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23
121화. 세이렌
비상이다. 비상!
지금 바다 따위를 보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게 생겼다고!
‘끄아아아아……!’
어느 이른 아침.
나는 머리를 싸매며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질렀다.
그리고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은 바로 서울로 가는 기차 안.
즉, 나는 감포에 온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데.
‘왜 이런 중요한 내용을 잘 보이는 데 써두지 않는 거냐고!’
내가 서울행을 마음먹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용의 폐를 살 때 주의해야 할 요건을 지금 막 새로이 깨우친 참이거든.
‘빌어먹을 랭킹제!’
알고 보니, 한국은 유니크급 이상의 ‘수입 아이템’을 구매하려면 일정 기준 이상의 헌터 순위를 달성해야 한댄다.
정확히 말하면, 유니크 장비 수입 신청에 필요한 기준이 딱 전체 순위 50위까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확인해본 나의 현 순위는.
[김기려[S] – 10위 (New)]10위.
누군가는 이미 필요 요건도 채웠는데 무얼 걱정하냐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금 보이는 순위는 큰 의미가 없었다.
헌터의 순위 산정은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을 모두 고려하니까.
‘게이트 공략 점수가 부족해!’
제아무리 고등급 각성자라 해도 별 사유 없이 무작정 일을 쉬어버리면 막대한 강등점을 받는다.
그리고 랭킹 점수가 집계되는 3개월 내내 단 1건의 던전도 공략하지 않을 경우. 분명 10위라는 등수에도 큰 영향이 오겠지.
일단 몇 위까지 밀릴지는 예상이 안 간다만…….
[강창호[S] – 814위]이 양반 꼴을 보면 적어도 하락 폭의 제한이 없음은 확인된 상황.
“휴.”
그러니 정리하자면.
나는 훗날 용의 폐를 살 때 문제가 생기지 않게 순위를 방어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강등점이 발생하지 않는 최솟값. 즉, A급 게이트 5건 클리어를 달성해야 하는데…….
‘제길!’
솔직히 말하면 억울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협회장을 협박할 때 순위에 관한 이야기도 꺼내둘 것을.
왜 나는 이런 중요한 조항을 이제야 발견해서.
왜 그깟 순위를 유지하겠답시고 스스로 마굴에 들어가야 한단 말인가.
‘으으으……!’
하지만 투덜대봤자 변할 건 없었다.
이쪽은 이미 협회장의 얼굴을 다신 안 볼 생각으로 30억을 뜯어냈고.
그런 짓을 한 와중에 갑자기 뭘 더 요구했다간, 욕심을 부린 대가로 뭔가 화를 입을 수도 있으니까.
“망할.”
협회를 통한 조율은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따라서 남은 방법은 규정대로 적절한 헌터 활동을 하는 것뿐.
툭.
나는 우울한 얼굴로 기차의 창에 머리를 기댔다.
이 순간에도 창밖의 풍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
.
.
나 같은 약해빠진 각성자가 A급 게이트를 깨려면 어찌해야 할까?
그야 가진 강점을 잘 활용해야지.
골렘에 대한 지식이든.
특유의 상태 이상 저항성이든.
아무튼 사용할 수 있는 건 죄다 끌어써야 한다고.
“어디 보자.”
그리고 나는 이러한 수법들을 쓸만한 게이트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곳을 하나 찾았는데.
이곳은 요즘 언론에서도 연일 언급되는 유명한 화젯거리였다.
[인어고개]뭐, 제목만 보면 꽤 동화틱하군.
실제로는 이 안에 애들이 경기를 일으킬만한 괴물들이 산다는 게 문제지만.
“흠.”
인어고개란 이번 달 들어서 새로 발생한 게이트의 명칭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지구의 새로운 특징이 드러나지.
‘대격변.’
이곳의 1월은.
그간 보지 못했던 신규 게이트가 대거 출몰하는 특별한 달이었으니까.
이 행성의 주민은 마치 게임의 대형 업데이트와도 같은 이 현상을 일컬어 ‘대격변’이라고 불렀고.
한국은 현재 그 ‘대격변’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선한일보) 전국적 세이렌 주의보….]우선 설명하자면, 인어고개는 수속성의 마물이 2종 등장하는 게이트다.
한반도에서만 발생했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게이트를 여태 아무도 공략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는 그 안에 사는 ‘세이렌’이라는 생물이 원인이었다.
“하여간 하루가 멀다 하고 난리구만.”
세이렌.
우선 게이트에 들어갔던 헌터들 말로는 대충 이런 괴물이라던데.
“안개 너머에서 갑자기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글쎄, 제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 던전 안에서 손짓을!”
“엄청 기분 좋은 노랫소리였어요. 저도 모르게 넋 놓고 듣다 보니 무기를 쥔 손에서 힘이 빠졌고요.”
일단 그 안개 너머에 정신공격형 마수가 있는 건 확실했다.
이처럼 게이트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이 하나같이 무언가에 홀렸다고 증언했으니.
‘괴물이 노래를 불렀다고?’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노랫소리.
이것이 [인어고개]가 공략되지 못한 이유였다.
‘세이렌이 행동불능 상태로 만들면 뒤이어 나타난 머맨이 협공이라. 분업이 잘되어있군.’
보통 몬스터의 정신 공격이라 함은, 그동안 ‘거저먹기 패턴’이라고 불릴 정도로 효과가 미미했거늘.
지구의 술사들은 난생처음 겪는 강한 상태 이상에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귀를 틀어막아도 효과가 적용됐다.
[비싼 장비도 소용없다…세이렌에 골머리 앓는 헌터들]그야말로 속수무책의 상황.
하지만 길었던 혼란도 끝이다.
‘훗.’
그야, 이 몸은 그 세이렌의 노래를 파훼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구만. 이 대마법사님이 한 번 도와줄 테니 다들 감사히 여기라고.’
그래서 뭐…….
종합하자면 나는 순위를 유지할 겸. 겸사겸사 인어고개를 공략하러 온 것이다.
물론, 남는 몬스터인 머맨을 잡아줄 동료도 이미 불렀고.
***
몇 분 뒤.
“윤승아!”
나는 게이트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을 향해 크게 손짓했다.
그러자 머리를 민 남자가 이쪽을 돌아보며 말했지.
“엇! 벌써 오셨습니까?”
잠깐.
그런데 방금 윤승의 입가에서 흰 연기 같은 게 새어 나오지 않았나?
“음?”
게다가 주변에서 뭔가 인공적인 향도 나는 것이, 이건 마치…….
“윤승아, 네 손에 있는 그거 뭐야?”
“네?”
“설마 담배냐?”
내가 질문하자 윤승은 멋쩍게 웃으며 제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자신이 급하게 숨겼던 물건이 무엇인지 보여준 것이다.
“하하하. 아, 어. 그… 네. 전자담배인데요. 형님이 늦게 오실 줄 알고 혼자 기다리다 잠깐…….”
내 주먹이 나간 건 그것과 동시였다.
팍!
“……!”
“…….”
짧은 순간.
나는 그것이 담배라는 걸 인지하자마자 물건을 쳐냈고.
척수반사와도 같은 이 행동은 어찌나 빨랐는지. 심지어 그 A급조차 제대로 반응을 못 한지라.
‘보… 보이지 않았어……!’
주륵.
안윤승이 긴장감으로 땀을 흘릴 때쯤.
네모난 전자담배는 처량한 소리를 내며 찬 바닥에 처박힌다.
“헉!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황급히 사과했다.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댔으니, 당연히 떨어진 것도 책임지고 주워왔고…….
하지만 이때.
나는 윤승에게 소지품을 돌려주며 초점이 나간 눈으로 말했다.
“그런데 내 앞에서 이딴 거 한 번만 더 피웠다간 그땐 정말 죽여버린다.”
마음에 우러나오는 진심이었다.
내가 F급의 몸에 갇혀있는 이유도. 어찌 보면 다 저 쓰레기 같은 발명품 덕분이었으니.
“ㄴ…네, 넵.”
윤승은 처음 겪는 사나운 대우에 덜덜 떨며 알았다고 했는데.
나는 그런 윤승을 붙잡고 금연하라고 한참 설교한 뒤에서야 던전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어휴.’
하여간 오늘은 첫 단추부터 좋지 않다.
도와달라는 소리에 바로 달려와 준 든든한 우군을 이렇게 취급하고 싶진 않았거늘.
“크흠.”
잠시 후.
나는 숨을 고르고 윤승에게 말했다.
갑자기 불렀는데도 이렇게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이다.
“너 아니었으면 걱정돼서 던전 들어가지도 못했어. 고마워.”
“아뇨! 저야말로 불러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형님은 모르실 거예요. 비록 임시긴 하지만 이 일이 얼마나 제게 뜻깊은 건지……!”
그리고 이번 일은 지금까지와 달리 공식적으로 S급이 된 내가 팀장을 맡기로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의미 있는 감투는 아니다.
나는 팀장이긴 해도 정작 팀 구성을 뜻대로 할 수 없었거든.
“그런데 혹시 형님이랑 둘만 가는 건가요?”
“아니, 한 명 더 와.”
그렇다면 세이렌 공략전에 들어갈 마지막 팀원은 누굴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이윽고 맞은편 길목에서 익숙한 각성자가 걸어나왔다.
눈에 띄게 큰 체격. 이국적인 이목구비. 그리고 용을 찢어 갈라 얻었다는… 저 녹빛의 눈.
“안녕하세요.”
그래. 오늘은 이 S급과 함께 일할 것이다.
“강창호 헌터님.”
벌써 집에 가고 싶네.
***
강창호는 요즘 기분이 안 좋다.
당연했다. 그야 타인이 자기를 속여먹으면 누구든 기분이 나빠질 테니.
[(속보) 한국, 4번째 S급 등장!]솔직히 강창호는 인터넷에 나도는 소문들을 볼 때까지만 해도 아직 반신반의였다.
게다가 이후에 연결된 통화에서는, 본인도 S급이 아니라며 극구 부정하길래 그러려니 넘어갔고.
그런데 설마 믿었던 계약자가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이야.
“…….”
강창호는 TV에서 흘러나오는 협회의 발표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 순간 드는 생각은 한 가지뿐이었다.
“뭐 하는 놈이지.”
정말 김기려는 뭐 하는 놈일까.
상황은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서.
재차 말하지만, 강창호는 요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저 청년이 왜 거짓말을 늘어놓은 건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S급이면 남의 보호가 필요하지 않을 텐데, 어째서 그런 계약을 받아들인 건지도 당최 알 수가 없었거든.
‘무슨 의도지?’
이쯤 되면 상대의 머리통을 열어서라도 그 속내를 확인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강창호는 이내 차분하게 생각했다.
어쨌든 자신은 이미 목표하는 바를 이루었으니.
‘이상하군. 아무리 S급이라도……. 기사의 맹약을 어길 수는 없는데. 절대로. 그건 내 눈으로 확인까지 했잖아.’
강창호는 결국 일단 상대를 두고 보기로 했다. 당장은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마침 잘된 일이지.
자신은 돈도 많고, 힘도 세고, 심지어는 시간도 넘쳐나게 많아서.
이런 던전 쇼크 시대에서도 딱히 인생에 고난 일이랄 게 없었으니.
‘당분간은 지켜볼까.’
그는 자신의 굴곡 없는 생활에 다소의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어느 찰나부터는 오래간만에 만난 특이한 헌터로 시간을 때워보고 싶다는 감상이 들었다.
따분함. 심심풀이.
제법 가벼운 사유로 자신이 당한 기망들을 용서했다는 소리다.
한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런 입장은 상대도 크게 다르지 않겠더라고.
김기려.
눈앞에 서 있는 남자는 저래 봬도 기존의 인류를 훌쩍 뛰어넘는 강자였으니…….
‘이게 한국의 4번째.’
혹시, 그도 S급 특유의 넘쳐나는 여유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항상 저렇게 종잡을 수 없는 일들을 벌이는 걸까?
강창호는 짧은 추측과 함께 눈을 감았다.
***
어째서 한 헌터팀에 S급이 둘이나 모였을까.
진실은 간단했다.
김기려가 안윤승과의 블루 게이트 입장을 보고할 당시.
강창호는 문득 든 호기심으로 본인의 동행을 강경히 밀어붙였기에.
‘망할! 계약서에 적힌 내용대로 안 와도 된다고 몇 번이나 허가했는데 이걸 아득바득 따라오다니…….’
덕분에 현재 최악의 삼자대면 중인 세 사람.
“가, 강창호 씨.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기려는 눈치를 보다가 슬쩍 운을 뗐는데, 어째 돌아온 인사가 꽤 살벌했다.
“너보다는.”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또 말없이 사고에 휘말렸던 계약자를 못마땅하게 보는 강창호.
이어진 건 신랄한 비꼬기다.
“아무튼 오늘은 끼워줘서 고마워. 물론 댁은 ‘S급’이라 딱히 도움을 원치 않겠지만. 그래도 계약은 계약이라.”
“….”
“아, 그런데 이거 자칫하면 내가 방해만 되려나? 안 그래도 우리 기려 헌터는 ‘S급’ 몬스터를 혼자 잡고 다니는 대단한 양반이신데.”
이쯤 되면 거의 웃으며 욕하는 정도다.
“이거 내가 그쪽 수준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벌써 걱정되네.”
강창호는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상대가 S급의 강자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며 재차 비난했다.
“헉!”
하지만 이때.
안윤승은 강창호의 발언에 외려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더라고.
“형님은 같은 S급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인정받으셨구나……!”
어느 외계인은 그 A급을 흐린 얼굴로 바라볼 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젠 사소한 정정조차 귀찮았으니 말이다.
“슬슬 출발할까요?”
기려는 이 고통스러운 팀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 곧 자리를 이동했다.
정확히는, 인어고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