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24
122화. 세이렌 (2)
이윽고 진입한 인어고개.
내부는 내게 있어서 제법 익숙한 광경이다.
지평선까지 차 있는 새파란 물.
피부로 느껴지는 습기 찬 공기.
이 정도면 알파우리인을 한 명 데려와서 살게 하여도 될 것 같은데…….
‘이게 바닥인가?’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곳의 물은 마치 투명한 땅처럼 사람이 발을 디딜 수 있는 구조였다.
빠질 수 없는 물이라니.
이거 괜히 반가워했구만.
‘쯧.’
하지만 뭐.
지금은 물에 들어가니 마니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어? 형님, 잠시만요. 뭔가 이상한 소리가…….”
몇 초 후.
우리는 북쪽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이곳은 정체불명의 인어가 사는 보금자리.
즉, 세이렌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공간이었다.
‘흠.’
일반적인 노래는 마음에 안식을 주지만.
이 던전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인류의 뇌를 혼동시키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저, 저기요. 기려 형! 제가 지금 이상한 소리 하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요. 그래도 역시…. 뭔가 저 안갯속에 도와줘야 할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요.”
하지만 괜찮다.
보통 이런 계열의 마법은 거리에 따라 강도가 달라지니. 안개로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크게 악화하지도 않을 터.
“강창호 씨는 좀 어때요?”
“옆 사람보단 낫네.”
“그래도 노래의 영향이 있긴 하죠?”
“맞아.”
나는 함께 온 헌터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말했다.
“그럼 들어오기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진행할게요. 저는 이런 종류의 공격은 잘 버티는 편이니까.”
솔직히 이곳은 ‘세이렌’이라는 골칫덩이만 아니면 그냥 A급 게이트에 불과했다.
안윤승 한 명으로는 좀 고전하더라도.
S급 헌터가 있는 상황에서 게이트 클리어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테지.
내가 세이렌만 잘 처리하면 모든 게 일사천리라는 거다.
“혼자 괜찮겠어?”
저 용의 눈 소유자는 자기가 침을 발라놓은 인간 스킬석이 잘못될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다만.
“강 헌터님하고 같이 가는 것보다는 안전할 겁니다.”
“뭐?”
“세이렌이 주는 [혼란] 상태 이상에 걸리면 동료를 공격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이런 설명이 나오니 강창호도 곧 납득했다.
그럼 합의도 마쳤겠다, 슬슬 제 한몫을 해내야 할 시간이군.
‘젠장, 무슨 안개가 이렇게 짙어.’
휘적휘적.
팀원들이 입구에서 대기하는 사이. 나는 소리가 뻗어 나오는 안개 너머로 걸어갔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잠깐은 겁도 났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지.
곧 소리의 주인공이 발견됐으니까.
-아~ 아아아~♩
아름다운 화음을 자아내는 그들은 인류의 예상대로 어류에 관련된 생물 종이었다.
-라라라~…….
하지만 미모의 여인을 닮았다던 신화 속 존재와는 달리 상당히 개성적인 모습이군.
이들은 반인 반어라기보다는, 뭔가…….
물고기인 부분이 90%거든.
“??”
“…?”
“…!”
나는 살찐 망둑어처럼 생긴 몬스터들을 쭉 훑어봤는데, 그들은 자신들 앞에 등장한 인류를 보고 꽤나 놀랐는지 노래를 뚝 멈췄다.
뻐끔뻐끔.
당황해서 괜히 공기만 들이마신 것이다.
그리고 뭐, 이후의 행동은 보다시피…….
-라, 라라라~♬
세이렌들은 진땀을 흘리며 더욱 열창하기 시작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여전히 멀쩡하다.
아무리 세이렌이 강력한 세뇌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수준은 원시적인 지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니 말이다.
‘나한테는 그냥 소음공해네.’
그리고 이쯤에서 밝혀두자면.
정신 계열 공격을 주로 하는 자연 생물은 대개 근접전에 약하다.
아니, 약하다고 표현할 정도가 아니라 그냥 거의 관련된 능력이 없다.
물리적인 대처에 능했으면 굳이 이런 잔기술을 쓰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었기에.
‘화원남작도 딱 그런 사례였지.’
전형적인 겁쟁이 진화자.
세이렌들은 이렇게 사람이 지근거리에 접근했는데도 도통 마주 싸울 생각을 않았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였다.
-아아아아아~♬
그렇다면 맞을 걱정도 없겠다, 이제는 이들의 노래를 멈추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데 이걸 무슨 수로 멈춘담?
“어, 저기. 얘들아. 그만해줄래?”
라라~ 라~
“노래 멈추라고.”
라라~
“얼씨구, 이것들 말로 해선 안 되겠… 끄악!”
뽀각.
나는 그들을 말리려다 손목이 나가고야 말았다.
이래 봬도 상대는 A급의 괴물인데 나는 고작 F급밖에 안 되는 약골이라.
이딴 육신으로는 주먹을 휘둘러도 그들에게 흠집 하나 낼 수 없는 상황.
“끄응…….”
나는 부어오른 손등을 잡고 생각했다.
노래. 저 빌어먹을 노래를 대체 어떻게 멈춰야 할까?
잠깐은 [깜짝상자!]를 쓸까도 했지만 그건 보기보다 사용에 제한이 많다.
하루에 쓸 수 있는 횟수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한두 번이 끝이니.
“역시 그 방법뿐인가?”
나는 눈을 감고 고민하다 이윽고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고풍스러운 나무 손잡이가 달린 긴 단검.
[비명말뚝] [등급 : 유니크] [설명 : 피격 상대에게 [고통] 상태 이상 부여.] [※주의사항 : 물리 대미지를 입힐 수 없는 특수 장비입니다.]미필연한 악성을 처치하고 얻은 그 장비를 손에 쥔 것이다.
대상의 통각을 극대화하는 마도구라.
원래는 전투가 아니라 고문할 때나 써야 하는 장비다만…….
뭐,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야.”
반짝.
나는 손에 든 단검을 높이 치들었다.
“난 분명히 말로 하자고 했다.”
***
-가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
-으악! 그아악!
김기려 헌터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대기 중이던 A급 각성자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괴이한 소리에 눈썹을 움찔했다.
이건 잘 들어보면 무언가의 비명 같았다.
그래. 아까부터 저 안개 속에서 걸걸한 비명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기려 형?”
그리고 몇 분 뒤.
김기려는 옅어져 가는 안개를 헤치고 이쪽으로 돌아왔는데.
그가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허공에는 불쾌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져서 말이다.
“아직 숨이 붙어있어서 그런지 안개까지는 완전히 안 사라지네.”
“네?”
“아, 다들 장비 들고 따라오세요.”
안윤승과 강창호는 남자의 부름에 따라 안개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이윽고 마주한 것은, 실로 처참한 상태의 괴물들.
“커억, 카아아악……!”
“케엑.”
세이렌으로 추정되는 그 괴물들은 하나같이 쇳소리 같은 기침을 내뱉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기려가 한 짓의 정체가 드러났다.
“형님, 대체 뭘 하신 거예요?”
“고문.”
“네?”
“소리치는 중에는 얘들도 노래를 못 부를 거 아니냐.”
기려는 그렇게 말하고 손에 쥔 비수를 고쳐 쥐었다.
세이렌이 조금이라도 음계를 낼 것 같을 때 바로 비명말뚝을 꽂아 넣기 위함이었다.
“끼야아아아아악!”
퓩!
고문용 단검이 몸에 닿자마자 자지러지는 괴물들.
이쯤 되면 목이 쉬어서라도 더는 노래를 못 부를 터.
김기려는 그렇게 세이렌들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나서야 뒤를 돌아봤다.
“자, 이제 노래도 멈추게 했으니 다들 공략 진행하실 수 있겠죠?”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안윤승 괴물을 고문한다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태를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기 때문에.
“어…. 기, 기려 형.”
파닥파닥.
윤승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괴물들을 쳐다보며 이내 질문했다.
세이렌을 왜 고문했느냐.
왜 그냥 죽이지 않은 것이냐.
어찌 보면 당연할 의문들.
“…….”
그런데.
여기에 대고 나는 세이렌에게 흠집도 못 내는 F급이라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지르게 했어요.
…라고 이실직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건.”
눈을 굴리던 기려는 이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왜 그랬을 것 같은데?”
해석을 떠넘기기!
전형적인 회피성 발언이었다.
“형님이 왜 그러셨을 것 같냐고요?”
하지만, 안윤승은 이런 기려의 한마디를 듣고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터라.
“으음.”
세이렌과 비명…….
안윤승은 턱에 손을 짚고 한참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기려는 이런 윤승을 잠깐 보다가 곧 시선을 돌렸다.
세이렌을 내려다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이렌은 어디가 약점이려나?”
직후에 이어진 것은, 괴물에 관한 짧은 고찰이었지.
사실 큰 뜻은 없었다.
그저 기려도 여느 헌터들처럼 어떻게 해야 더 편하게 일할지 궁리하고 있는 것뿐.
“역시 목이 약하려나?”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어느 헌터나 할법한 평범한 말들이다.
하지만, 이 광경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기려는 아까부터 그 차가운 낯에 일말의 미동도 없었으니까.
‘헉!’
몸부림치는 생물의 앞에서 어떻게 저리도 태연할 수가?
이에 안윤승은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어쩌면, 김기려는 신종 몬스터를 발견할 때마다 이런 짓을 해온 게 아니겠느냐는 추측을.
‘…!’
돌이켜보면 김기려는 골렘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줄줄 꿰고 있었지.
골렘은 심장 결합부가 약하다느니. 레이저를 몇 초 쐬어주면 멈춘다느니.
이것들은 하나같이 일반적인 사냥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약점들이었다.
‘아!’
그러니 아마, 김기려는 이전부터 몬스터의 정보를 알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을 터.
이런 전제를 깔고 들어가면 비로소 지금의 상황도 이해가 된다.
S급이라면 분명 이런 잡몹쯤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을 텐데, 김기려는 굳이 비명말뚝을 써서 상대를 자극했으니…….
‘이게 정보를 얻은 과정이었던 건가?’
실험.
그래. 김기려는 지금 몬스터를 상대로 실험을 하는 것이다.
단순히 사냥만 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상대의 반응을 관찰하려고.
‘적을 조금이라도 더 분석하기 위해서.’
남들은 살아남기에 벅찬 대격변 때. 이 사람은 적들을 피험자 신세로 만들어왔단 것인가.
윤승은 깊게 감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비결은 감히 따라 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케엑, 켁켁.”
S급 게이트가 열려있지 않은 현시점에서는 사실상 이런 A급 몬스터들이 가장 위험한 존재거늘.
그런데 김기려는 이런 몬스터들을 한낱 모르모트처럼 다루다니.
‘역시 형님이셔.’
탐구심.
절대적인 실력.
그리고 약간의… 냉정함.
안윤승은 몬스터를 연구할 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찬찬히 따져보며 결론지었다.
김기려는 비범한 사냥꾼임을 다시 한번 느낀 것이다.
“어? 너 방금 또 노래 부르려고 했지?”
“그아아아악!”
푝!
물론 세이렌을 저렇게 무자비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면 조금 무서워지기도 한다마는…….
“으음.”
이 정도는 모른 체하자.
원래 두려운 사람일수록 아군이 되면 든든한 법이니까.
‘하, 하여간 형님이 우리 편이라 다행이다.’
안윤승은 조용히 생각을 갈무리했다.
그렇다면 같은 시각.
이 추측 속의 주인공은 무얼 하고 있을까.
‘뭐야.’
한편.
강창호의 도움으로 세이렌을 처리하고 있던 김기려는 이쪽을 자꾸만 돌아봤다.
안윤승이 갑자기 침묵했으니 말이다.
‘이 녀석 왜 대답을 안 해? 네가 뭐라도 말해야 내가 뭘 변명하든 말든 할 거 아냐!’
김기려는 아까 했던 질문인 ‘내가 왜 그랬을 것 같으냐’에 대한 답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윤승이 묵묵부답이더라고.
상대는 자신의 가벼운 짐작을 굳이 늘어놓으려 하지 않았기에.
‘대체 지금 무슨 상상을 하는 거지? 부, 불안하니까 그냥 생각한 걸 알려주면 좋겠는데…….’
그렇게, 기려는 수만 가지의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실체 없는 공포와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