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25
123화. 세이렌 (3)
게이트 공략 후.
생성된 출구로 빠져나온 김기려.
“휴~”
아니나 다를까.
세이렌이 무력화되자 인어고개는 난이도가 단숨에 급락했다.
드문드문 출현하는 머맨은 행동이 굼떠서, 세이렌에 비하면 그다지 위협적인 개체가 아니었거든.
‘아이고, 삭신이야…….’
상태 이상 내성을 가진 헌터가 세이렌을 멈추면 팀원들이 남은 머맨을 사냥하여 게이트 클로즈.
그들은 이러한 역할 분담을 통해 높은 업무 효율을 얻었다.
그 증거로, 김기려의 팀은 [인어고개]를 벌써 5건이나 처리한 상황이니 말이다.
‘나도 아이템 박스나 하나 장만할까?’
물론 이 과정에서 고난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이쯤이야 감내할 수 있었다.
머맨이 튀어나올 때마다 괜히 죽은 세이렌을 살펴보며 바쁜 척하기.
오늘은 아끼는 정장을 입고 와서 피를 묻히기 싫다고 하기 등등.
전투에서 빠지는 방법이야 아직 넘쳐났기에.
‘어쨌든 이걸로 A급 게이트 5건 클로즈 달성이다.’
기려는 목표를 마쳤음을 자축하며 쭉 기지개 켰다.
“헌터님!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그때.
갑자기 근처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나더라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커다란 카메라를 든 촬영부 사람과 젊은 리포터가 서 있었다.
방송국이 취재를 나온 것이다.
“실례지만 잠깐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순간은 이 사람들이 왜 여기까지 찾아왔나 싶었지만…….
‘아.’
생각해보면 아무도 클리어하지 못하고 있던 게이트가 갑자기 줄줄이 닫혔으니 당연히 이목이 끌릴만하지.
“잠깐이라면 괜찮아요.”
“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은 예상대로.
리포터는 성가신 세이렌을 어떻게 대처한 거냐고 물었는데, 이에 기려가 말했다.
준비한 답을 꺼낸 것이다.
“-그거야 제가 S급 헌터니까 그렇죠.”
“네?”
“각성치가 높아서 상대적으로 세이렌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요. 다른 S급들도 비슷할걸요?”
SSS급 철면피……!
어떻게 사람이 이토록 뻔뻔할까.
기려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대답 중간마다 진실도 교묘히 섞여 있다는 점이 특히 악질적이었다.
“게다가 저랑 에스더 헌터는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완전히 면역인데……. 이 부분은 말을 줄이겠습니다.”
에스더에게도 면역성이 있다고?
취재원은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 했다. 하지만 김기려가 이를 거절했지.
남의 정보를 줄줄 불었다간 그 저주술사의 미움을 살 수도 있으니까.
“그냥 에스더 씨도 가능한 일이라고만 알아주세요.”
기려는 이리 말하고 몇 가지 문장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게 크게 중요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네요? 어차피 남은 인어고개도 전부 제가 깰 거거든요.”
“네?”
대격변으로 나타난 15건의 세이렌 던전을 도맡겠다니!
눈이 휘둥그레진 취재원들.
하지만 기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만은 확실히 해둬야 했으니.
“에스더 헌터님은 길드를 운영 중이라 안 그래도 다른 업무가 많으실 겁니다.”
“……!”
“그러니 이번 사태는 제가 처리하고, 그분은 좀 쉬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데.”
이것은 일종의 견제였다.
일단 A급 게이트 5건 처리로 강등점은 면했지만.
그는 용의 폐를 파는 사람이 등장할 때까지 순위 방어를 반복해야 했으니까.
‘이럴 때 바짝 벌어놔야 해!’
그는 실적을 독식하기 위해 방송에 대고 에스더는 끼어들지 말라며 대놓고 선언했다.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상대의 과로를 걱정하는 척했기에…….
“1월이잖아요. 마탑 대표님도 연휴는 쉬어야죠.”
뭐, 이런 것이 큰 문제가 되진 않을 터.
“그렇군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이 순간.
YTV 방송국에서 나온 리포터는 상대와의 대화 후 저 헌터가 보기와는 달리 정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뒤이어 보인 풍경 탓에 그만 이 첫인상을 깡그리 잊고야 말았다.
“아, 다들 이제야 나오네.”
그야, 옆에 있던 출구에서 새로운 헌터들이 나타났으니까.
강창호와 안윤승.
게이트 입장 허가 기록을 확인할 때만 해도 과연 이 말도 안 되는 조합이 실재할까 의심했었거늘.
“막내야. 어서 저기 찍어!”
“네, 네!”
그들은 눈앞의 광경을 바쁘게 카메라에 담았다.
이로써, 인어고개를 공략한 팀원들까지 일제히 기사화된 것이다.
***
터덜터덜.
풀썩.
너른 대표실.
방 중앙에 놓인 고급 소파에 한 여자가 힘없이 널브러졌다.
자줏빛으로 물들인 곱슬머리.
이것이 누구의 특징이겠는가. 여기에 엎어져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마탑의 에스더였다.
“으으으…….”
에스더는 소파에 엎드려 중얼대기 시작했다.
한국마탑 길드 대표로서의 일.
각성 범죄자의 처벌 일.
S급 헌터로서의 일.
제 몸은 하나인데 맡은 소임은 왜 이리 많은지.
“나 사회생활이 적성에 안 맞나 봐.”
그녀는 몸을 축 늘어트리고 하소연했다.
“힝, 다 때려치울래.”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냉담할 뿐이었다.
그녀의 비서는 이런 일을 하루 이틀 겪은 게 아닌지. 이젠 아예 대꾸도 하지 않았거든.
“망할 1월!”
대격변. 하여간 항상 그것이 문제다.
이곳은 1월이 될 때마다 신종 몬스터가 대거로 출몰하니, 학자도 헌터도 다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니까.
“비서님, 가서 커피 좀 진하게 타와 줄래요……?”
“예, 예.”
에스더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심부름을 시키고 소파에 바로 앉았다.
훌쩍.
이런 시기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 대격변에서 가장 문제시되던 인어고개의 공략 요청이 잠잠하다는 것인데…….
“그러고 보니 연락이 안 오네.”
사실 헌터 협회는 최근 몸을 사리는 중이었다.
지난번 13월의 미궁 사건 당시.
한국은 무려 S급 각성자 3명이 한 번에 증발했지 않는가.
협회는 그 사건을 이후로 규정이라도 바뀐 것인지. 요즘 들어서는 S급 헌터를 소집하는 일에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세이렌으로 한바탕 세상이 시끄러워졌는데도, 끝내 S급을 부른다는 보루만은 아껴둔 것이다.
“대표님, 여기 커피요.”
“땡큐.”
그런데 이런 와중에, 협회는 정말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인물‘들’에게였지만.
“참, 그나저나 대표님 아까 뉴스 보셨어요?”
“응?”
“방송에서 업계 동료분이 대표님 언급하던데.”
“그래?”
후룩.
에스더는 커피를 마시며 TV를 켰다.
그리고 비서의 증언에 따라 녹화된 YTV 채널을 확인했는데.
웬걸, 그곳에 서 있던 건 제법 익숙한 생김새의 헌터인지라.
“기려 씨네?”
쌍꺼풀 없는 눈에 심한 삼백안이 특징인 남성.
에스더는 화면에 나온 인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알기에는 이게 저 사람 첫 공식 인터뷰인 것 같은데, 맞나?”
그런데, 설마하니 그가 이런 발언을 할 줄은 몰랐지.
-에스더 헌터님은 길드를 운영 중이라…(중략)…이번 사태는 제가 처리하고, 그분은 좀 쉬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데…….
세이렌은 자신이 맡을 테니 넌……. 연휴나 즐기라고?
이러한 권유에 설레지 않을 직업인이 과연 세상에 어디 있으랴.
“어맛……!”
콩닥.
에스더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잠시 감동에 빠졌다.
하지만 직후.
아래에 흐르는 자막을 보자마자 상기된 뺨이 훅 가라앉아서 말이다.
[(속보) 김기려 S급. 강창호, 안윤승과 함께 인어고개 공략에 나서…….]“뭐, 뭐야. 강창호?”
숨겨진 팀 구성이 밝혀지자 그녀는 경악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다가 한쪽은 네오 시스터즈 길드원?!”
맞아. 그러고 보니 안윤승과 김기려는 이전부터 아는 사이였지!
에스더는 예전의 일 덕분에 그나마 가진 정보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대중들로선 이 구도가 그야말로 혼돈이라.
【 Hunternet > 자유 게시판 】
[1** : 팀 구성이 저게 뭐야] [s* : 강 헌터가? 던전 공략을?] [z*** : 안윤승이 왜 저기에서 나옴???]그리고 이로부터 나흘 뒤.
돌아온 목요일.
“인어고개 올 클로즈 축하드립니다~! 오우, 고생하셨어요. 헌터님!”
“하하, 감사합니다.”
안윤승은 모든 인어고개를 공략한 기념으로 드디어 한 인터뷰에 응했는데.
“기려 형이랑 어떤 사이냐고요?”
그때.
안윤승은 어느 영상 크리에이터의 질문에 이렇게 답해버렸다.
“음, 제게 있어선 선생님 같은 분이죠!”
“선생님이요?”
“사실 예전부터 저분께 헌터로서의 소양 같은 걸 많이 배웠거든요. 뭐, 형님이 부족한 절 이끌어주신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랄까. 그 외에도 감사한 점을 꼽자면 정말 끝이 없…….”
그 무명의 헌터가 무려 A급의 스승 격이었다니!
“유, 윤승아!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우연히 옆에 있던 기려는 일이 귀찮아질 것을 빠르게 예측하고 바로 안윤승을 입단속시켰으나.
사실상 한발 늦은 대처였다.
이미 중요한 내용은 퍼질 대로 퍼진 상태였으니 말이다.
“김기려가 안윤승의 롤모델?”
오죽하면, 인터넷을 끊고 종이 신문만 읽고 살게 된 정하성마저 이 소식을 알게 된 상황.
“…방어 계열 각성자 맞았나 보네.”
결국.
랭킹 점수를 벌기 위해 시작했던 김기려의 행동은 거센 파장을 남기게 됐다.
***
사람 앞날은 모를 일이다.
[●LIVE 뉴스 : 실시간 채팅] [솔직히 저번 일만으로도 개호감이었는데 세이렌까지 싹 다 치워버리니까 이렇게 든든할 수가] [ㄹㅇㅋㅋ] [근데 강창호는 뜬금없이 왜 등판한 거임?] [궁금하당] [안윤승 헌터님도 그건 모르던데요]이젠 어딜 가도 4번째 S급을 비난하는 글을 찾아보기 힘드니까.
‘칭찬 일색이군.’
김기려는 죽은 D급의 수습과 세이렌 토벌 공적이 겹쳐 평가가 급등했다.
[‘김기려 보유국’] [김기려 씨 당신은 두 유 노 클럽에 들어올 자격이 충분합니다.] [(선한일보) 한국의 새로운 다크호스] [선생님이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볼 때면아이들은 모두 아빠, 이순신, 세종대왕 등을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난 나지막이 말했다
『김기려』
선생님 : 얘야 그건 누구니? 위인이니?]
이렇게 말이다.
‘인터넷은 신조어가 많아서 가끔 알아듣기 힘들어.’
그리고 기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뀐 여론을 피부로 느끼게 됐는데.
아무래도 그는 진짜 S급들과 달리 마력의 압박이 없어서, 일반인들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편이라.
“김기려 헌터님 맞죠? 와, 대박!”
요즘은 길을 가다 행인이 아는 체를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잘생겼어요!”
이런 생소한 말을 듣게 되기도 했고.
‘갑자기?’
하여간 지구인들은 참 특이하지.
이곳 사람들은 능력이 뛰어난 이의 외모를 상향 평가하는 습성이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알파우리인은 공감하기 힘든 문화였다.
외모와 능력이란, 그에게 있어선 전혀 직결되지 않는 요소였으니까.
‘내가 외계인이라 이해를 못 하는 건가?’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니. 일단 사소한 부분은 넘어가자.
김기려는 눈앞의 지구인들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그러자 학생들은 각성자를 봐서 신기했다며 까르륵 웃고 길을 떠났다.
이것이 그가 체감하는 분위기의 변화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좋은 이미지로 승승장구해나갈 무렵.
어느 날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김기려에 대한 장문의 글이 게시됐다.
-저는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장으로 시작된 그 글은.
정말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고, 또한 증언의 신빙성을 더하는 몇 장의 사진이 첨부된 상태였다.
[제목 : 김기려 헌터에게 당했던 학교폭력을 고발합니다.]S급의 과거가 폭로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