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35
133화. 파티 (3)
일단, S등급의 던전 브레이크는 몹시 드문 사고다.
애당초 지구에 S급 몬스터가 발생한 사례가 역사상 한 번밖에 없었으니까.
‘지금까지는 하와이주에 나타났던 [누켈라비]의 던전이 유일했지.’
비록 불완전한 형태라고 하나, 미필연한 악성 또한 공식적으로 S급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소식이 퍼진 상황.
“아까 제 기사를 보셨다고 했나요?”
“네. 우리나라도 자이언트 스네이크에 대한 보도를 했었거든요.”
이무기를 죽인 무명의 헌터를 여기에서 만나볼 줄이야.
브루클린 모건은 눈앞의 남성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확실히 그 헌터는 다른 S급에 비해 이질적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정말 마력이 놀랍도록 느껴지지 않는군요?”
“….”
“이건 F급. 아니, 잘만하면 일반인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는데.”
방금 말했듯이 요즘의 세상은 글로벌 사회.
설령 외국이라 할지라도 정보가 퍼지는 건 금방이니 기려는 이곳에서도 사기를 치기로 마음먹는다.
“일부러 그렇게 줄여둔 겁니다.”
참 뻔뻔한 모양새다.
“오!”
여자 쪽은 그 말을 듣자마자 큰 감탄사를 터트렸다.
“대단해요. 약자에 대한 배려군요. 사실 저도 요즘 그런 방식을 시도하고 있는데, 지금 차고 있는 팔찌도 마력을 소모하는 종류의 아이템이랍니다.”
“그러시군요.”
“하-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솜씨는 난생처음 봐요. 대체 어떻게 한 거죠? 당신은 안정적인 바닥 상태를 유지하고 있잖아요.”
브루클린 모건은 각성치를 억제하는 방법에 흥미가 많은지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그렇게까지 하면 아프지 않나요? 아니면 몸이 무겁다거나.”
각성치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없는 사람으로선 꽤 곤란한 질문인데.
[Test, Test…….]“흐음?”
“어.”
그때.
천장 쪽에서 툭툭거리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이내 호텔 내부에 방송이 울려 퍼졌다.
[참가객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올리며, 행사를 시작하고자 하니 헌터분들은 중앙홀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기려는 이 방송을 빌미 삼아 대화를 회피했다.
“그럼 이만.”
“오……. 다음에 또 봐요.”
또 시비에 걸리면 곤란하니. 이제부턴 동행자의 뒤에 잘 숨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
몇 분 뒤.
“…해서, 창립 5주년을 맞이한 저희 길드는 앞으로도 세계의 안보를 지켜나가는 데 힘쓰도록 하겠습니다.”
게이트 스타의 길드 마스터는 행사하기에 앞서 연설문을 낭독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예상외로 길어지지 않았다.
“하하. 각국의 헌터분들이 모였는데, 우리 게이트 스타의 자랑만 하면 지루해지겠죠?”
그 길드 마스터는 서글서글한 미소와 함께 적당히 서론을 마쳤으니까.
“모든 영웅들을 위하여. 건배!”
이 건배사를 시작으로 초대받은 헌터들은 삼삼오오 모여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다.
S급들이 모인 자리니만큼 일반인은 버티기 어려워서, 연회에 흔히 쓰이는 악단은 볼 수 없었지만.
‘아깝네. 지구의 연주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에스더가 브라질의 헌터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그녀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음식을 주워 먹었다.
바삭.
특히나 크래커 위에 이것저것이 올려져 있는 이 요리가 마음에 들었다.
‘마, 맛있다……!’
하지만 먹는 재미도 하루 이틀이지.
이대로 가면 금세 배가 부를 것이고, 그럼 파티가 진행되는 몇 시간 동안 할 게 없어지는데.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들어나 볼까?’
나는 문득 든 호기심에 에스더가 있는 쪽으로 상체를 슬쩍 기울였다.
그런데, 이 행동 때문에 테이블에 있는 브라질의 헌터가 그만 나를 인지해버렸다.
“옆에 계신 분은……?”
“아! 내 파트너예요. 저쪽도 같은 S급 헌터고요.”
“와우.”
흑색에 가까운 피부와 레게머리.
지구도 내 고향처럼 다들 외모가 가지각색이군. 물론 우리 쪽은 피부가 아니라 피 색이 달랐다고 봐야겠지만.
“안녕하세요.”
나는 그 남자 헌터에게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이번에도 지나치게 열띤 관심이 돌아와 버렸다.
“반가워요! 당신이 그 S급 던전 브레이크를 처리한 헌터군요?”
도대체 [미필연한 악성] 사건은 기사가 얼마나 크게 났길래 다들 날 볼 때마다 이 소리냐.
“그렇긴 한데, 저 혼자 한 일이 아니에요.”
“동료가 있었나요?”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 거의 다 죽여놓은 걸 내가 마지막으로 손본 거거든요.”
나는 숟가락을 얹은 것뿐이라며 솔직히 밝혔지만, 상대는 시원스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하하. 에스더 양은 오히려 당신이 다 한 일이라고 설명하던데요?”
제기랄.
이 괴물들 사이에서 눈에 띄면 귀찮은 일이 생길 게 뻔한데, 이제 보니 에스더가 내게 이무기를 처치한 공을 떠넘기고 있었군.
‘야, 쓸데없이 겸손하지 마!’
이거 대화가 길어지면 독만 될 것 같은데.
“그럼 하시던 말씀들 마저 나누세요. 저는 잠깐 음료수 좀…….”
나는 귓바퀴에 걸친 이어폰을 바로 하며 뒤로 물러났다.
쨍그랑!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사달이냐.
‘어?’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어렴풋한 감각.
피부에 있는 압점에서 갑자기 눌리는 힘이 감지된다. 하지만 이건 손가락 따위로 눌려서 생긴 감각이 아니다.
다친 거다. 대신 역치 이상의 통증이 무시되고 있을 뿐.
‘뭐야?’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
나는 어디선가 날아온 포도주 잔을 정통으로 맞았다.
게다가 투사체가 던져진 힘이 어찌나 강하던지, 내게 부딪힌 잔은 날카로운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져…….
“꺄악! 세상에!”
“기려 씨!”
와인과 유리 조각으로 셔츠가 엉망이 됐다.
다행히 강화된 반지를 잊지 않고 챙겨 상처는 가벼운 타박상으로 그쳤지만.
‘S급의 마력.’
나는 고개를 들어 잔이 날아온 쪽을 살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놀란 표정의 한 서양인.
“빌어먹을!”
이미 만났던 인물이다. 엔조라 불리는 남자는 욕지거리를 하며 자리에 굳어 있었다.
“엔조 헌터! 대체 무슨?”
“기다려봐. 이건 다 여기 있는 캐나다인 때문이라고. 이 자식이 방금 뭐랬는지 알아? 어떻게 이런 자리에서 우리 길드를 욕보일 수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날 노렸던 건 아닌 것 같군.
경고의 의미로 아무 곳에나 물건을 던졌는데 그걸 내가 불행하게 맞은 모양이다.
“헉, 셔츠에 물이 다 들었네! 괜찮아요?”
에스더는 앞으로 달려 나와 내 상태를 황급히 살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선방이다. 방어 아이템이 없었더라면 이쪽은 지금쯤 유리 조각이 죄다 살에 박혔을 테니까.
‘미국을 괜히 왔나……?’
나는 회의에 잠긴 표정으로 맞은 부위를 차분히 정리했다. 손으로 옷자락의 파편을 툭툭 털어낸 것이다.
“흠.”
자, 그럼 슬슬 반대편에서 사과의 말이 나올 차례인데.
“잠깐, 그런데 당신은 그걸 왜 얻어맞은 거요?”
돌아온 건 예상치 못한 발언.
“엔조!”
“아니, 이상하잖아. 각성한 계열이 뭐든 S급 헌터씩이나 되는데 이것 하나를 못 피한다고?”
“…!”
이런.
뒤이어 엔조가 제시한 의문은 의외로 논리적이었다. 하긴, 진화의 선봉에 있는 최상위 각성자는 당연히 신체 능력도 괴물에 가깝거늘.
‘반사신경이 떨어진다는 걸 들켰나!’
나는 갑작스러운 추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뿔싸. 졸지에 호랑이 굴에 숨어든 여우인 것이 만천하에 밝혀질 참인데, 이걸 어떻게 해야…….
“후우우, 이 멍청아.”
하지만 이때.
엔조의 옆에 서 있던 여자 헌터가 굳은 얼굴로 말을 꺼냈다. 날 대신해서 말이다.
“도대체 너는 눈치가……. 척 보면 몰라? 방금은 뒤에 에스더가 있었잖아…….”
“뭐?”
“그가 잔을 피하면 뒤에 서 있던 손님의 드레스가 엉망진창이 됐을 거라고! 저 사람은 그냥 매너 있게 파트너를 보호한 것뿐이야. 내 말 알아듣겠어?”
그 외침에 참가객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린다.
차분한 색의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있는 에스더. 확실히 내가 몸을 피했더라면 위치상 그녀가 와인을 대신 뒤집어썼을 터.
“어서 사과해!”
“맙소사.”
웅성웅성.
이쪽은 단지 몸이 둔해 빠져서 당했던 건데. 어째 순식간에 동행인을 감싸려고 일부러 잔을 피하지 않은 대인배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나서서 부정하기엔 이미 분위기가 너무 굳었군.
“기려 씨이이…….”
옆에 있는 적발의 헌터는 벌써 감동으로 눈가가 그렁그렁했으니.
“엔조, 빨리.”
“아, 아무튼 미안하게 됐소!”
“괜찮습니다.”
나는 차려진 밥상을 마다치 않았다.
일련의 상황을 부드럽게 받아들여, 옷을 갈아입으러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빠르게 벗어난 것이다.
“같이 가요!”
“에스더 씨는 여기 남아계셔도 되는데요.”
“됐어요. 어차피 필요한 연락처는 진작에 다 땄다고요.”
에스더 헌터마저 이탈했으니 다시 저 마굴로 돌아가야 할 이유는 없겠고. 마침 파티가 지루했는데 이렇게 파투가 나니 어찌 보면 숫제 잘됐군.
‘고마워요. 지구촌 친구!’
그렇게 나는 상황을 잘 정리해준 금발의 은인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를 표하며 호텔을 나섰다.
***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브루클린, 파티는 잘 다녀왔어?”
뉴욕주의 [스펙트럼] 길드.
이곳은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정도로 규모가 큰 세계적인 거대 길드다.
게다가 소속된 S급 헌터의 숫자만큼은 게이트 스타를 뛰어넘어 가끔은 정부 기관마저도 쩔쩔매는 태도를 보이는, 그야말로 현시대를 이끌어나가는 포식자적인 단체.
“끔찍해.”
그런데 오늘은 이곳의 에이전트인 브루클린 모건이 상당한 고초를 겪고 온 모양이다.
풀썩.
장신의 여성은 소파에 앉자마자 다리를 쭉 뻗으며 툴툴거렸다.
“파트너로 붙여준 엔조 말이야. 그 자식이 사고를 얼마나 쳐대던지. 항상 그쪽을 신경 쓰느라 정보 수집은 하지도 못했다니까?”
창가에 있는 노년의 백인은 그녀의 투정을 조용히 들어주다 이내 말했다.
“그럼 그것 외의 특이한 점은 없던 거야?”
금발의 여성은 무언가를 떠올리듯 허공을 보다 툭 내뱉었다.
“이상한 헌터가 한 명 있었어.”
“누구?”
“한국에서 S급이 2명 왔는데, 어쩐지 남자 헌터 쪽이 마나가 거의 느껴지지 않더라고.”
브루클린 자신이 만났던 헌터의 모습을 되뇌었다.
날카로운 유리에 부딪혀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던 냉혈한. 하지만 그는…….
“아무래도 그 남자 자기 각성치를 속이고 있는 것 같아.”
충격적이게도.
파티장에서 적극적으로 변호를 해줬던 것과 달리, 브루클린은 내심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엔조가 던진 유리잔도…. 당시에는 외교적인 문제로 번질까 봐 급히 덮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S급이 그걸 못 피했다는 건 충분히 의심 살 만한 일이었지.”
브루클린 모건은 다리를 꼰 자세로 바꿔 앉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왠지 정상적인 S급으로 보기는 어려웠어.”
그렇다면 김기려의 등급 조작에 한국 헌터 협회도 가담하고 있는 건가.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가까운 예로 중국도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S급 각성자의 수를 부풀려 발표하고 있으니까.
인제 와서 사례가 하나쯤 늘어난다고 크게 이상하지도 않을 터.
“음……. 그런데 확실한 건 아냐. 그 헌터는 허세를 부린다고 보기에는 굉장히 침착했거든.”
“그래?”
“사기꾼이면 굳이 그런 자리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
등급이 불명확한 헌터라.
“흥미롭군. 시간을 줄 테니 더 자세히 알아 와.”
이야기를 들은 스펙트럼 길드의 관리자는 브루클린에게 명령했다. 김기려라는 사람의 뒷조사를 해보라며 말이다.
“진심이야?”
“물론 진행 중인 프로젝트부터 마무리 지은 뒤에.”
그가 등급을 속인 게 맞다면 한국에 허수아비를 세운 죄를 추궁해서 이득을 볼 수 있을 터다.
물론 그가 진짜 S급 헌터여도 나쁠 건 없고.
미필연한 악성 토벌.
인어고개 올 클리어.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 남성은 제법 특별한 축에 속했으니.
“한국이라. 확실히 그런 나라에 S급이 4명이나 있는 건 과하긴 했지…….”
창가의 노인은 콧잔등의 안경을 고쳐 쓰며 낮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