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34
132화. 파티 (2)
며칠 뒤.
어느덧 게이트 스타의 창립일 기념행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 사이에 필요한 준비는 모두 마쳤다.
비자니 뭐니 하는 복잡한 부분은 죄다 한국마탑이 처리해줬기에.
‘한국마탑이라.’
그나저나 국외 행을 앞두게 되니 문득 떠오른 것이다만, 그 길드는 왜 하필 한국마탑이란 이름을 쓸까.
“해외에 지사라도 있나?”
나는 궁금증을 없애기 위해 인터넷을 켰다.
그런데 이 주제는 의외로 실없이 끝났다.
【 지식Ing 】
[Q. 한국마탑은 왜 한국마탑인가요?] [A. 길드 제도 출범 당시 어떤 사람이 쓸만한 길드명을 마구잡이로 등록해둬서 (게임으로 치면 닉네임 선점) 마탑이라는 이름도 그때 뺏겼다네요.그런데 이 길드명을 팔아주는 대가로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길래 더러워서 한국마탑으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출처 20XX년 에스더 인터뷰]
저주술사의 신경을 건들다니, 그 이름 싹쓸이범은 지금쯤 이유 없는 불운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가여워라.’
여하튼.
궁금한 점도 풀렸겠다 나는 슬슬 약속 장소로 향했다.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에스더도 곧 공항에 나타났다.
“어? 저기 S급 헌터 아냐?”
“헉, 어디?”
“저쪽. 어어어? 잠깐, 이제 보니 저기 김기려 헌터도 있었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길래 역시 세상 사람들은 이웃에게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거늘.
이걸 보니 여태 주변이 조용했던 건 그냥 내가 마력이 적은 탓이었나.
‘안구에 습기가…….’
주변의 이목이 쏠린 사이.
인파 너머에서부터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에스더.
“기려 씨! 빨리 나와 계셨네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그럼 바로 수속 밟을까요?”
“예.”
그리고 이렇게 당당히 출국 준비를 하는 걸로 눈치챘겠지만…….
나는 [기사의 맹약]에 따른 미국행 보고는 진즉 마친 상태였다.
나찰사원 때부터 느낀 거지만 강창호는 최근 내가 어딜 가든 크게 신경 쓰지 않더라고.
물론 이에 대한 원인은 대충 짐작이 간다. 허세지만, 어쨌든 나도 공식적으로는 S급 헌터긴 하니까.
‘보통은 어디 가서 객사하기도 힘든 등급이지.’
스토커의 관심이 옅어지니 좋긴 한데, 막상 강창호의 주시가 없으니 이건 또 이것대로 불안했다.
-갑자기 미국으로 출국을? 난 이번 주에 다른 중요한 일정이 많아서 좀 힘들겠는데……. 미안하지만 그 파티는 혼자 다녀와 줄 수 있을까? 에스더와 함께라면 어차피 걱정할 것도 없잖아.
나는 강창호와 나눴던 통화를 잠깐 상기한다.
하지만 그의 바쁜 일정도 평생을 가진 않을 터.
돌돌돌돌.
생각을 마친 나는 캐리어를 끌며 저주사의 뒤를 부지런히 쫓았다.
***
비행기.
170톤가량의 쇳덩어리가 하늘을 누빈다는 건 상당히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직도 놀랄 일이 남아 있었다.
“이게 번역기라고요?”
입국 심사를 마친 무렵.
서에스더는 옆에 선 기려에게 이런 물건을 건넸으니.
“최신형 모델이에요. 빨리 받고 싶어서 직구했는데 다행히 기간에 맞췄네요.”
골전도 이어폰을 닮은 검은색 기기.
그것은 얇은 선을 통해 손바닥만 한 외장 장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어폰 부분을 이렇게 귓바퀴에 끼면……. 자, 상대방이 말한 외국어가 자동으로 번역돼서 들려요. 레이턴시가 살짝 있지만요.”
“아하.”
“게다가 버튼 하나로 내 말을 영어로 변환할 수도 있고요!”
“와.”
“역시 픽시는 기술력 하나는 인정해줘야 한다니까~”
잘그락.
한참 뒤. 기려는 손에 쥔 번역기를 만지작거리다 질문한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흥미를 참지 못한 것이다.
“저기, 그런데 픽시라는 건…. 정확히 뭘 하는 곳이죠?”
이에 에스더는 눈을 크게 뜨고 대답하기 시작했고.
“예? 픽, 픽시요? 그야 뭐, 헌터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주로 만드는 회사죠?”
“아.”
“각성 검사기, 분석기, 기타 등등. 요즘은 거기 기술이 안 들어가는 물건이 없잖아요.”
더 정확히 말하면 마석의 활용법을 찾아낸 기술자들이라고 해야 하나?
에스더는 고개를 갸웃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사실 이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건데. 픽시는 원래 게임 만들던 회사예요.”
“게임이요?”
“‘SOM’이라는 타이틀이 유명한데…….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에스더는 좋아하는 취미를 이야기하듯이 밝은 어조가 됐다.
“우리가 쓰는 분석기 홀로그램 화면이요. 이 기술이 다 어디에서 나온 건지 알아요? 놀랍게도 원래는 다 게임용이에요.”
[미확인된 게이트] [설명 : 게이트 정보가 없습니다.] [등급 : EX]이처럼 헌터들이 쓰는 물건은 허공에 글씨가 표시되는 경우가 많은데, 알고 보니 이 기술은 더욱 생동감 있는 게임을 만들려다 파생된 거였다나.
“그런데 던전 쇼크가 터지니 이 픽시 글라스 기법이 뜻밖에도 쓸모가 많더라고요.”
“흠.”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도 게임처럼 설명 창을 띄울 수 있으니까. 정보가 있고 없고는 꽤 차이가 크죠.”
즉, 원래는 게임의 UI를 표시하려고 만든 기술이 의도치 않게 헌터들을 도운 상황.
“그래서 우리가 쓰고 있는 용어가 게임 문화랑 많이 겹치는 거예요.”
픽시 사의 대단한 점은 바로 인식과 분류에 있었다.
그들은 회사가 가진 기술력을 이용해 미지를 측정하고, 분석하고, 결국 ‘마력’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명명하기에 이르렀으니.
“게임은 보통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게 설정을 직관적으로 하잖아요? 그래서 픽시에서 이름 붙인 게이트 개념들도 자연스럽게 사회에 정착했는데…….”
에스더는 픽시에 대한 찬양론을 한창 늘어놓다가 곧 표정을 구겼다.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말이다.
“문제는 그때의 공을 인정받아 픽시 쪽 기술자들이 죄다 미국 정부에 흡수돼버렸어요.”
“흡수요?”
“덕분에 게임 사업은 접은 지 오래고, 이젠 마석을 쓴 보조기구를 만드는 일만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 번역기에도 마석이 들어있다. 그렇게 말한 에스더는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게임에 인생을 바친 사람으로서는 좀 슬픈 말로죠.”
[SOM]의 서버 종료.과거에 겪었던 일을 떠올리던 에스더는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사실 이런 날이 언젠가 오리라고 예상은 했어요.”
“왜요?”
“픽시 사는 예전부터 쓸데없이 기술이 좋단 말을 자주 들었거든요.”
동시대의 게임 회사들보다 몇 단계는 앞서있던 기술력.
호사가들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런 천재들이 게임 따위에 쓰이기엔 너무 아깝다나.
“특히 이 번역기 초기 모델이 나왔을 때는 진짜 전 세계가 뒤집어졌는데. 그건 기려 씨도 기억나죠? 하핫, 이런 특허가 설마하니 글로벌 온라인 게임 때문에 탄생할 줄이야.”
은쟁반을 구르는 구슬처럼 맑게 웃어 보인 에스더는 이윽고 길드의 비서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와~ 픽시가 또 외계인 고문했나 보다. 이번 번역기는 무게도 진짜 가볍네!”
“우와.”
“하여간 여기는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외계인을 몇 마리나 갈아 넣는 거람?”
하하하. 호호호.
이때. 일행 중 한 명은 불현듯 식은땀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지만, 다행히 앞 사람들에게 들키진 않았다.
.
.
.
얼마 안 가 도착한 파티장.
파티가 열리는 건물은 의외로 도심지와 가까웠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주최 측이 나름대로 대비를 철저히 했다는 게 느껴졌다.
‘보호막이다.’
무한동력 코어를 3개는 소모했을 법한 견고한 다층결계라.
‘정확히는, 바깥의 일반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막이겠지.’
두 명의 각성자가 건물로 들어서자 입구의 경비원은 간단한 신원 확인에 들어갔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자줏빛 머리칼. 작은 키. 그리고 짙은 속눈썹의 처진 눈.
이는 분명 한국의 대표로 온 모 길드장일 테고.
“이쪽은 Gi Ryeo 헌터님?”
경비원이 격식 있는 차림을 한 남성에게 이름을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왔다.
“확인됐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고마워요.”
양방향 번역기를 착용하고 있어서인지 그들 사이에 소통의 문제는 없었다.
“……그래도 기계라 가끔은 오류가 있을 테지만요.”
기려는 에스더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갔다.
이윽고 도달한 곳은 실로 사치스러운 풍경이었지. 눈부신 샹들리에, 은은한 금색으로 빛나는 조명, 거기에 벽을 수놓는 섬세한 대리석 조각상까지.
파티장에 들어간 삼백안의 남자는 신기한 듯 주변을 살폈다.
“흐음.”
하지만 서에스더는 연회장의 화려한 풍경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중국의 즈한, 노르웨이의 크리스티안, 그리고 저쪽은 캐나다 헌터.
그 귀하다는 S급들이 발에 챌 듯이 널려있는데 어떻게 다른 곳에 신경을 쏟겠나.
에스더는 파티장에 온 인물들을 점검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는 이야기 좀 하고 올게요.”
“네.”
그렇다면 길드장도 갔겠다, 이제는 진짜 구경 말고는 할 게 없군.
동행인과 떨어진 기려는 잠시 파티장을 홀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변 곳곳에 핑거 푸드가 준비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는데.
테이블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Hey!”
큰 덩치와 호쾌한 인상의 서양인.
당연한 말이지만 이쪽은 완전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봐, 마실 건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예?”
“음식만 준비하면 뭐 해. 같이 마실 샴페인 한 잔도 없는데 말이야.”
귀에 낀 이어폰에서 AI 음성으로 치환된 한국어 문장이 흘러든다.
하지만 번역이 완료됐음에도 대화는 여전히 난항을 겪었다.
“그렇게 멀뚱히 있지 말고 빨리 마실 것 좀 가져와!”
그야, 저 거구는 아까부터 이상한 요구를 하고 있으니까.
“어, 죄송하지만 음료수가 어디 있는진 저도 모르겠는데요.”
기려는 옆으로 다가온 인물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그러나 상대는 설명을 듣고 오히려 더 큰 불만을 표했다.
“뭐? 이것들, 직원 교육을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어떤 녀석이 자기 일도 모르는 얼뜨기를 여기에 놔둔 거냐고.”
“예?”
“허 참!”
이걸 들으니 드디어 남자가 한 오해가 명확해진다.
그 백인은 기려가 파티장을 관리하는 도우미인 줄 알고 심부름을 시키려 했던 거였다.
“이렇게 바보처럼 굴 거면 주방으로 빠져서 접시나 닦아. 지금 여기에 중요한 손님이 몇이나 있는 줄 알아?”
“아니…….”
“그리고, 뭘 시켰는데 모르겠다면 알아보려는 시도라도 해야지.”
이 파티는 게이트 스타의 길드원들과 각국의 S급 헌터를 위한 행사니 사실상 참가객은 각성자 뿐.
그런데 게이트 스타는 저급의 각성자를 고용하지 않으니. 당연히 눈앞의 동양인은 호텔 직원이지 않겠는가?
“쯧, 대접이 개판이군.”
그는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화를 냈는데, 기려는 오해를 풀기 위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저는…….”
하지만 이 시도는 뒤이어 터진 목소리에 묻히고야 만다.
“세상에. 엔조, 이 머저리야!”
또각, 또각, 또각.
저 멀리, 스틸레토 힐을 신은 여성이 다급하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누군가의 인위적인 금발과 달리 윤기가 좋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는데.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금발의 여자는 경악하며 말했다.
“그분은 초대객이잖아! 너 지금 같은 S급을 하대하고 있는 거라고!”
저 동양인이 초대받은 외국의 헌터라니. 아니, 그렇지만.
“뭔 소리야? 이놈은 아무리 봐도 하급…….”
“사람들이 다 너처럼 무식한 줄 알아? 한국의 S급들은 마력을 절제하고 다니는 예절이 있어. Mr. 정이 인터뷰 일을 겪은 이후로!”
엔조라 불린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대를 훑는다.
하지만 몇 번을 확인해도 결과는 같았다. 이곳의 모 헌터는 정말로 F급에 불과한 마력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어어…….”
“됐으니까 꺼져. 어서 사과하고 꺼져버려.”
어영부영하는 사이.
금발의 여성은 털이 북슬북슬 난 남성을 닦달하여 멀리 보내버렸다.
이어진 건 짧은 통성명이다.
“오, 미안해요. 내 친구가 실례를 저질렀네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그쪽도 이 파티에 올 줄은 몰랐는데. 당신이 맞죠? 그 괴물 뱀을 죽인.”
하이힐을 신어서인지 기려보다도 큰 키로 보이는 모델 같은 신장의 여성.
그녀는 당신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며 김기려에게 호의적인 태도로 악수를 청했다.
“나는 브루클린 모건입니다.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당신은 이름이……. 기, 기…….”
“기려.”
“키리아.”
완벽한 첫인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무난히 대화를 시작한 게 어딘가 싶다.
“기-리유? 키, 키이…….”
“그냥 김이라고 부르세요.”
“고맙습니다.”