 신속히 제 할 일을 다 했다.
이무기가 착륙하며 생겼던 파편들이 시민에게 튀지 않게 급히 방벽을 세웠다는 것이다.
“다들 진정하세요!”
선우연은 바람 마법으로 파편들을 치워내며 시민을 침착히 대피시켰다.
그러나 이 행동은 정작 선우연 본인에게는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저 새카만 짐승은, 자신의 먹이인 각성자들의 마나를 쫓아 이곳에 온 것이었기에.
“슈르르르르…….”
웅크려 있던 [미필연한 악성]은 어느 헌터의 마나에 반응해 갑작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선우연에게 달려든다.
“샤아아아악!”
하지만 괜찮다.
그 검은 생머리의 각성자에게 달려든 것은 비단 이무기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이봐요!”
“헉!”
팍!
나는 땅을 박차고 나가 그녀의 팔을 재빨리 당겼다.
그 덕에 이무기의 이빨은 선우연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갔다.
“괜찮아요?”
“가, 감사합니다!”
F급 주제에 용케도 S급의 공격을 피한 상황.
여기에서 슬슬 내가 투자한 3억의 효과가 드러난다.
[헤르메스의 신발] [등급 : 유니크] [설명 : 바람 속성의 마력이 깃들어 있는 신발. 착용하면 이동속도가 대폭 상승한다.]역시 회피용으로는 이만한 마도구가 없지.
“남들을 돕는 건 좋지만 자기 주변도 잘 살펴요.”
“아, 네……!”
선우연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그녀가 호흡을 고르는 사이에는, 어느덧 다른 각성자들도 합류한 상태였다.
“뭐가 이렇게 커!”
“결계 스킬 가진 사람 있어요?”
“일단 기절이라도 시켜봅시다!”
협회에 있던 헌터들은 난데없는 보스의 등장에 부랴부랴 대처를 시작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S급으로 탈바꿈한 이무기에게는 더는 평범한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
심지어, 그것은 엘리트 헌터라고 불리는 A급들의 공격마저 대부분 튕겨냈으니.
“흠, 흠집도 안 난다고……?”
캉!
A급 헌터의 창이 뱀의 비늘에 맥없이 부러질 때쯤.
나는 저들도 승산이 없다고 판단 내리고 곧바로 여기에서 도망치려 했는데, 이윽고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스르르륵.
“이건 또 뭐지?”
A급 헌터의 머리 위에 떠오른 저 보랏빛의 문양을 보라.
“저주 같은 건가?”
“누가 상태 이상 해제로 좀 지워봐!”
“제가 해볼게요.”
다른 헌터들은 그 문양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나만은 이 상황을 완벽히 이해했다.
저 [미필연한 악성]은 원래 A급 게이트인 저수지 던전의 보스니까.
“아니, 그건 해제하는 게 아니야!”
이무기의 주 패턴.
그건 바로 특정 공략원에게 표식을 찍는 것이다.
속된 말로 ‘징’이라고도 부르는 이 보라색 표식은 그 어떤 스킬로도 지워지지 않았지.
그야 딱히 해로운 효과가 없었거든.
그렇다면 이무기는 별다른 해도 되지 않는 표식 마법을 왜 사용할까?
그것의 기능은 다른데에 있었다.
“공격 집중 표시라고!”
저건 바로 이무기가 1순위 먹잇감을 선정하는 마크니까!
“예?”
내 외침에 그 A급 헌터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아아아아악!”
“으윽! 다들 물러나!”
“어떻게 이런……!”
곧이어 거대한 몬스터가 발버둥치는 A급을 통째로 꿀꺽 삼켜버렸다.
‘설마 A급 헌터가 저렇게 찍소리도 못하고 당할 줄이야……!’
그야말로 압도적인 차이.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까 말했듯이, 저 보라색 표식은 이무기가 먹잇감을 선정하는 특유의 방식이었기에.
“….”
첫 번째 포식을 끝낸 이무기는 입맛을 다시며 다음 표식을 찍었다.
그리고 두 번째 대상이란.
“에이, 설마.”
흘끗.
나는 시선을 높게 치들어 스스로의 머리 위를 확인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눈이 아플 정도로 선명한 형광 보라색 문양.
‘….’
X됐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X됐다.
‘끼아아아악!’
하필이면 저 흉포한 뱀의 다음 제물로 나 같은 연약한 F급이 걸리다니…….
“슈르르르르르.”
미필연한 악성이라 불리는 그 검은 재앙은 자세를 낮춰 이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는데.
이윽고 내리 앉는 것은 숨 막히는 정적.
A급이 일격에 죽은 만큼 다른 각성자들도 좀처럼 나서지 못했다.
“김기려 헌터!”
그런데 이 와중에 단 한 사람.
선우연만은 내 앞을 가로막으며 이무기를 저지하려 시도했다.
나는 그 광경에 짧게 감동을 받았다.
“선우연 씨…….”
하지만 뭐.
아무리 감동스럽다고 해도 이쯤 되면 슬슬 현실에 맞게 행동해야겠지.
이쪽은 감성보다 이성을 중시하는 엄연한 학자.
그래. 나는 마도학자니까.
“비켜요.”
“예?”
나는 내 앞에 선 협회 직원을 옆으로 밀며 한마디 했다.
“덤으로 죽기 싫으면 이무기의 동선에서 나가라고.”
“캬아아악!”
그와 동시에 빠른 속도로 튀어나오는 이무기.
나는 그것의 아가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호주머니의 아이템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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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ywiki
아이템명 : 쌍둥이 수호천사
획득장소 : 백의 미로 (EX)
분류 : 장비
설명 : 브레이슬릿 형태의 아이템으로, 2회에 한하여 모든 대미지를 방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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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수호천사의 발동.
그리고 이 아이템의 효과는 이전에도 보았듯이, 그 방어력이 너무나 우수해 어떠한 부가효과를 만들어낸다.
쩡!
바로 보스의 무기 파괴!
이무기는 내게 독니를 꽂아 넣으려 했다가 괜한 봉변을 당하게 됐다.
아이템의 단단한 보호막에 이빨이 닿아, 되려 자신이 대미지를 입었으니 말이다.
“카아아악!”
나는 이무기의 왼쪽 독니가 부러진 걸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전력으로 질주했다.
***
“헉, 헉!”
어차피 이무기에게 삼켜지면 일회성 보호막으로는 턱도 없을걸.
그래서 나는 그냥 아이템을 선공용으로 썼다. 이 틈을 타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 것이다.
그런데 거리는 벌려서 뭐하냐고?
당연히 목적지는 있다. 그것도 꽤 가까운 곳에.
‘집으로 가자!’
김기려의 원룸에는 무한동력 코어를 중심으로 삼은 결계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가.
‘결계에 들어가면 S급 상대라도 잠깐 농성은 할 수 있어. 그리고 그사이에 에스더의 지원을 기다리면……!’
나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 숨을 고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에서 한 가지 간과한 점은, 바로 이무기의 가공할만한 추적 능력.
“으헉!”
나는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섬찟한 마력에 헛숨을 삼켰다.
이빨이 부러지면 보통 아픈 게 아닐 텐데, 설마 이렇게 빨리 정신을 차리고 따라오다니.
‘F급 살려!’
슈르르르르…….
[미필연한 악성]은 소름 끼치는 호흡을 내뱉으며 내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빌어먹을 파충류!”
그나마 다행인 건. 나는 이런 상황을 예측해 미리 뜀박질을 돕는 아이템을 사뒀다는 것이나…….
“큭!”
아이템빨에도 한계는 있는 법.
폐가 다 망가진 골초 쓰레기 육신으로는 아무래도 오래 달릴 수가 없었다.
결국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체력부족이 먼저 와버렸다는 거다.
“으으윽!”
하여간 김기려 이놈은 담배를 왜 피워서.
아니, 그전에 나는 이딴 몸에 왜 들어와서.
나는 온갖 욕을 중얼거리며 숨을 씨근덕거렸는데, 그때 이무기가 이 상황에 기름을 끼얹었다.
설마하니 뱀 새끼가 먹이의 도주를 막으려 이런 지능적인 수까지 쓸 줄은 몰랐지.
-쿵!
그것이 자신의 꼬리로 바닥을 내리찍으니, 잘 깔렸던 아스팔트가 기형적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이렇게 길이 반으로 갈라지면 당연히 사람은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
퍽!
에스더에게 전화를 하려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만지고 있던 나는 그만 땅바닥에 철퍼덕 엎어져 버렸다.
‘제기랄!’
이런 상황에서 넘어져?
S급 몬스터를 등 뒤에 두고 발을 멈췄다는 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아는가?
나는 순식간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나왔는데, 고작 넘어진 것 하나로 이렇게 공포감을 느껴본 건 태어나서 두 번째였다.
이건 비기너 킬러 건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진정한 두려움이라는 것이다.
‘망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애써 몸을 일으켰을 때에는 이미 이무기가 상당히 접근한 뒤라서.
“캬아아아아!”
하늘을 까맣게 채운 괴물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내 인생도 여기까지인가…….’
하지만 그때.
괴물의 포효 사이로 돌연 이질적인 소음이 섞인다.
부우우우웅.
옅은 진동과 함께 울리는 이 소리는……. 다름 아닌 모터음?
‘웬 모터?’
소리의 근원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직후. 옆 골목에서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툭 튀어나왔으니.
그 의문의 운전자는 오토바이를 매섭게 몰며 직진하더니 큰길에 있던 나를 덥석 잡아챘다.
“윽!”
부우우우웅!
어쨌든 이 운전자 덕분에 간발의 차로 이무기의 공격을 피했는데.
‘어?’
나는 운전자의 각성치를 확인하고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야 이 커다란 체내 마력은 어느 S급 헌터의 것이니까.
“이 난리가 났는데 밖은 왜 돌아다니고 있었어?”
이어서 앞좌석에서 강창호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